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161)
소녀는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아리엘의 손을 덥석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다이아나가 우아하게 부채를 뻗어 가볍게 분홍 머리 소녀의 행동을 저지했다.
“영애. 사교계에서는 서로 소개가 끝나고, 인사를 마친 뒤에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랍니다.”
다이아나는 은근히 아리엘을 보호하듯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리고, 말도 없이 갑자기 대공자비님 몸에 손을 대려 하다니, 예의가 아니에요.”
다이아나의 나직한 지적에 분홍 머리 소녀의 눈동자가 서러운 듯 금방 촉촉해졌다.
“어, 어머…… 전 몰랐어요. 저는 그저 너무 반가워서…… 지방에서만 지내서 공녀님만큼 예법에 철저하질 못했네요. 죄송해요.”
다이아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상하네. 지방 사교계에서도 이렇게 행동하면 무례한 짓일 텐데.
왜 교묘히 날 예민한 사람처럼 만드는 것 같지?
감정을 갈무리한 듯한 소녀가 아리엘에게 다시 시선을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소개가 늦었어요. 전 이번에 대공자비님의 친정댁에 수양딸로 들어온 유니스라고 해요.”
밝게 자신을 소개한 유니스가 이어 말했다.
“정말 보고 싶었어요. 이제 대공자비님과 저는 한 가족이잖아요. 그렇죠?”
“…….”
아리엘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전 이미 결혼해서 라카트옐 집안 사람이 된 걸요. 후작가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있어요.”
“아…….”
유니스의 표정이 슬픈 듯 흐려졌다.
뭐라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가만히 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대공자비님, 잠시 단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아리엘은 미소를 지었다.
“대화는 괜찮지만, 다이아나는 제 친구예요. 함께 있어도 상관없을 것 같네요.”
둘만의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유니스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얼른 활짝 웃었다.
“괜찮아요. 제가 대공자비님께 따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 것이니까요.”
세 명의 소녀는 자리를 옮겼다.
조용한 곳에 오자, 유니스가 안쓰러운 눈으로 아리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공자비님…… 이야기는 들었어요. 어릴 적에 가족과 다투고 결혼해서 집을 나오셨다면서요.”
그 말을 들은 다이아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어디부터 고쳐줘야 할지 모르겠는 말이네.’
아리엘과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면서, 다이아나는 이제 아리엘의 친정 사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가족과 싸우고 집을 나왔다니. 학대를 당한 뒤 버려졌다면 모를까!’
하지만 유니스는 정말로 슬픈 듯 눈가를 붉혔다.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잘못하신 건 알아요.”
유니스가 아리엘에게 호소하듯 말을 이었다.
“하지만 행동이 서툴러서지, 마음까지 그러신 건 아니었을 거예요.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얼마나 대공자비님을 사랑하시는데요.”
분홍색 머리칼의 소녀가 마치 기도하듯 제 양손을 맞잡았다.
“계속 이렇게 서로 안 보고 사는 건 너무 슬픈 일 아닌가요? 섭섭한 일이 있으셨더라도…… 이제 그만 덮고, 용서해드리세요. 가족이잖아요.”
유니스의 말을 듣고 있던 다이아나가 참다못해 나섰다.
“유니스 영애. 대공자비님은 대공가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계세요. 이런 식의 말은 정말 무례하군요.”
이쯤 되었으면 꺾일 만도 한데 유니스는 굴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에요, 공녀님. 낳아주신 부모님인걸요. 피를 나눈 가족과 떨어져 사는데 대공자비님께서 정말 행복하실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은근히 다이아나와 아리엘을 나쁜 사람인 것처럼 탓하는 듯한 말이었다.
완전체네, 이거.
다이아나는 진심으로 기가 막혔다.
끝내 유니스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공녀님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시면서, 어린 대공자비님께선 낯선 시댁에서 혈혈단신 사시도록 내버려 두시다니요. 진정한 친구라면, 화해하도록 돕는 게 옳지 않을까요?”
이젠 이간질까지?
