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35)
035화. 샤또 메종 발루아 (1)
“이야~. 인테리어가 대단하군요. 마치 유럽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예건의 연락을 받고 가구를 납품하기 위해 논현동 매장에 직접 방문한 용산 골동품 가구점의 서병진 사장.
흐르듯 곡선으로 조형된 월넛 원목 장식 몰딩, 화려한 패턴으로 디자인된 원목 마루바닥, 베이지색 페인트 벽 위에 은은한 그레이 컬러로 그려놓은 덩굴 패턴과 화려한 컬러의 스테인드 글라스.
문을 들어서는 순간, 유럽의 매장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흥미로운 눈으로 매장 내부를 둘러본 그는 예건을 향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파리 고급 주택의 응접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디자인이네요. 가구와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디자인 센스가 보통이 아니시군요.”
예건은 눈을 빛내며 속으로 웃었다.
‘1,900년대 살롱의 분위기를 연출한 디자인이니 그럴 수밖에.’
“하하. 이렇게 보기 드문 디자인도 직접 보게 되고, 제가 직접 납품하러 오길 잘한 것 같군요. 혹시 인테리어 회사가 어딘지 여쭤도 될까요?”
“제가 직접 했습니다.”
예건의 대답을 들은 서병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설마 인테리어 디자이너셨습니까?”
“지금은 건축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아아! 어쩐지. 전문가셨군요.”
서병진 사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면적은 작지만, 시공비는 만만치 않았을 것 같군요. 죄다 원목 장식에….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스테인드 글라스까지. 이곳에 있으면 가구의 가치도 훨씬 높아 보일 것 같습니다. 하하.”
“사장님께 산 가구들이 모두 진품이니까요. 제 가치를 인정받아야죠.”
서병진 사장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맞습니다. 요즘 워낙 중국산 복제품들이 고퀄리티로 만들어져서, 저희 같은 정직한 콜렉터들이 장사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럴 것 같습니다. 그때 용산에 갔을 때도 중국산 대체품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고가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서양과는 다르니, 어쩔 수 없죠.”
“제가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주시면 정말 좋겠군요.”
미안한 일이지만 서병진 사장에게는 예건이 고른 가구가 모두 유명 가구 디자이너의 작품인 것을 말하지 않았다.
머지않아 알게 되겠지만, 어차피 예건이 가구의 가치를 알아본 것이 아니었다면, 싼값에 팔릴 가구들이었으니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서병진 사장이 눈썰미가 좋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 이대로 좋은 협력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함께 일할 기회가 생기겠지.
진품에 대해서는 판매 대행도 고려해 볼 일이고.
일단은 아버지의 투자비를 회수하는 것이 우선이다.
“서 사장님, 혹시 제가 부탁한 것은 알아보셨습니까?”
“아? 이 가구들 출처 말씀이시지요? 프랑스 파리 근교의 고성 하나가 중국인에게 통으로 매각되었는데, 새 주인이 가구들이 낡았다고 입주 전에 처리해 달라 요청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헐값에 통째로 매입했습니다. 고성 이름과 주소는 메모에 적어 두었습니다.”
어쩐지. 그럴 것 같았다.
같은 시대, 유명한 가구를 대량 구매할 수 있는 재력가라면 당시 귀족 출신이거나, 거상의 주거지였을 확률이 높다.
“그때 함께 사셨던 가구 리스트도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견적도 같이 적어 주시면 좋고요. 미리미리 새로운 상품들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요.”
고성의 원주인이 누군지 당장 알 수 없으나, 수집한 가구들을 보면 안목이 보통은 아닐 것이다.
만에 하나 파리의 ‘라 메종드 아르누보’를 만들었던 지그프리드와 관련 있는 인물이라면, 물건의 진위도 단번에 확인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물건을 확보해 두는 것이 우선이다.
“가능합니다. 직원 통해서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가구는 어디에 둘까요?”
“전부 창고에 넣어 주시면 됩니다.”
“전부…. 다요? 아니, 왜?”
“네. 이곳은 전시장처럼 꾸밀 거거든요. 파리의 살롱처럼요.”
“오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예건의 뜻대로 엔티크 가구점에서 구입한 가구는 모두 창고로 들어갔다.
