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98)
098화. 자유로운 평면 (3)
“…아뇨, 불가능한 건 아니죠.”
장현우 과장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의 대답을 흡족히 여긴 예건이 이어 말했다.
“좋습니다! 컨셉이 결정되었으니, 저는 기본 평면과 입면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두 분은 내일부터 기초도면을 전산화해 주세요. 이번 주 금요일에는 엘리우 초안 보고까지 마무리할 생각이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떠나고 예건은 엘리우 설계에 집중할 생각으로 의자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검은빛으로 물든 시야.
깊은숨과 함께 침잠하는 고요한 세계.
빠르게 뛰던 심장 박동도 그의 의지에 따라 소리를 낮췄다.
한강 중앙에서 대지를 바라보았다.
야트막한 언덕을 빼곡히 채운 장난감같이 앙증맞은 건축물들.
거리를 좁혀 조금 더 가까이 들어가니, 대지가 시야에 꽉 들어찼다.
정면이 아닌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바꾸었다.
대지의 형태와 높낮이에 따라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건축물 매스를 다양한 각도로 배치하고, 2개 층마다 각기 세대에서 연장되는 테라스를 넓게 펼쳐 굴곡진 지층처럼 켜켜이 쌓아 올렸다.
대지의 경사를 이용한 테라스, 그 사이를 오가는 계단과 경사로, 외로이 고립된 비밀 정원, 하늘로 뚫려 있는 중정.
모두 전생의 그의 건축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의 구성 요소였지만, 이번에 만드는 형상은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전생의 건축이 빈틈없이 채움으로써 건축 철학을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덜어냄으로써 상대에게 공감을 얻어볼 생각이다.
그렇다고 자연을 닮은 자유곡선마저 버리려는 것은 아니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라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다.
예건에게 건축을 만드는 행위는 스스로 완벽함에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한 의식이었다.
눈을 현혹하는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지우고, 유연한 형태만 가져왔다.
장식이 없다고 날 듯이 가벼워서는 안 된다.
명품이 명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아무나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디테일에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말하지 않았던가?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무엇보다 형식적 아름다움보다 공간 자체가 주는 심미적 감수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머릿속에서 완벽한 디자인을 완성한 예건은 가우디의 시그니처가 음각된 황금 샤프를 들었다.
예건의 손이 멈추었을 때.
그곳에는 고요한 물결이 완성되어 있었다.
* * *
최강건설 대표실.
최강수 사장과 성삼호 부장은 예건의 한남 엘리우 디자인 설명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남 엘리우의 구조를 기둥식 구조로 선택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성삼호 부장이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허탈한 얼굴을 했다.
“그러고 보니, 주택을 기둥식 구조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것 같네요.”
“그게 다 비용 때문이죠. 한남 엘리우는 고급형 주택으로 홍보할 테니, 층고가 높다는 것은 오히려 큰 장점으로 느껴질 겁니다.”
최강수 사장은 디자인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큰 목소리로 한예건의 말에 동조했다.
“하하하! 정말 그렇겠군. 이건 알면서도 아파트에서 할 수 없는 디자인이 아닌가!”
“그런데 기둥식 구조가 친환경 건축이라는 말은 너무 과장된 말 아닐까요?”
성삼호 부장이 최강수 사장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뇨.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노후 아파트가 쉽게 슬럼화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뭐, 설비나 시설의 낙후가 원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쉽게 고칠 수 없는 평면도 그에 못지않은 원인이 됩니다.”
“흠….”
성삼호 부장이 잘 모르겠다는 듯 침묵하자, 예건이 부연했다.
“저는 사람들이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려는 이유가 가족 구성원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지 않는 평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벽식구조 아파트는 벽의 철거가 불가능하므로 방을 늘리거나 줄일 수가 없지요. 확장하고 싶어도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요. 하지만 기둥식 구조는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실의 형태와 배치, 규모를 바꿀 수 있습니다. 내구성과 수리 용이성도 벽식구조보다 우수하죠.”
“오~. 듣고 보니 그렇네요.”
성 부장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고, 예건은 이를 놓치지 않고 친환경 건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평균 교체 수명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글쎄, 50년 정도는 되지 않을까?”
예건이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30년을 넘지 못합니다.”
“저런! 그것밖에 안 되나?”
