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32)
032화. 세상에서 가장 큰 조각품 (2)
건림건축 설계기획실.
10평 남짓한 사무실 중앙에는 거대한 16인용 회의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모형 작업이 한창이었다.
두 손 가득 간식거리를 챙겨 온 이주홍 이사가 어깨로 유리문을 밀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김준호 대리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반겼다.
“이사님, 뭘 또 그렇게 사 오셨어요.”
“하하하. 대표님께서 일 없이 자꾸 드나들지 말라고 하시잖아. 업무에 방해된다고.”
“어휴~. 방해라뇨. 어서 들어오세요.”
“그런데 한 디자이너는?”
“대표님 호출요. 브리핑 마지막 점검 하신다고 부르셨어요.”
마지막 점검이라는 말에 이주홍 이사가 호들갑을 떨었다.
“와~. 왜 내가 긴장되냐?”
“보통 일은 아니잖아요.”
“그렇지. 보통 일이 아니지.”
이주홍 이사가 꿈꾸듯 멍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턴 마지막 과제.
팀장들의 만장일치로 한예건의 작품이 선택되었을 때만 해도 이주홍 이사는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며 으스댔다.
하지만 음악당 후원의 배치도를 보았을 때, 팀장들 중 그 누구도 쉬이 말을 꺼내지 못했다.
평가하려 해도 평가할 수 없는 작품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이주홍 이사의 머릿속에서 한예건이란 인물에 관한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미적 감각이 뛰어난 조형 천재에서 설계에 미친 천재로.
20년 넘게 경력을 쌓는 동안, 이 이사는 그런 배치도를 본 적이 없었다.
나무 한 그루의 수형, 수종, 수고까지 고려하여 치밀하게 디자인된 조경 배치도.
그리고 후원 중앙, 존재감 넘치는 거대한 상징물인 파이프 버드나무와 후원의 풍경이 만들어진 의도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우연히 이뤄진 것은 없었다.
예건의 설계를 접하고 이주홍은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예건의 디자인 을 지지하는 추종자가 되었다.
그가 예건이 설계기획실에 자리잡은 이후로 매일 기획실을 드나드는 이유였다.
그의 첫 번째 작품인 후원의 배치도가 실제로 모형화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게 그 배치도라고? 눈앞에서 모형을 보고 있는데도 믿기지 않는다.”
“어휴~. 모형 제작을 돕고 있는 저도 볼 때마다 놀라는걸요. 배치도를 그릴 때부터 이 광경을 상상하면서 나무를 배치했다는 거잖아요. 진짜 설계에 미친 놈이 아닌가 싶다니까요.
가끔은 녀석 머릿속을 뜯어보고 싶은 생각까지 들어요. 분명 뇌에 컴퓨터 칩이 들어가 있을 거에요.”
김준호 대리가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지었다.
“더 신기한 거 보여드려요?”
“더 신기한 거?”
여기서 더 놀랄 게 있다고?
이 이사는 도무지 그게 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김준호 대리가 모형 측면에 부착된 스위치를 켜자, 후원 중앙의 파이프 버드나무에서 베토벤의 월광이 흐르기 시작했다.
“파이프 하나하나가 다 다른 음을 내서 월광을 연주하고 있는 거예요.”
“미친!”
“모형에 이렇게 진심인 놈은 저도 처음이에요.”
김 대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김 대표님도 아침에 보시고는 어이없어 하셨다니까요. 하여튼 신기한 녀석이에요.”
이미 넋이 나가버린 표정을 짓고 있던 이주홍 이사가 넋두리하듯 말했다.
“난…. 건축에는 천재가 없다는 말을 정말 철석같이 믿었거든. 그러니까 열심히 실무를 쌓다 보면 언젠가 세상에서 알아줄 날이 올 거라고 팀원들 귀에 피가 날 정도로 이야기했었지…. 그런데.”
이주홍 이사가 체념하듯 말했다.
“가끔은 진짜 천재가 나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얘는 천재라고 하기도 부족해요.”
김준호가 동조했다.
“이 정도면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왜, 장인들 보면 명장 같은 거 있잖아요.”
“무형문화재?”
“네. 그거요.”
“그건 좀 너무 오바 아니냐?”
“헤헤. 그런가?”
겨우 모형에서 시선을 뗀 이주홍 이사가 김준호를 보며 말했다.
“장인은 모르겠다만, 조만간 녀석이 엄청 유명해질 것 같기는 하다.”
“네? 그게 무슨….”
이주홍 이사가 휴대폰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거 어디 같냐?”
“와? 설마 프랑스 다녀오셨어요? 파리? 역시 디테일에 장인 정신이 살아 있네. 예술의 도시라 그런가 파사드 디자인이 장난 아닌데요. 아르누보 스타일로 만든 건가?”
