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69)
069화. 더 높은 곳으로 (4)
촬영을 담당하던 촬영감독이 숨죽여 감탄했다.
질문지를 보며 질문을 하는 김연희와 달리 한예건이라는 건축디자이너는 원고 한 장 없이 술술 답변을 하고 있었다.
연습도 되지 않은 일반인이 카메라 앞에 나서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사각형 화면으로 주시하고 있는 청년은 긴장은커녕, 작은 떨림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 톤이 안정적이다.
그래서인지 저절로 시선이 그에게 주목된다.
아까 인터뷰어가 머뭇거리며 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프랑스 전통 건축물의 디자인을 총괄한 것에 대해 의혹을 가지실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잠시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던 예건이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
“크리스티앙은 그 일을 가장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원했고, 저는 그저 제 실력을 증명해 보였을 뿐입니다.”
자신감이 없다면 쉬이 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이후 디자인에 관한 난해한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변이 이어졌다.
‘크아~ 아무리 봐도 대단하다니까. 이 대표가 왜 탐을 내는지 알겠군.’
이곳 스튜디오는 주로 아이돌 그룹들이 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촬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이재정 대표의 지시로 갑작스레 잡힌 일정이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인터뷰라 이상하게 생각하고 물었더니, 요즘 이 대표가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는 젊은 건축디자이너라는 답을 들었다.
‘대표님께서 잘 좀 지켜보라더라.’
‘응? 뭘 지켜봐?’
‘둔하긴. 외모가 제법 출중한 모양이던데, 스타성도 있는지 보라는 말이겠지.’
‘아하!’
유입하겠다는 인물이 건축디자이너라는 말에 별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보다 보니 굉장히 매력 있는 청년이었다.
얼굴은 배우 뺨칠 정도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잘생겼고, 말은 청산유수에, 듣자 하니 한국대 출신이란다.
게다가 저들이 언급하고 있는 경매사 크리스티앙.
예술품 거래에 대해 별로 관심 없는 그였지만, 가끔 해외 토픽을 통해 엄청난 예술품들이 크리스티앙 경매장을 통해 상상도 못 할 고가에 거래된다는 정보는 심심찮게 들어보았다.
아무리 단발성 프로젝트라지만 그런 곳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총괄디자이너 자리를 꿰차다니.
비록 그 분야 전문가는 아니라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흔히 있는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둘의 인터뷰는 어느새 후반을 향하고 있었다.
“혹시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나 목표가 있다면 이 자리에서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저는 한국과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건축가가 될 겁니다.”
“세계적으로요?”
의외의 답변이었는지, 김연희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예건은 김연희를 향하고 있던 고개를 살짝 돌려 정면의 카메라를 보았다.
“세계 최고의 건축가로 인정받는 것. 그게 제 목표니까요.”
은은하게 번지는 미소.
한예건의 눈은 자신감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와~.’
순간 촬영감독은 클로즈업 카메라를 따로 준비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마른 입술을 축였다.
“저도 멋지게 성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한예건 디자이너님, 오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의 정적이 흐르고.
김연희가 촬영감독을 돌아보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감독님, 고생하셨습니다.”
인터뷰가 벌써 끝난 모양이다.
‘아니,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예정 시간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어? 벌써 끝난 겁니까?”
“아뇨. 두 번째 영상은 화각을 다시 잡아야 해서요. 혹시… 촬영 영상 확인 가능할까요?”
“그러세요.”
촬영감독의 곁에서 초반 영상을 확인한 김연희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다음 촬영은 모두 한예건 디자이너만 나오도록 클로즈업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죠.”
두 사람은 함께 카메라 구도를 다시 잡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스탭들이 모두 나가고 둘만 남자, 김연희가 생수병을 건네며 넌지시 물었다.
“근데, 팀장님.”
“네?”
“그거 진짜예요?”
“뭐가요?”
“그 발루아 특별 경매에 나오는 예술품들. 전부 팀장님 소유라고 들었거든요.”
“음… 정확히 말하면, 모두 제 소유는 아니고요.”
“오~ 그럼 관계자?”
“관계자라…. 뭐, 그런 셈이죠.”
예건이 쑥스러운 얼굴로 대답하자, 김연희가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와~ 그럼 이제 부자 되는 건 시간 문제네요. 그런데… 설마 회사 안 다니실 건 아니죠?”
“회사는 계속 다녀야죠. 아까 인터뷰 때도 말했지만, 제 목표는 세계 최고 건축가가 되는 거니까요.”
“아~ 다행이다! 그만두기엔 너무 아까운 재능이에요. 절대로 그만두시면 안 돼요.”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건림건축의 출판팀 소속 김연희 대리.
그녀는 건림건축이 매달 출판하는 건축잡지 [건축과 공간]의 기사를 담당하는 기자였다.
김연희는 자신의 일이 좋았다.
해외의 유명 건축물을 국내에 소개하고, 한국의 건축문화 발전을 곁에서 응원하는 것.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소개한 건축가가 세계 무대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작은 소망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건축 시장은 열악했고, 세계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세계적인 규모의 공모전들을 소개하는 기사를 쓰면서, 당선작 중에 한국인 건축가의 작품이 없다는 것이 항상 아쉬웠다.
그러나 한예건이 디자인한 음악당 화장실과 공원 디자인을 보았을 때, 어쩌면 머지않아 그의 이름을 잡지책에서 볼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제 곧 그가 처음 설계한 음악당의 화장실이 준공을 앞두고 있다.
비록 일반 사람들은 건축가가 누군지 관심조차 주지 않을 작은 화장실 건축물이지만, 김연희는 그 첫걸음을 놓치지 않을 거다.
