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30)
030화. 종이 위에 음악을 그리다 (2)
곁에서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이성재 팀장이 조심스럽게 조관용 시장에게 조언했다.
“시장님, 이 작품의 디자인이 훌륭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산을 완전히 벗어난 범위입니다. 화장실과 그 주위만 시공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후원 공사까지 이번에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겠지요.”
조관용 시장도 이성재 팀장에 동의했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이성재 팀장이 김수훈 대표에게 완곡하게 요청했다.
“김 대표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후원 규모만 1만 평에 달합니다. 그런 곳을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은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좀 더 현실적인 제안을 부탁드립니다.”
이성재 팀장의 의견에 김수훈 대표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정했다.
“큰 예산이 든다는 것은 저도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당장 이렇게 설계하시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좋은 안을 가지고도 실제로 적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서 제안을 보여드린 것뿐입니다. 괜한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조관용 시장이 부드럽게 말을 받았다.
자신이 기다렸던 기회가 지금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팀장 말대로 당장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시는 현재 ‘국제 관광도시 환경 조성 기관’을 설립할 계획 중에 있으니까요.”
“오호~. 그렇습니까?”
김수훈 대표가 관심을 보이자, 조관용 시장이 조직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연하고는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서 충분히 추진이 가능할 거라 판단됩니다.”
“서울시에 국제적인 명소를 만들겠다는 의도라면, 이만한 장소가 없겠군요. 음악당의 후원이 완공되면 시민들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게 될 명소가 될 거라 확신합니다.”
명소라는 말에 조관용 시장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한국 최고의 건축가가 명소를 논할 정도로 엄청난 디자인이라는 말인가?’
조 시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김수훈 대표에게 물었다.
“저는 국제 관광도시 환경 조성 기관 수장으로 김수훈 건축사님을 추천할 생각입니다만.”
“저를요?”
“대표님만 허락하신다면, 다음 달 내로 기관 조성을 확정 지으려 합니다. 음악당 후원 조성이 첫 번째 프로젝트가 되면 더 그림이 좋을 것 같군요.”
조 시장의 제안에 김수훈이 화색을 띠며 즉답했다.
“좋습니다. 그런 조건이라면 수락하지요. 첫 회의 안건으로 부족하지 않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김 대표가 흔쾌히 답하자, 조관용 시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후원을 디자인한 인턴이 꽤 마음에 드시는 모양입니다. 제대로 키워 보시려는 모양이지요?”
그러자 김수훈 대표가 확신하듯 말했다.
“제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 드러날 녀석입니다. 귀한 보석은 찾는 이가 많은 법이니까요.”
“하하하.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다음 회의가 더 기대되는군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김수훈이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예건의 디자인을 마지막으로 최종 확정이 끝나고 시장과 팀장은 김수훈 대표와 차후 일정을 논의하고 돌아갔다.
김수훈은 정기택 상무를 대표실로 불러 최종 당선자를 적어 둔 종이를 건넸다.
“흠…. 팀장들과 의견이 같군요.”
“그렇게 됐군.”
“유하나 양이 조금 아쉽습니다.”
“운이 없었지.”
“혹시나 결원이 생길지 모르니, 보결로 두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정기택 상무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일어나는데, 김 대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퇴근 전에 한예건 씨, 내 집무실에 들르라고 해 주게. 아무래도 음악당 후원 디자인 관련해서 상의를 좀 해야 할 것 같군.”
“알겠습니다.”
* * *
2달간의 길었던 인턴십도 이제 마지막 일정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오후 1시가 되자, 공고란에 공모전 당선자 리스트에서 예건, 영광, 다은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하나가 예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축하해요.”
“고맙습니다. 하나 씨 디자인도 괜찮았는데, 아쉽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습니다. 다만.”
“다만?”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주변과의 조화의 문제죠. 미술관이란 공간을 하나의 캔버스라 생각했을 때, 전체 그림이 조화롭기 위해서는 때로는 조연이 되는 건물도 필요한 법이니까요.”
“조연이 되는 건물.”
“만약 화장실이 아니라 미술관 건물이었다면 좋은 접근이었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현장을 꼭 가보라고 했던 거군요.”
예건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는 꼭 가볼게요. 현장. 조언 고마워요.”
유하나가 풀리지 않았던 문제가 해결된 듯 개운한 얼굴로 싱긋 웃고는 돌아섰다.
인턴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종무식이 이어지고, 모두 아쉬운 인턴 기간을 마무리했다.
최종 당선자 다섯 명만 별도로 남아 정기택 상무와 면담 시간을 가졌고, 인사팀장과 개인 면담을 통해 추후 입사 일정도 논의했다.
최미현 인사팀장은 마지막 면접자인 예건을 데리고 대표실로 이동하며 농담조로 말했다.
“의외네요. 예건 씨, 처음 봤을 때 오래 못 버틸 줄 알았는데.”
