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82)
082화. 예술, 새로운 영감의 원천 (1)
연예인의 휴식기는 단조롭기 그지없다.
특히 앨범 활동을 이제 막 끝내고 숙소에 처박힌 안준영은 숙소에서 두문불출하며 침대와 거실 소파를 번갈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생활이 2주일째 이어지자, 보다 못한 민규가 총대를 멨다.
“그렇게 계속 늘어져 있을 거야? 뱃살 늘어진다고.”
“아~ 좀 쉬자. 내버려 둬.”
“2주나 누워 있었으면 됐지. 좀 일어나. 내 허리가 다 아프다. 동네 한 바퀴 뛰고 오자.”
“어윽. 시러. 안 갈 거야.”
소파를 붙잡고 앙탈을 부리는 준영을 민규가 힘으로 잡아 일으킨다.
“아휴, 귀찮아. 쓸데없이 부지런한 놈.”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준영이 눈을 부라리며 민규를 노려보았다.
“얼른 일어나. 너 좋아하는 마카롱 사 줄게.”
“마카롱? 마카롱이면 못 참지.”
추리닝 바람 그대로 현관으로 향한 준영은 모자와 마스크로 대충 가리고 운동화를 신었다.
“하여튼 단 거 겁나 좋아해. 살은 왜 안 찌나 몰라.”
민규는 투덜거리며 뒤따랐다.
매일 아침저녁, 억지로 유산소 운동을 하는 데다 다이어트 식단까지 겸하고 있는데도 온종일 누워 있는 준영의 늘씬함을 따라잡을 수 없다.
“다른 거 안 먹으면 돼. 난 단 거만 먹잖아. 헤헷.”
“퍽이나 건강에 좋겠다.”
완벽한 조깅폼으로 뛰는 민규를 따라 긴 다리로 설렁설렁 걸어가는 준영.
“야, 좀 뛰라고.”
“어. 뛰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운동이 되겠냐?”
“어. 운동 되는데.”
“어휴~ 내가 말을 말지.”
결국, 항상 이기는 건 준영이었다.
“너, 대표님하고 다음 주에 파리 간다며?”
“어. 아마도?”
“루이비제 S/S 컬렉션 한다던데, 거기 가는 거야?”
“응. 몰라.”
“하! 넌 도대체 아는 게 뭐냐?”
“응? 글쎄.”
앨범 활동만 끝나면 빙구가 되어버리는 준영.
처음 봤을 때는 컨셉인 건가? 하며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지내보니 그냥 귀찮아서 저러는 거다.
평소에는 게으름을 패시브로 장착한 녀석이 카메라만 들이대면 정색하고 멋짐을 뿜어내니, 참 신기한 놈이다.
“어?”
“왜?”
“저기. 집 부수는데.”
준영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펜스를 쳐 놓은 영역이 보인다.
그 안에서 커다란 집게발처럼 생긴 장비가 단독주택의 외벽을 찌그러트리고 있고, 현장 입구 쪽에는 굴삭기가 트럭에 건축물의 잔재를 긁어모아 싣고 있었다.
“집 지으려고 그러나? 아… 나도 저런 데 살고 싶다.”
“지금도 한남동 살고 있잖아.”
“숙소 말고. 내 집.”
하긴, 멤버들과 함께 산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앨범이 잘 될수록 숙소 규모도 점점 늘었지만.
생활 패턴이 완벽히 다른 장정 다섯이 한 집에 모여 사는 것은 그다지 권장할 만한 주거환경은 아니다.
특히나 준영의 방에는 음악 작업을 위한 온갖 악기와 컴퓨터 장비, 개인적으로 사 모은 명품 옷과 패션 소품들까지 들어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가 매일 소파에 드러누워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 갖고 싶으면, 사면 되잖아.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민규의 말에 준영이 씩 웃었다.
“그럴까?”
* * *
루이비제 S/S 파리 오트 쿠튀르에 히트어택의 리더 안준영이 초대받았다는 소식이 뉴스를 장식했다.
세계 패션 문화를 선도하는 명품 브랜드가 새로운 해를 준비하며 첫선을 보이는 패션쇼에 한국 연예인을 초청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안준영의 스타성과 아시아 패션 리더로서 영향력을 인정한다는 말과도 같았다.
