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70)
070화. 더 높은 곳으로 (5)
발루아 VIP 특별 경매를 일주일 앞둔 금요일.
니콜은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TV를 켰다.
오늘이 프랑스 문화 채널을 통해 발루아 특별 경매가 소개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벌컥.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고, 자크가 들어와 니콜 옆에 앉았다.
“오오~ 드디어 시작인 건가?”
“하루 이틀 하는 일도 아닌데, 호들갑은.”
“별일 아닌데, 인터뷰는 왜 챙겨 보는 건데?”
자크가 면박을 주자, 니콜이 잠시 자크를 째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꽉 막힌 노친네들이 얼마나 잔소리를 해 댈까, 걱정돼서 그러지.”
마담 르네가 한예건을 밀어 주기로 약속만 하지 않았더라면, 조용히 끝날 일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사람들은 발루아를 리모델링한 디자이너에 큰 관심을 주지 않았을 것이고, 디자이너가 동양인이라는 것도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건축물 납품 도서에 도장을 찍는 사람은 브루노 비올르레뒤크 건축가였으니.
방송 또한 샤또 메종 발루아의 복원보다 발루아 특별 경매의 취지와 경매품에 더욱 시선이 쏠렸을 것이다.
VIP 초대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발루아에 방문한 VIP들은 전시된 작품에 큰 관심을 보였고, 평소라면 대리인을 보냈을 이들도 작품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았다.
VIP 경매 당일 외에는 경매장에 잘 나타나지 않는 마담 르네도 매일 현장에 방문하다시피 할 정도였으니.
니콜이 꼭 구매하고 싶어 했던 무하의 그림도 벌써 몇몇 VIP가 눈독을 들이는 상황이라는 것은 구태여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여튼 이대로도 충분히 발루아 특별 경매는 좋은 결과를 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 방송은 솔직히 많이 걱정스럽다.
‘어쩌자고 내가 이 일을 시작해서.’
처음에는 자신 있었다.
디자인은 훌륭했고, 마감도, 장식도 완벽했다.
그 누구라도 이 건축물을 보면 반할 것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디자이너가 동양인, 그것도 아직 건축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학생이라면?
과연 늙다리 원칙론자들이 가만히 있을까?
‘전통 건축 복원을 외국인에게 맡기다니, 크리스티앙이 단단히 미쳤구만.’
‘하! 저게 복원이라고? 차라리 새로 지었다고 했으면, 대단한 실험정신이라 두둔해 줄 수 있었을 걸세.’
‘건축물에 요란한 장식물을 덕지덕지 붙이면 아르누보인 건가? 그런 거라면 나도 하겠네!’
벌써부터 귓가에 비평가들의 비난이 들리는 것만 같다.
기나긴 광고가 끝나고, 커다란 프로그램명과 함께 오프닝 화면이 시작되었다.
“어? 시작한다!”
“…….”
인터뷰어와 니콜, 단둘이서 시작한 인터뷰.
좋다. 차분하다.
적어도 화면 속 니콜은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말이 오가고, 본격적으로 발루아 특별 경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 크리스티앙에서 진행 예정인 이번 특별 경매에 대해 꽤 소문이 자자한데요. 주로 어떤 작품이 경매에 오르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 네. 이번 발루아 특별 경매는 프랑스 아르누보의 시대를 열었던 지그프리드 빙의 개인 소장품이 공개됩니다.
지그프리드 빙과 아르누보 시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레이션을 통해 전달되고, 다시 두 사람의 인터뷰가 재개되었다.
– 이번 특별 경매에 세계 부자들의 관심이 뜨겁다고 들었습니다.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 물론입니다. 지그프리드는 1900년대 활동했던 수집가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과 더불어, 이번에 공개되는 예술품들이 한 번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작품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작품이요?
– 맞습니다. 이번 경매로 공개되는 작품들은 지그프리드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아내, 레아 카리나에게 선물했던 예술품들이거든요.
어떤 예술 작품이든 스토리가 더해지면, 가치가 증폭되는 법이다.
니콜의 설명에 인터뷰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 아아~ 아내를 너무 사랑해서 그녀의 기억을 담고 있는 작품들을 감춰야만 했다니. 정말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이군요.
– 네.
잠시의 정적으로 여운이 흐르고, 인터뷰어가 질문을 이어갔다.
– 경매에 출품되는 작품 수는 얼마나 되나요?
–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작품은 총 500여 점입니다. 그중 20점이 VIP 경매로 진행되고, 나머지 100점이 1차 경매에 오를 예정입니다.
– VIP 경매에서 낙찰된 예술품은 외부에 전혀 공개되지 않는다고요?
