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151)
속이 답답한데 이유는 모르겠고.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조금 알 것 같았다.
‘아, 이제 알겠다.’
히스는 깨달았다.
내가 이 소녀를 좋아하나 보다.
아리엘과 루시안의 춤은 알렌이 음악을 멈추게 할 때까지 오래오래 이어졌다.
그리고 아리엘을 향한 히스의 눈빛을 본 다이아나는 부채 끝으로 턱을 쓸었다.
“흐응…… 이거 봐라?”
* * *
루시안이 아카데미로 돌아간 뒤 며칠 후, 아리엘과 히스는 온 초대장들 중 하나를 골라서 사교 파티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 파티를 추천한 다이아나의 말로는 그곳에 굵직한 인사들이 많이 올 거라고 했다.
아리엘이 사업 비용을 다 대고 있어서 투자금은 필요 없었지만, 여러 귀족들과 미리 안면을 트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은 수도에서만 사업을 하고 있으니.’
아리엘과 히스의 마도구 사업은 수도에서만 이뤄지고 있었다.
사업을 제국 전체로 퍼트리려면 지방 영지를 가진 귀족들의 협조가 필요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아쉬운 쪽은 귀족들 쪽이니까.
요즘 제국은 수도에서 유행하는 마도구 때문에 떠들썩했다.
마도구 하나 사겠다고 지방에서 여행을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인기가 이 정도니, 지방 귀족들은 빨리 자기 영지가 있는 곳에도 마도구 가게가 생겼으면 했다.
아리엘과 히스는 오늘의 인기를 독차지할 손님이었다.
아리엘과 히스가 파티장에 들어서자, 그들을 초대한 네이선 백작이 격렬하게 환영했다.
“오! 어서오십시오, 대공자비님. 와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안녕하세요, 백작님. 이쪽은 마도구 사업을 함께하는 마법사 히스클리프예요.”
귀족들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히스는 무뚝뚝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네이선 백작님.”
“아니 이렇게 젊은 마법사였다니. 하하하! 반갑네.”
아직 서툴지만 히스는 아리엘을 제법 잘 에스코트했다.
의젓한 히스의 모습을 보며 아리엘은 빙긋 웃었다.
‘마냥 어린애인 줄 알았는데, 기특하네, 히스.’
자신보다 한 살 많다고 히스가 어른인 척 으스댈 때면 아리엘은 늘 속으로 재미있어했었다.
그녀는 과거에 열일곱 살까지 산 경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오늘, 처음 오는 파티에서 대담하게 행동하는 히스의 모습은 흐뭇하기만 했다.
파티장 안에서 히스는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는 짧고 불퉁한 말투를 썼지만 매너를 어기진 않았다.
열심히 교육시킨 집사 알렌의 수고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역시, 천재라서 그런지 말투가 특별하네요.”
히스가 대마법사의 손자라는 것을 들은 귀족들은 그의 퉁명스러운 말투까지도 매력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천재를 알아보시고 투자하신 대공자비님의 안목도 대단해요!”
여자 귀족들은 아리엘 옆으로 몰려들어서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열광적인 반응이었다.
열심히 연습한 춤을 춰 볼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한바탕 복잡한 가운데 있는데, 무리에 있던 여자 중 한 명이 아리엘을 향해 은밀한 눈짓을 보냈다.
“……?”
아리엘은 가만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평범한 차림의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아리엘에게 귓속말을 했다.
“붉은 그림자 베일을 찾으셨었죠?”
아! 아리엘은 놀란 티를 내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그림자 베일은 아리엘이 정보 길드 나잇 워커의 아지트에 들어갈 때 썼던 암호였다.
‘이 사람, 나잇 워커의 정보원이구나.’
여자가 소매에서 작은 종이쪽지를 꺼내서 아리엘의 손에 쥐여주었다.
빠르고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리고 여자는 옆 사람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더니 언제 거기 있었느냐는 듯 사라져버렸다.
쪽지를 읽기 위해 아리엘은 파우더룸에 다녀오겠다고 히스에게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비밀스러운 곳까지 와서 쪽지를 펴자 안에 쓰여진 글귀가 보였다.
카디나의 글씨였다.
[눈 위에 흉터 있는 사내가 찾아왔었습니다.말씀대로 의뢰는 받았습니다. 그가 원하는 정보는…….]
아리엘은 침을 꼴깍 삼켰다.
눈에 흉터가 있는 사내는 과거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였다.
마법사 무리에서도 행동 대장 격이어서 이런 일을 도맡아 하곤 했었다.