예건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강력하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 한남 엘리우는 100년 넘게 유지할 수 있는 구조로 지어질 겁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친환경 건축물이라 말할 수 있죠.”
“오호라! 맞는 말이야. 건축물 철거로 인한 폐기물을 줄이고 신축을 위한 이산화탄소 발생을 막을 수 있지.”
“그렇습니다! 게다가 사시사철 한강의 변화를 즐길 수 있으니, 서울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조망을 품고 있는 친환경 건축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오호! 사치스러운 조망이라…. 정말 딱 맞는 표현이야! 내가 처음 이 땅을 봤을 때, 이런 곳에서 산다면 재벌도 부럽지 않겠다 싶었거든.”
역시!
진정한 수완가는 돈이 되는 가치를 알아보는 법이다.
최강수 사장이 흥미로운 얼굴로 예건을 떠보듯 물었다.
“하지만 평면을 모두 다르게 구성하는 건 좀 무리지 않을까?”
이미 예상한 질문이었다.
당연히 그 해결 방법도 이미 준비해 왔고.
“제가 거래하고 있는 회사 중에 모어 스페이스라는 인테리어 회사가 있는데, 혹시 아십니까?”
“오호! 알다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인테리어 기업이 아닌가? 호텔 공사를 많이 한다고 하던데.”
“알고 계시다니 다행이네요. 이곳에 오기 전에 모어 스페이스 마케팅 부서에 의견을 물어봤습니다. 혹시 이 사업에 협력할 의사가 있는지 말이죠.”
예건의 대답에 최강수 사장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몸을 숙이며 물었다.
“음? 협력? 어떻게 말인가?”
예건은 정보아 차장에게 상의하며 나눴던 의견을 전달했다.
엘리우의 인테리어 설계 및 공사를 모어 스페이스에서 맡는 대신, 남은 85평형 12세대의 분양 유치를 고객사에 적극 홍보해 주는 것으로.
이성하 대표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 건설사 출신이라는 것을 조사해 알고 있기에 제안한 것이었지만.
정작 정보아 차장은 다른 소리를 했다.
‘설마, 우리 회사 디자인팀 직원 중에 유명 기업 대표 친인척이 있는 거 알고 제안하시는 건 아니죠? 뭐, 꼭 그런 거 아니더라도 한강 변에 이런 디자인의 공동주택이라면 가격은 물어보지도 않고 손들 사람들 많을 것 같긴 하네요.’
생각지도 못한 정보였으나,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국내 1위 인테리어 기업에서 근무했다는 경력은 재력과 함께 좋은 바탕이 되어줄 것이니까.
그래도 혹시 몰라 조은은행 강남 지점장에게도 한남 엘리우 사업에 대해 운을 띄워 보았다.
그는 이 사업이 돈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디자인과 분양가가 확정되면 꼭 자신에게 알려 달라며 당부를 잊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최 대표가 예건의 제안에 동의했다.
“흠. 확실히 불특정 다수를 공략하는 것보다, 그편이 빠를 것 같긴 하군. 건축과 인테리어를 별도로 진행하면 우리 쪽 수익도 확실해질 거고.”
“무엇보다 고객이 좋아할 겁니다. 기존 인테리어를 뜯고 다시 할 공사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니까요. 건설사에서 분담해야 하는 A/S에 대한 리스크도 훨씬 줄어들고요.”
예상하기 힘든 부실 공사는 건설사에 있어 굉장한 부담이다.
그 범위를 줄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일 터.
“맞는 말이야. 성 부장! 내장공사 범위 빼고, 우리 쪽 수익만 검토해서 분양가 책정해 봐.”
“네!”
이후 회의는 원활하게 흘러갔다.
외관디자인 및 조경디자인 방향까지 빠짐없이 준비해 갔기에 회의는 막힘이 없었다.
“다음 보고 때는 외관 투시도와 최 대표님 사택 인테리어디자인도 준비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이 속도라면 올해 안에 착공도 가능하겠군.”
“가능할 겁니다.”
“좋아! 수고했네.”
“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최강건설을 나오며 장 과장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인테리어가 별도 공사로 넘어가서 정말 다행입니다.”
“하하하. 건축도면이 많이 줄었죠?”
장 과장이 얼굴을 붉히며 겸연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아하하. 도면 그리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너무 실험적인 방식이잖아요. 공사비에서 인테리어가 빠지면 회사 수익이 줄어들 테니, 거절하시면 어쩌나 조마조마했거든요.”
