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66)
066화. 더 높은 곳으로 (1)
‘이, 이럴 수가! 원래 이렇게… 초라했었나?’
아르누보 갤러리는 분명 파리로 떠나기 전 기억 속 인테리어 그대로인데, 뭔가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설마, 내가 그동안 너무 높은 퀄리티의 디자인을 보아서 만족스럽지 못한 건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처음 라 메종 드 아르누보를 만들었을 때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인테리어를 최소한으로 해야만 했다.
당장 시선부터 끌어야 한다는 생각에 외관에 집중한 탓이다.
그래도 나름 아르누보 시대 갤러리 분위기를 낸다고 했음에도 뭔가… 밋밋한 구석이 많았다.
발루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그새 높아진 눈높이에 둘의 격차가 너무도 크게 느껴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르누보의 건축 거장이라 불리던 내가 환생해 만든 가게인데….’
수집가인 지그프리드에게 밀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못마땅한 기분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발루아 경매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고, 건림건축에서 받은 월급은 너무도 소박해 생활비에 일부를 보태고 나면 남는 것은 겨우 용돈 수준이었으니.
‘후우- 조급하게 일을 벌이지 말고 천천히 생각하자. 돈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니까.’
가끔은 템포를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억지로 뭔가를 이루려 하면, 성급함에 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를 바꾼다고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어머니의 소개로 매장의 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을 겸하던 창고로 향했다.
대부분의 가구가 모두 파리 경매장으로 옮겨졌기에 남아 있는 가구는 예건이 남겨놓은 애장품 몇 점뿐이었다.
사무실 테이블은 같은 건물 임대 사무실로 옮겼다고 한다.
“사군자 세트 외에 새 가구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잘하셨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매장의 규모가 너무 작다.
지금 당장은 예약 손님만 받고 있으니 특별히 큰 문제는 없다지만, 협의 공간과 감상 공간에 경계가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창고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나 고민하면서 매장을 나오던 중, 아버지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여유 자금이 좀 더 생기면, 가게를 확장하는 건 어떻겠니?”
“확장이요?”
“그래. 발루아 경매가 끝나면 큰돈이 들어올 거 아니냐. 은행에 넣어두는 것도 괜찮겠지만, 땅이나 부동산을 사 두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괜찮을 것 같아서.”
“아. 그렇군요.”
전생엔 사업과 거리가 먼 생활을 했지만, 주변에는 사업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의 곁에서 보고 배운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희귀하고 사람들의 수요가 많은 것일수록 가치가 높았고, 한국에서는 땅이 그러했다.
매장 옆의 상가는 비어있었다.
아마도 매매가가 비싼 탓에 쉬이 거래되지 않는 모양이다.
‘한 3개 정도 합치면 괜찮으려나?’
다행히 이 건물은 모두 기둥식이라 칸막이가 모두 석고보드로 이루어져 있었다.
얼마든지 벽을 뜯어내고 확장할 수 있는 구조라는 뜻이다.
예건이 바로 옆 상가를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이 옆의 상가, 아직 매매 전일까요?”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확인해 봤단다. 바로 옆 상가는 아직 소유주가 없고, 저기 모서리 부분은 우리 회사 사장님 소유로 되어 있더구나. 매매는 어렵더라도 임대는 가능할 거야.”
임대가 가능할 거라는 말에 예건은 즉각 행동을 취했다.
“잠시만 매장에 계세요.”
곧장 대로변으로 향했다.
8차선 도로와 4차선 도로변에 접해 있는 모서리 상가는 현재 매장보다 면적이 2배 정도 컸고, 대로변에서 곧장 접근이 가능했다.
게다가 신호등이 앞에 있어 광고 효과도 탁월하다.
접근성과 인지도가 훨씬 좋다는 뜻이다.
흡족한 마음이 들자, 곧바로 상상력을 풀가동시켜 외부 이미지를 떠올려 보았다.
몇 번이나 허물고 다시 짓는 과정을 거듭한 끝에 굉장히 마음에 드는 신박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이거면 되겠어!”
예건은 황급히 매장으로 향했다.
“아버지. 옆 매장 사고, 모서리 매장 임대하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어? 그건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지금 가능할까요?”
“어. 그래, 그러마.”
열띤 예건의 얼굴을 보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한명호는 곧장 사무실 분양팀에 연락을 취했다.
“어, 성 부장. 나야, 한 전무. 하나 물어볼 게 있어서. 혹시….”
예건은 귀를 쫑긋하고 아버지의 대화를 귀담아들으며 상황을 유추했다.
“어? 아… 그런가? 그래, 그렇구만.”
어쩐지 힘 빠지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원하는 결과를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모양이다.
‘뭐, 그럼 매장 2개만 합치는 수밖에.’
예건은 곧바로 차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이 틀어진다고 한숨만 쉬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그래, 그래 주면 고맙지. 그래, 내일 사무실에서 다시 이야기하세.”
전화를 끊고 아버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비어있는 옆 상가는 바로 구입이 가능하고, 현재 매매가는 11억 정도라는구나. 사장님이 보유하고 있는 매장은 임대 계약 협상 중이라 자세한 건 내일 사무실에서 확인해야 할 것 같다.”
바로 옆의 사무실은 아르누보 매장과 같은 규모다.
예건의 아버지가 매장을 구입했던 시기의 시세보다 1억이 더 올라 있었다.
‘한국 부동산의 성장세가 엄청 가파르구나.’
아버지가 매장을 구매하신 게 2월 초였으니, 겨우 6개월 만에 10%가 오른 셈이다.
모서리 매장은 면적이 두 배.
8차선 대로와 접하고 있으니, 옆의 매장보다 더 비싼 가격을 요구하겠지.