– 맞습니다. 대신 공개 경매 작품들은 경매 전 오픈 되는 전시회에서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공개 작품들에 대한 설명.
화면 속 인터뷰어는 눈을 반짝이며 니콜의 말을 경청했다.
한참 동안 이어지는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가만히 주시하던 니콜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민감한 이야기가 오갈 예정이다.
– 이번 전시 작품 못지않게 화제가 하나 더 있는 거로 아는데요.
– 샤또 메종 발루아의 복원.
– 네. 듣기로는 굉장한 소문이 있던데요. 이번 루이비제 S/S 시즌 패션쇼를 샤또 메종 발루아에서 하시기로 했다고요.
– 맞습니다.
– 얼마나 대단한 복원이 이루어졌기에 루이비제가 한눈에 반할 정도였는지, 잠시 영상으로 함께 하시죠.
이어지는 샤또 메종 발루아를 촬영한 영상이 공개되고, 그걸 곁에서 보고 있던 자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예술이잖아. 니콜, 도대체 왜 걱정하고 있었던 거야?”
“…….”
처음 상태만 확인하고 과정과 결과를 확인하지 못했던 자크가 호들갑을 떨었지만, 니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면만 뚫어져라 주시했다.
예술이다. 예술일 수밖에.
저 건축물을 복원하는데 든 비용이 얼만데?
그보다 한예건의 완벽한 디자인을 보고 도저히 안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하지만 그건 건축에 문외한인 자신과 몇몇 관계자들의 기호에 국한된 것일 수도 있다.
정작 복원 전문가인 브루노마저도 건축물의 외관 디자인은 감히 완벽하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으나, 당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솔직히 미지수라 답하지 않았던가.
전문가들이 발 벗고 이건 복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자신들은 그저 찌그러져 있을 수밖에.
그만큼 외관의 변화가 엄청났다.
하지만 니콜이 걱정을 하든 말든 자크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와~’, ‘미친!’, ‘멋지다.’만 연발하고 있었다.
발루아 소개 장면이 끝나고, 인터뷰어가 다시금 인터뷰를 시작했다.
– 정말 멋지네요! 전후 사진을 보니, 단순히 복원 수준이 아닌데요? 건축물의 재구성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 실제로 따지면 그렇습니다. 지그프리드의 지시하에 완성했던 인테리어는 완벽하게 고증해 완성했으나, 방치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외관과 정원은 거의 새롭게 작업했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 설계를 복원 전문 기업인 브루노 건축디자인에서 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 어… 그건.
TV 속 니콜이 잠시 숨을 골랐다.
긴장되기는 TV 밖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침을 넘긴 니콜.
꽉 쥔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 * *
예건은 니콜이 보내준 방송 영상을 부모님과 함께 보는 중이었다.
정확한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으니, 곁에서 간간이 질의 답변을 설명해 드리면서.
발루아 복원 전후 비교 사진과 완성된 촬영본이 공개되자, 어머니는 믿기지 않는지 몇 번이나 예건에게 확인했다.
“저걸… 정말 네가 다 디자인 했다고?”
“네.”
“아니, 도대체 어떻게?”
“그냥 하다 보니까…?”
어머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보, 내가 천재를 낳았나 봐요.”
“하하하. 그런 거 같군.”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요.”
인터뷰가 시작되자, 다시 두 분은 TV 속 대화에 집중했다.
–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 네? 처음에는요? 그렇다면, 변수가 생긴 건가요?
인터뷰어가 궁금한 듯 눈을 빛냈다.
– 맞습니다. 아주 큰 변수죠.
니콜의 표정이 진지하게 굳었다.
저런 표정의 니콜은 처음인데.
많이 긴장한 모양이다.
하긴. 이해가 됐다.
우리나라 한옥을 복원하는데 프랑스인이 설계를 진두지휘했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헛소리하지 말라고 그러겠지.
–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은 후, 저는 곧바로 적합한 디자이너를 찾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먼 한국에서요.
– 한국이요? 설마 총괄디자이너가 동양인은 아니죠?
인터뷰어는 우스갯소리로 한 말 같으나, 니콜의 표정이 더 심각해졌다.
아무래도 방송국 PD가 인터뷰어의 반응을 재미 요소로 만들기 위해 미리 말하지 않은 모양이다.
잠시 흐르는 정적을 깨고 인터뷰어가 다시 물었다.
– 진짜 동양인이에요?
끄덕끄덕.
마지못해 니콜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 와우! 언-빌리버블!
갑자기 튀어나온 영어를 듣고, 상황을 물어보는 아버지.
“뭔데? 뭘 못 믿겠다는 건데?”
“아… 총괄디자이너가 동양인이라고 금방 말했거든요. 니콜이.”
