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27)
027화. 통 큰 투자 (3)
“하아- 정말 난감하군.”
“난감할 게 뭐가 있습니까? 예건이는 무조건 저희 설계 3팀에 들어와야 한다니까요.”
“아니, 박 이사. 그게 무슨 말이야? 이번에는 우리 차례라고!”
정기택 상무의 사무실.
언성을 높이며 다투고 있는 것은 설계 1팀 이주홍 이사와 설계 3팀 박노훈 이사였다.
“아니, 그럼. 우리가 이번에 수주한 새보람 종합병원은 어쩌고? 디자이너가 바뀐 걸 이사장님께서 아시면 큰일 날 일이라니까.”
“야, 박 이사야. 작년에도 너네 팀 급하다고 신입 양보했잖아. 이번에는 우리 차례라고. 예건 씨는 절대 양보 못 해! 아니, 안 해!”
두 사람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대를 세우자, 보다 못한 정기택 상무가 두 사람을 중재했다.
“그만, 그만!”
정 상무의 호통에 입은 다물었으나, 여전히 핏발을 세우고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
“내가 결론 내고 오라고 했지! 여기서 싸우랬냐?”
“하지만 상무님, 이건 저희 3팀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니까요.”
“상무님, 언제까지 3팀만 예뻐하실 겁니까? 저희 1팀이 매년 매출 목표에 미달하는 건 다 상무님 탓이라고요.”
“야? 내가 언제 3팀만 예뻐했다고 그래? 그리고 디자인을 신입이 하냐? 내가 아랫사람이나 부려먹으라고 너 팀장 시켰어?”
정기택 상무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너네들이 하도 시끄럽게 떠들고 다녀서, 설계팀 팀장들이 매일 고 녀석 한 번 보겠다고 대회의실 앞 복도를 두리번거리는데. 내가 다른 팀장들 막으려고 얼마나 고생하는지 너네는 모르지?”
“…….”
두 팀장이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듣기로는 아직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던데?”
정기택 상무의 시선이 이주홍 이사를 향했다.
“흠흠. 그게 아직 저한테 한 번도 찾아오질 않아서….”
팀장들의 직접적인 간섭을 최대한 줄이고 인턴 스스로가 최대한 창의적인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도록 담당 팀장의 대회의장 방문은 불가능한 것으로 못 박았다.
게다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30분 이내 미팅만 허용되었으니, 본인이 찾아가지 않는다면 디자인 과정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 정말 디자인 잘하는 것 맞아?”
“물론입니다. 박노훈 이사네 병원 제안서도 보셨지 않습니까?”
박 이사가 이주홍 이사를 노려보며 다그쳤다.
“너, 설마 우리 예건이한테 쓸데없는 소리 한 거 아니지? 내가 누누이 말하는데, 네 깜냥으로 감당할 수 있는 녀석 아니다.”
“찾아오지도 않는 녀석한테 무슨 수로 쓸데없는 소리를 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그만-!”
개와 고양이를 데려다 둬도 이보다 조용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정기택 상무가 오른쪽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내가 보기엔 너희가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 봤자, 너희 선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야.”
“네?”
“그게 무슨?”
정기택 상무가 물었다.
“녀석이 우리 회사에 입사는 하고 싶대?”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원초적인 질문에 두 팀장이 허가 찔린 표정을 지었다.
“이거 봐. 내가 니들이 그럴 줄 알았다. 에휴~. 내가 불러서 직접 만나 볼 테니까, 그렇게들 알아.”
“네? 아니, 그럼 저희는?
“일단 녀석을 붙잡아 둬야 어디든 가지 않겠어?”
“아….”
“일단 가서 기다려 봐. 이번 공모전 상관없이 입사부터 확정시켜야겠다. 그런 녀석을 다른 회사에 뺏길 수는 없는 일이지.”
“넵.”
그제야 설계 팀장들이 순순히 물러섰다.
정기택 상무는 인사팀에 연락해 예건에게 연락이 닿는 대로 자신에게 들르도록 이야기하라 전하고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똑똑.
“들어와요.”
문을 열자 말끔하게 생긴 청년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한예건입니다. 찾으셨다고 들어서요.”
“아아~. 한예건 씨. 어서 들어와요.”
예건의 첫인상을 본 정기택 상무는 어색함을 느꼈다.
일제강점기를 떠올리게 하는 클래식한 패션.
스카프를 펼쳐 놓은 듯한 넓은 에스코트 타이에 자신도 잘 챙겨입지 않는 조끼까지 껴입은 것이,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FM스타일인가?’
사회생활만 30년.
그간 별의별 군상을 상대해 온 그마저도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거리감이 눈앞의 젊은 인턴에게서 느껴졌다.
전무가 불렀음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은 예건의 태도에 되레 목이 타는 것은 정기택 상무였다.