유니스는 마치 정말 상대를 진심으로 생각해서 충고한다는 듯한 말투였다.
“사실 대공자비님께서도 가족이 얼마나 그리우셨겠어요. 후작가와 대공자비님이 앞으로도 서로 소원하다면, 저는 너무나 슬플 거예요.”
다이아나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저게 사정도 모르면서……!’
그때 아리엘이 단호하게 나섰다.
“유니스 영애. 더는 영애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남은 시간 동안 영애가 사냥대회를 즐겁게 보내길 바랄게요.”
그리고 아리엘은 다이아나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대공자비님…….”
두 소녀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유니스는 아리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말고 천천히 가련한 표정을 지워냈다.
분홍색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묘한 표정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허공에 대고 누군가에게 말을 했다.
“주인님. 손을 대는 것 정도로는 불가능할 듯합니다. 몸에 보호 마법이 둘러져 있더군요.”
이내 무슨 대답이라도 들려온 양, 유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인님.”
* * *
자리를 떠난 다이아나와 아리엘은 천막으로 돌아가는 대신 주변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나오자마자 다이아나가 씩씩대며 물었다.
“아리엘, 괜찮니?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저녁엔 마티어스님이랑 산책을 해야지, 이런 생각에 빠져있던 아리엘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응? 뭐가?”
“유니스 영애 말이야. 이상한 말을 잔뜩 늘어놨잖아.”
“아…….”
아리엘은 작게 웃었다.
유니스에 대해선 놀라울 만큼 신경이 안 쓰여서 딴생각에 빠져 있던 참이었다.
“당연하지. 나랑 후작가는 이제 상관없는걸. 유니스 영애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다이아나는 여전히 속이 상한지 말끝을 흐렸다.
“기분 풀어, 다이아나.”
아리엘은 웃으며 다이아나의 어깨에 머리를 폭 기댔다.
그러자 다이아나의 표정이 금방 녹아내렸다.
“아이참, 내 귀염둥이는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 화도 못 내게.”
사실 다이아나는 사교계에서 기른 말솜씨로 유니스 말의 허점을 조목조목 지적해주려고 했지만, 아리엘이 아예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행동했기에 그쯤에서 물러난 것이었다.
한 번만 더 그래 봐, 내 아리엘에게!
친구와 함께 걸으며, 아리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과거의 나였다면 신경이 쓰였을 수도 있겠지.’
회귀하기 전의 아리엘은 가족의 사랑에 무척이나 목마른 아이였다.
그녀에게 아버지와 오라비의 사랑은 너무나 간절했다.
그래서 그녀는 가족과 다른 자신의 외모를 미워했고, 가족과 닮기 위해 뭐든지 했다.
맞고 학대를 당할 때조차 정말로 자신이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믿었다.
‘심지어 팔리고 나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었어.’
후작과 제롬이 돈 몇 푼에 아리엘을 마법사 무리에 넘겨버렸던 날.
아리엘은 마지막으로 처절하게 울며 매달렸다.
“제발 보내지 말아주세요. 시키는 건 뭐든지 할게요! 저를 버리지만 마세요…….”
하지만 후작은 개를 발로 차 내쫓듯 아리엘을 떨쳐냈다.
“아버지! 아버지! 오라버니……! 제발요……!”
결국, 아리엘은 ‘그’의 수하들의 손에 의해 질질 끌려나갔다.
그 날 일로 그녀는 자신이 후작과 제롬에게 가족이 아니란 걸 확실히 깨달았었다.
‘하지만…… 과거의 나였다면 유니스 영애의 말에 흔들렸을지도 몰라.’
그때의 그녀는 애정에 너무 굶주려 있었기에, 유니스처럼 가족애에 호소하면 쉽게 넘어갔을 것이다.
‘내가 잘못했다는 듯이 말한다면 그렇게 믿었을 테고.’
그리고 용서해야만 한다고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정말 그렇게 해야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라카트옐 가에서 수잔과 다른 사람들에게 진짜 사랑을 받아본 아리엘은 이제 사랑이 아닌 것을 구별할 줄 알았다.
