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144)
그중에는 황실 소속의 마법사들도 있었다.
황실 마법사들은 아리엘의 실력에 깜짝 놀랐다.
원소 마법사는 거의 보기 힘든데다, 고위 클래스 마법인 에켈레네 주문까지 쓸 수 있는 마법사는 더욱 드물기 때문이었다.
이 일이 귀족계에 불어온 바람은 만만치 않았다.
지금까지 제국의 귀족 영애들은 마법 재능을 타고 나도 몰래 숨기며 살았다.
‘마법사 자체가 천대받는 건 아니었지만, 여자아이가 마법을 쓰는 건 좋지 않은 취급을 받았지.’
귀족 영애들의 삶이란 얌전하고 조신하게 집안일이나 배우다가 시집가는 것이 전부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귀족 남자들이 마법사 아내를 꺼려했기에 마법 재능은 시집가는 데에 걸림돌이 됐다.
그런데, 다른 가문도 아니고 라카트옐 가의 어린 대공자비가 마법사였던 것이다!
라카트옐 대공가는 제국의 모든 귀족들에게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공가를 우러러보았다.
그래서 어린 소녀인 아리엘이 마법사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귀족들은 감히 그걸 두고 나쁘게 말하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로 마법을 쓰는 여자아이들에 대한 귀족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덮어놓고 쉬쉬했다면, 이제는 딸이 마법사임을 숨기지 않으려는 귀족도 생겨나고 있었다.
‘귀족들 사이에서 마법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했지.’
아리엘이 마법사임이 밝혀지자, 예전 ‘안주인 맞이’ 티 파티에 왔던 영애들 중 하나가 이야기를 흘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대공가에 갔을 때 아주 아름다운 마법등(lamp)을 본 적이 있어요!’
‘어머, 그럼 그건 대공자비님이 만드신 건가?’
‘세상에, 로맨틱해라. 제 로망이 그런 마법등을 머리맡에 놓고 자는 거랍니다.’
수도에 있는 마도구 상점에는 마법등에 대한 문의가 빗발쳤다.
하지만 마탑의 마법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점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리엘의 마음은 꽤나 복잡해졌다.
‘마법등은 내가 아니라 히스가 만든 건데…….’
히스가 실력을 인정받고, 칭찬받는 건 기쁘지만 그 공을 자신이 대신 받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이 일에 대해서 다이아나랑 상의해봐야겠어.’
귀족 사회에 능통한 다이아나라면 분명 해답을 알 것이다.
생각에 빠져 걷던 아리엘은 관상수 사이에서 익숙한 형체를 발견하고 빙긋 웃었다.
“히스.”
정원사 우즈가 잘 다듬어 놓은 관상수 뒤에서, 갈색 머리에 금안을 가진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히스가 툴툴대며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길래 주위도 안 보고 걸어? 다칠 수도 있잖아.”
아리엘과 히스는 함께 정원 뜰을 거닐기 시작했다.
한참 다른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히스가 불쑥 물었다.
“근데 대체 파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응?”
“뭔 일이 있었길래 대공자…… 가 시에나 왕국을 날려버린 거냐고.”
“아, 그게…….”
아리엘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 당시 상황을 이야기했다.
클라리스 공주가 루시안에게 반했던 것, 무도회 마지막 날에 칼을 들고 위협했던 것, 아리엘이 마법을 써서 벗어난 것까지.
그때 돌연 히스가 발걸음을 멈췄다.
“워터 바운드를 했는데도 칼을 든 손만은 움직이는거야. 그래서…… 어, 히스?”
이야기를 이어가려던 아리엘은 어리둥절해졌다.
제자리에 멈춰 선 히스가 홱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금빛 눈동자엔 분노가 가득 담겨있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뭘 하고 있었어? 황궁에는 마법사도 있고, 근위병들도 많잖아.”
“그야…….”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여자애 하나를 못 보호할 수가 있냐고!”
갑자기 흥분한 듯 보이는 히스 때문에 아리엘은 놀란 눈만 깜박거렸다.
“왜 그렇게 화를 내?”
씩씩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히스가 울컥한 듯 대꾸했다.
“몰라서 물어?”
“당연하지.”
“잘못하면 네가 다쳤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거기 내가 있었다면……!”
숨 막힐 듯이 말을 쏟아낸 히스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 그녀를 향해 서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더니 이내 휙 돌아서서 도망가버렸다.
아리엘은 타이밍을 놓쳐 그를 붙잡지 못했다.
“히스……?”
