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51)
051화. 미친 존재감 (4)
‘가우디?’
가우디라면 전연수 기자도 익히 아는 이름이었다.
“네, 맞습니다. 바로 가우디가 앉았던 이 의자를 저희가 가지고 있고, 앙리가 디자인한 진품이라는 것도 확인받았습니다.”
“오오! 정말이니?”
신은영이 다시 한번 서희에게 묻자, 서희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렇다네.”
“검증은? 검증은 어디서 받은 거지?”
“파리의 크리스티앙 본사에서요. 제가 구입했던 가구와 장식품이 모두 지그프리드 빙이 말년까지 살았던 별장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의 수첩도 발견했고요.”
“와우!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호들갑을 떠는 신은영 편집장과는 달리, 전연수는 차분했다.
딱히 골동품에 관심이 없었던 그녀는 그게 얼마나 대단한 가치가 있는지 정확히 판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예건의 대답은 그녀가 놀라기에 충분했다.
“저희가 가지고 있던 아르누보 가구와 장식품 대부분을 파리의 크리스티앙에서 특별 경매로 취급하기로 했습니다. 아마 앞으로 3개월 후가 되겠네요.”
“특별 경매요? 500 작품 전부 다요?”
예건이 스크랩을 가리켰다.
“이것만 빼고 말이죠.”
크리스티앙에서 특별 경매를 열 정도면 진품 여부를 떠나 경매품 중 엄청난 고가의 작품이 있다는 것과도 같은 의미였다.
‘이건 특종이다!’
기자의 예민한 촉이 곤두섰다.
전연수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호, 혹시 출품되는 작품 중 대중적인 디자이너 몇 명만이라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흠….”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예건의 입만 바라보았다.
“패션 쪽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예술가라면… 알폰스 무하,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 정도?”
“아, 알폰스 무하에 티파니요?”
커다랗게 눈을 뜬 전연수가 고장 난 녹음기처럼 한예건의 대답을 되뇌었다.
알폰스 무하는 패션디자인 전공인 전연수도 흠모했던 유명한 일러스트 작가다.
거기에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는 세계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인 티파니 창시자의 아들이자 디자인의 대가라 불리는 유명디자이너가 아닌가!
500점에 달하는 예술 작품, 그 가치가 얼마나 높을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전연수가 멍하니 있자, 곁에서 신은영 편집장이 허리를 쿡쿡 찌른다.
‘아! 아직 질문이 남았지.’
실제로 무드 본사에서 궁금하게 여겼던 것은 아르누보 갤러리에서 선보인 사군자 세트의 디자이너였다.
최근 무드는 패션과 뷰티뿐만 아니라, 리빙, 컬처 등으로 그 영역을 넓힘으로써 글로벌 문화 매거진으로 성장을 도모하고 있었다.
특히 아직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동양의 이색적인 창작자들의 컬렉션을 선보여 트렌드를 선도하길 원했다.
그런 와중에 아르누보 갤러리의 사군자 시리즈가 그들의 레이더에 걸린 것이다.
전연수 기자가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가구의 디테일은 값비싼 수입 가구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 그럼, 갑자기 새로운 가구를 선보이신 이유가 있을까요?”
“매장을 차렸는데, 계속 비워 둘 수는 없잖아요? 원래 어머니와 제가 디자인한 가구도 런칭할 생각이었고요. 그게 조금 빨라진 것뿐이죠.”
“아…. 그렇군요. 그럼 혹시 이번 사군자 시리즈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으신 건가요?”
예건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매, 난, 국, 죽이 차례로 전시된 벽면에 다가가 섰다.
타고난 전통을 지키고, 신의 창조물인 자연을 흠모하는 전생의 사상을 여전히 지키고자 하는 지조.
가구 매장을 ‘아르누보의 집’이라 지은 것도, 사군자를 선택한 것도.
모두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설계를 맡기 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그 뜻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너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행동이다.
예건은 애걸복걸하고 싶지 않았다.
아르누보의 거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존재가 되어, 저들이 스스로 자신을 찾아오길 원했다.
