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193)
‘……저 눈빛.’
이게 다 루시안 눈빛 때문이야.
사람을 유혹해서 파멸로 몰고가는 아름다운 악마 같은.
그의 눈빛을 받고 서 있다 보면 다른 것은 다 잊고 그에게만 신경을 빼앗기고 만다.
등 뒤에서 하녀들이 능숙하게 드레스 끈을 묶어 마무리하고, 줄을 당겨 커튼을 열었다.
‘이번엔 파인 데도 없으니까 괜찮다고 하겠지?’
아리엘은 기대감 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루시안은 입는 족족 매번 빤히 살펴보다가, 낮게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두 번째 후보였던 붉은 새틴 드레스.
“안 돼. 눈 달린 것들이라면 다들 쳐다볼 거야.”
오팔이 자잘하게 뿌려진 상큼한 레몬색의 미니 드레스.
“너무 귀여…, 절대 안 돼.”
화려한 은사 자수가 들어간 네이비색 드레스.
“미쳤군. 당장 다른 거 입어.”
아이스 블루색 시폰이 겹겹이 싸인 드레스까지.
“안 돼. 내 속 뒤집어지는 꼴 보려고?”
결국 심기가 상한 듯 그가 샬럿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이런 거 말고는 없나?”
안 그래도 루시안의 기세에 눌려있던 마담 샬럿과 의상실 하녀들이 그의 퇴짜에 전전긍긍하는 것이 보였다.
아리엘은 속으로 안절부절 못 했다.
‘내 눈엔 다 좋은데…….’
루시안 눈에는 별로인가?
대체 뭘 기준으로 안 된다고 하는 건가요?
아리엘은 속으로만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커튼 뒤로 들어갔다.
그리고 하녀들의 시중을 받아 마담이 새로 꺼내온 드레스를 입었다.
스르르륵.
또다시 커튼이 젖혀지자,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는 루시안의 시선이 아리엘에게 향했다.
아리엘은 자기도 모르게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었다.
손에 밴 땀이 느껴졌지만, 드레스의 소재가 매끄러워서 그냥 미끄러지기만 했다.
“…….”
한참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루시안이 한쪽 엄지로 제 입술을 누르듯 문질렀다.
붉은 입술이 이지러지는 모습이 아주 색정적인 상상을 돋구었다.
“이것도 예쁘군.”
그가 심각한 어조로 내뱉었다.
마담 샬럿이 양손을 맞잡고 열심히 바람을 잡았다.
“예, 너무 아름다우시지요? 어쩜 피부가 백옥같으셔서 안 받는 색이 없으셔요. 붉은색은 사랑스러우시고, 샴페인 골드는 우아하고 따스해 보이시죠. 지금 입고 계신 연보라색 드레스는…….”
샬럿의 말을 신경 쓰고 있지 않았던 듯, 루시안이 다시 한번 반복해 말했다.
“다 예뻐.”
예쁘다고요?
아리엘은 심장이 콩닥거렸지만, 얼른 표정을 숨겼다.
조용히 해, 심장아.
기분이 들뜨는 대로 넋놓고 있으면 안된다구.
루시안은 자기가 저렇게 아름다우면서, 나더러 예쁘다니.
시력이 정상인 걸까?
루시안은 아리엘의 얼굴에서 그 생각을 고스란히 읽어냈다.
그의 말을 전혀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눈빛이었다.
그는 서늘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왜 안 믿지?”
“뭐, 뭐를요?”
“내가 한 말.”
“안 믿긴 누가…… 믿어요.”
그러자 루시안이 그녀의 손목을 그러쥐고 손가락으로 뭉근히 맥 뛰는 곳을 어루만졌다.
“거짓말인데. 박동이 이렇게 파닥이는 걸 보니.”
그, 그건 거짓말 때문만이 아닐 텐데요…….
루시안이 노골적으로 사나운 눈빛을 했다.
“예전엔 믿었었잖아. 예쁘다는 말.”