‘세금 포함해서 40억 내에 두 매장 다 구입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가게를 오픈한 지 5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외관 덕분에 제법 유명세를 타기도 했으니, 가게를 옮기는 것보단 확장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판단일 거다.
지금은 아쉬운 대로 옆 사무실을 구매하는 것이 먼저겠지.
“계약금은 10프로면 충분하겠죠?”
“그렇지.”
1억 1천만 원.
경매 수익이 아니더라도 현재 매장 수익금으로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럼 잔금 일정은 경매 완료 후로 잡아주세요.”
“그래. 최대한 시간을 벌어보마.”
임대 사무실은 5층.
1층 매장보다 조금 더 작은, 실 평수 10평형 규모였다.
어머니를 포함한 직원 2명이 이용하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어차피 상주하는 직원은 한 명뿐이니까.’
어머니는 1층 갤러리에서 손님을 접객하고, 다른 직원은 곧장 공장으로 출퇴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실제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아까 매장에서 인사한 여직원 하나였다.
“잘하셨어요. 어머니가 고생 많으셨겠네요.”
“호호. 이 정도야.”
“어허, 아들 앞이라고 센 척은. 네 엄마가 힘들어 죽겠다고 얼마나 엄살을 부리는지.”
“여보!”
“하하하. 알았어, 알았다고.”
* * *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매일 호텔 조식과 샌드위치로 끼니를 챙기며 가장 그리웠던 것이 어머니가 담그신 김치였다.
칼칼한 매운맛, 시큼한 감칠맛이 얼마나 생각나던지.
잘 익은 김치를 두꺼운 돼지고기 한 점과 떠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얹어 먹었더니, 입안 가득 그리운 맛이 가득하다.
‘아~ 한국인은 밥심이지.’
얼마나 맛있는지, 눈물이 핑 돌았다.
어머니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셨다.
“그곳 식사가 입맛에 잘 안 맞았던 모양이구나.”
예건은 뜨거운 음식을 입안에서 굴려 가며 식힌 후 꿀꺽 삼키고는 배시시 웃었다.
“계속 빵만 먹다 보니, 금방 질리더라고요.”
어머니는 먹기 좋게 잘라 놓은 돼지고기 한 점을 예건의 숟가락 위에 살포시 얹어주었다.
“많이 먹어, 아들.”
“네.”
그 뒤로 두 분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김치 반 포기와 돼지고기 한 근을 혼자 뚝딱 해치웠다.
“잘 먹었습니다. 진짜 맛있었어요.”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인가?”
“네?”
“네가 이렇게 잘 먹는 건 오랜만인 것 같아서.”
“아… 하하하.”
예건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키가 더 크려나 봐요.”
“그럼 좋지.”
어머니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예건을 바라보았다.
새삼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느껴졌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이런 거였구나.
따스하고 포근하다.
성인이 되고, 군대에 다녀오고, 갑자기 떠오른 전생에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홀로 세상의 풍파를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보호받고 있었구나.’
마치 아이가 첫걸음을 뗄 때처럼.
위태위태하게 걸어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봐 주며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신 부모님.
두 분이 있었기에 실패 또한 두렵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지난 6개월 동안의 실무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전생의 경험이 현재에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기회의 신 카일로스는 앞머리는 풍성하고, 뒤통수는 대머리라고 한다.
앞머리가 풍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금방 기회를 알아보지 못하게 함이요, 기회를 알아본 사람들은 쉽게 그를 잡을 수 있게 함이다.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이미 지나간 기회는 다시 붙잡기 힘들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전생의 그는 기회를 보는 눈이 탁월했다.
하지만 이번 생의 그는.
카일로스가 아니라 카일로스의 조상이라도 언제든지 호출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쳤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는 법이 없지. 기회는 무심히 지나가는 운이 아니야. 내가 만드는 것이다.’
노력이야말로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이었다.
일분일초도 허투루 보낼 순 없다.
예건은 지금의 행복함을 차곡차곡 포개 심장에 담았다.
언젠가 그의 건축에 이 감정이 녹아들기를 바라며.
* * *
오전 8시 30분.
예건은 사무실에 짐을 풀고 곧장 김수훈 대표의 집무실로 향하다가, 막 사무실 밖으로 나오는 김 대표와 마주쳤다.
김 대표가 만면에 환한 미소를 보이며 성큼성큼 걸어와 그를 환대했다.
“아! 드디어 돌아왔군!”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늦어졌습니다.”
“늦어지기는. 내가 너무 재촉한 게 아닌가 걱정했네. 그래, 일 마무리는 잘했고?”
“네.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됩니다.”
“하하하. 자네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라고 할 정도면 완벽하겠군.”
예건은 말없이 그저 미소지었다.
자신을 낮추는 것도 꽤 많은 인내가 필요한 일이었다.
‘이럴 때는 잠자코 있는 게 최고지.’
“그런데 어디 가시던 중인가요?”
“어? 하하. 자네를 찾아가던 중이었네.”
“저를요?”
김 대표가 문 안쪽을 의식하는 듯 작게 말했다.
“자네 1호 팬이 아주 극성이더군.”
응? 팬이라고?
“저한테 팬이 있었나요? 금시초문인데요.”
“하하하. 여기서 이럴 게 아니고, 들어가자고.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않겠나?”
1호 팬인데, 매를 맞는다?
이건 뭔가 어색한 조합인데.
하지만 예건은 군소리 없이 김 대표를 따라 들어갔다.
극성팬이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가 몇 명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코미디 예능에서 남녀의 설레는 만남을 연출할 때 TV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곡이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Mai Piu’ Cosi’ Lontano~.(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요.)’
왜 이 노래가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문이 열리자, 대표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