[‘패션왕’ 안준영, 루이비제도 인정!] [히트어택 안준영, 패션쇼 참석 위해 파리로 출국] [‘완판남’ 안준영, 루이비제 패션쇼에서는 어떤 패션을 보여줄 것인가? 초미에 관심]관련 기사에는 팬들의 애정 넘치는 댓글이 끊이지 않았다.
– 루이비제가 제일 먼저 알아보네. 우리 준영이 갓벽한 거
– 단군 이래 최초로 명품 씹어먹는 아이돌
– 완벽한 준영이 비율에 모델들도 오징어 만들 듯
– 트위터에 영어 댓글 또 늘어나겠네. 안 그래도 한국 사람 댓글 찾기 힘든뎅
안준영의 외모와 패션 센스를 찬양하는 수많은 댓글 중에 의외의 댓글 하나가 올라왔다.
– 루이비제 한국 홀릭? 이번에 패션쇼 열리는 발루아 성도 한국인이 복원했다고 하던데
└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너 같으면 경복궁 외국인한테 복원 맡기겠냐?
└ ㄴㄴ 이거 레알임. 나도 뉴스에서 보고 엄청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였음
└ 한국대 생이라던데? 프랑스어 겁나 유창한 거 보고 심쿵함. >> 링크 투척 [https://wetube/2UVljZ4]
– 위 댓글 진짜네. 인터뷰 영상 보고 연예인인 줄
– 와~ 모야 모야? 발루아 고성디자인 수준 장난 아닌데?
└디테일 미쳤네
└ 저기 어디임? 나 담달에 파리 가는데, 인터뷰 영상에 위치도 나옴?
루이비제의 S/S 패션쇼 장소인 샤또 메종 발루아가 한국인이 디자인한 작품이라는 것이 이슈가 된 것이다.
하지만 예건은 그 흔한 SNS 하나 없었고, 프로젝트와 관련된 홍보를 따로 하는 것도 아니니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뉴스 댓글을 확인하던 이재정이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데.’
한예건이 JJ엔터 소속 아티스트였다면,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 자신에게 더 중요한 건, JJ엔터의 사옥을 최상의 상태로 건축하는 것.
그리고 발루아가 실제로 얼마나 완성도 있게 지어졌는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루이비제가 패션쇼 장소로 지정할 정도면 보통 수준은 넘는다는 건데.’
건축 도면이 완성되었으니, 이제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선정해야 할 차례였다.
예건이 발루아의 내부 디자인을 주로 맡아서 복원했다고 하니, 퀄리티가 나쁘지 않다면 인테리어도 통일감 있게 그에게 맡길까 고민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파리행 비행기가 착륙을 알렸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비행인데 오늘따라 묘하게 설렜다.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군.’
* * *
니콜에게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 잘 지냈냐고요? 아뇨.
대답하는 목소리가 어쩐지 시원찮다.
곧 있을 발루아 특별 경매 때문에 많이 피곤한 모양이다.
“저런. 많이 바쁘신 모양이네요. 쉬엄쉬엄 하세요.”
– 호호.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 VIP 경매 낙찰금이 오늘 중으로 입금될 거예요.
“좋은 소식이군요.”
부모님은 발루아 경매 소득을 몽땅 자신의 몫으로 넘겨주셨다.
오늘 수수료를 제외한 판매 차익금을 넣어줄 모양이다.
최강수 사장이 분양이 잘 되면 공짜로 집을 줄 것처럼 말하기는 했으나, 그러면 자신이 짓고 싶은 스타일의 건축물을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건은 이번 경매 소득에서 40억 원 정도를 토지 지분 매입 및 주택 건설 비용으로 사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큰돈이었으나 부모님의 편안한 노후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작업실에 투자하는 돈이니,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내일은 아르누보 갤러리 확장을 위해 추가로 매입하기로 한 상가 계약도 마무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아르누보 갤러리가 계속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으니까.
– 한 가지 더 전해드려야 할 소식이 있어요.
“네. 말씀하십시오.”
– 메종&아트 전시회 아시죠?
“브루노 건축가님께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를 신진 디자이너로 추천하셨다고.”
– 네. 그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내년 3월에 열릴 전시회에 참여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려 달라고요. 그런데 조건이 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걸 보니, 조건이 까다로운 모양이다.
– 전시회를 구성하려면 최소 10여 점 이상의 가구가 필요한데… 지금 서울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작품만으로는 힘들다고 해요.
“그렇군요.”
