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174)
“아, 아니요. 놔줘요, 루시안.”
하지만 그녀의 손목을 감싸 쥐고 있는 힘은 늦춰지지 않았다.
나른한 목소리만 뇌쇄적으로 감돌았다.
“곤란하네. 멋대로 와서 만지더니 이젠 놔달라?”
쉽게 그녀를 붙잡아둔 루시안이 다른 쪽 손을 아리엘의 얼굴에 가져갔다.
그녀가 했던 것처럼 천천히 윤곽만 훑으며 내려간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아리엘의 솜털이 일어나는 게 흡족했다.
어차피 그녀에겐 포식자에게 보이는 반응에 불과하겠지만.
지금 아리엘은 딱 그 모습이었다.
불꽃이 아름다워 보여서 뜨거운 줄도 모르고 손을 대 보려는 어린아이.
‘정작 불꽃이 가까이 오면 두려워할 거면서.’
얄궂지 않은가.
차오르는 호흡, 빠르게 뛰는 심장, 긴장으로 수축된 몸, 붉어지는 얼굴.
이 모든 게 이성에게 긴장하는 게 아닌, 소녀의 몸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공포 반응일 거라는 게.
그는 그녀의 분홍빛의 작은 입술을 엄지로 쓸어보았다.
아리엘이 눈을 질끈 감으며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손끝이 저릿저릿하게 달콤했다.
“마티어스 놈도 도움이 될 때가 있군.”
어쨌거나 이 마음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었으니.
한편 아리엘은 루시안이 한 말에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정말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나 루시안이 이런 말 하는 거 처음 봐!
항상 마티어스님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고 나쁜 말만 했었는데.
이러다 화해하는 날이 오는 건…….
그러다 그녀는 조그만 미간을 찌푸렸다.
“참, 놈이 뭐예요. 아빠한테!”
루시안이 픽 웃고는 오만하게 되물었다.
“감히 날 혼내는 건가, 지금?”
“그건 아니지만…….”
그가 슬쩍 무릎을 흔들었다.
무릎 위에 앉아있던 아리엘의 몸도 휘청 흔들렸다.
“꺅.”
아리엘은 루시안의 팔을 잡으며 매달렸다.
루시안이 유혹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너 지금 내 무릎 위에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는 거야?”
“어?”
방금 깨달은 것처럼 그녀가 놀라며 뺨을 붉혔다.
“넌 사자 아가리에 들어가도 다른 얘기로 정신을 빼놓으면 먹히는 줄도 모르겠어.”
“안 그래요.”
아리엘은 곧장 반박했다.
“근데 그 무시무시한 비유는 뭐예요…….”
루시안이 쿡쿡 웃으며 그녀의 머리통에 턱을 올려놓았다.
아리엘의 심장이 반응하듯 콩닥거렸다.
잠시 뒤, 머리 위로 루시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
“언제요?”
“마수가 죽은 다음에. 네가, 내 얼굴을 만졌을 때.”
왜 갑자기 그런 걸 묻지?
고개를 들어 루시안의 눈을 보자 그가 아리엘의 눈가를 손가락 등으로 슬쩍 쓸었다.
“울고 있었잖아.”
“봐, 봤어요?”
너무 놀라서 말이 더듬거리며 나왔다.
‘어떡해, 창피해.’
그녀는 뺨을 붉힌 채 입만 뻐끔거리다가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꿈인 줄 알고…….”
지난번 삶처럼 마지막 순간에 보는 것이 루시안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슬프면서도 기뻤던 것 같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루시안이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벌레들이 네게 사냥감을 잔뜩 물어왔더군.”
아리엘을 빤히 보던 그가 한참 만에 툭 던지듯 말했다.
“다른 놈들이랑 얘기하지 마.”
“네?”
“아는 척도 하지 마.”
“하지만…….”
그가 경고하듯 짧게 혀를 찼다.
그리고 매혹적인 기운을 의도적으로 내뿜으며 말했다.
“내 말 들어.”
……뭐야. 꼭 질투하는 남자처럼.
괜히 하얀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때, 루시안이 애틋한 느낌이 날 정도로 살짝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난 성력도, 치유력도 없지. 오직 파괴하는 힘뿐이야.”
그가 보기 드물게 날 서고 위태로운 표정을 지었다.
애타 하는 것도 같고, 불안해하는 것도 같은.
“그래도 복수하거나 죽이는 건 자신 있어. 금은보화도 나보다 많은 인간은 없지. 잘만 쓰면 난 괜찮은 무기가 되어줄 수 있어. 어때?”
아리엘은 그의 표정을 살피다가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욱신거렸다.
“……왜 그런 말을 해요?”
꼭 자기를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난 루시안한테 성력이나 치유력 없다고 뭐라고 한 적 없는데. 루시안 돈도 안 필요하고요. 그래서 옆에 있는 거 아니에요.”
그에게서 부족함을 느낀 적 없었다.
그가 없었다면 그녀의 두 번째 인생도 없었을 테니.
그런데 그녀의 말을 들은 루시안이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아.”
루시안은 숨이 목에서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나한테서 바라는 게 없어?
힘도, 권력도, 돈도, 하물며 복수도 바라지 않는다고?
아리엘이 그에게서 뭔가를 원해서 옆에 있는 거라면, 그게 사라질 때까지는 떠나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옆에 있는 거면?
결국 마음대로 떠날 수 있다는 거잖아.
얼마든지 힘으로 붙잡아 둘 수 있지만 그러면 지금처럼 웃어주지 않겠지.
망가져 버린 채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겠지.
안 그래, 아리엘라?
그는 눈을 감고 아리엘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래. 네가 나에게서 원하는 게 없다면.
루시안이 조용히 긴 속눈썹을 밀어 올리며 눈을 떴다.
나를 원하게 만드는 수밖에.
덜커덩. 끼익-
마차 밖에서 게이트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다 왔나 봐요.”
아리엘은 이때다 싶어 재빨리 루시안의 무릎 위를 벗어났다.
그리고 얼굴을 식히기 위해 얼른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루시안이 진득한 집착이 담긴 눈으로 반대편에 앉은 아리엘을 응시했다.
쨍한 벌레 우는 소리와 함께, 무더운 여름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