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46)
046화. JJ 엔터테인먼트 사옥 (2)
“아! 나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JJ 엔터 대표 이재정입니다. 저 아시죠?”
그제야 예건은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처음 만난 고객님에게는 좋은 이미지를 남기자는 게 예건의 평생 신조였으니.
“먼저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건림건축 한예건 디자이너라고 합니다.”
“건림건축? 못 보던 얼굴인데?”
“오늘 담당자로 배정되었습니다.”
예건의 대답에 이재정 대표의 장난꾸러기 도깨비 같은 표정으로 씰룩거렸다.
“잘됐네요.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을 테니까. 디자이너면, 건축사인가요?”
“아직 건축사는 취득 못 했습니다. 경력이 부족해서요.”
“아아~. 그렇군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이재정.
“연예인이 싫으면 아티스트로 등록하는 건 어때요? 요즘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거든요. 특히 그쪽처럼 외모가 출중한 편이면 더더욱.”
역시 타고난 사업가라 그런지 끈질기다.
하지만 예건도 고집이라면 만만치 않았다.
“오늘은 사업 대지를 확인하러 왔습니다. 한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대표님께 JJ 엔터는 어떤 의미입니까?”
하지만 이재정은 예건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와~. 흔들림 없는 멘탈 좋고. 진짜 딱이네! 우리 회사 들어옵시다. 그쪽에서 하고 싶은 일 우선으로 배정해 드릴 테니까. 건축사 딸 때까지 기다려야 하면, 우리가 그쪽 서포트 하면서 기다려줄 수도 있어요.”
뭘 서포트 하겠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괜히 길게 끌어봐야 말주변으로 이재정 대표를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전생에 수많은 사업가를 만났던 예건은 사업가들이 얼마나 자기밖에 모르는 언변가인지 잘 알고 있었다.
“흠…. 역시,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이겠죠.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지시고 답변해 주셔도 됩니다.”
정중하지만, 여전히 돌부처 같은 동문서답.
하지만 오히려 그런 태도가 더욱 이재정의 관심을 끌었다.
“하하. 컨셉 확실해서 좋네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눈을 반짝이며 호감을 노골적으로 보이는 이재정.
그러나 예건은 딱히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내 제안 장난 아니에요, 한예건 디자이너. 이 프로젝트 담당 디자이너면 나중에 또 보겠네. 나도 지금은 바쁘니까 다음 미팅 때 봅시다.”
“네.”
이내 스포츠카의 우렁찬 엔진 소음과 함께 이재정 대표가 자리를 떠났다.
“정말 정신없는 사람이네.”
* * *
“하하하. 진짜 재미있는 사람이야.”
차에 오른 이재정이 크게 웃자, 백미러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매니저가 물었다.
“누구예요?”
“우리 사옥 건축 디자이너.”
“난 또. 다짜고짜 가시길래 길거리 캐스팅이라도 하러 가신 줄 알았네요.”
“응. 했지. 그런데 까였어.”
“네? 진짜요? 대표님 얼굴 보여줬는데도 까요? 거 참, 희귀종이네~.”
이재정은 대답 없이 씩 웃고는 뒷좌석 시트에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아까 한예건을 처음 보았을 때가 떠오른다.
직접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연예 기획사까지 차린 그는 사람을 보는 안목이 탁월했다.
그를 처음 보자마자 딱 감이 왔다.
엄청난 존재감.
처음에는 그게 배우 같은 비율과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 듯한 클래식한 정장 차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를 몇 번 나누다 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김수훈 대표를 직접 만났을 때처럼 묵직한 존재감이 그에게서 느껴진 것이다.
자신의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이 뿜어내는 자신감.
일반적으로 그것을 ‘범접할 수 없는 거장의 카리스마’라고 부른다.
‘이제 20대 중반 정도인 것 같은데, 그 나이에 김수훈 대표와 맞먹을 정도의 카리스마라니. 보통내기는 아니야. 이번엔 제대로 된 디자이너를 준비한 모양이군. 하긴 내가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이재정은 그가 어떤 결과물을 가지고 올지, 기대감을 가지고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 * *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몰두하기를 벌써 5일.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나오지 않는다.
“하아-. 생각처럼 쉽지 않군.”
매일 사옥이 들어설 대지에 방문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망부석처럼 서 있어 보기도 했고, 현대 건축 거장이라 불리는 이들에 관련된 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하지만 75년이란 갭은 작지 않았다.
