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81)
081화. 한남 엘리우 (3)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그야, 그렇게 큰 평형대를 찾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 금액이 비싸기도 하고.”
“그런가요? 그건 경험에서 비롯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신 거겠지요?”
“물론이네. 우리 회사가 빌라 사업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렇다고 사업성 검토를 아무한테나 맡기지는 않아. 그리고 아파트 주력 평형대가 24평, 34평인 것도 그 평형대가 가장 수요가 많은 평형이기 때문 아니겠나?”
예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배치도를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예건은 페이지를 넘겨 배치도를 펼쳤다.
“이건 대표님께서 주신 자료를 기반으로 만든 배치입니다.”
도로를 따라 2열로 늘어서 대지를 빽빽하게 채운 건물들.
‘여유 공간이 전혀 없군. 이러면 단지 내 조경을 아무리 잘 해봐야 의미가 없는데….’
또 한 페이지를 넘기자 예건의 설계 개요에 맞춘 배치가 나타났다.
아까보다 한결 여유로워 보이는 동 간 간격에 찌푸렸던 최강수 대표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흠… 단지가 훨씬 여유로워지는군.”
“맞습니다. 그리고 배치도로는 한눈에 확인할 수 없지만, 앞 동의 높이가 낮아짐으로 인해 뒤에 배치된 세대들이 모두 한강을 조망할 수 있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내부 공간이 훌륭하다 할지라도 한강을 조망할 수 없다면 저층부 세대는 분양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건은 단지 내 땅의 고저 차를 이용했다.
1열의 층수를 낮추고, 2열은 열주를 박아 한 층 높임으로서 모든 세대에서 한강을 조망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 덕분에 전체 세대를 55평형 이상으로 제안할 수 있었다.
“안락하고 조용한 입지와 한강으로 향한 조망, 이보다 좋은 주거환경을 서울에서 찾는 건 힘들 겁니다. 작은 규모의 빌라 수십 채를 분양하는 것 보다 제대로 만든 집 십여 채가 분양도 훨씬 잘 될 겁니다.”
그 대답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최강수였지만, 회사의 사활이 걸린 사업을 곧바로 확정할 수는 없었기에 예건에게 한 가지 제안했다.
“흠… 이러면 어떻겠나? 설계 금액은 이대로 진행하지. 다만 최종 배치와 분양 세대는 이번 프로젝트의 사업성 검토와 분양을 담당하는 성삼호 부장과 상의해 결정하는 거로.”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예건은 고민도 하지 않고 승낙했다.
설계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만큼 자신 있는 일은 없었으니까.
이틀 뒤.
예건은 한남동 다세대주택의 기초 설계안을 준비해 다시 최강건설에 나타났다.
대형 평형만 배치해도 사업성이 충분함을 설득하기 위함이었다.
성삼호 부장의 첫인상은 제법 괜찮았다.
단정한 외모와 행동에서 은은하게 전해지는 우아함이 고객을 응대하는 법을 잘 아는 사람 같았다.
“안녕하세요. 한예건입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최강건설 분양팀 성삼호 부장입니다.”
그는 예건을 회의실로 안내하며 가벼운 잡담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유도했다.
아마도 거절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해 최대한 친근감을 높이려는 것일 터.
“저희 사장님께서 예건 씨의 능력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시더라고요. 기대감이 큽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면 좋겠군요.”
“하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은 시작하는 단계이지 않습니까? 이견을 조율하다 보면, 결국 답은 나오기 마련이죠.”
조율(調律).
악기의 음을 표준음에 맞추어 고르는 행위.
서로 다른 견해차를 적당히 조절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단어이다.
예건은 한 번도 디자인에 있어서만큼은 물러선 적이 없었다.
전생에도 현생에도.
공동주택 설계 크리틱을 마치고 난 이후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앞으로 살 집을 짓는다는 행복감 덕분인지.
공간 디자인이 꽤 멋지게 나왔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예건이 설계 제안서를 건네자, 빙긋 웃으며 제안서를 펼쳐 보는 성삼호 부장.
여유로운 모습으로 도면을 들여다보던 성 부장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자신도 모르게 도면에 몰입한 것이다.
아까의 여유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숨에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을 확인한 그는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 검토를 시작했다.
