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91)
091화. 디자인계의 신성 (1)
신진디자이너.
세계의 모든 디자이너 중 일년 동안 가장 인상적인 디자인 행보를 선보인 3명에게만 주어지는 메종&아트 신진디자이너.
한국 디자이너 그 누구도 아직 닿지 못한 새하얀 눈길이었다.
“서희야.”
– 응?
“그거, 아무에게나 주는 기회 아냐! 꼭 출품해. 알겠지?”
– …그래. 최선을 다할게.
신은영은 친구에게 응원과 축하를 마구 퍼붓고는 길었던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굳은 얼굴로 전연수 기자에게 지시했다.
“한예건이 내년 3월에 발표하는 메종&아트 신진디자이너로 선정됐대.”
“네? 진짜요? 대박!”
전연수 또한 그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메종&아트의 신진디자이너로 알려지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세계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추가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나 봐. 전시회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사실 확인하고, 발루아 건이랑 같이 기사 작성해.”
“그럼… 발루아 경매 출품작에 대한 건은요? 그건 안 하는 게 좋겠죠?”
잠시 고민하던 신 편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슈는 되겠지만. 그건 나중에. 괜히 돈으로 엮으면 우리 한예건 디자이너 실력이 저평가될 수도 있으니까.”
전 기자는 수긍한 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네. 실력이 저평가되면 안 되죠!”
“대신, 곧 ‘건축과 공간’에서 발루아 복원 관련 서적이 출판될 거야. 건림건축 출판팀 방문해서 도서 집필한 담당자 미팅하고 관련 내용 보강해서 다음 달 특집기사 작성해 봐.”
“특집기사요? 진짜요, 편집장님?”
“그 정도는 해줘도 괜찮지 않겠니? 한국 최초로 메종&아트에 선정된 디자이너인데.”
“무, 물론이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은영은 예건을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연하던 모습.
그 대담함이 단순히 성격이 아니라 실력을 바탕으로 완성된 것이었음을.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네. 그 높은 파리 공예계의 벽을 단숨에 뛰어넘다니.”
과연 앞으로 어디까지 성장해 나갈지, 그 귀추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한국인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세계디자인의 정점.
디자인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콧대 높은 IF 골드 어워드에 도달하는 첫 번째 디자이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신은영 편집장은 마지막으로 전연수 기자에게 IF 작품 등록 일정을 확인해 달라 지시했다.
* * *
기획팀에 새로운 인원이 보강된 것은 네오소프트 계약이 성사되고 겨우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길게 길러 웨이브를 준 머리칼, 멋들어지는 양복 재킷에 하의는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기획팀 사무실로 쑥 들어섰다.
“하이~ 다들 좋은 아침!”
이경록 차장은 에너지가 넘치는 소프라노 톤 목소리를 잔뜩 뽐내며 손을 흔들었다.
그와 안면이 있던 직원들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차장님.”
“와! 이 차장님이 저희 팀 오신 거예요? 대박!”
이경록 차장은 건림건축 내에서도 직원들의 신뢰를 한 몸에 독차지하고 있는 인기인이었다.
일처리가 능숙하고, 협상 능력도 뛰어난데다 신입 교육에도 발 벗고 나서는 열정적인 상사였다.
게다가 매사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고, 후배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훈계하거나 꾸짖지 않고 잘잘못을 정확히 따져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아주 이상적인 상사로 평가받는 그였다.
“그런데, 원래 공모전 팀 아니셨어요? 요즘 한창 바쁜 시즌인 걸로 아는데, 어떻게 오신 거예요?”
김상욱 대리의 물음에 이경록 차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기획팀 인원 부족하다고 급하게 배정하신 것 같던데.”
“네? 저희가요?”
“응. 설계비 50억짜리 네오소프트 수주했다던데, 몰랐어?”
“네에에? 50억요?”
팀원들 모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얼굴로 있자, 이경록이 실소했다.
“뭐야? 팀원들도 모르게 팀장 혼자 프로젝트 수주한 거야?”
