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92)
092화. 디자인계의 신성 (2)
기존 라 메종드 아르누보의 매장 디자인은 아르누보 양식을 그대로 고증한 건축 장식과 간판으로 활용된 금속 아트에 강점이 있었으나, 그에 비해 내부 디자인은 너무나 모던했다.
아쉬움이 컸던 만큼 그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아직 학생이라던데, 부족한 부분은 바로 짚어 주는 게 좋겠지.’
건축 설계와 인테리어 설계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큰 차이점이 있다.
숲과 나무.
건축이 멀리서 보아야 그 형태를 짐작할 수 있는 숲이라면, 인테리어는 나무처럼 직접 만지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이다.
인테리어 도면은 실내의 마감과 디자인 가구의 배치, 동선 등 보다 세심하게 고려해 제도해야 한다.
잘 만들어진 인테리어 도면일수록 디테일 부분이 많이 작도된 것은 그 때문이다.
한예건의 전공 분야는 건축.
당연히 그가 가져온 인테리어 설계 도면으로는 곧바로 공사에 들어가기 힘들 거로 짐작한 정보아는 조언할 내용을 적기 위해 수첩을 펼쳤다.
가장 먼저 직사각형의 단순한 평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확장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면적은 크게 바뀌지 않는 것 같은데.
“한예건 씨. 이건 확장이 아니네요. 설마 기존의 라 메종드 아르누보 인테리어를 철거하고, 새로 하시려는 거예요?”
“맞습니다. 기존에 사무실 겸용으로 사용하던 창고를 없애고, 전용면적 20평을 온전히 아르누보 매장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아… 20평.”
너무나도 소박한 규모에 정보아는 마른 입술을 축였다.
‘아무리 대표님이 관심을 가지는 디자이너라지만, 겨우 20평 공사를 하시려고 할지.’
걱정이다. 이래서야 대표님께 보고나 할 수 있을까?
정 차장은 제 선에서 거절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그런데 순식간에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아 버린 디자인.
‘이게… 뭐야? 바닥 패턴도?’
분명 공간의 형태는 단순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디자인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그녀가 긴장해서 검토해야 할 정도로.
정갈한 아이보리 톤의 크리마 마필 대리석 바탕에 주황색 대리석으로 포인트를 준 꿈틀거리는 유선형의 라인.
대칭과 비대칭을 교묘히 활용해 정적이지 않고 생동감 넘치게 의도된 디자인이었다.
얼마 전 황두철 사장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 살다 살다 그런 녀석은 처음이라니까. 도면에 빈틈이 없어! 빈틈이.’
‘에이~ 과장이 너무 심하시다.’
‘과장이 아니래도. 아후~ 이걸 직접 봐야 하는데. 비밀 보장 각서 때문에 보여주지도 못하고. 답답해서 원~.’
황 사장이 그녀에게 털어놓은 예건에 대한 에피소드는 더 가관이었다.
졸업도 하기 전에 입사한 건. 뭐, 그럴 수 있지.
가구 가게를 차려서 히트 가구를 만들어 낸 것까지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간혹 학생 중에도 디자인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이 있으니까.
가족 중 한 명이 가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거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어른이 주변에 있다면 가구디자이너로 데뷔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건축 설계사무실 입사와 동시에 팀장 자리에 오르고, 프랑스의 고성을 복원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복원 건축사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총괄 디자이너가 됐다는 건.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스토리 아닌가.
그래서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 판단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그 꿈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정보아는 떨리는 손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와~!’
지금 그녀가 보고 있는 천장 확대 상세도.
천장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기하학적 디자인의 만개한 꽃이 한눈에 들어왔다.
꽃잎 한 장, 한 장을 구획하는 것은 유선형으로 다듬어진 원목 몰딩이었다.
중앙부에서 멀어질수록 사용되는 몰딩의 두께와 형태가 모두 달랐다.
천장의 중앙에는 꽃술을 닮은 화려한 샹들리에가 화룡점정으로 화려함을 더했다.
