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76)
076화. VIP경매
‘대단하네.’
샤또 메종 발루아의 1층 로비를 가득 메운 인파는 그녀의 불안감을 완전히 종식했다.
계단참에 마련된 단상과 그 아래 자리한 사람들을 번갈아 보던 니콜이 긴장해 마른 입술을 축였다.
곧 VIP경매가 시작될 예정이다.
평소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에 자리한 이들 중에 유명 명품 브랜드 회사를 대표해 온 이들이 상당수라는 것.
우스운 점은 그들 모두 자신의 브랜드 작품을 낙찰받기 위해 이곳에 자리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단 한 점밖에 없다는 희귀함과 역사적 가치가 저들에게는 그 작품을 꼭 사야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 자리에서 팔리는 순간, 그대로 누군가의 소장품으로 세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춰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저들의 발길을 이끄는 데 한몫했을 거다.
팟!
무대를 비추는 조명이 켜지고, 경매진행자의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오늘 이 자리를 빛내 주신 귀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빠른 비트의 음악과는 달리 내부를 짓누르는 묵직한 공기.
서로 눈치 보기 바빴던 시선들이 모두 단상 위 첫 번째 작품에 고정되었다.
“그럼, 첫 번째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작품은 알폰스 무하의 유화 초상화로 지그프리드의 영원한 사랑, 레아 카리나의 생전 모습을 담고 있는 유일한 흔적이며….”
경매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크리스티앙은 발루아 경매에 있어 가장 이슈가 된 무하의 작품을 선보였다.
알폰스 무하의 일러스트 작품은 세상에 남아 있는 작품 수가 많아 높은 금액으로 거래되는 품목은 아니다.
그러나 레아의 초상화는 그가 그린 몇 점 안 되는 유화 작품이었으며, 발루아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었기에 제법 높은 금액으로 그 가치가 매겨졌다.
니콜은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그녀 또한 대리인을 통해 이번 작품에 입찰할 예정이다.
“…시작가는 7만 달러, 호가 단위 5천 달러부터 올라갑니다.”
경매진행자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숫자판이 여기저기서 경쟁하듯 올라갔다.
‘제발, 제발 20만 달러만 넘지 마라.’
경매가는 순식간에 15만 달러에 도달했고, 이내 경매진행자가 호가를 바꾸었다.
“12번, 15만 달러. 이제부터 호가 단위 1만 달러씩 올라갑니다. 5번, 16만 달러, 31번, 17만 달러!”
순식간에 20만 달러를 넘어선 금액.
긴박하게 오르는 입찰금액만큼이나 경매장 분위기도 후끈 달아올랐다.
테이블 아래, 꽉 쥔 니콜의 손이 부들거렸다.
숫자판이 몇 번 더 올라오고 나서야 겨우 소강상태에 접어든 첫 번째 경매.
경매진행자가 마지막 금액을 몇 번 외치며 추가 입찰을 유도했다.
“26만, 26만 달러 없으십니까?”
‘이제. 그만 좀!!!’
니콜이 간절한 표정으로 경매진행자를 바라보았다.
이내 경쟁자가 없는 것을 확인한 경매진행자가 낙찰자를 선포했다.
“패들 넘버 12번 고객님께 25만 달러에 낙찰입니다!”
니콜이 저도 모르게 양손을 번쩍 들려다 말고, 얼른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광대가 솟구치는 것마저 막을 도리는 없었다.
니콜과 같은 테이블에서 경매를 지켜보고 있던 이서희가 환해진 니콜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경매가 잘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라 짐작하고 안심했다.
서희는 속으로 대충 환율을 계산해 보고 남편에게 작게 말했다.
“와~ 그림 한 점에 2억 5천만 원이 넘어요.”
“하하하. 그러게. 엄청나군.”
첫 작품부터 2억 원이 넘는 낙찰 금액.
이게 전부 취미 삼아 가구점을 차리라던 남편의 제안에서 비롯된 것이란 걸 깨닫고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설마, 당신 이렇게 될 걸 알고 저한테 가구점 차리라고 한 건 아니죠?”
“하하. 그게 무슨 소리야. 평생 로또 한 번 걸려본 적도 없는데. 운이라면, 예건이 그 녀석 운이겠지. 빈티지 가구점에서 보물을 찾은 건 그 녀석이니까.”
“그렇네요.”
서희가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희는 다시 경매 진행 과정을 눈에 담았다.
후반으로 이어질수록 높아지는 낙찰가.