물론 그럴 리 없지만, 워낙 반응이 기괴했기에 그냥 해본 소리였다.
“어쩐지, 계속 외근이더니.”
그런데 장현우는 정말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뭐가 그리 바쁜지, 몇 날 며칠 출근 직후 사라지기를 거듭하다 금요일 오후부터 사무실에서 두문분출 하는 것을 보고 팀원들과 이런저런 가능성을 점쳐보고 있었다고.
JJ엔터 초안이 어떻게 완성됐는지 직접 곁에서 보았던 그였기에 조심스럽게 팀원들에게 앞으로 바빠질 것 같다 이르고 오피스 설계에 필요한 자료들을 잘 갈무리하라 당부하기도 했단다.
“역시! 과장님 예상이 맞았네요.”
“설계비만 50억이라니, 어마어마한데요.”
장현우 과장의 말에 김 대리와 윤 주임도 맞장구를 쳤다. 아무렇지도 않게 수긍하는 그들의 태도에 어이가 없는 건 오히려 이경록 차장이었다.
“뭐야? 이 분위기? 진짜 혼자서 그 큰 프로젝트를 수주했다고?”
“네. 한 팀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한 팀장을 만나서 물어야겠다고 생각한 이 차장.
“한 팀장은? 지금 사무실에 있어?”
“아뇨. 외근 중이에요. 있다 오후에나 들어올 거라고 하던데요. 아! 차장님은 여기 앉으시면 됩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은 컴퓨터 세팅 끝나시면 공유해 드릴게요.”
“어, 그래.”
그가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장현우 과장이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윤 주임, 지난주 오피스 관련 해외 사례 자료 조사 맡겼던 건 얼마나 됐어? 한 팀장 돌아오면 곧바로 확인할 것 같아서 말이야.”
“거의 끝나갑니다. 오전 중에 빨리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김 대리, 법규 리스트는?”
“네. 끝났습니다. 오타 체크 하겠습니다.”
“좋아! 한 팀장, 논문 수준으로 자료 조사 요구하는 거 내가 전에 말했지? 나중에 조사 미흡하다고 깨지지 말고, 한 번에 오케이 받자고.”
“네!”
일사불란한 지시와 간결한 대답에 이경록 차장은 속으로 짐짓 놀랐다.
건림건축 에이스팀이라 불리는 공모전 팀도 이 정도로 빡빡한 분위기는 아니었으니.
어쩐지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쓸려, 이 차장은 평소와 달리 말을 잃고 묵묵히 테이블을 정리했다.
* * *
예건은 아침 일찍 사무실을 나와 황금금속 황두철 사장에게 소개받은 1군 인테리어 업체가 있는 논현동으로 향했다.
호텔 인테리어를 전문적으로 하는 인테리어 시공사답게 1층 입구부터 으리으리했다.
짙은 갈색빛을 띠는 회색 대리석으로 정갈하게 마감된 벽과 바닥.
높은 천장고와 조도가 낮은 조명은 은은하게 바닥까지 떨어져 어둠 속 빛의 존재감을 밝혔다.
로비 중앙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자리 잡았고, 조각상을 중심으로 둥글게 배치된 조명이 어느 방향에서도 조각상의 형태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비춰줬다.
1층에 안내데스크가 있을 법도 한데,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것을 보니 아마 다른 층으로 가야 하는 모양이다.
예건은 황두철 사장에게 받은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을 취했다.
“안녕하세요. 라 메종드 아르누보를 운영하는 한예건이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안 그래도 연락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뵐 수 있을까요?”
– 물론입니다. 혹시 어디쯤이시죠?
“건물 도착했습니다. 1층입니다.”
– 7층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곧장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예건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인 7층 버튼을 눌렀다.
7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나서자 너른 공간 중앙에 멋들어진 백색 대리석으로 마감한 안내데스크가 보인다.
‘꼭대기에 로비를 두다니, 특이한 구조네.’
심플함이 돋보이는 1층과는 사뭇 다른 예술적인 감각으로 충만한 7층의 로비.