아리엘은 슬그머니 힘을 주어 그의 손에서 제 손을 빼냈다.
정말 몰라서 이러는 걸까?
그러자 루시안의 기세가 날카롭게 바뀌었다.
아리엘은 왠지 조금 불안해졌다.
그가 위험한 기세를 스멀스멀 내뿜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 눈이 널 제대로 보고 있다는 걸 증명해야겠군.”
그리곤 샬럿을 향해 고압적으로 눈짓했다.
“다 사겠다.”
네? 루시안?
아리엘은 놀라서 입만 벌렸다.
“저, 전부 말씀이십니까?”
샬럿이 경악한 투로 물었다.
루시안이 싸늘하게 미간을 좁혔다.
“드레스를 모두 사겠다고 했을 텐데.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말귀를 빨리 알아들은 샬럿이 허둥지둥 고개를 조아렸다.
“예, 예! 대공자님.”
샬럿이 주문을 처리하려고 도망치듯 자리를 비우자, 아리엘은 얼른 루시안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루시안, 뭐하는 거예요.”
난감해 죽을 지경이었다.
드레스가 몇백 벌인데…… 저게 다 얼마야?
아니, 평생 저 옷들을 한 번씩이라도 다 입어볼 순 있는 건가?
곤란함에 물든 아리엘의 얼굴을 잠자코 보던 그가 오만하게 입매를 비틀며 물었다.
“옷이 마음에 안 들어?”
“그건 아니지만…….”
그가 아리엘의 턱을 손으로 들어 올리며 교묘히 그녀의 말을 막았다.
“아내 것을 사는 것은 남편의 권리야.”
아리엘은 어찌할 줄을 몰라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많은 선물은…… 부담스러운데.
하지만 루시안이 저렇게 나올 때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건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결국 아리엘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드레스룸이 가득 채워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선 루시안은 무척이나 흡족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 * *
무도회 당일, 다이아나는 깜짝 놀랄만큼 아름다운 눈 가면을 가지고 아리엘을 찾아왔다.
“짜잔! 이거 봐. 예쁘지? 장인이 한 땀, 한 땀 덧대 만든 가면이란다. 너한테 정말 잘 어울릴 거야!”
오늘 입고 올 드레스와도!
아리엘은 자신보다 더 신난 것처럼 보이는 다이아나를 보며 살짝 웃었다.
루시안이 사들인 산더미같은 드레스 중에 그녀가 입고 가기로 한 것은 플라워 자수가 들어간 연보랏빛의 드레스였다.
그리고 다이아나가 선물한 가면도 아리엘의 드레스와 똑같이 연한 바이올렛 색으로 이루어져 었었다.
가면 한쪽에는 청순한 꽃장식이 자리했고, 그 위에는 보석으로 만든 나비가 올라갔다.
“고마워, 다이아나. 너무 예쁘다.”
“그렇지? 그리고 난 이걸 쓸 거야!”
야망에 불타는 눈으로 다이아나가 자기 가면을 꺼내 들었다.
엄청나게 화려한 공작새 가면이었다.
높이가 족히 1미터는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이아나가 쓰니, 과해 보이지 않고 화려함이 배가 되었다.
“무도회장에서 다이아나는 찾을 수 있겠다.”
“그럼. 네가 나 잘 찾으라고 이렇게 엄청난 걸 쓰는 건데.”
아리엘에게 가면을 전해준 다이아나는 이따 파티장에서 보자며 돌아갔다.
다이아나가 돌아간 뒤엔 알렌이 와서 아리엘에게 보석함을 전해주었다.
“대공자님께서 오늘 쓰실 장신구를 보내셨습니다.”
“고마워요, 알렌.”
별생각 없이 보석함을 열어본 아리엘은 깜짝 놀란 나머지 딸꾹질을 했다.
잠깐만, 말도 안 돼.
“알렌, 이거……?”