자신이 동양인이라는 이유가 전혀 흠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그 방법을 이제 겨우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저는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아르누보 정신에 한국의 전통 예술을 접목하였습니다. 한국의 사군자는 각각 충실함, 고귀함, 초연함, 신의에 빗댈 수 있습니다.”
아르누보의 명맥을 잇는 젊은 예술가.
그리고 더 나아가 가우디란 이름을 넘어서는 최고의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저희 아르누보 갤러리는 기능과 냉철한 이성을 신성시하는 현재의 예술을 탈피하고 전통과 자연의 감성을 담은 새로운 예술을 추구할 겁니다. 그게 바로 저희 아르누보 갤러리가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찰칵, 찰칵.
고요한 정적 속, 카메라 셔터 소리가 유일한 소음이었다.
세계적으로 명망을 떨칠 신성 디자이너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 * *
[100년 만에 돌아온 아르누보, 여백에서 다시 피어나다.동양의 신흥강국, 대한민국.
백의의 나라라 불리는 그곳의 수도 서울에 새로운 예술의 씨앗이 움트고 있었다.
다양성을 잃고, 똑같은 스타일의 건축물이 도심을 장악하고 있는 지금, 기술력은 점차 진보하고 있으나, 공예는 오히려 퇴보하는 중이다.
그는 말한다.
모든 가치가 기능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시기, 인간의 창의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예술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가까이해야 할 가치가 아니겠냐고.]
무드 홈페이지 메인에 노출된 논현동 ‘라 메종드 아르누보’에 대한 기사는 정체된 시대, 새로운 가치를 가져올 돌풍에 대한 기대감을 가감 없이 분출하며 신예 예술가의 탄생을 반겼다.
세계적 패션 잡지, 무드의 메인 노출의 광고 효과는 대단했다.
예건이 디자인한 아르누보의 베이직 시리즈, 첫 번째 사군자 티테이블 세트에 대한 문의로 매장의 전화기는 불이 날 정도였다.
세계적인 주목을 먼저 받았기 때문일까?
국내 신예에 대해서는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한국의 문화계도 그의 행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였기에, 사실상 외부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예건은 무드 인터뷰 이후, 모든 외부 활동을 차단하고 오로지 회사 업무와 작품 복원에 집중하고 있었다.
샤또 메종 발루아의 착공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수훈 건축사가 설계기획실로 찾아왔다.
“내일부터 또다시 파리 출장이군.”
“네.”
“이번에는 3달이라고?”
“네. 완공까지 현장 감리도 해야 하고, 복원 과정에 대한 집필도 진행해야 하니까요.”
“자네가 고생이 많겠군.”
“아닙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하하하. 역시 젊음이 좋아!”
피식.
예건은 그냥 속으로 웃었다.
이 속에 든 영혼이 100년 치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김수훈 대표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가더라도 자네는 관리와 퀄리티를 높이는 것만 신경 쓰게. 다른 부수적인 건 직원들에게 지시해 놓았으니.”
“감사합니다.”
김수훈 대표는 이번 출장과 관련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지난번 출장에서 예건과 직원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차정석을 통해 들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설계에 집중하도록, 최대한 잡무에서 자유로운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김수훈 대표였다.
그렇기에 현지 가이드를 고용하여 직원들을 관리함으로써 편안하게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 한 것이다.
하지만 예건은 그런 김 대표의 배려가 오히려 불편했다.
그가 출장 기간을 3개월이나 잡은 이유에는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진짜 바르셀로나에 가야 하는데….’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브루노가 스페인에 일거리를 만들어 놓았길 바라며, 무해한 웃음으로 김수훈 대표에게 감사를 표했다.
* * *
파리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익숙한 얼굴이 마중 나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니콜 수석감정사님!”
“오랜만이에요.”
그런데 어쩐지 반응이 냉랭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뇨. 아무것도.”
예건의 물음에 니콜은 사무적인 어투로 일관했다.
공항에서 나온 일행은 곧바로 숙소로 향하고, 예건은 니콜과 함께 크리스티앙 경매장으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은 니콜이 본색을 드러냈다.