– 그래서 그쪽 담당자가 제안하기를 발루아에 어울리는 아르누보 스타일의 가구를 조금 더 추가해서 전시회를 준비하면 어떻냐고 하네요. 물론 완성된 가구는 저희 쪽에서 구매하겠습니다. 다음 경매까지 잘 되면… 발루아에 남은 전시품이 너무 없을 것 같거든요.
“아….”
VIP 경매 열기가 뜨거웠다는 것은 이미 부모님을 통해 전해 들었다.
한국에 있었던 예건은 잘 와닿지 않았지만.
– 가능하실까요?
“네. 좋죠. 어떤 품목이 좋을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경매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제품들을 대체하는 것이니, 비슷한 종류의 가구를 준비해도 되겠지만.
이왕 디자인한 가구로 채워 넣기로 결정되었으니, 지금 있는 가구와 똑같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예건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구상이 마구 떠올랐다.
– 그럼, 9월 중에 전시회에 올릴 품목과 대략적인 방향을 알려 주시면, 저희 쪽에서 미리 메종&아트 쪽과 적절한 위치 선정을.
“아! 니콜 님.”
– 네?
“이후 상황은 니콜 님께 일임하겠습니다. 그리고 가구는 팔지 않을 거예요. 전시만 할 겁니다.”
– 네? 가구를… 팔지 않으시겠다고요?
“네. 어차피 발루아가 인기를 끌게 되면, 저한테 입장료 수익의 일부가 제공되는 거로 계약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 맞습니다.
“가구는 발루아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제가 지원하는 거로 할게요.”
– 아….
“그럼, 이만 전화를 끊어야겠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든요. 지금 그려야 합니다. 그럼.”
뚝-.
예건은 전화를 끊자마자, 책장 한 구석에 있던 스케치북을 가져와 펼쳤다.
거기에는 발루아 현장에 상주할 때부터 그려놓은 가구디자인이 가득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미리 그린 건 아니지만, 잘됐네.”
지그프리드 빙이 뛰어난 수집가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아니다.
공간과 조화를 고려하지 못한 가구와 장식품들의 배치가 솔직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
그래서 예건은 틈날 때마다 각 장소에 어울리는 가구디자인과 배치를 스케치로 남겨 두었다.
발루아 인테리어 최종도면을 화면에 띄워 놓은 예건은 스케치에 있는 가구 도면을 하나씩 CAD 파일로 옮기기 시작했다.
* * *
“가구를 팔지 않겠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니콜은 가끔 예건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발루아 경매 출품작만 해도 그랬다.
가지고 있으면 돈이 될 만한 값비싼 보석류의 경매품들은 미련 없이 척척 내놓으면서, 이슈 만들기 좋은 가우디가 착석한 가구는 절대 내놓지 않겠단다.
이왕 가구 회사를 차렸으니, 새로 만든 가구를 판매해야 하는 게 당연한데도 가구를 팔지 않겠다니.
“설마… 하나씩만 만들 셈인 건 아니겠지?”
“뭘, 하나씩만 만들어?”
어느새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자크가 물었다.
“어. 미스터 한 말이야. 메종&아트에 출품하는 출품작을 우리 쪽에서 사겠다고 했는데, 팔지 않겠다고 해서.”
“흠. 요즘 만들어지는 아르누보 스타일 가구라… 그다지 값이 나갈 것 같지 않은데.”
최근 디자인 경향이나 흘러가는 트렌드를 보면, 곡선이 과하게 들어간 아르누보 양식보다 세련되고 모던한 이미지를 풍기는 아르데코(1930~1940년 세계적으로 유행한 시각 예술디자인) 양식의 디자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최근 명품 가구들은 대부분 아르데코 기조를 따르고 있으며, 경매에 출품되더라도 아르데코 시대의 가구가 더 비싸게 낙찰되는 추세였다.
인기가 떨어지는 아르누보 스타일 가구를 대량 생산하는 것보다 유일한 가구로 만드는 것이 훨씬 가치를 높이는 방법일 터.
“그러니까. 그래서 한 작품만 만들 건가 싶었던 거지.”
“그래? 젊은 친구가 제법 사업 수완이 있네.”
“내 말이. 그런데 안 팔겠다네.”
“뭐? 왜?”
“글쎄.”
니콜이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잠시 고민하던 자크가 내막을 알겠다는 듯이 한쪽 입가를 올렸다.
“이거, 딱 그거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