머릿속에 생생하게 평면을 그릴 수 있을 때까지 도면을 보고, 또 보았다.
그의 시선은 55평형을 지나, 85평형을 숙지하더니, 별개 동 2층으로 구성된 100평형 세대에 완전히 머물러 버렸다.
머릿속에 100평의 평면을 완전히 숙지하고, 그는 3차원 공간을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이 빌라를 지으면 분양이 잘 될까?
수없이 많은 평면과 모델하우스를 검토했던 그였기에 답은 너무도 쉬이 나왔다.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건물 내 주차장 안으로 들어서자 그의 귀환을 반기듯 센서가 작동해 자동으로 조명이 켜진다.
석재로 고급스럽게 마감된 주차장은 자신과 가족들만 이용할 수 있는 사적 공간이다.
주차구획 4개소 중에는 이미 장성한 아들의 스포츠카와 와이프가 장 보러 갈 때 사용하는 SUV가 놓여 있다.
자신의 승용차를 반대쪽 주차구획에 여유롭게 주차하고, 집으로 연결된 지하 현관문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계단을 오른다.
주차장에서 현관으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가 있으나, 계단을 이용해 평소 부족한 운동량을 채우려는 것이다.
갤러리처럼 꾸며진 깔끔한 마감.
계단의 높은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늘어져 있고, 어두운 발밑을 밝혀줄 계단 조명이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1개 층을 오르자 보이는 널따란 중정.
공간 중앙을 장식하고 있는 작은 정원에는 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스피커를 통해 아내가 좋아하는 클래식이 어우러지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외기를 한 번 더 차단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멋들어진 유리 자동문이 열리면, 높은 층고의 거실이 노을빛을 머금은 한강과 함께 눈에 들어온다.
아내가 반가운 얼굴로 자신을 반기고, 자신이 좋아하는 향의 블렌드 커피를 내민다.
‘오늘도 고생했어, 여보.’
멋지다!!
순간 자신이 너무 심취했음을 깨달은 성 부장이 번뜩 정신 차렸다.
“어, 이거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30분밖에 안 지난걸요.”
“네?”
성 부장이 얼른 시간을 확인했다.
예건의 말대로 시간이 잘린 듯 훌쩍 지나가 있었다.
“어…. 펴, 평면은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일단 요즘 건축물답지 않게 굉장히 특별하게 공간이 구성되었고, 사용자 관점에서 섬세하게 디자인된 것 같아요.
제가 다른 회사에서 아파트 대형 평형 분양 경험도 있는데… 대부분이 면적만 넓지, 공간의 기능에 특징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거든요. 솔직히 공들여 만든 단독주택 못지않은 디자인입니다.”
“음… 사실 100평형 타입의 경우 성 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 평면은 최 사장님 댁으로 디자인한 거거든요.”
“아! 100평형을 대표님 소유로 디자인하셨군요.”
“네. 성장한 아드님과 함께 사신다고 하셔서, 80평형은 조금 작은 것 같아서요. 결혼 후에도 함께 지낼 수 있도록 1층과 2층의 구조를 완전히 분리해 뒀습니다.
100평형의 나머지 한 세대는 저와 부모님이 살 거라, 100평형은 이미 분양된 거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건은 강을 따라 길쭉하게 생긴 토지 양 끝에 각각 최 사장님의 주택과 자신의 집을 단독으로 배치하고, 중앙을 분양 세대로 구성했다.
“그럼 다른 세대를 몇 평형으로 하는지가 문제겠군요.”
“맞습니다. 저는 100평형 2세대와 85평형 12세대, 55평형 4세대로 구성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유를 조금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예건은 기다렸다는 듯 설명을 시작했고, 성 부장은 그의 말에 토 하나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설명이 끝나자 성 부장이 확신에 찬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이거, 참. 분양 전문가인 저도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습니다. 한 팀장 말대로, 이 빌라는 분양하자마자 다 팔려나갈 겁니다.”
“이제 최 사장님을 설득하는 일만 남았네요.”
“최 사장님은 제가 어떻게든 설득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디자인 완성 부탁드립니다.”