곁에서 담담히 질문지를 확인하는 한예건을 바라보며, 김연희는 가만히 속으로 다짐했다.
한예건이 세계 최고의 건축가가 되는 그날까지. 지치지 않고 따라가겠다고.
* * *
‘역시 인터뷰를 녹화하길 잘한 것 같아.’
예상대로 인터뷰는 순조로웠다.
모두 예상했던 질문들이었기에 막힐 게 없었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긴장할 필요도 없고.
한국어 질문에 불어로 대답하는 인터뷰까지 마무리한 예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탭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스탭들의 표정을 보니, 촬영이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다들 얼굴이 밝다.
김연희 대리가 촬영감독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국내 인터뷰는 JJ엔터 측에서 편집해 주신다고 하셨는데, 맞죠?”
“네. 영상팀에서 작업할 겁니다.”
“그럼, 프랑스 쪽에 보내는 인터뷰 분량만 잘라서 먼저 주시면 될 것 같아요. 내일까지 크리스티앙 측에 전달해 드리기로 했거든요.”
“저희 서버에 올려놓고, 임시 아이디랑 비번 알려 드릴게요. 내용만 확인하시고, 문제없으면 크리스티앙 측에 아이디랑 비번 그대로 전달하셔서 직접 다운받게 하는 게 좋을 겁니다. 비디오 용량이 커서요.”
“아! 그렇군요.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최대한 지원해 드리라는 게 대표님 지시인데요.”
촬영감독이 예건을 향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라도 나중에 대표님께서 물으시거든 편하게 촬영했다고만 말씀해 주세요.”
“네. 당연합니다.”
촬영감독이 씩 웃었다.
그러자 김연희가 안심한 듯 추후 일정을 전달했다.
“저기… 국내용은 천천히 주셔도 될 것 같아요. 경매 이후에나 공개할 거라서요.”
“흠…. 그게 언제죠?”
“8월 10일요.”
“그 전에 완성해 놓으라고 말해 놓을게요. 연락은 김연희 대리님께 드리면 되죠?”
“네. 맞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고생 많으셨어요.”
촬영감독과 인사를 나누고 스튜디오를 나섰다.
혹시라도 이재정 대표를 만나고 가야 하는 건 아닌가 잠시 고민했으나, 조만간 납품 때문에 방문해야 하니 감사는 그때 전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괜한 고민이었나 보다.
이재정 대표가 엘리베이터 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감사 인사 정도는 하고 갈 줄 알았는데.”
“인터뷰 촬영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참 엎드려서 절 받기도 아니고. 됐어요. 시간 괜찮으면 커피나 한잔 하고 가던지요.”
예건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실례되는 일인 건 알지만, JJ엔터 사옥 실시 설계 마무리로 많이 바빠서요.”
“하하하. 우리 회사 일 때문에 바쁘다니, 잡을 수도 없네요.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한예건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며 이재정 대표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잠시 후 촬영감독이 스튜디오를 나왔다.
“아, 대표님!”
“촬영 잘 됐어?”
“네. 야~ 대단하던데요.”
촬영감독의 눈이 꿈이라도 꾸듯 허공을 향했다.
“불어로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잠깐. 한예건이 불어로 인터뷰를 했다고?”
예건이 파리 출장을 다녀온 것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당연히 통역을 썼다고 생각했다.
“네~ 발음이 아주 기가 막혀요. 제가 전에 영화 촬영 따라갔다가 몇 달 살았거든요. 이야~ 근데 무슨 원어민이 말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하!”
어째, 보면 볼수록 탐이 난다.
“근데, 되겠어요?”
“뭐가?”
“저 녀석 데려오는 거. 겁나 부자 같던데.”
“부자라니, 뭔 소리야?”
한예건을 영입하기 위해 그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를 하기는 했다.
아버지가 중소 규모 건설사 임원이라는 것과 어머니가 논현동에 가구점을 운영 중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촬영감독이 뭐라 말을 덧붙이려다 카메라를 켜고 영상을 플레이했다.
스탭들이 모두 휴식하러 나간 시간.
한예건의 상반신에 맞춰진 화면.
번들거리지 않게 정돈한 옅은 피부화장과 집중 조명이 더해지자, 뚜렷한 이목구비가 환하게 빛이 났다.
‘하! 역시 내가 보는 눈은.’
이재정이 한예건의 얼굴을 감상하는 중에 인터뷰어의 것으로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 발루아 특별 경매에 나오는 예술품들. 전부 팀장님 소유라고 들었거든요.
– 음… 정확히 말하면, 모두 제 소유는 아니고요.
– 음~ 그럼 관계자?
– 관계자라…. 뭐, 그런 셈이죠.
화면 속 예건이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촬영감독이 부러운 듯이 말했다.
“저 여유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겠죠. 어째 입은 옷도 죄다 고급스러워 보이네.”
영상을 보고 있던 이재정 대표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랬던 건가?”
“네?”
“어? 아니야. 수고해.”
이재정 대표는 황급히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영상에서는 관계자라고 완곡하게 표현했으나 자신이 경험했던 한예건의 성격을 감안하면, 그는 있는 그대로 속을 드러내는 타입이 아니었다.
“이거 가까워질수록 어째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단 말이야.”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이재정이 아니었다.
플랜A가 안 통한다면, 플랜B, 플랜C도 마련하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니까.
게다가 알면 알수록 탐이 나는 인재였다.
‘어떤 방식이든 한예건과 긴밀한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
오랜 경험이 그에게 끊임없이 속삭였다.
절대 한예건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