짙은 녹색을 머금은 검정 대리석 바탕에 다양한 두께의 직선으로 음각한 줄눈에는 은은한 브론즈 스테인레스를 채워 넣었다.
군데군데 천장과 바닥의 조명에서 시작된 빛이 벽을 따라 흘러내리며 반짝이는 게, 꼭 벽천(벽을 타고 흐르는 물) 같은 느낌이다.
공간 자체가 묵직한 추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잠시 신기한 표정으로 내부를 둘러보고는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물었다.
“마케팅 부서 정보아 차장님을 찾아 왔습니다.”
“누구시라고 전해 드릴까요?”
대답하려고 입을 벙긋거리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안녕하세요. 한예건 씨.”
“아, 정보아 차장님?”
“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세련되게 차려입은 모양새가, 확실히 마케팅 부서 직원다웠다.
“황금금속 황두철 사장님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논현동 아르누보 매장도 직접 가서 봤고요.”
“아, 그렇습니까?”
“이번 프로젝트, 저희 대표님도 궁금해하세요.”
“대표님께서 관심을 두신다니, 감사한 일이군요.”
“호호. 한예건 씨, 이미 이쪽 업계에서는 유명인이신데. 체감이 잘 안되시나 봐요?”
정보아 차장은 눈을 예쁘게 반달로 접으며 부연했다.
논현동 라 메종드 아르누보가 완공되고 한동안 인테리어 업계에서는 이곳을 디자인한 회사가 어디인지 궁금해했다고.
“인테리어는 건축과 달리 시장이 매우 좁거든요. 그렇게 눈에 띄는 디자인을 하면 어디서 했는지 바로 확인도 가능하고요.”
“아하, 그렇군요.”
“그런데 누가 설계했는지, 누가 공사했는지 정말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본의 아니게 궁금증을 키웠군요. 죄송합니다.”
정보아가 고개를 저었다.
“호호. 죄송하긴요. 당연히 1군 기업에서 디자인했을 거다 지레짐작한 저희 탓이죠. 하여튼 그때 제일 열심히 찾으셨던 게, 저희 대표님이세요.”
“그랬군요.”
정보아가 싱긋 웃었다.
“저희 대표님이 설계 잘하는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세요. 부러울 정도로. 어쨌든 나중에 무드에 기사 나고, 건림건축에서 근무 중이라는 거 알고는 대표님도 마음을 접기는 했지만요. 호호호.”
디자이너를 찾아 영입하려 했다는 것을 돌려 말하는 정보아 차장의 말투에서 배려심이 느껴졌다.
“게다가 저희 고객님들 중에 라 메종드 아르누보 가구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아요. 정갈하고 세련되면서 흔하지 않은 디자인이라고.”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공들여 디자인한 제품은 고객이 제일 먼저 알아보는 법이죠.”
예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아 차장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만나야 할 상대에 대해 미리 충분히 알아보고, 그 사람의 관심사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황 사장님께서 거기 공사 참여했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하긴 그 정도 퀄리티로 작업할 수 있는 금속 회사가 국내 몇 없긴 하죠.”
“맡은 일은 완벽하게 처리하시는 분이니까요.”
정보아 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한 번 볼까요? 라 메종드 아르누보를 확장하신다고 그랬죠? 도면은 직접 작업하셨고요.”
“네.”
공사를 직접 관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매번 혼자 모든 공사를 관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참에 믿고 맡길만한 인테리어 시공사와 연을 맺어 놓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공사 난이도가 높다고 지레 겁먹거나 높은 비용을 제시해 놓고 막상 공사는 외주를 주는 알맹이 없는 업체가 아닌.
직접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자신과 손발을 맞춰 일해줄 인테리어 회사 말이다.
그런 정직한 회사를 찾는 게 어디 쉽겠냐마는, 지금의 예건에게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가방에 챙겨온 도면을 테이블 위에 올리자 정보아 차장은 눈을 빛내며 관심을 드러냈다.
도면이 펼쳐진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오가던 말이 뚝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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