애써 그런 속마음을 숨긴 채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정 상무.
“하하하. 편하게 앉아요. 편하게.”
“감사합니다.”
곧이어 비서가 차를 내오고, 본격적인 용건에 들어갔다.
“설계팀에서 예건 씨를 영입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하더군요.”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본인의 의견을 묻고 싶어서 불렀어요. 이제 곧 4학년이니, 졸업도 해야 하고. 아! 물론 학교 측에는 직무 교육으로 수업 대체가 가능하도록 지원할 겁니다.”
정기택 상무의 말에 잔잔하던 예건의 표정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겼다.
“직장 업무를 대학 학점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요?”
“그래요.”
“그런 방법도 있었군요.”
예건이 관심을 보이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기택 상무가 물었다.
“이제 우리 회사 정직원으로 입사하는 것에 대한 예건 씨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본인만 원한다면, 공모전 성적과 관계 없이 우리회사에서 정직원으로 채용하는 걸로 하고 싶은데.”
건림건축에 지원한 인턴에게는 엄청난 특권이었다.
하지만 정기택 상무의 생각과는 다르게 예건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공모전 성적과 상관없이 말입니까?”
“그래요.”
“감사한 제안이지만,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완곡한 거절은 아닐까 염려되어, 되려 마음이 조급해지는 정 상무였다.
“그 문제란 게 뭐죠?”
“어머니께서 곧 사업을 진행하실 예정인데, 당분간 공사 관리를 제가 해야 할 것 같거든요.”
“공사라면…. 얼마나?”
“인테리어라서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흠…. 그래요? 그런 일이라면 입사 일정은 저희 쪽에서 맞추는 것으로 하죠.”
정기택 상무가 한 걸음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예건은 확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더 원하는 게 있으면, 편하게 말해봐요.”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뭔가요?”
“건림건축에 입사하게 되면, 꼭 특정 팀에 들어가야 하는 겁니까?”
의외의 물음에 정기택 상무가 눈을 끔뻑였다.
“원하는 팀이라도?”
“이왕이면 모형팀에 가고 싶습니다.”
“모형…. 팀? 아니, 모형팀을 왜?”
그가 지난 두 달간 경험해 본 바, 출퇴근과 외근이 가장 자유롭고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곳이 모형팀이었다.
물론 설계 허가나, 현장 경험도 중요하겠지만.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좀 더 집중하게 되는 프로젝트가 생길 것이고, 그때 팀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예건의 속을 알 리 없는 정기택 상무는 정확한 의도가 파악되지 않아 고민스러웠다.
물론 항상 사람이 부족하다며 울상을 짓는 모형팀에서는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설계실 팀장급들이 둘이나 노리고 있는 인재를 겨우 모형팀에서 썩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모형팀으로 가면, 설계 업무를 할 수 없을 텐데. 그래도 괜찮은 건가요?”
정기택 상무의 물음에 예건이 의뭉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모형팀에서 설계를 제일 많이 했는데요?”
* * *
“하하하. 모형팀을 지원했다고? 재밌는 친구군.”
“그러게 말입니다. 순간 제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정기택 상무는 아직도 얼떨떨한 모양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어쩌기로 했나?”
김수훈 대표가 재밌다는 듯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
“어쩌긴요. 일단 녀석을 붙잡아 두려면, 해달라는 대로 해야죠. 보람 의료재단 이사장이 분명히 녀석을 찾을 거라면서 박노훈 이사의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긴 합니다만.”
“벌써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그만큼 능력이 뛰어나다는 방증이겠지. 그래, 학교 측에는 알아봤고?”
하아~.
정기택 상무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쪽에서도 난리예요.”
“왜?”
“담당 교수가 한국대 도시계획과 김현명 교수인데, 졸업 학점 문의하려고 연락했더니 대학원 준비해야 할 놈이 갑자기 무슨 취업이냐고 노발대발하면서 당장 회사로 찾아오겠다는 걸 말리느라 진땀 뺐습니다. 어휴.”
“후후후. 교수까지 아쉬워하는 친구란 말이지.”
김수훈 대표의 눈매가 깊어졌다.
“궁금하군, 어떤 친구인지. 자네가 보기엔 어떻던가?”
정기택 상무의 직원 평가와 관리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함을 잘 알고 있는 김수훈이었기에 그의 정확한 평가가 궁금했다.
“제가 보기에도 보통 놈은 아닙니다. 아직 다른 업무 능력은 좀 더 확인할 필요가 있겠지만, 설계 실력만큼은 제대로예요.”
“그렇군.”
“문제는….”
정기택 상무가 김수훈의 눈치를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틀에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흠…. 그 말은 우리 회사 시스템에 녀석이 적응하지 못할 거란 말인가?”
“아뇨.”