사무실을 겸한 5평 남짓한 창고는 항온항습기가 설치되어 있어 깨끗하고 쾌적했다.
가구가 들어찬 것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어머니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가구까지 들어오니까, 장사하는 게 실감 나는데?”
“가구라뇨, 어머니. 이건 작품이에요.”
“호호. 그래그래 작품이지. 그런데 매장에 상품이 너무 적은 거 아니니?”
“괜찮아요. 여긴 부티크 매장이니까요. 진짜 라 메종드 아르누보도 그리 많은 작품을 전시하지 않았어요.”
“네 말은 여긴 가구 매장이 아니라, 살롱이라는 거지?”
“맞아요. 한국에 1900년대 유럽의 살롱 일부를 그대로 옮겨 놓은 거예요. 이곳의 가구들은 실제로 사용할 목적이 아니라 장식품으로서 가치를 우선할 거예요. 가능하면 동일 시대 미술품도 수집할 생각이고요.”
섬세함과 화려한 예술이라 평가받는 아르누보 양식은 순식간에 세계에 전파되었으나, 그 전성기는 겨우 15년 정도로 매우 짧았다.
산업화와 함께 빠르게 전개된 모더니즘.
예술적인 공예품을 후원하던 돈 많은 귀족들이 급속히 전개된 민주화의 물결로 인해 몰락하면서 찬란했던 예술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짧았던 영광의 순간만큼이나, 강력한 인상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아르누보 양식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섬세하면서도 강렬하다.
그렇기에 윌리엄 모리스의 벽지, 알폰스 무하의 삽화 등이 여전히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우디의 건축도 마찬가지다.
찰나의 순간에 꽃피운 예술이기에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독창성을 가질 수 있었다.
예건은 이곳에 그 찬란한 순간을 채워 나갈 생각이었다.
“아르누보 양식의 가구와 장식품에 대해서는 충분히 익히셨어요?”
“물론. 우리 아들이 사다 준 책들 보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예약하고 오시는 주요 고객의 안내는 제가 할 테지만, 제가 없을 때는 어머니께서 직접 설명하셔야 해요. 살롱의 주인은 미술관의 큐레이터와 같은 존재예요. 작품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죠. 특히 디자이너, 작품의 제작 연도 같은 것은 구매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니까 꼭 외우고 계셔야 해요. 가구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중요하고요.
공간 세팅하면서 조금씩 알려드릴 테니까, 너무 걱정은 마시고 일단은 기본적인 지식 습득 정도면 충분해요.”
“그래.”
“그리고 판매할 게 가구랑 장식품 말고도 하나 더 있어요.”
“응? 판매할 게 더 있다고?”
예건이 눈을 접어 웃으며 말했다.
“디자인요.”
“디자인?”
“이 가구를 놓을 공간. 그곳의 디자인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저니까요.”
매장은 쇼룸이고, 가구는 미끼 상품인 셈이다.
그가 이 공간을 만든 진짜 목적은 돈 많은 부호의 예술적 취향을 가장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자신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한 문의가 있거든, 이 명함을 주시면 돼요.”
예건은 미리 만들어 둔 자신과 어머니의 명함을 어머니께 건넸다.
금박으로 세겨진 덩굴과 의자, 가구 매장의 일부를 그려놓은 것 같은 섬세하고 화려한 명함 디자인에 서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 아들. 언제 이런 것까지 준비했어. 너무 예쁘다.”
“사회생활 하는데 명함은 기본이죠.”
서희는 사업을 준비하며 매번 놀랐다.
예건 또한 처음 하는 일임에도 경험자처럼 침착하고 작은 일도 허투루 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아들의 모습에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 일도 도와주고. 엄마, 정말 열심히 할게. 꼭 좋은 회사로 만들게, 아들.”
“네. 지금은 비록 작은 가구 판매점이지만, 돈 많이 버셔서 직원도 많이 채용하고 회사도 확장해요. 제가 열심히 도와 드릴게요. 어머니의 독자적인 가구 브랜드도 만들어야죠.”
“그래. 그러자, 아들.”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마음을 다졌다.
* * *
예건은 서병진 사장이 준 정보를 통해 몇 가지 정보를 확보했다.
