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77)
077화. 단위세대 크리틱 (1)
송정환 이사가 이끄는 설계 5팀.
이들은 건림건축 직원 중에서 조금 이질적인 분위기의 조직이다.
대부분이 갑자기 늘어난 업무로 인해 모집한 경력직 직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인턴부터 엄청난 경쟁을 거쳐 정직원으로 입사한 직원들보다 경력을 갖춘 덕에 손쉽게 건림건축에 입성했다는 것이, 이들이 좀처럼 건림건축에 흡수되지 못하는 이유였다.
나름의 전통이 있는 회사라는 이미지로 은근히 조성된 우월감과 그 차이를 인정하기 싫은 이들의 자격지심이 상충한 결과.
결국, 낙동강 오리알처럼 겉돌던 이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는 것을 선택했다.
특히나 설계 5팀의 주력 프로젝트가 아파트 설계이다 보니, 바쁜 일정 소화를 위해 높은 효율과 빠른 작업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시되었고, 이에 따라 부서 이동이 쉽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설계 5팀이 이토록 배타적인 분위기였던 것은 아니다.
설계 7팀에서 근무했던 서진성 과장이 설계 5팀으로 부서 이동을 한 이후, 팀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설계 5팀이 건림건축의 매출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팀의 직원들을 은근히 깔보았고.
마음에 들지 않은 직원이 있으면 온갖 치사한 방법을 동원해 더는 버티지 못할 때까지 몰아세웠다.
‘어차피 못 쫓아올 놈이면, 빨리 제 갈 길 찾는 게 나아.’
그런 서 과장을 나서서 말리는 이는 없었다.
송정환 이사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 과장이 설계 5팀으로 옮긴 후, 지난 3년간 설계 5팀에서 근무하다가 퇴사한 직원 수만 거의 10여 명에 달했다.
그런 상황을 고려하면 김상욱 대리가 꽤 잘 버틴 셈이었다.
서진성이 히죽 웃으며 하 대리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하 대리, 갈 데 없으면 우리 팀에 들어와도 되는데. 언제까지 설계 7팀에서 썩고 있을 거야? 안 그래?”
하주연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보란 듯 자신의 팀원과 떠들었다.
“어이, 이 대리. 개념이 어떠니, 공간이 어쩌니, 말도 안 되는 망상만 늘어놓으면서 시간이나 까먹는 팀에 있는 것 보다, 우리 팀에서 배우는 게 훨씬 많지 않냐?”
“아~ 그렇죠. 으~ 개념.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네요.”
5팀 팀원들끼리 시시덕거리며 노골적으로 다른 팀들을 까 내리는 것을 보다 못한 하주연이 냉랭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들리는 소문에 설계 5팀은 되게 쓸데없는 일만 반복적으로 시킨다고 하던데요. 했던 거 조금 바꿔서 수정하게 만들고. 다 하면, 또 그러고.”
하주연이 눈도 깜빡하지 않고 앵무새처럼 말하자, 서진성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뭐? 하 대리, 지금 한 말 무슨 뜻이야? 내가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서 시킨다는 거야?”
“아님, 말고요. 그냥 그런 소문이 있으니까 조심하시라고요. 가뜩이나 일도 힘든데 괜한 오해 살 필요 없잖아요.”
하 대리가 서진성을 외면하고 정면을 향해 똑바로 앉자, 서진성이 잔뜩 불만 있는 얼굴로 하주연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마침 한예건과 김상욱 대리가 회의실로 들어섰다.
김상욱을 발견한 서진성이 화풀이 상대를 찾은 듯 씩 웃으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여~ 김 대리! 자주 보네.”
뜨끔한 표정의 김상욱이 한 팀장의 표정을 살피며 대답했다.
“네. 과장님.”
“뭐야? 오늘 브리핑, 김 대리가 준비한 거였어?”
“아, 아뇨. 저는 그냥….”
자료를 들고 있어, 팔을 쓸 수 없었던 김상욱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 그렇지? 하긴. 김 대리는 아직 평면 계획도 한번 해 본 적 없으니까 혼자서는 무리겠지.”
은근히 까 내리는 말에 발끈할 만도 했지만, 김상욱은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 화를 삭였다.
