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102)
그의 아래에서 아리엘이 뛸 듯이 즐거운 표정으로 외쳤다.
“봤죠, 루시안? 봤죠?”
그가 픽 웃었다.
“그래. 이제 진짜 고목 나무에 매미로군.”
루시안이 놀려도 아리엘은 마냥 즐거웠다.
그녀는 상쾌한 나무 그늘 아래에 다시 피크닉 테이블과 의자를 불러왔다.
“배고파 죽을 것 같아요.”
나무 하나를 키우느라 마나를 잔뜩 사용했더니 허기가 밀려왔다.
정작 검기로 나무 몇십 개를 잘라낸 루시안은 조금도 힘든 기색이 없었지만.
아리엘은 피크닉 바구니에서 음식을 꺼냈다.
큼지막한 닭고기 샌드위치와 체리파이 중 뭐부터 공략할까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생크림의 유혹에 굴복해서 체리파이를 선택했다.
“루시안도 얼른 먹어요.”
그가 어깨를 으쓱이더니 샌드위치를 끌어당겨 가져갔다.
얌. 아리엘은 생크림이 소복히 얹힌 파이를 포크로 떠 먹었다.
체리 과육이 입안에서 톡 터지며 상큼하고 진한 달콤함을 선사했다.
루시안은 성의없게 샌드위치를 잘라 입에 넣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체리파이를 먹는 아리엘을 구경했다.
아리엘은 오로지 먹을 것에만 몰두해서 은포크를 부지런히 놀렸다.
체리를 오물거리던 아리엘이 루시안의 시선을 알아챈 건 한참이 지난 후였다.
루시안이 왠지 느슨히 풀어진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리엘은 당황해서 그를 마주보았다.
“왜요……?”
“뭐가.”
“뭐 묻었어요? 나 또 크림 묻혔어요?”
아리엘은 황급히 입 주변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얼마나 열심히 먹었는지 크림은 커녕 부스러기도 묻어있지 않았다.
루시안이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넌 네가 크림을 묻혀야만 내가 먹어치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게 아니…….”
잠깐. 방금 뭐라고?
뭘 먹어치워요? 나를?
아리엘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자신이 들은 말을 되새겼다.
‘노,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
아무리 피와 광기의 역사로 가득한 라카트옐 가라고 할지라도 사람을 먹어치웠단 얘기는 못 들어봤다.
‘근데 나만 못들은 걸 수도 있고, 대공가가 숨긴 걸수도 있잖아.’
아리엘의 조그만 얼굴은 금세 심각해졌다.
역시 자꾸 잘 먹고 빨리 크라고 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생각을 이어가던 그녀의 눈앞에 루시안이 손으로 딱 소리를 내 주의를 끌었다.
“딴생각.”
“보였어요?”
“너무 티 나는 거 아닌가?”
그래. 내가 무슨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아리엘은 스스로의 상상력을 꾸짖으며 다시 음식으로 눈을 돌렸다.
밤조림 병을 열자 메이플 시럽이 덧입혀져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밤 조각들이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
아리엘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밤조림을 스푼으로 떠냈다.
밤조림은 요즘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입 안에 넣으면 밤이 쫀득하게 부서지며 안쪽까지 밴 은은한 시럽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맛있게 밤조림을 먹자 구경만 하던 루시안이 슥 손을 뻗었다.
다가온 그의 손이 밤조림 하나를 집어갔다.
그의 붉은 입술이 밤조림을 물고, 시럽이 묻은 손가락을 핥았다.
아리엘은 먹던 것도 잊고 홀린 것처럼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와. 루시안은 먹을 때도 예쁘구나…….
그때 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달아.”
“맛있죠?”
아리엘은 기대감을 가지고 물었다.
루시안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설탕덩어리를 어떻게 먹는 거야?”
설탕 덩어리라니!
이건 밤조림에 대한 모욕이었다.
밤조림의 단맛은 대부분 밤 본연의 맛이고, 설탕이 아니라 메이플 시럽이라구요.
루시안이 밤조림 병을 아리엘 앞으로 휙 밀었다.
“네가 다 먹어.”
아리엘은 시무룩하게 밤조림 병을 끌어안았다.
단 걸 싫어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것도 싫어할 줄이야.
그녀는 슬퍼하며 밤조림을 몽땅 먹어치웠다.
서러워하며 밤조림을 해치우는 그녀를 루시안이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았다.
꼬물꼬물 간식을 거의 다 먹은 아리엘은 포만감에 하품을 한 번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때 그녀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루시안, 저것 좀 봐요!”
아리엘이 가리킨 곳은 블랙 가든 안에 있는 연못이었다.
두 사람이 앉아있는 곳과 연못은 꽤 떨어져 있었지만 아리엘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갈기까지 새까만 검은 말 한 마리가 연못에서 한가롭게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아리엘은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구경했다.
검은 말은 키가 크고 힘이 세 보였다.
험악하게 생긴 것 같지만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아름다운 갈기를 보면 절로 감탄이 나왔다.
“말이 너무 멋있어요.”
루시안이 미간을 무섭게 찌푸렸다.
“저게 멋있다고?”
기분이 상한 듯한 그의 반응에 의아해진 아리엘이 물었다.
“마티어스 님이 타는 말이에요?”
“내 말인데.”
“루시안 거구나…….”
아니 근데 왜 자기 말이 멋있다는 게 싫은거지?
아리엘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 이름이 뭐예요?”
루시안이 긴 속눈썹을 위압적으로 내리깔았다.
“그딴게 어딨어? 그냥 말이지.”
“세상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잖아요.”
……루시안을 주인으로 만난 가엾은 말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름 지어주고 싶다.’
그래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리엘은 일단 고민해 보았다.
루시안의 아름다운 말은 온몸이 다 까맸다.
갈기와 몸, 발굽과 눈동자까지 모두.
가장 순수한 검정…….
“반카 어때요?”
“반카?”
반카 블랙은 모든 빛을 다 수렴해 먹어치우는,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색이라고 들었다.
반카는 라카트옐이 수호하는 북부 산맥에서만 채취되는 희귀한 광물의 이름이었다.
아리엘은 루시안이 혹여나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조심스레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루시안은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이제 나에 대한 것도 바꾸기 시작하는 건가.”
“네?”
그가 오만한 어조로 대답했다.
“허락하지. 네 마음대로 해.”
“정말요?”
“이제 저것의 이름은 반카야.”
아리엘은 활짝 웃었다.
루시안의 말 이름을 그녀가 직접 지어주다니.
왠지 특권을 얻은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반카를 타면 기분이 어때요? 전 말을 한 번도 못 타봤거든요.”
그녀의 말을 들은 루시안이 흥미롭다는 기색을 띄웠다.
“태워줄까?”
“네!”
아리엘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외쳤다.
낮게 웃은 루시안이 턱을 비스듬히 치켜들었다.
“잘 봐.”
그가 휙 날카롭게 휘파람을 불었다.
물가에서 느긋하게 물을 마시던 말의 귀가 쫑긋 일어섰다.
루시안이 한 번 더 휘파람을 불자 주인을 발견한 말이 루시안 쪽으로 경쾌하게 걸어왔다.
다가온 말의 콧잔등을 루시안이 짧게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