알렌이 드물게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주인님도 참 팔불출이시지,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예. 오로라 그린 다이아몬드 세트입니다. 대륙에서 딱 하나 있는.”
아리엘은 말문이 막힌 채 멍하니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를 바라보았다.
오로라 그린 다이아몬드는 연한 청록빛을 띤 아주 희귀한 보석이었다.
여태 발견된, 장신구를 만들만한 크기의 오로라 그린 다이아는 이 세트 안에 모두 들어가 있었다.
한 마디로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비싼 물건이었다.
‘안 돼, 나 이거 못 해요. 제발.’
아리엘은 도와달란 눈으로 알렌을 바라봤지만, 알렌은 흐뭇한 얼굴로 그녀에게 웃어줄 뿐이었다.
“오늘 입으실 드레스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랬겠죠. 루시안이 생각이나 했겠어요…… 국보급 보석을 장신구로 쓸 내가 느낄 압박감을. 엉엉.
아리엘은 알렌을 내보낸 뒤, 나머지 준비를 이어갔다.
협탁 위에 놓인 다이아몬드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하지만 결국 장신구를 꺼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말았다.
떨리는 손으로 액세서리를 꺼내자, 비취색 다이아몬드가 샹들리에 불빛을 받아 영롱한 빛을 반사했다.
“어휴…….”
오로라 그린 귀걸이와 목걸이는 정말 예뻤다.
아리엘의 머리카락색과도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안하고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안하고 나가면 또 루시안이 왜 내가 준 걸 안했냐고 무섭게 굴겠지?
자기가 주는 선물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고.
‘루시안 바보!’
그녀는 한숨을 폭폭 내쉬며 액세서리를 착용했다. 내 팔자야.
채비를 마치고 마지막 점검을 하는데,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나야. 히스.”
“히스? 들어와.”
문이 열리고 예복 차림을 한 히스가 들어왔다.
전신 거울 앞에 서 있던 아리엘은 뒤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열일곱 살이 된 히스는 키가 많이 자랐다.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곱상해서, 다이아나 말로는 사교계 소녀들 마음을 꽤나 흔들고 있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성큼 들어오던 히스가 아리엘을 보고 우뚝 멈춰 섰다.
“…….”
가만히 멈춰선 그의 얼굴에는 얼빠진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아리엘은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너…….”
“나 뭐?”
무슨 생각을 했는지 히스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개졌다.
요란하게 헛기침을 한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너, 너 오늘 엄청…… 신경 썼네.”
아리엘은 빙긋 웃었다.
이건 히스 식으로 따지면 예쁘다는 말이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오늘 입은 플라워 자수의 연보랏빛 드레스와 오로라 그린 다이아몬드 장신구는 아름다웠다.
“고마워, 히스도 예쁘다.”
빈말이 아니라, 무도회에 가기 위해 말쑥하게 예복을 차려입은 히스는 제법 멋졌다.
잡티 없이 깨끗한 피부에 헝클어진 다갈색 머리카락, 오묘한 금안.
곱상하지만 왠지 반항기가 흐르는 이목구비.
‘이렇게 보니까 영애들이 왜 히스를 좋아하는지 알 것도 같은걸.’
시선을 피한 그가 주머니에서 핀 하나를 꺼내 아리엘에게 건넸다.
“자, 드레스 안쪽 단에 달아.”
아리엘은 핀을 받아 들어 살펴보았다.
유리처럼 투명하고 얇은 핀이었다.
핀에서 은은한 마법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게 뭔데?”
“치맛자락이 끌리지 않도록 해주는 마도구.”
무뚝뚝하게 대답한 히스가 몸을 숙여, 아리엘의 드레스에 핀을 달아주었다.
그러자, 드레스 아랫자락의 무게가 사라지면서 바람 마법이 치맛단을 사르르 스쳤다.
“와…….”
히스는 천재가 아닐까?
길고 풍성한 드레스는 아름다운 대신 걷기에 불편했다.
하지만 이 핀을 달면 문제없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