자신이 화를 내면 한 팀장이 곤란할 것 같아서.
“뭐, 마지막 발표니까. 잘 해봐. 수고해라.”
“네.”
‘아후! 진짜. 언젠가 서 과장 찍소리도 못하는 걸, 내 눈으로 보고 나가야 하는데.’
멀어지는 서진성의 뒤통수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는데, 한 팀장이 곁에서 재촉했다.
“대리님, 가죠.”
“아, 네네.”
설계팀의 팀장들이 회의실에 속속 입장하고, 마지막으로 김수훈 대표와 정기택 상무가 자리했다.
사회는 이주홍 이사가 맡았다.
“지금부터 설계 5팀, 공동주택 단위세대 특화 설계와 관련하여 크리틱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5팀의 송정훈 이사가 준비한 자료를 선보이고, 이후 기획팀 한예건 팀장이 보완 안을 설명하는 순서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후 질의응답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난 후, 크리틱을 종료하겠습니다. 팀장님들께서는 회의장을 나가시기 전에 마음에 드는 안을 선택해 투표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송정훈 이사님, 발표를 시작해 주십시오.”
짝짝짝.
형식적인 박수가 이어졌다.
“안녕하십니까? 설계 5팀 송정훈 이사입니다.”
송정훈 이사는 좌중을 쭉 훑어보고는 한예건과 눈을 마주쳤다.
“이 자리에 첫 번째로 설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건림건축에 혜성같이 나타난 건축 천재, 기획팀 한예건 팀장과 꼭 함께 일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과장된 그의 몸짓을 본 사람들 몇몇은 못마땅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고, 또 누군가는 작게 웃었다.
김수훈 대표는 그저 은은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아파트는 현대인의 삶의 터전입니다. 닭장 같다 표현하면서도 이곳이 이렇게 인기를 유지하는 건, 아파트만큼 편리하고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아! 물론, 안정적으로 상승하는 부동산의 가치도 빼놓을 수 없겠죠.”
약간의 쇼맨십을 가미한 달변가.
왜 저 사람이 팀장을 달고 있는지, 누가 봐도 인정할 정도로 유려한 말솜씨가 좌중을 이끌었다.
그는 전면 스크린에 단위세대 평면도를 펼쳤다.
아주 기본적이고 정형화된 평면을.
“특히 전용면적 85㎡ 규모의 단위세대. 일반적으로 28평형대라고 불리는 이 평면은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양옆에 2세대가 붙어있는, 이른바 계단식 아파트가 성행할 때부터 수많은 설계 전문가의 수고를 거쳐 완성도를 높여왔습니다. 더는 고칠 부분이 없다! 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죠.”
송정환은 씩 웃으며 좌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희 설계팀이 더 좋은 결과물을 찾기 위해 고민을 거듭한 결과, 새로운 가치를 지닌 공간을 발견해 설계에 적용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송정환 이사가 구두 굽으로 단상의 바닥을 굴렀다.
큰 소리와 함께 바뀌는 평면.
송정환 이사가 특화 설계라고 내놓은 평면도는 현관에 중문이 하나 추가되었고, 안방과 침실2 앞에 작은 복도 공간이 있는 것과 더불어, 주방 싱크대의 크기가 기존보다 조금 더 커질 수 있도록 문의 배치를 바꾼 것이었다.
“오.”
“괜찮은데.”
“그런데 특화라고 하기엔 좀… 약하지 않아?”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지만, 송정환 이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완벽하다고 생각한 것을 더욱 완벽하게 만드는 것! 저는 그것이 최고의 결과물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건은 꿍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하아- 저게 뭐야? 그냥 기능을 조금 추가했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잖아. 이러면 재미가 없는데.’
솔직히 자신이 제안한 평면을 보았으니, 아쉬움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평면에 변화를 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현관에 문을 달았다는 것 외에는 바뀐 것이 없었다.
전생의 경험으로 건축가들은 자신이 만든 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송정환 이사가 조금이라도 자신과의 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 줬으면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내게 쏟아지는 질문이 엄청 많아지겠군.’
혹시나 하여 송정환 이사에게 보여주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디자인을 준비해 온 게 문제였다.