김준호 대리의 혼잣말에 이주홍 이사가 코웃음을 쳤다.
“파리는 무슨.”
“그럼요? 간판이 불어 같은데.”
“논현동에 있는 가구점이다.”
“가구점요? 아니, 이게 논현동에 있다고요? 이상하다. 그런데 왜 못 봤지?”
“당연하지. 생긴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이주홍 이사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거 한예건이 디자인한 거야.”
“네에? 예건 씨가 하고 있다던 현장이 여긴가요?”
“그래, 지난 3주 동안 이 현장 공사 진행하면서 모형까지 완성한 거라고.”
이주홍 이사의 휴대폰을 뺏듯이 들고 간 김 대리가 휴대폰 속으로 들어갈 기세로 사진에 집중했다.
“와~. 이런 미친! 한국에서 이런 철물 가공이 가능해요?”
“그러니까 말이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어. 정말 무서운 놈이야.”
처음 자신에게 만들어 주었던 공주시 건축 조각상의 디자인도, 느리지만 상부 보고가 진행 중이었다.
보는 이마다 감탄하며 좋게 평가하고 있어, 곧 공주시장에게 보고가 올라갈 것 같다는 얘기를 어제 담당자에게 들었다.
음악당 화장실은 이미 설계 1팀에서 실시 도면 작업을 하고 있었고, 내일 보고만 잘 통과하면 음악당 후원 디자인까지 확정될 것이다.
그런 와중에 작은 규모이기는 하나, 시선을 사로잡는 매장까지 만들었다.
이주홍 이사가 한예건을 알게 된 것은 이제 겨우 3개월.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는 예건을 보고 있자니, 과연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김 대리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이사님.”
“왜?”
“전 도대체 5년 동안 뭐한 거죠?”
이주홍이 김 대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냥 인정해. 우리 같은 범재는 아무리 노력해도 천재를 따라갈 수는 없는 법이다. 녀석 꽁무니 쫓을 생각 말고, 매 순간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야. 알겠지?”
이주홍이 자신에게 가장 해 주고픈 말이었다.
* * *
서울시 국제관광도시 환경 조성 기관이 발족하고, 첫 정책 회의 날.
건축, 도시, 조경, 미술, 환경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둘 서울 시청 대회의장으로 모여들었다.
도시공학 전문가인 한국대학 김현명 교수는 오늘이 오기만을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자신의 애제자인 한예건을 뺏어 간 김수훈 대표를 직접 만나 한소리 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감히 내 제자를 뺏어 가? 이 호랑 말코 같은 자식.”
심의 등 여러 가지 상황으로 김수훈 대표와 몇 번 마주한 적 있었다.
평소 교수들에게 잘 보여 심의를 원활하게 통과시키려는 여느 건축가들과는 달리 도도하게 선을 긋는 듯한 태도를 일관했던 김수훈 대표를 평소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김현명 교수였다.
예건이 인턴십을 신청했다기에 그저 졸업 전 사회 경험이나 할 생각으로 참여했으리라 생각했었다.
당연히 학기가 시작되면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와 연구를 계속하리라 생각했던 예건을 뺏긴 이후로, 김현명 교수의 심기는 더욱 불편해졌다.
“도대체 녀석을 무슨 수로 꼬드겼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기필코 담판을 짓겠어!”
학부 때부터 도시 계획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한예건이었다.
어려운 과제도 척척 해내는 데다, 리포트를 제출할 때마다 전문가가 무색할 정도로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는 신통방통한 학생에게 담당 교수라면 자연히 눈이 갈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가 그동안 보아왔던 한예건의 능력이라면 도시공학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성장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녀석을 위해서라도 김 대표를 설득해야 해. 건축 잘하는 녀석들이야 얼마든지 있잖아?”
김현명 교수가 콧김을 내뿜으며 의지를 다졌다.
초빙된 각 분야의 전문 위원들이 모두 자리하고, 김수훈 대표가 의장석에 자리했다.
“서울시 국제관광도시 환경 조성 사업의 총책임을 맡은 건림건축 김수훈 대표입니다. 이 자리에 몸소 참석해 주신 모든 전문가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국제관광도시 현안 진단과 대책 마련을 위한 첫 번째 토론이 있을 예정이며, 첫 번째 대상지로 고려되고 있는 음악당 후원의 브리핑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서울시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자리인 만큼, 좋은 의견 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첫 모임이었기 때문일까? 전문가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서울시청에서 미리 전달한 여러 문제점과 안건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온 전문가들은 진지하게 토론에 임했으며, 오가는 토론 내용은 전문가들이 심도 깊이 고민한 흔적이 그대로 묻어났다.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토론의 수준은 높았으며, 문제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과정 또한 순조로웠다.