전생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건축 언어들은 이제 너무 낡고 오래된 철학이 되었고, 건축 양식 또한 너무나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그렇기에 현대 건축 사조에 어울리면서도 한예건의 디자인이라 내세울 수 있는 창의적인 건축 언어를 새로이 정립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연예 기획사라는 사옥 공간의 구조다.
장현우 과장에게 몇 번이고 확인했으나, 사용자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으니 어떤 스페이스 프로그램(공간의 배치)이 옳은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
변하무쌍한 시대.
그 무한 성장의 가능성까지 감안하기에 자신이 가진 정보는 너무도 부족했다.
“역시… 직접 부딪혀 보는 수밖에.”
그대로 자리를 털고 일어선 예건은 JJ 엔터의 현재 사무실로 향했다.
논현동에 자리한 3층 건물.
후문으로 들어가려는 예건을 막아서는 덩치 큰 남자.
“이쪽 출입구는 일반인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아… 건림건축에서 온 한예건이라고 합니다. 미리 연락 드렸습니다.”
남자는 못마땅한 얼굴로 어디론가 연락해 상황을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안내해 주실 담당자분 곧 나오실 겁니다. 여기서 잠시만 대기해 주십시오.”
출입구부터 보안이 철저하다.
미리 연락하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잠시 후, 험악하게 생긴 양복 입은 남자가 후문으로 걸어 나왔다.
“한예건 디자이너님?”
“네. 접니다.”
“저는 김주한 이사라고 합니다. 사무실을 안내해 드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쪽으로.”
“감사합니다.”
김주한 이사는 이사 직급이라기에는 매우 젊어 보였다.
사장이 젊어서 그런가?
“어디 먼저 보여드릴까요?”
“중요한 곳 먼저요.”
“중요한 곳이라…. 그럼 연습실부터 가셔야겠네요. 저희 회사는 아티스트의 열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김 이사는 예건을 데리고 지하로 향했다.
“연습실에서는 주로 뭘 하는 겁니까?”
“소속 아티스트 대부분이 가수입니다. 당연히 춤과 노래 연습을 합니다.”
이후로도 예건의 질문을 끝없이 이어졌다.
연예계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기초적인 질문이었지만, 김 이사는 불편한 기색 없이 상세히 답해 주었다.
지하1층 연습실부터 지상3층 사무실까지 모두 둘러보는 데 걸린 시간만 자그마치 5시간.
훌훌 둘러봤다면 30분으로 충분한 규모였으나, 예건은 각 공간의 용도와 동선을 완벽히 머릿속에 입력하기 위해 오랜 시간 한곳에 머물며 사용자들을 지켜보았다.
설명하며 따라다니느라 지칠 법도 한데, 덩치만큼이나 스테미나도 좋은 편인지 김 이사는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임원실까지 모두 돌고 나서야 자리에 앉은 두 사람.
“이제 궁금증은 모두 해결되셨습니까?”
“여기에는 없는 공간이 새로운 사옥에는 많이 생기더군요. 그 부분은 서면으로 따로 질의 드려도 될까요?”
“그렇게 하십시오.”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해 보십시오.”
김 이사는 이어지는 예건의 부탁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닌 것 같군요. 대표님께 여쭤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 * *
“그러니까, 사무실에서. 일주일 동안. 나를 따라다니겠다고?”
“네.”
“나중에 우리 회사 아티스트로 들일 거니까 곁에서 잘 살펴보라고 했더니, 스토커를 만들어 왔군. 하하하.”
김 이사는 어색한 웃음을 따라 웃었다.
“죄송합니다. 그냥 안 된다고 전하겠습니다.”
“아냐. 김 이사가 죄송할 게 아니지. 우리 회사 사옥을 짓는 일인데, 내가 협조 안 하면 어쩌겠어. 그리고 그 녀석, 어쩌면 전에 듣지 못했던 답변이 듣고 싶어서 그러는 걸지도 모르지.”
“전에 듣지 못한 답변요?”
“내게 JJ 엔터가 어떤 의미인지 묻더군.”
일순 이재정 대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한 디자이너에게 내 일정 알려주고, 내일부터 오라고 해. 대신 절대로 늦으면 안 된다고. 업무 중에 방해받는 거 굉장히 싫어한다고 전하고.”
“그런데 괜찮을까요? 회사 기밀이….”
“절대로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다는 각서부터 써야겠지.”
찜찜한 표정의 김주한 이사가 알겠다고 답하고 돌아갔다.
“이거 아주 맹랑한 녀석이네. 나를 분석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하지만 적극적인 태도가 제법 마음에 드는걸. 얻고 싶은 게 있으면 발로 뛰어야지.”