벽 끝에 이른 원목 몰딩의 선은 곡면을 타고 내려와 끊어짐 없이 나무 줄기와 만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대칭을 이루며 천장을 수놓았던 몰딩은 벽에서 조금씩 어긋나더니, 바닥의 비정형 패턴과 다시 만났다.
‘이건 마치!’
숲속 한 가운데 만들어진 아름다운 유럽식 파고라를 등나무 같은 줄기 식물이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감싼 것 같아!
정보아는 소리 없이 기함했다.
황 사장의 말처럼 도면 자체로도 빈틈이 없다.
아니, 그렇게 말하기에 부족함이 있다.
손으로 세심하게 그린 도면은 일반적인 인테리어 도면 수준을 아늑히 넘어서 예술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위대한 예술가이자 건축가이기도 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를 떠올리게 만드는 기하학적 정교함이 그녀의 심장을 두드렸다.
‘그런데… 이게 시공이 가능하긴 할까?’
지난 10여 년간 인테리어 분야에서 일해 온 경력을 기반으로 도면을 보고 현실적으로 구현이 가능할까 걱정한 것으로 따지자면, 단연코 이 도면이 1등을 차지할 거다.
“목공이… 쉽지 않겠는데요.”
“그럴 것 같아서 목재 몰딩과 마감판 제작은 저희 가구 회사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아…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이번 공사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목재 몰딩을 건축주가 직접 제공할 거라고 하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정보아 차장은 그 후로도 한동안 말없이 도면에 집중했다.
회의실에는 종이 넘기는 소리만 이어졌다.
도면을 끝까지 확인한 정보아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것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욕망이 불꽃처럼 이는 것을 억누르며 최대한 담백한 어조로 말했다.
“이 건의 진행 여부는 저 혼자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수공예가 사라진 지금.
자신이 그려낸 도면을 현실로 구현하기가 쉽지 않음은 예건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이 정도 퀄리티의 공간을 시공하는 건 아직 무리인 건가?’
예건은 모어 스페이스에 방문하기 전 발루아의 인테리어 복원 시공팀을 불러와야 하나 고민했었다.
아르누보 스타일은 서양의 건축 양식에 그 뿌리를 둔 디자인 양식이다.
그들이 훨씬 더 이해도가 높은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자신조차 한국 기업의 시공 능력을 믿지 못해 프랑스에서 전문가를 데려온다면, 전통 때문에 자신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설계에 참여하지 못한다 한들 누구 탓을 하겠는가?
예건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정보아 차장님께서 객관적으로 생각하시기에 한국 기업 중 이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업체가 몇 군데나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이군요.”
예건의 물음에 정 차장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빛내며 진중하게 대답했다.
“이 도면을 바탕으로 최상의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는 건 한국에 저희 회사밖에 없을 거라 자부합니다. 저희가 못한다고 판단하면, 그건 정말 힘든 거예요.”
조금의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대답.
“그렇군요.”
예건 또한 정 차장과 같은 생각이었다.
황두철 사장의 추천만 믿고 이곳에 가장 먼저 방문한 건 아니었으니.
그가 조사한 바로도 한국 내에 모어 스페이스의 인테리어 시공 능력을 따를 회사는 없었다.
“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러죠.”
뭔가 결심한 듯한 정보아 차장이 예건에게 실례를 구하고 급하게 회의실을 나섰다.
그녀가 회의실로 돌아올 때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였다.
여유롭던 6인용 회의실은 정보아 차장이 데려온 사람들로 순식간에 가득 찼다.
모어 스페이스 이성하 대표를 비롯해 시공, 설계, 견적, 자재 팀의 전문가들이 대표의 호출을 받고 모두 자리한 것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모어 스페이스 이성하 대표입니다.”
“반갑습니다. 한예건입니다.”
“잠시 도면 좀 검토하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도면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의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마치 TV쇼 진품명품에 전문 패널들이 나와 골동품을 감정하는 것 같다.
놀라움, 감탄 끝에 이어지는 우려의 빛이 역력한 얼굴들.
저마다 이 일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 일의 진행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이성하 대표일 것이다.