여섯 번째 출품작이 10억 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 거래되자 서희는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작품 수가 많지 않아 입찰 분위기가 뜨거울 거라 듣기는 했지만, 이건 뭐….”
한명호도 현 상황이 당최 이해되지 않는지 허허 웃을 뿐이었다.
중반 이후 같은 넘버의 고객에게 작품이 낙찰되는 상황이 잦아졌다.
동시에 몇몇이 어두운 얼굴로 경매장을 빠져나갔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하던 이서희가 남편에게 조용히 물었다.
“도대체 27번이 누굴까요?”
“그러게. 아까부터 계속 27번이 낙찰받는 것 같은데.”
“제가 기억하는 것만 벌써 3번째예요. 그것도 다 300만 달러 이상 되는 금액으로요.”
“흠. 그렇군.”
한 사람이 싹쓸이하듯 낙찰받아 가던 상황은 19번째 출품작까지 이어졌다.
“이번 작품은 오늘 경매의 꽃이자, 많은 분들께서 기다리고 계셨을 마지막 순서입니다. 45캐럿 오벌컷 다이아몬드 주변에 32개의 스리랑카 사파이어로 장식한 목걸이로, 루이스 티파니가 직접 디자인하고 세공했으며, 레아 카리나를 위해 단 한 작품만 주문 제작한…. ”
소개부터 엄청나다.
여기저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시작가는 320만 달러, 호가 단위 5만 달러씩 올라갑니다. 325만 달러!”
마지막 순서라서인지, 목걸이를 노리고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숫자판을 들어 올렸다.
320만 달러로 시작했던 금액은 순식간에 550만 달러까지 치솟아 있었다.
“패들 넘버 27번 고객님께 550만 달러에 낙찰입니다!”
이서희가 입술을 바르르 떨며 곁의 남편에게 물었다.
“550만 달러면 얼마예요, 여보?”
“…70억 원이 조금 넘는군.”
“70억이요?”
상상도 못 한 금액에 서희의 낯빛이 파래졌다.
* * *
출근 준비에 여념이 없는 아침.
지이잉- 지이잉-.
아침부터 휴대폰 진동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예건이 곁눈질로 번호를 힐끔 확인했다.
33으로 시작되는 프랑스 발신 국제전화였다.
“어? 어머닌가?”
며칠 전 함께 파리로 여행을 떠난 부모님.
오늘 발루아에서 특별 경매가 있다고 들었는데, 벌써 끝난 모양이다.
예건이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자, “아들!” 하며 기쁨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저 귀 잘 들려요.”
– 어머, 미안. 내 목소리가 너무 컸니?
“네. 조금요. 주변이 시끌벅적하네요. 경매는 잘 끝났어요?”
– 완전! 미쳤어!!
“네?”
– 낙찰가가 미쳤다고!!!
꺄악!
환호성이 들린다.
도대체 얼마에 팔렸길래 저렇게 좋아하시는 걸까?
예건은 궁금증이 돋아 귀를 쫑긋했다.
어머니가 너무 흥분한 상태였는지, 아버지가 대신 전화를 넘겨받아 상황을 설명했다.
– VIP 경매로 나온 20점이 모두 낙찰됐단다.
“오~ 잘됐네요. 얼마에 팔렸어요?”
– 놀라지 말고 잘 들어.
떨리는 목소리.
예건이 놀라리라 생각했는지, 숨을 고를 시간을 주고는 말을 이었다.
– 자그마치 2,500만 달러다. 우리 돈으로 320억 원!
“네? 320억 원이요?”
예상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었다.
그것도 500점 중에 겨우 20점만 판매된 금액이 말이다.
물론 VIP 경매라는 점을 감안해 꽤 높은 금액으로 낙찰될 것은 인지하고 있었으나, 이 정도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잘됐네요.”
– 어머? 그게 다야? 자그마치 320억 원이라고.
예건의 반응이 시원찮다고 생각했는지, 어머니는 몇 번이나 금액을 강조했다.
– 온 가족이 평생 그냥 놀고먹어도 다 못 쓰는 돈인데….
“평생 놀고먹을 생각이 없는데요.”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사치나 향락 따위에 시간을 낭비한단 말인가?
머릿속을 부유하며 세상에 꺼내 달라 아우성치는 이미지들을 모두 실현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돈이었다.
수수료를 제외하면, 남는 건 250억 원 정도려나.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대충 각이 나왔다.
‘서울 중심지에 집 짓고. 아르누보 갤러리 매장 하나 올리면 끝이겠네.’