‘유니스 영애의 걱정은 겉으로는 옳게 들려도…….’
자신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아리엘은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다이아나. 아까 다른 영애들이 왜 유니스 영애를 둘러싸고 있었던 거야?”
아리엘이 묻자 다이아나가 부채를 펴서 입을 가린 뒤 소곤소곤 대답해주었다.
“유니스 영애가 여기 도착할 때 비싼 마차를 타고 등장했거든. 입고 있는 드레스나 장신구도 무척 비싼 것들이고. 한미한 지방 출신의 영애를, 후작가에서 공주님처럼 모셔온 거지.”
“그래?”
가벼운 아리엘의 반문에도 다이아나는 주먹을 꽉 쥐고 투덜댔다.
“안 그래도 후작님과 후작 영식이 수양딸에게 푹 빠졌다는 소문이 파다해.”
그러니까 제국 사냥대회같이 큰 자리에서 데뷔시키겠다고 데려온 거 아니겠냐고! 덧붙인 다이아나가 신랄하게 내뱉었다.
“다들 그 팔자 편 주인공이 누군지 궁금해서 난리인 거지.”
아리엘은 궁금했던 게 해소돼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다이아나의 드레스 자락을 당기며 말했다.
“이제 돌아가자, 다이아나. 세실을 찾아봐야지.”
“맞다, 세실! 세실 얘는 또 천막에 안 왔었잖아. 분명 다른데 숨어있겠지?”
세실은 영애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를 부담스러워해서 매번 혼자 구석진 곳에 틀어박혀 있곤 했다.
한결같은 세실 때문에 까르르 웃은 두 소녀는 서둘러 친구를 찾으러 나섰다.
* * *
한편, 숲에 들어간 히스와 디트리히는 서로를 견제하느라 붙어 다니며 사냥을 했다.
히스는 백마의 갈기를 휘날리며 말을 모는 디트리히를 불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황태자라고 해서 샌님일 줄만 알았더니.’
이제 보니 순 내숭이었다.
디트리히는 승마 실력이 뛰어났고, 말 위에서 활을 자유자재로 다뤘다.
그가 가볍게 화살로 쏴 잡은 토끼가 말안장에 가득 실려 있었다.
히스는 질세라 광역 미혹 마법을 발동했다.
마법진이 쫙 펼쳐지자 근방의 토끼들이 헤롱거리며 쓰러졌다.
마법으로 간단히 토끼들을 주워 담으며 히스는 디트리히를 향해 도발하는 눈빛을 보냈다.
어떠냐. 너 같은 흑심 품은 놈한테 우승을 뺏길 것 같아?
‘제법이네.’
디트리히는 히스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마법사들은 원래 몸이 약했다.
물몸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히스클리프라는 이 소년 마법사는 체력이 꽤 좋으면서도 머리를 쓸 줄 알았다.
그래서 더욱 거슬렸다.
히스와 디트리히에게 서로는 아리엘 옆을 얼쩡거리는 파렴치한일 뿐이었다.
한 차례씩 서로의 실력을 본 그들은 두 갈래 길이 나오자 냉기를 풀풀 풍기며 멀어졌다.
“이따가 뵙죠. 황,태,자, 전하.”
“나야말로 그대가 얼마나 많이 잡아올 지 기대하겠다.”
둘 다 저놈에게만은 우승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눈빛이었다.
“……하.”
루시안은 그 모습을, 숲 중앙의 거대한 나무 꼭대기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벌레 놈들이 흥분제라도 맞은 듯이 구는군.”
그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히스와 디트리히가 옷깃에 매어 놓은 아리엘의 손수건이 화르르 잿가루가 되었다.
조금만 힘을 더 줘서 두 벌레 놈까지 재로 만들면 매우 좋을 텐데 아리엘이 사냥대회가 무사히 끝났으면 한다고 종알거린 것이 마음에 걸려서 두고 보는 중이었다.
루시안은 냉혹한 얼굴로 혀를 찼다.
그의 꼬맹이 아내는 매번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하지만 그로서는 없애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