하지만 주어진 업무를 대충할 수는 없었기에, 오늘 브리핑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어쩔 수 없지. 최대한 빨리 설명하는 수밖에.’
특별할 것도, 딱히 흥미롭지도 않은 송정환 이사의 발표가 끝났다.
짝짝짝.
박수 소리를 배경으로 개선장군처럼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송 이사가 돌아와 앉자, 서진성 과장이 입이 마르게 그의 발표를 칭송했다.
“와아~ 역시 이사님 발표는 언제 들어도 귀에 쏙쏙 들어오네요.”
입바른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듣기 싫지 않았기에 그냥 내버려 두었다.
“김 대리, 그 녀석도 이번 발표를 보고 나면, 반성하고 돌아올 겁니다.”
“어차피 떠나기로 한 녀석이다. 그냥 둬.”
김상욱 대리의 일은 안타깝기는 하지만, 송 이사가 관여할 일은 아니다.
이미 다 큰 성인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그리 쉬운 일도 아니고.
“경력직으로 다시 뽑으시려고요?”
송정환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리급은 쉽게 구할 수 있을 테지만, 손발을 맞추려면 제법 시간이 걸리겠지.
그런 속마음을 읽은 건지, 서진성이 얼른 덧붙였다.
“충원만 해 주시면, 교육은 확실히 시키겠습니다.”
“그러지.”
서진성은 한 번도 불가능하단 말을 하지 않았다.
밤을 새든, 주말을 반납하든.
맡은 바 업무는 확실하게 마무리한다.
그 점이 송정환 이사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이유였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쯤은 눈감아줄 수 있다.
성과가 없는 과정은 의미가 없다.
효율적이고 확실한 방법을 두고 돌아갈 필요도 없고.
하지만 그라고 김 대표의 지적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에는 오래 붙어 있을 수 있도록 신경 좀 써라. 서 과장도 내년에는 차장 달아서 열심히 노력한 대가는 받아야지.”
차장이라는 말에 서진성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네! 이사님.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 * *
예건은 단상으로 나가기 전에 마음을 정돈했다.
최대한 심플하게 설명할 생각이다.
보여줘야 하는 단위세대 평면이 너무 많았고, 무엇보다 질의답변 때 질문이 넘쳐날 테니.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는 것 대신, 깔끔하게 요점만 설명할 생각이었다.
송정훈 이사가 자신의 디자인을 합리화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해 버렸으니, 예건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마이크 앞에 바르게 선 예건은 좌중을 바라보며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보고드릴 내용이 조금 많습니다. 속도가 조금 빠를 수 있으니, 집중해서 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예건은 목소리를 최대한 높여, 명확한 톤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공동주택 단위세대 특화 설계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예건은 설계 방향을 부연하는 대신, 처음부터 3베이 평면을 펼쳤다.
“한국의 기후 특성과 선호하는 향을 고려해 전면에 침실 1을 추가로 배치한 3베이 평면입니다. 후면에는 발코니를 모두 추가해 외기가 집안에 직접적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딸깍.
예건은 약 10초의 시간을 기다린 뒤,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잦은 이동을 고려해 장롱 같은 큰 가구를 배치할 필요가 없도록 안방 옆에 드레스 룸을 추가하고 각 실에 붙박이장을 추가한 평면입니다.”
딸깍.
“세탁실 및 팬트리(창고)를 추가한 평면입니다. 공간을 기능적으로 분리하였기에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시각적으로 깔끔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딸깍.
“발코니를 2면이 아닌 3면으로 배치해 확장감을 넓힌 평면입니다. 서비스 면적이 기존보다 획기적으로 늘어나므로 고객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딸깍.
“침실과 거실을 모두 남측으로 배치한 4베이 평면입니다. 복도가 길어져 침실과 거실 사이즈는 조금 줄지만, 서비스 면적인 발코니가 늘어나고, 모두 남쪽의 태양 빛에 면할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페이지를 훌훌 넘기고 있는데, 누군가 손을 들며 예건의 발표를 중단시켰다.
“아, 아니. 잠깐! 너무 빨리 지나가서 못 봤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좀 보면 안 되겠습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