샤또 메종 발루아.
파리 근교에 있는 발루아 백작의 별장이었다.
이 건축물은 18세기에 지역의 유지에게 판매되었고, 최근 중국 부동산 회사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아마도 지역 유지라는 인물이 이 가구를 수집한 사람일 것 같은데, 그가 지그프리드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지그프리드 빙.
당시 수출입 사업으로 번창한 그는 예술 작품을 보는 안목이 뛰어났다.
호인이었던 그는 여러 예술가와 두루 친분을 나누었고, 그들에게 자신의 사업 파트너들을 연결해 주고는 했다.
그가 인생 말년에 만든 것이 파리의 ‘아르누보의 집’이라 불린 갤러리였다.
“판매자를 직접 만나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거래를 주선했다는 지역 부동산 회사에 문의해 두었으나, 만날 수 있을지 확답은 얻지 못했다.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정보를 구했으나, 판매할 가구들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파리로 가야겠어.”
후원의 디자인이 보류되고,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었다.
가구점을 장식할 오브제들도 필요하고.
다녀오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아버지, 저 잠시 파리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파리?”
“네. 한국에서는 매입한 가구에 관해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요.”
“파리에 가면 확인할 수 있니?”
“아마도요?”
건축가 출신인 아버지도 앙리 반 데 벨데를 모르지 않았다.
“흠… 작가의 작품이라 인정받게 되면, 가치가 얼마나 올라갈 것 같으냐?”
예건이 구입한 앙리 반 데 벨데의 의자 하나의 가격은 대략 80만 원.
만약 라 메종드 아르누보에 전시되었던 물건이고,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가 그 자리에 앉았었다는 스토리까지 더해지면 희소가치는 더욱 올라갈 것이다.
“구매가의 최소 100배는 될 겁니다.”
예건의 말을 들은 명호는 속으로 기함을 했지만 애써 차분함을 유지했다.
“흠흠. 그럼 가야지. 혼자 괜찮겠니?”
“물론이죠.”
간단한 회화 정도는 전생의 기억으로도 충분했다.
예건은 곧장 파리로 향했다.
* * *
12시간의 비행 후 도착한 파리 샤를드골 국제공항.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방문한 유럽은 또 다른 감상을 안겨주었다.
전생에 스페인과 파리를 오갈 때만 해도 기차와 마차, 전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만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는데.
돈만 있으면 세계 어디든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 그저 감격스러울 뿐이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자신도 모르게 할아버지 같은 말투가 튀어나왔다.
파리 시내로 향하는 전철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래도 여긴 많이 변하지 않았구나.”
오랜 역사 속에서도 변함없는 파리 도시 풍경을 좀 더 만끽하고 싶었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파리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마레 지역의 포네 도서관이었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고성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귀여운 형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곳은 패션, 건축, 예술 등 장식미술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수집, 보관된 장소다.
15세기 말에 건축된 대주교의 집을 도서관으로 개조해 시민들에게 공개된 도서관의 내부는 고딕 스타일과 화려한 장식이 공존하고 있었다.
당시 대주교의 위엄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외양이다.
물론 전생에 자신이 만들었던 구엘 저택에 비하면 그 화려함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도서관과 고건축을 워낙 좋아하는 그였기에 그곳의 정취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다 둘러보려면 일주일로는 부족하겠는데.”
가장 먼저 신문 자료를 모아둔 문서고로 향했다.
라 메종드 아르누보가 세상에 소개되었던 1896년도에 나온 신문 자료는 모조리 살펴볼 생각이었다.
예건은 자신이 전생에 라 메종드 아르누보를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다.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방문했기에 관람객 중에 유명인들도 제법 섞여 있었다.
오픈과 동시에 유럽 전역에 소문이 퍼질 정도로 유명한 장소였으니, 분명 누군가 당시 상황을 촬영한 이가 있을 것이다.
“그때가 10월이었던가?”
제법 두터운 외투를 입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려, 그 시기의 신문부터 확인해 보기로 했다.
기사를 주의 깊게 살피며 천천히 신문을 넘기던 그는 얼마 뒤 한 장의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런! 대체 누가 이런 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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