그런 그가 맡긴 정보라면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자신이 과거에 조종당하며 했던 행동들의 의미를.
아리엘은 자신이 어떤 일에 이용당한 건지 알고 싶었다.
[그가 원하는 정보는 ‘루실리온 후작가’에 대한 겁니다.핵심 정보인 아리엘님에 대한 정보는 빼고 전달했습니다.]
쪽지를 다 읽은 뒤 아리엘은 불 원소를 이용해 쪽지를 태워 없앴다.
머릿속에 의문이 떠돌았다.
‘마법사 무리가 후작가 정보를 원했다고? 어째서지?’
루실리온 후작가는 아리엘의 친정이었다.
그것 외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이 없었다.
‘역시…… 그때처럼 나를 손에 넣으려고?’
아리엘은 다 타버린 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지금의 난 이미 대공가 사람이야.’
과거의 아리엘은 후작에게 딸 취급을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후작은 돈만 준다면 신분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녀를 팔아넘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가 아리엘을 사겠다고 했을 때 흔쾌히 승낙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리엘은 무려 라카트옐 가의 안주인이었다.
과거처럼 노예로 부릴 수도 없을뿐더러, 마법사라는 이유만으로 자기편에 끌어들이기엔 위험부담이 큰 존재였다.
‘당연히 내가 그들과 손잡을 이유도 없고.’
마법사 무리가 후작가 정보를 요청한 이유는 묘연하기만 했다.
그나마 카디나가 자신에 대한 정보를 빼고 넘긴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운 것 같아, 아리엘은 다시 파티장으로 돌아갔다.
히스는 여전히 파티장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어떤 귀족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아리엘은 종종걸음을 치며 히스에게 다가갔다.
다시 시끌벅적한 파티가 시작되었다.
* * *
같은 시각.
쾅!
루실리온 후작가의 응접실의 탁자에 술잔이 거세게 내리쳐졌다.
술에 취한 채 소파에 기댄 후작이 성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 계집애를 그렇게 치우는 게 아니었어…….”
그는 후회가 돼 미칠 것 같았다.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서 후작은 짙은 갈색의 음료를 유리잔에 콸콸 쏟아부은 뒤 쭉 들이켰다.
“그것만 집에 놔뒀어도 내가 부자가 되었을 텐데……!”
사교계에서 아리엘에 대한 소문이 들릴 때마다 후작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술을 퍼마셨다.
처음 그 비루먹은 계집애를 대공자비랍시고 팔아치웠을 때는 흡족했었다.
“잘해야 어디 지방의 늙고 돈푼 좀 있는 놈에게 팔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후작의 생각에, 출신도 모르는 천한 아리엘에겐 그마저도 분수에 넘치는 자리였다.
아리엘의 모친인 블랑쉐 후작 부인은 이름 없는 준귀족의 양딸이었다.
게다가 아리엘의 아비는 누구인지도 모를 천것일 게 분명했다.
그런데 대공가가 그런 벌레 먹은 과일 같은 것을 마음에 들어할 줄이야.
뜻밖의 월척이라 기분이 들뜬 게 잘못이었다.
“사파이어 광산에 눈이 멀어 성급히 넘겨줘 버린 것이 실수였어.”
사치와 도박으로 몇 년 만에 광산을 날리고 나니 다시금 아리엘이 아쉬워졌다.
특히 요즘들어 아리엘이 마법 재능으로 유명해지자 더욱 후회가 됐다.
자신이 악마의 재능이라고 미워하긴 했지만, 그걸로 저렇게 돈을 벌 수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노다지를 놓쳤어, 내가…….”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주먹으로 테이블을 짓눌렀다.
처음에 형편이 어려워졌을 땐 아리엘에게 곧장 편지를 썼다.
‘자기도 키워준 은혜를 안다면 애비가 도와달라는데 거절하진 못하겠지.’
친딸도 아닌 걸 자신이 얼마나 살뜰히 보살피고 돌봐줬던가.
10년씩이나 등 따시고 배부르게, 아가씨 소리 듣게 하며 길러줬다.
자기 방도 주고, 좋은 집에 시집도 보내주지 않았나.
‘대공과 대공자가 그것에게 준 것들만 해도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그 중 몇 개쯤 빼돌려 아비를 돕는 건 당연한 도리가 아닌가.
그런데 아리엘에게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내가 저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감히……!”
후작은 자신이 아리엘을 학대했던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10년간 아리엘을 끔찍한 다락방에 가두고, 굶기며 눈에 보일 때마다 아이가 기절할 정도로 폭력을 휘둘렀던 건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져 있었다.
“아버지, 진정해요. 손님도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