“왜죠?”
최미현이 예건을 흘긋 훔쳐보고는 말을 이었다.
“음… 스타일 때문이랄까? 약간 고리타분한 성격일 거라 회사 시스템에 잘 안 맞을 거라고 지레짐작했어요.”
“그저 선호하는 패션일 뿐입니다.”
예건이 억울한 듯 변론하자, 최미현 팀장은 쿡쿡 웃으며 말했다.
“첫인상이었을 뿐이에요. 결과는 보시다시피 제가 틀렸네요.”
벌써 5년의 역사를 갖는 건림건축 인턴십.
매년 수많은 지원자를 만나온 최미현이었으나, 첫인상과 그 결과가 사뭇 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한예건은 특별했다.
인턴십 첫 주에 설계팀장에게서 이 녀석은 꼭 뽑아야 한다는 청원이 들어오고, 인턴십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도 채용하겠다고 공고한 것은 한예건이 처음이었다.
거기에 더해 설계팀 총관리자인 정기택 상무가 아니라 김수훈 대표가 직접 관심을 보이는 인턴이라니.
‘도대체 그 깐깐한 김 대표님의 시선을 사로잡은 비결이 뭘까?’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생각보다 진중한 성격인 것 같지만, 어딘가 현실과 동떨어진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특이하기는 했다.
‘설계할 때면 돌변하기라도 하는 건가? 호호.’
김수훈 대표가 인사팀장인 최미현도 함께 들어오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곁에서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최미현 팀장이 비서에게 다른 손님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한예건 씨, 데리고 왔습니다.”
“들어와요.”
기다렸다는 듯 김수훈 대표가 직접 문을 열며 반겼다.
살짝 놀란 최미현의 뒤를 따라 예건이 대표실로 들어섰다.
김수훈 대표가 직접 예건을 소파로 안내하며 차를 권했다.
“정말 고생 많았네. 마지막 공모전 결과물도 최고였어. 이번 공모전 심사위원이었던 팀장급 임원들이 한예건 씨 작품을 보고는 다들 극찬을 하더군.”
“감사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하나 생겼네.”
“문제라니요?”
“서울시장이 자네의 후원디자인을 마음에 들어 해.”
다른 인턴이었다면 놀랄 법도 한데, 예건은 당연하다는 듯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여상한 태도에 오히려 김수훈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관용 서울시장이 국제 관광도시 정책 회의에서 자네가 직접 음악당 후원디자인의 설계안에 대해서 브리핑해 주기를 요청했네.”
“정책 회의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3주 뒤 금요일이네. 자네가 채용까지 시간을 좀 내달라고 했는데, 일정과 겹쳐서 말일세. 브리핑 자료를 만드는데 혹시 어려울 것 같으면 다음 달 회의 일정으로 조정하겠네.”
물 흐르듯 의견을 나누는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최미현 팀장은 갑자기 전개된 상황을 파악하느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한예건을 대하는 김수훈 대표의 태도가 너무도 정중했고, 예건은 당당하다 못해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편안했기에 더 어색했다.
일정을 잠시 가늠해 본 예건이 입을 열었다.
“공사 기간이 예정보다 조금 길어질 것 같은데, 병행해도 괜찮다고 하시면 조금 빨리 입사할 수 있습니다. 현장이 사무실과 가깝기도 하고 그곳에서 하루종일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래? 다행이군. 그럼 졸업학점 관련해서 학교 측과 협의만 마무리되면 3월 중이라도 입사하는 거로 하지.”
“네. 그럼, 저는 모형팀으로 입사하는 건가요?”
“아, 팀 배정에 관해서 아직 알려주지 못했군. 자네는 설계기획팀에 배정될 걸세.”
김수훈 대표의 말에 당황한 최미현 팀장이 물었다.
“대표님, 저희 회사에는 설계기획팀이 없는데요?”
“그래서 자네를 부른 거야. 내 직속 부서로 설계기획팀을 만들 생각이네.”
“그럼, 팀원은 어떻게?”
“부서가 자리 잡을 때까지 한예건 씨만 있는 것도 괜찮겠지. 자리는 내 집무실과 가장 가까운 중회의실에 마련해 주게.”
“…네.”
뒤이어 후원의 발표 준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어졌고, 인턴답지 않은 전문적인 용어가 예건의 입에서 마구 튀어나왔다.
그런 예건을 놀라움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김수훈 대표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조경 공부는 언제 그렇게 한 건가?”
잠시 머뭇거리던 예건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무에 관심이 많아서 책을 좀 봤습니다.”
“하하. 자네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군. 전문가를 따로 붙여줄 필요가 없겠어.”
“과찬이십니다.”
“과찬이라니, 자네의 후원디자인을 보고 팀장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나?”
“글쎄요.”
“도대체 이런 괴물이 어디 있다 나타난 거냐고 그러더라고. 하하하.”