“아….”
“나온다. 나와. 우리 아들 나와요.”
드디어 예건이 티비에 등장했다.
– 안녕하세요. 먼저 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의 건림 건축사사무소 기획팀 팀장, 한예건입니다. 이번 발루아 복원 공사에 참여할 수 있어서 참으로 영광이었습니다.
– 아… 복원팀, 아니고 기획팀. 네. 네. 뭐 그럴 수 있죠. 한국에서 건축을 수학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 맞습니다. 한국대 건축공학과 4학년 과정 중에 있습니다.
– 유사 건축물을 복원하신 경험이 있나요? 어… 그러니까, 유럽풍의 오래된 건축물이라던가.
인터뷰어는 예건이 동양인이라는 것을 감안해 나름 신경 써서 복원의 범위를 넓게 잡아주었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다.
– 그렇지는 않습니다. 음… 이번이 처음이군요.
전생을 포함하면 경험이 있다고 말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렇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화면 속 니콜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 굳어진 것 같다.
– 아…. 그렇군요. 음… 외부 공간, 즉 건축물의 외관 복원이 굉장히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된 것 같은데요. 이 부분을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스튜디오의 무거운 분위기와 달리, 화면 속 예건은 여전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자신만만하고 당당하다.
– 노트르담을 두 번이나 복원하신 외젠 비올르레뒤크 건축가님께서 이런 말씀을 남기셨죠.
건축물의 복원이란 기존 건축물을 단순히 잘 유지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어느 시점에도 없었던 완벽한 상태로 다시 창조하는 것이라고요.
– 완벽한 상태로 재창조요.
예건의 입에서 프랑스의 유명한 복원 건축가의 이름이 언급되자, 인터뷰어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 저는 외젠 비올르레뒤크 건축가님을 매우 존경하며, 그분의 뜻이 이 건축물의 복원에 정확히 부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왜죠?
– 복원은 기억을 짓는 것이니까요.
– 오오~.
분명 한 번에 쭉 이어서 말한 것인데, 굉장히 절묘하게 끊어서 주고받는 것처럼 편집했다.
‘재미있네.’
– 저는 이 건축물을 복원할 때, ‘지그프리드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 이곳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면, 아마도 레아 카리나가 함께 했던 시점이겠죠?
– 지그프리드가 건강하고 사랑이 넘쳤던 시절에 만약 이 건축물을 리모델링 했다면, 그는 최선을 다해 발루아를 지상 최고의 아르누보 낙원으로 만들었을 테니까요.
– 일리가 있군요.
인터뷰어가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복원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가 몇 번 더 오가고, 거의 막바지에 접어든 인터뷰.
인터뷰어는 진중하게 물었다.
– 한예건 디자이너께서 앞으로 어떤 행보를 하실 지 매우 기대되는군요.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안면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예건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 먼저 저를 믿고 이 프로젝트를 전적으로 맡겨 주신 크리스티앙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경험이 부족한 동양인을 총괄 설계자로 선택한다는 것이 솔직히 쉬운 결정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저는 스스로 한 단계 성장했음을 느꼈습니다. 매우 값진 기회였고, 최선을 다해 완벽하게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와 함께 복원에 동참해 주신 모든 기술자분들과 예술가분들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그들의 수고를 부디 행복한 마음으로 즐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예건의 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인터뷰어와 니콜만 남은 스튜디오.
인터뷰어가 감격한 표정으로 니콜을 향해 말했다.
– 정말 엄청난 디자이너를 선택하셨네요.
– ……감사합니다.
먹먹하게 들리는 니콜의 목소리.
그녀는 이내 함박웃음을 웃으며 대답했다.
– 최고의 선택이었죠.
잠시 후 인터뷰어의 엔딩 멘트와 함께 크레딧이 올라갔다.
“아들.”
“네?”
“정말 잘했어.”
어머니가 곁에 앉은 예건을 가만히 안아주었다.
잘했다.
그 짧은 한마디가 이렇게 포근한 말이었구나.
예건은 어머니에게 안긴 채로 나직이 말했다.
“다음에는 더 잘할 거예요.”
날개가 하나밖에 없어서 하늘을 날지 못했던 비익조.
예건은 지금 자신의 처지가 비익조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은 있으나, 자격이 없다.
온 힘을 다해 날개를 퍼덕인다 해도 제대로 중심을 잡을 수 없는 새는 하늘을 비상할 수 없다.
결국 한쪽 날개를 대신할 무언가를 채워야만 한다.
다른 비익조들처럼 평생의 조력자를 찾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날개를 대신할 무언가를 만들든.
그날이 올 때까지.
날갯짓을 멈추지 않으리라.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