예건은 아르누보 갤러리 사옥을 짓는 건 좀 더 나중으로 미뤄야겠다고 생각하며 아버지께 말했다.
“여행 마치시고 돌아오시면, 아르누보 갤러리 확장 관련해서 마무리를 지어야겠어요.”
– 어. 그래, 그래야지.
“이왕 프랑스까지 가신 거, 어머니랑 좋은데 많이 둘러보시고,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고 오세요. 돈 아끼지 마시고요.”
– 그래. 하하하.
– 너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에 또 가면 되죠.”
조만간 자신이 유명해지면 세계 곳곳에서 방문 요청이 쇄도할 거다.
예건은 그날이 올 때까지 이곳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전화를 끊은 예건은 양복 자켓을 걸치고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오늘은 아파트 단위세대 크리틱이 있는 날.
한국에서 최고라 자부하는 건림건축의 설계팀을 이끄는 팀장급 직원들, 그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예건은 평소와 달리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거울 앞에 서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당당해 보이면서도, 정중하고, 가장 품위 있어 보이는 자세를 찾는 것이다.
“흠… 좋군.”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가방을 들었다.
입사 후 처음 참여하는 디자인 크리틱.
과연 어떤 말이 오갈지, 벌써 기대가 되었다.
* * *
건림건축 임원 회의실.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것은 기획팀 팀원들이었다.
윤민수 주임이 달달 떨리는 다리를 두 손으로 꽉 잡아 진정시키며 말했다.
“아아~ 제가 발표하는 것도 아닌데, 왜 제가 떨리죠?”
“야! 윤 주임. 네가 자꾸 그러니까, 나까지 떨리잖아.”
장현우 과장도 조마조마한 얼굴로 문만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한 팀장님, 발표도 잘하시겠죠? 뭐든 척척 해내는 분이니까.”
“사람이 어떻게 다 잘하냐? 못해도 경험 쌓는다 생각하고 하는 거지. 그런데 김 대리는? 설마 안 오는 거 아니겠지?”
장 과장의 질문에 하 대리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까 한 팀장님 준비하는 거 도와주고 온다고 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아~ 그러면 다행이고. 난 혹시나.”
멀리 설계 5팀 소속 직원들이 회의실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장 과장이 급하게 입을 닫았다.
윤 주임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혹시나 뭐요?”
“아냐, 아니다.”
장 과장이 입을 닫자, 하주연 대리가 윤 주임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김 대리님, 퇴사하겠다고 했대. 5팀 돌아가기 싫다고.”
“네?!”
너무 놀라 크게 소리쳤다는 것을 깨달은 윤 주임이 황급히 자신의 입을 막았다.
“아니, 왜?”
“왜긴 왜겠어? 저기 꼴 보기 싫은 사람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하 대리의 시선이 설계 5팀 서진성 과장을 향했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친 서진성 과장이 손을 흔들며 기획팀 팀원들에게 다가왔다.
“어? 하 대리도 기획팀이었어?”
“네.”
하주연의 긴 속눈썹이 아래로 쳐졌다.
감정 없는 목소리.
“어쩌냐? 기획팀은 다음 주에 해체된다고 하던데.”
“해체… 요?”
윤민수 주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장 과장을 돌아봤다.
장 과장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윤 주임이 구체적으로 묻는 대신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장 과장이 서진성 과장에게 눈치를 주며 말했다.
“뭐, 그거야 대표님께서 결정하시겠지. 아직 잘 모르겠네.”
적당히 빈정댔으면, 그만 가라.
장현우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서진성의 시선을 피했다.
“뭐, 어차피 단기 프로젝트 때문에 뭉친 거잖아. 한 팀장인가 하는 사람. 디자인은 제법 한다는 것 같던데, 솔직히 말해서 너나 하 대리가 그런 사람 밑에 있을 급은 아니잖아.”
하 대리가 잠자코 있었기에, 장 과장도 딱히 부연하지 않았다.
자신도 만약 서 과장처럼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한 팀장을 봤다면 지금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어지는 서진성 과장의 한마디가 장현우의 뇌관을 건드렸다.
“그런데 김 대리는 안 보이네? 퇴사한다더니, 근태가 아주 엉망이야.”
“퇴사라니? 누가?”
서 과장이 피식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몰랐어? 우리 팀장님이 돌아오라고 권유했는데, 설계할 생각 없다고 지랄하고 갔다던데. 하여간 그 새끼는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여 줘도 받아먹을 줄을 모른다니까. 쓸모없는 새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