그녀는 히스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멍하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방금 뭐였지?
요즘 들어 그가 감정 기복이 심하긴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다른 것 같았다.
* * *
며칠이 지난 뒤 카디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최대한 빠르게 카디나와 만난 아리엘은 그녀에게서 상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며칠 전 아리엘의 의뢰를 받은 카디나는 반신반의하며 아픈 남동생을 은밀하게 다른 곳으로 옮겼다.
처음 고른 비밀 가옥이 정말 좋은 은신처였기 때문에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카디나는 원래의 비밀 가옥 옆에 정보원들을 심어두고 기다렸다.
며칠이 지나도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통에 안심하던 차, 일이 벌어졌다.
원래의 비밀 가옥이 정체 모를 괴한들에게 습격을 받은 것이다.
정확히 카디나의 남동생을 노렸던 듯, 괴한들은 안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빠르게 후퇴해서 사라졌다.
소식을 들은 카디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이었다니…….’
솔직히 반쯤은 아리엘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미래를 보고 오기라도 한 듯 아리엘의 경고가 맞아떨어지자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아리엘을 앞에 둔 카디나의 눈에 존경심이 떠올랐다.
“역시…… 라카트옐 가의 힘입니까?”
“그건 아니야. 미안하지만 정보의 출처는 말해줄 수 없어.”
“으윽, 궁금해 죽을 지경이지만 일단은 참죠.”
“그럼 내 의뢰를 들어주는 거지?”
카디나가 호쾌한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자비님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눈 위에 흉터가 있는 놈이 오면 억만금을 준다 해도 핵심 정보는 숨기겠습니다.”
자기만 믿으라는 듯 카디나가 가슴께를 툭툭 쳤다.
아리엘은 살짝 미소짓고 말했다.
“혹시 무력이 필요한 일이 생길지도 몰라. 준비해 둬.”
“예, 그러죠.”
카디나는 무력에 대해선 이미 훌륭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아딘 가문 출신들은 언제 어디서든 살아남는 일에 특출났다.
형제자매들 중 암살자 집단도 있으니 무력은 걱정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아리엘은 양손을 깍지 끼어 잡았다.
부서질 것 같은 얇고 흰 손가락들이 겹쳐졌다.
“신중하게 움직여야 해. 절대 꼬리가 밟혀선 안 되는 일이니까.”
카디나는 아리엘이 맡긴 의뢰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냥 무조건 명령에 따르기로 했다.
‘아리엘님이 하시는 일이니 뭔가 이유가 있겠지.’
아리엘 덕에 남동생과 자신의 목숨을 살린 카디나는 그녀를 믿기로 마음먹었다.
카디나의 표정이 결연하게 바뀌었다.
“좋습니다. 이번에도 최선을 다해보죠.”
* * *
카디나와의 일을 처리하고 온 아리엘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진짜로…… 그대로 이루어졌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측한 것이었지만, 그대로 일이 벌어지니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끔찍한 과거에서 돌아온 아리엘은 루시안과 만나며 삶을 바꾸었다.
과거 그녀는 지금의 나이인 열네 살까지 후작가 다락방에서 학대를 당하며 가족들에게 착취당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버지에게 맞아서 불구가 되지도 않았고, 자신을 해치면서 마법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열일곱 살에도 열두 살짜리로 보이던 미성숙한 몸은 차근차근 소녀다운 성장 단계를 밟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옆에 있었다.
‘내 삶은 바뀌었지만, 다른 건 안 바뀌었어.’
카디나의 비밀 가옥이 과거와 똑같이 습격받은 걸 보니 변한 것은 자신뿐인 듯했다.
아리엘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녀를 심란하게 하는 것은 과거에 자신이 라카트옐 가로 침입했던 그 사건이었다.
악당인 ‘그’는 아리엘에게 라카트옐 가의 사람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했었다.
‘그건 누구의 의도였을까?’
마법사 무리는 기본적으로 ‘그’의 의지대로 움직였지만 때때로 범죄 청부를 받았다. 무리를 이끄는 데에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때 자신을 라카트옐로 침임시킨 사람이 ‘그’가 아니라면, 청부를 맡긴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라카트옐을 미워하는 사람.
라카트옐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
그리고 지금의 아리엘은 그게 누구였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리엘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루시안에게는 적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데.’
그가 강한 건 분명하지만, 그를 해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생기는 건 싫었다.
만약 그런 순간이 오면 아리엘은 그의 마법사로서 온 힘을 다해 그를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