“수익을 줄여요? 아마 안 그럴걸요.”
“네? 수익을 안 줄인다고요?”
예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어 스페이스가 인테리어 시공을 맡게 되면, 분양가가 더 오르면 올랐지 줄어들지는 않을 겁니다. 1.3배 정도 오르려나?”
“아니, 왜요?”
“인테리어 수준이 오르는 만큼 집의 가치가 더 오를 거라 판단할 테니까요. 게다가 인테리어 회사에서 직접 분양에 힘쓰겠다고 나설 정도니, 사업성은 충분하다는 거죠.”
“어휴~. 사업가들의 마인드는 이해가 잘 안되네요.”
“저는 튼튼하게만 지어 주면 좋겠어요. 평생 저기서 살아야 하는데, 하자투성이면 곤란하잖아요.”
장 과장의 얼굴이 의문형이 되었다.
“평생 산다고요?”
저런, 너무 들떠서 과하게 말이 많았다.
나중에 알려지면 귀찮아질 게 뻔하니, 그냥 사실을 말하는 수밖에.
“아하하하. 제가 말 안 했던가요? 오른쪽 단독주택은 제 건데.”
그 말을 들은 장현우가 우뚝 섰다.
오른쪽 2층짜리 단독주택은 100평짜리 건물인데?
“네에? 처음 듣는데요! 아니, 한 팀장, 그렇게 부자였어요?”
“어…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갑자기 어색해진 분위기에 예건은 걸음을 재촉해 냉큼 차에 올랐다.
“과장님, 얼른 타세요! 회식 가야죠.”
* * *
“우와~ 이런 데를 다 와보네!”
“오늘 회식 장소, 정말 여기 맞아요?”
김상욱 대리와 윤민수 주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경록 차장에게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지금 그들이 있는 이곳은 돈깨나 있다는 집안의 맞선 명소로 유명한, 최고급 식자재만 취급한다는 한식당이었다.
“아하, 참 몇 번을 물어. 맞다니까. 그런데 오 대리랑 김 대리는 여기 왜 온 거야?”
기다란 테이블 한쪽은 기획팀 팀원들이, 다른 한쪽은 출판팀에서 온 두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
“흐흐흐. 자자~ 이거 하나씩 받으십시오.”
오경환 대리는 반죽 좋게 웃으며 책을 나눠줬다.
“와! 이거 발루아 복원 공사 과정 실은 책이네요.”
“네! 드디어 나왔습니다.”
“이야~ 한 팀장 이름으로 출판했네. 그럼 오늘, 이 자리는 출판 턱인가?”
“네! 맞습니다. 한 팀장 덕분에 책이 무지무지 잘 팔리고 있어요.”
오경환 대리는 기분이 좋은 듯 연신 웃으며 말했다.
“도대체 책이 얼마나 잘 팔리길래, 이런 곳에서 회사 회식을 해?”
“아~ 그게, 오늘 회식비는 회사에서 내는 게 아니라.”
오경환 대리가 자꾸 빙빙 돌려 말하자, 김연희가 답답한 듯 가슴을 치며 말했다.
“아후~ 답답해. 대리님! 그냥 시원하게 말해요. 어차피 한 팀장 와도 자기 자랑 한마디도 안 할 것 같은데.”
“헤헤. 그렇겠지?”
오 대리는 오늘 이 자리를 갖게 된 내막을 팀원들에게 설명했다.
출판은 구실이고, 실은 한 팀장이 발루아 특별 경매에서 벌어들인 엄청난 소득 덕분이라고.
“마, 말도 안 돼! 특별 경매에 판매된 것만 2,500만 달러? 그게 한국 돈으로 도대체 얼마야?”
“이야~ 어쩐지 스타일부터 다르더라니. 진짜 알부자는 소문도 안 나는구나.”
기획팀 팀원들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며 김 대리가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저희도 감쪽같이 몰랐다니까요. 아마 발루아 회식 때 참석 안 했으면, 아무도 몰랐을걸요. 나중에 신문 기사에 올라온 금액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렇죠? 대리님?”
“응응. 진짜….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야말로 꿈같은 스토리 아니에요? 벼락부자는 영화에서나 나오는 허황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때, 드르륵 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