설계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최미현이 보기에도 예건의 지식수준은 보통이 아니었다.
김수훈 대표가 새로운 팀을 만들어 그를 곁에 두고 싶어 할 정도로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가 이해되었다.
‘설마 대표님께서 후임 수석디자이너로 한예건 씨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건가?’
김수훈 대표는 자신의 회사명을 걸고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직접 관여하며 자신의 의도를 벗어난 디자인은 전혀 용납하지 않았다.
현재는 김수훈 건축사의 명망이 높기에 그 누구도 김수훈 건축사의 건축 스타일이 확고하게 담긴 결과물을 두고 호불호를 논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대는 끊임없는 발전을 요구하는 시대.
세계가 주목하는 메가 히트 건축이 없다는 꼬리표가 김수훈 대표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그 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 김수훈 대표는 회사의 정체성을 대표할 수 있는 새로운 건축 사조를 탄생시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해왔다.
그가 공모전 팀을 통해 끊임없이 실험적인 건축디자인을 선보이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한 번의 위기도 없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으나, 김수훈 대표의 나이도 어느덧 60대에 접어들었다.
회사를 대표해 김수훈 대표의 영향력을 이어갈 수석 디자이너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
김 대표가 건림건축의 미래를 한예건이란 인물을 통해 이끌어가려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최미현 팀장은 함께 주어진 무거운 임무를 기꺼이 떠안기로 결심했다.
* * *
라 메종드 아르누보의 첫 공사 날.
아침 일찍 현장으로 향하는 예건에게 서희가 복잡한 심정으로 물었다.
“정말 혼자 잘할 수 있겠니?”
“걱정마세요. 시방서 몇 번이나 체크 했으니까요.”
예건의 시원한 대답에 명호가 아들 편을 들며 서희를 타일렀다.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그러네.”
“그래도 예건이가 혼자 공사 현장을 관리하는 건 처음이잖아요. 당신이 같이 봐 주면 좀 좋아요?”
“오늘은 전기랑 먹 놓는 작업뿐이라 별거 없대도. 좁은 공간에 사람만 많아 봐야 복잡하기나 하지. 적당한 시각에 들를 테니 얼른 가라.”
“네, 다녀오겠습니다.”
예건은 발걸음 가볍게 현장으로 향했다.
전기와 목공은 아버지가 이미 베테랑 작업자들로 섭외를 마쳤기에 자신은 도면에 맞게 작업 진행이 되는지 확인만 하면 되었다.
7시경 가게 앞에 도착해 먼저 도착해 있던 전기 반장님과 간략히 인사를 나눴다.
잠시 후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목공 반장이 도착했고, 본격적으로 작업에 착수하려는 찰나.
목공 반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 왜? 뭐? 아니,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야?”
한참 동안 전화를 붙잡고 수신자와 실랑이를 벌이던 목수 반장이 도저히 안 되겠는지 전화를 끊고 쭈뼛거리며 예건에게 다가왔다.
“이전 현장에서 갑자기 문 하나가 빠졌다고 당장 들어 오라네요. 아니, 도면에서 빠트려 놓은 건 자기들이면서 왜 작업자들한테 뭐라 그러는 건지. 원.”
“오래 걸리실까요?”
“왔다 갔다 반나절은 걸릴 것 같은데, 다녀와서 정리해 드리면 안 되겠소? 전기는 대충 걸어 놓고 가면, 벽 칠 때 정돈해 드리리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예건이 미간을 찌푸렸다.
“장비는 다 들고 가셔야 합니까?”
“차에 한 세트 더 있으니, 두고 갈 생각인데. 왜?”
“급한 부분은 먼저 체크해 두려고요.”
“자네가?”
예건을 위아래로 훑어본 목수가 미덥지 못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일을 두 번 하게 될 텐데.”
“두 번 안 하시게 해 놓겠습니다.”
목수의 눈에는 예건이 이제 갓 회사 들어온 신출내기 직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먹 놓는 게 힘이 들지 않아 쉬워 보이지만, 막상 작업이 익숙하지 않은 이가 했다가 오히려 이후 작업에 혼선을 줄 수도 있었다.
먹줄을 반장급 목공이 작업하는 이유는 도면을 명확히 볼 줄 알아야 하는 데다 먹줄 또한 정확히 한 번에 튕겨야 시공 오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목수는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재촉하는 전화벨에 조급함을 느끼고 황급히 대답했다.
“꼭 필요한 곳만 하쇼. 다녀와서 내가 직접 할 테니.”
“네. 급한 일 같은데 빨리 다녀오십시오.”
목수가 가게를 나서고 예건이 목수가 놓고 간 장비 가방을 열어 먹줄을 찾아냈다.
“먹줄은 오랜만이네.”
예건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어리는 것도 잠시, 먹통에 잉크를 넣고 먹줄을 당겨 벽과 바닥에 능숙하게 기준선을 표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