과연 모어 스페이스의 이름을 걸고 이 일을 완벽히 수행할 자신이 있는지.
이 일을 수행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득과 실이 있을지.
감당하는 것 또한 그의 몫이니까.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이 자리에서 그의 결심을 받아내야만 했다.
이 대표는 흥미로운 얼굴로 예건을 바라봤다.
“뜻밖이네요. 이런 디자인을 한국에서 만날 수 있다니. 정보아 차장의 보고를 듣고 예상은 했지만, 제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프로젝트군요.”
“어렵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도 있지 않겠습니까?”
진지하게 되받아치는 예건의 말에 이성하 대표는 허허 웃으며 답했다.
“어렵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 이곳이 유럽이었다면, 한예건 씨의 말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을 겁니다.”
포기할 생각인 건가?
예건이 미간을 찌푸리자, 이 대표는 입가에 남은 미소를 지우고 부연했다.
“한예건 씨, 내 말에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 현실적으로 당신이 생각하는 수준의 완벽한 결과물이 나오기는 힘들 겁니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완벽하게 끝난다고 하더라도 좋은 평가를 받기가 쉽지 않고요.”
“그건 여기가 한국이기 때문인가요?”
“아쉽지만, 그렇습니다. 만약 이 건축물이 유럽 도시 한 가운데 공개되었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겠죠.”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좋은 디자인은 어느 위치에 있어도 빛을 발하는 법이니까요.”
이성하 대표가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마치 어린아이를 타이르는 아버지처럼 부드럽게 말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겨우 20평짜리 인테리어 공사에 수십억을 쏟아부을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안 그런가요?”
수십억?
역시 돈이 문제였던 건가?
예건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그에게 답했다.
“필요하다면 백억이라도 투자할 생각입니다. 물론 그렇게 큰 비용이 들 이유는 없겠지만요.”
“네?”
이성하 대표가 놀란 눈으로 예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목재 장식물도, 내부 장식에 필요한 자재도 제가 모두 수급하겠습니다. 디테일이 어려워 문제라면 충분히 보완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럴 거면 직접 공사하는 게 낫지 않나?
이성하 대표가 궁금한 얼굴을 했다.
“이해합니다. 이상하시겠죠. 시간이 충분했다면 아마 제가 직접 시공관리까지 도맡아서 했을 겁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건, 저 대신 현장을 관리해줄 관리자입니다. 언제까지 저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으니까요.”
실무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자신을 대신해 꼼꼼하게 현장을 지켜봐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하나 가르치며 작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굳이 말로 내뱉지 않았다.
지금 예건에게 필요한 건 말 잘 듣는 조수가 아니라 파트너였으니까.
앞으로 자신이 하는 일은 아르누보 갤러리보다 규모도 크고 다양한 시공 기술이 필요할 터였다.
이왕이면 한국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업체와 손발을 맞추고 싶었다.
“완벽하게 만들 자신이 없었다면, 도면을 그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결과물 퀄리티가 부족할까 걱정하신다면, 그 또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대답을 머뭇거리는 이성하 대표를 대신해 나서는 이가 있었다.
“저, 대표님?”
이성하 대표의 오른편에 앉았던 임원이 이성하 대표에게 귓속말을 전하자, 이성하 대표가 살짝 놀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공사 기간은 3개월이면 되겠습니까?”
“공사 완공까지 총시간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충분합니다.”
“최대한 빨리 견적 검토하고 연락드리죠. 그때까지 이 도면은 저희가 보관하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정보아 차장의 배웅을 받으며 예건이 떠나고 자리에 남아 있던 임원들이 대표의 눈치를 보며 남주형 이사에게 물었다.
“남 이사님, 이거 진짜 하는 거 맞아요?”
“해야죠.”
“잘 검토해서 결정합시다. 그 한예건이란 사람,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던데.”
“맞아요. 공사 난이도가 말도 안 되게 너무 높아. 시공팀 직원 중에 나서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안 하려고 할 것 같은데….”
그 물음에 이성하 대표가 남주형 이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동시에 남 이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제가 하겠다고 지원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인체비례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