정기택 상무가 고개를 저었다.
“주객전도죠.”
“주객전도?”
“녀석의 능력을 회사 시스템이 망가트릴 겁니다. 그 전에 녀석은 벗어나려 하겠죠. 그때는 이미 잡으려고 해도 늦습니다.”
냉정한 정 상무의 평가에 김수훈 대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겠네.”
출중한 디자이너 한 사람을 들이는 것은 회사로서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디 건축 설계 바닥이 그렇게 녹록한 곳이던가?
한정된 시장에서 기득권들이 살아남기 위해 구축해 놓은 도제 방식의 회사 시스템 속에서 뛰어난 인재란 튀어나온 못 같은 존재였다.
신예 디자이너를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대우한다면, 그를 향한 기존 직원들의 질시와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게다가 실무라는 높은 벽은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다.
그렇기에 매년 김수훈 대표는 창작 능력은 출중하지만, 사회에 쉽사리 적응하기 어려워 보이는 인턴들을 자신의 팀으로 끌어안아 그 능력을 보존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정기택 상무는 한예건이란 녀석을 담기에는 김수훈의 그릇조차 부족할 거라 경고하는 것이다.
“믿어지지 않으시면, 새보람 종합병원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아니, 됐네.”
김수훈은 그 능력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요청에 대응해 만든 디자인이 아닌, 한예건의 생각이 오롯이 담긴 그만의 설계를.
“그런데 아직도 그대로랍니까?”
“뭐가 말인가?”
“배치도에 나무만 그리는 거요.”
정기택 상무의 물음에 김수훈이 형형한 눈빛을 하고는 허허 웃었다.
“아침에 소동이 한 번 일었던 모양이야.”
“소동이요? 무슨…?”
“뭐긴, 정차했던 기차가 달리기 시작한 거지. 그래서 내가 직접 만나볼 생각이네.”
“대표님이. 직접요?”
* * *
오늘따라 예건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출근하기도 전에 정기택 상무가 부르더니,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김수훈 대표와 마주 앉아 각을 잡고 앉아 있는 한예건.
“평생 이것만 먹어서 말이지. 다른 건 입에 잘 안 맞아. 믹스커피도 괜찮지?”
대표가 대회의실로 직접 자신을 찾아온 것도 모자라, 손수 믹스커피까지 타서 내주었다.
“네. 좋아합니다.”
후루룩.
믹스커피 1봉지의 양을 한입에 털어 넣은 김수훈 대표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입맛처럼 오래 길들어서 바꾸기 힘든 것도 없지.”
김수훈 대표가 예건의 두 눈을 직시했다.
“설계사무실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좋은 인재가 나타나도 그 사람만 특별대우를 해 줄 수는 없어. 시스템이 너무 굳어서 쉽게 바꾸기가 힘든 거지.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나?”
예건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과거 자신의 아뜰리에에서 숱하게 경험했던 것이다.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자신의 건축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지위에 앉으려면 돈이 충분하거나,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지식적 기반을 갖추어야만 한다.
자격이란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니까.
“자네의 음악당 공중화장실 제안…. 훌륭하더군.”
“감사합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너무 곤란해.”
“…….”
김수훈은 아까 예건의 자리에서 보았던 A1 사이즈를 꽉 채웠던 배치도를 떠올렸다.
음악당 화장실을 디자인하라고 했더니 후원 전체를 디자인해버린 패기.
게다가 공간을 입체적으로 분석한 후에야 나올 수 있는 구체적인 단지 계획.
아마 설계팀 하나가 몇 달을 물고 늘어진다고 해도, 그것보다 더 훌륭한 계획안을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을 본 이후로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예건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렇기에 더욱 고민인 것이다.
자신의 그릇이 그 정도로 크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정기택 상무의 말대로 녀석을 끌어 앉고 자폭하는 것은 아닌지.
김수훈 대표의 눈이 어둡게 빛났다.
아쉬움과 미안함이 담긴 눈이었다.
“자네는 물론 이번 공모전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라 생각했겠지만, 아냐. 아주 잘못 생각했어.”
“…잘못이라고요?”
“그래. 내가 자네의 디자인에 집착하게 될 거 같거든.”
한국의 최고 건축디자이너로 불리는 김수훈이.
자신보다 한 참 어린 디자이너의 디자인에 집착한다?
그가 예건의 디자인을 인정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 건축계에 어마어마한 이슈가 될 일이었지만, 예건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김수훈 대표가 예건에게 확고하게 말했다.
“자네를 꼭 우리 회사로 영입하고 싶네. 지금 당장 시스템을 바꾸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어.
하지만 이것만은 약속하지. 자네가 독립할 때까지 자네 이름을 걸고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네. 만약 우리 회사가 자네의 기대에 차지 못한다면, 그때 이곳을 떠나도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