팬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종종거리며 전국을 누볐던 자신이었다.
전문가란 사람들이 책상머리에서 왈가왈부하는 건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있어도 쉽게 승낙하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직원들과 연예인, 회사의 소속 연예인을 아끼는 팬덤까지 아우를 수 있는 복합적인 공간.
새로 짓는 사옥은 그런 의미를 담아 짓고 싶었다.
“아니면 초면에 말은 못 했지만, 단순히 내 팬이라서 내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한 건지도 모르겠군. 팬서비스 차원에서 나도 각별히 신경 써야겠는데.”
의도치 않게 착각에 빠져 버린 이재정 대표였다.
* * *
김주한 이사에게 당부를 듣고, 늦지 않게 미리 대표실에 도착한 예건.
건축주를 따라다니며 자신을 숨기고 상대를 관찰하는 것은 그가 건축가로 처음 활동했던 시절의 설계 방식이었다.
‘젊은 시절 열정적으로 일했던 때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괜찮네. 그나저나 이재정 대표가 나를 너무 의식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항상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전혀 알 리 없는 예건이었기에 할 수 있는 고민이었다.
문이 열리고 이재정 대표와 관리자들이 집무실로 들어섰다.
몇몇이 예건을 힐끔거렸으나, 이미 주의를 받았는지 크게 신경 쓰는 분위기는 아니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업무 회의를 마치고, 이재정 대표가 사무실로 향했다.
예건도 다섯 걸음 정도 거리를 두고 조용히 따라나섰다.
직원들과 격 없이 반갑게 인사하는 이 대표.
마주하는 이들의 얼굴이 환한 것을 보니 딱히 예건을 의식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예건이 이 대표 뒤를 졸졸 따라다니자 상황을 모르는 몇몇이 예건을 붙들고 누군지 물었으나, 사옥을 짓기 위한 현장 투어 중이라고 말하자 수긍하며 물러섰다.
이재정 대표의 오늘 사무실 일정은 여기까지.
더 이곳에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 예건은 신축 건물이 들어설 장소로 향했다.
* * *
그렇게 예건이 이재정 대표 뒤를 졸졸 따라다닌 지도 벌써 3일 차.
김주한 이사가 그를 데리고 다니며 회사 소개를 했던 날 엄청나게 많은 질문을 했었다는 말을 들었던 이재정 대표는 한 번도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는 한예건에게 괜히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뭐야? 내 팬이 아닌 건가? 아니, 그래도 계속 따라다니면서, 어떻게 한 번도 내 의견을 안 물을 수가 있지? 최종 결정권자는 난데.’
그렇게 조용한 탐색이 끝나고 마지막 날이 되자, 적극적인 태도라고 예건을 좋게 보았던 이재정 대표의 관심도 거의 사라졌다.
“오늘이 마지막이군요. 도움이 되셨나요?”
“네. 대표님 덕분입니다.”
“그럼, 결과물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제가 시간이 많지 않아서.”
이재정 대표의 질문에 예건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다음 주 월요일쯤, 디자인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그렇게 빨리? 음…. 기대하죠.”
솔직히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
이재정 대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예건을 배웅했다.
“김 이사, 우리가 건림건축에 계약금을 얼마나 지급했지?”
“20%입니다.”
“만약 이번 디자인도 별로면, 그냥 다른 곳에 맡기는 게 어때?”
“사업 준비 기간까지 합하면 1년이나 기다렸는데 말입니까? 괜찮으시겠어요?”
“앞으로 20년은 쓸 사옥인데, 1년 정도는 시간도 아니지. 한국의 엔터테인먼트를 이끌어갈 JJ 엔터인데, 그 정도는 공부했다고 치자고.”
“대표님 판단이 그러시다면, 저야 따라야지요. 하지만 기대했던 거 아니셨습니까? 저 한예건이란 디자이너한테요.”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한예건에게서는 처음에 보았던 그런 카리스마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순간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림자? 설마 스스로 그림자가 되기로 결심해서 카리스마가 보이지 않았던 건….’
터무니없는 상상에 스스로 어이가 없어 피식 웃어버린 이재정 대표는 말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김 이사에게 물었다.
“김 이사, 일반인이 배우처럼 스스로 존재감을 지우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일반인이요? 글쎄요.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굉장히 드물겠죠?”
“그래. 내가 너무 과대평가한 거겠지.”
이재정 대표는 속으로 곱씹었다.
만약 한예건이 자신의 예상을 깨고 엄청난 디자인을 가지고 나타난다면, 그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한다고.
물론 망상일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