“내가 어? 얼마나 난감했는 줄 알아요?”
“난감해요? 뭐가요?”
“아니, 그러니까…. 왜 하필 인터뷰에서 알폰스 무하 이야기를 해가지고….”
“네?”
“내가… 사려고 했는데….”
운전대를 잡은 손이 부들거린다.
“아~ 그럼 진작 말씀하시지, 그냥 팔아 드릴 수도 있는데.”
“됐어요! 어차피 경매 리스트에 다 올라간 걸 뭐.”
앙칼진 목소리가 귓가에 쨍하고 울렸다.
예건이 놀리듯 물었다.
“마르크는 찾았어요?”
“쳇!”
‘아직 못 찾은 모양이군.’
예건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고민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 그곳에서 마르크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쩌면 이번이야말로, 크리스티앙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예건이 말이 없어지자, 니콜이 다짜고짜 화부터 낸 것이 미안했는지 말이 많아졌다.
“어쨌든 미스터 한, 당신이 ‘모드’와 인터뷰한 덕분에 이번 경매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뭐, 그 인터뷰가 아니었어도 당연히 우리 쪽에서 이슈 몰이를 했을 테지만. 그나저나.”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자동차가 멈춰 섰다.
“그런데 당신. 진짜 천재예요?”
“갑자기요?”
“아니, 그렇잖아요. 솔직히 당신 매장 인테리어야 내가 직접 과정을 본 게 아니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그 말은 제게 발루아 설계를 맡긴 건, 영업적인 이유였다?”
“뭐, 브루노 건축사님도 있으니까. 별로 걱정은 안 했죠. 호호호.”
신호가 바뀌고, 앞차가 출발했다.
정면을 주시하며 니콜이 말했다.
“어쨌든 그 깐깐한 브루노 건축사가 당신을 꼭 잡아야 한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하하하. 브루노 건축가님이 절 좀 좋아하긴 하죠.”
“그 마르크란 사람. 스페인에 있는 거죠? 어디? 바르셀로나?”
하여간 눈치가 보통은 아니다.
하긴, 크리스티앙의 수석감정사로 경력을 쌓은 세월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니콜은 예건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눈치껏 떠보았다.
“뭘 찾고 있는 거예요? 알아야 나도 같이 찾아주지.”
“흠… 알려드리면, 혼자 찾으러 가시려고요?”
“아이~ 그건 정보 제공자에 대한 무례죠. 찾는 건 당신이 하고, 우리 쪽에 거래만 맡겨 줘요.”
니콜이 저렇게 말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피카소의 그림, 그것도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그림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분명 있을 테니까.
비록 그게 높은 평가를 얻지 못하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존재만으로도 엄청난 이슈가 될 것은 분명했다.
“근데 정말 뭐예요? 진짜, 궁금해 죽겠네.”
예건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것은 없으나, 정보력 하나만큼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에 니콜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피카소가 젊었을 때, 가우디랑 반목했던 건 아시죠?”
“가우디… 설마 이번에도?”
“네. 가우디와 관계있어요.”
“오~. 미스터 한, 가우디 진짜 좋아하나 보다. 어떻게 가우디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어요?”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겠어….’
예건이 은은한 미소만 지을 뿐 말을 아끼자, 니콜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어쨌든 그 피카소 그림이 가우디랑 관계가 있다는 거죠?”
“가우디가 산 첫 번째 피카소의 그림이자, 마지막 그림이었어요. 그걸 마르크에게 선물했고요.”
“헐, 가우디가 피카소의 그림을 샀다고요?”
니콜이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그 마르크란 사람은 누구예요? 아무리 가우디와 관련된 책을 뒤적여 봐도, 그런 이름은 없던데.”
“그건….”
예건이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역시, 내가 직접 찾아야 의미가 있겠지.’
그를 찾았을 때의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았다.
추억을 더듬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겐 행복일 테니.
자신이 찾고 있는 마르코는 어쩌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예건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찾으면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