성삼호 부장이 저리 적극적으로 나서 준다면, 최강수 사장도 더는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분양이 잘 안되면, 내가 다 사면 되니까.’
희소가치가 있는 땅과 집의 조합은 가치가 오르기 마련이다.
한강을 바로 접하고 있는 값비싼 대형 다세대주택은 아직 흔하지 않았다.
아마 성 부장도 그 점이 가지는 메리트를 빠르게 이해한 것이리라.
성삼호 부장의 유능함을 눈여겨본 예건은 설계대로 시공 품질만 잘 나온다면 완판은 어렵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 * *
집으로 돌아온 성삼호는 영 입맛이 없었다.
아내가 앞에서 뭐라고 하는데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여보, 우리 도곡동 아파트 사려고 모아둔 돈이 얼마였지?”
“거기 벌써 분양해?”
“아니, 그건 아니고.”
“아직 2억 안 돼. 돈은 갑자기 왜? 거기 꼭 사야 한다면서?”
아내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실은 우리 회사에서 이번에 빌라를 짓는데….”
“빌라? 빌라는 별로라며? 가격도 잘 안 오르고. 당신이 맨날 그랬잖아.”
그랬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 말이 맞을 거다.
하지만 이상하게 자꾸 예건이 준 평면이 눈에 걸렸다.
이건 꼭 사야 한다는 전문가로서의 촉이 발동한 것이다.
물론 85평형을 분양받는 건 절대 무리다.
하지만 분양가 10억 원 정도에 살 수 있는 55평형이라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마침 경기도에 살고 계시는 장모님이 집을 옮길 예정이라는 게 생각났다.
물론 합가를 하면 자신은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집값만 잘 올려준다면 모두 행복하지 않을까?
“여보, 장모님. 이사 가실 거라고 했지.”
“응. 집이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동생 혼자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거 고생스럽다고 올라오신다네.”
아내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본다.
예전부터 혼자 되신 어머니와 합가를 원했지만, 밖에서 홀로 고생하는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계속 뒤로 미뤄둔 속마음이 살짝 드러났다.
“일단 불편해도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해.”
“왜?”
“당신, 장모님 모시고 살고 싶다며.”
“어? 진짜? 진짜 그래도 돼?”
아내가 뛸 듯이 기뻐했다.
“대신 집은 내가 가자는 데로 가는 거다.”
“뭐, 엄마만 모시고 살 수 있으면, 빌라든 아파트든 난 상관없어. 진짜 진짜 고마워, 여보.”
아내의 지지는 구했다.
이제 남은 건 어떻게 사장님을 설득하냐는 건데….
이럴 때는 직진이 최고다.
그는 인맥을 활용해 55평형 구매 의사자 3명을 더 모집했다.
워낙 좋은 땅이라 매입 희망자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결심이 선 그는 사업성 검토 자료를 다시 꾸려 최강수 사장에게 향했다.
* * *
최강건설 성 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최종 결정된 세대는 예건이 제안했던 100평형 2세대, 85평형 12세대, 55평형 4세대로 분양하기로 최강수 사장님과 최종 합의를 보았으며, 100평형과 55평형은 구매자가 확정되었다고.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결국 85평형의 분양이 얼마나 잘 되느냐에 달렸는데, 성 부장은 충분히 분양될 거라 장담했다.
“혹시 다세대주택의 브랜드 명칭은 결정하셨나요?”
– 아직입니다. 나중에 건축 컨셉과 같이 고민해 볼 생각이었습니다만, 혹시 좋은 이름이 생각나시면 제안해 주셔도 좋습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한남 엘리우.”
– 엘리우? 어감이 좋군요. 혹시 무슨 뜻인가요?
“카탈루냐어로 ‘강’이란 뜻입니다.”
– 카탈루냐요? 어… 그게….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스페인의 역사를 잘 모르는 한국인들은 당연히 스페인의 도시인 바르셀로나에서도 스페인어를 사용하리라 생각할 터.
성 부장이 모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 엘리우. 한남 엘리우. 음…. 괜찮군요. 남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로 건물 명칭을 만들면, 특별함이 더 가중되는 법이죠. 적극적으로 추진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만간 완성된 기본안을 가지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예건은 한남 엘리우의 건축디자인에 박차를 가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택 단지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