모두가 만족할만한 토론이 이어지고, 다음 회의를 위한 주요 안건도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잠시간의 휴식을 취하고, 마지막 브리핑만을 앞둔 상황.
서울시의 토론 준비가 꽤 탄탄했기 때문인지, 이어지는 브리핑에 대한 전문가들의 관심이 지대했다.
하지만 마지막 발표자로 예건이 단상 위에 섰을 때, 사람들의 기대심은 크게 무너졌다.
저명한 공원 디자이너나 조경 전문가가 나올 것이란 기대와 달리, 이제 갓 학생 티를 벗은 것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단상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조용했던 장내가 술렁거렸다.
“뭐야? 발표자가… 왜 저렇게 젊어?”
“대학생 대상 공모전이라도 했던 건가?”
“세계적인 명소를 만들겠다면서 학생 작품을 뽑으면 어쩌겠다는 건지 원. 수준은 안 봐도 뻔하겠군.”
불만을 토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발표자를 알아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 김현명 교수.
“아니, 예건이가 왜 저기에?”
아무리 한예건이 뛰어난 학생이라고는 하나, 이 자리의 무거움을 감당하기에 그는 아직 어렸다.
도대체 김수훈이 무슨 생각으로 저 자리에 예건을 세운 것인지 김 교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걱정도 잠시.
한예건이 음악당 후원에 대한 설계 브리핑을 시작하자마자, 김 교수를 포함한 전문가들은 흡입력 있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하며 집중했다.
‘원래 이렇게까지 발표를 잘했던가?’
김현명 교수는 어딘가 달라져 보이는 애제자의 모습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며 예건의 브리핑을 주목했다.
* * *
대회의장 단상 위에 서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사뭇 낯설었다.
20명에 달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보고 있자니, 그 표정도 가지각색이다.
놀란 시선, 어이없는 비웃음, 우려 섞인 한숨 소리.
하지만 예건은 지금 저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비록 겉모습은 이제 갓 학교 졸업을 앞둔 어린 학생이지만, 자신은 전생에 천재 건축가라 불리던 가우디이다.
그가 지금부터 설명하려는 음악당 후원 디자인은 전생부터 축적한 지식과 설계 능력을 모두 녹여 낸 것.
더불어 한국의 식생에 대한 정보와 한국 전통 정원의 배치까지 완벽하게 습득했다.
그 결과,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공원 계획이 탄생했다.
한국 건축의 전통성을 따르고, 환경에 적합한 식생을 고려하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미를 갖춘 결과물.
이것은 한예건이라는 젊은 한국인 건축가가 선보이는 첫 번째 디자인이다.
긴장이 전혀 되지 않는다면 거짓일 것이다.
그러나 예건은 자신 있었다.
이 디자인으로 저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설득할 자신이.
예건은 여유로운 미소를 장착하고 부드럽고 단단한 목소리로 보고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음악당 후원인 ‘노래하는 숲’ 디자인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대의 중앙 스크린에 현장에서 직접 촬영해 온 음악당의 후원이 민숭한 모습을 드러냈다.
“음악이란 소리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예술입니다. 음악당은 그중 가장 풍부하고도 다양한 감정을 수천 년간 인류에 전달해 온 클래식의 보고(寶庫)입니다.
저는 그런 장소적 특성에 어울리는 아이덴티티가 이곳 후원에서도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현재의 후원 디자인이 얼마나 무표정하고 냉소적인 공간인지 설파했고, 우리가 클래식이라 부르는 예술가들이 만든 이야기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잘 듣기 위한 마음가짐의 공간이 필요하다 전했다.
“음악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고,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후원은 어떤 장소가 되어야 할까요?”
스크린에는 후원이 가지는 공간의 의미와 어떤 방식으로 청중의 마음을 열 수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알기 쉽게 풀이해 보여주었다.
“노래하는 숲은 빡빡한 도시 생활에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을 자연과 마주하며 유연하게 만들고, 자연에 귀를 기울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할 겁니다.”
빽빽하게 숲을 이루는 나무들, 나뭇잎 사이로 별빛처럼 빛나는 따사로운 태양, 잎 그림자가 드리워진 토지 사진이 스치듯 나타났다 사라지고.
이어지는 후원의 배치도.
1만 평이 넘는 후원의 테두리를 가득 채운 다양한 나무들과 리드미컬한 디자인의 보행 도로, 웅장하면서도 감성적인 분위기의 중앙 광장의 디자인이 스크린을 수놓았다.
“와!”
사람들은 눈 앞에 펼쳐진 디테일한 배치도에 넋을 잃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노래하는 숲의 클라이맥스입니다.”
“클라이맥스?!”
“아!”
화면을 주시하며 강단 있게 말하는 예건의 발표를 듣고, 그 뜻을 이해한 몇몇 전문가들이 낮은 탄성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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