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2)
현재로서 그녀가 가진 유일한 재주였다.
마법.
아리엘은 선천적으로 몸에 마나를 지니고 태어난 아이였다.
* * *
제국에서 마법은 귀한 재능이었다.
선천적으로 마나를 갖고 태어난 자들만 마법을 쓸 수 있었다.
마나를 가지고 태어난 자들은 마탑에서 직장을 얻거나, 궁정 마법사가 되거나, 마을이나 도시에서 약제사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리엘에게는 그런 선택지가 없었다.
후작이 아리엘을 팰 때는 비단 그녀가 눈에 띄었을 때만이 아니었다.
그는 아리엘이 마법을 쓰는 걸 극도로 끔찍해했다.
자신과 블랑쉐에게는 없는 그 재능을, 알려지지 않은 간통남에게 물려받았다고 억측한 결과였다.
정작 마법은 유전과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그건 악마의 능력이다.”
그렇게 못 박은 후작은 아리엘이 마법을 쓸 때마다 그녀를 때렸다.
마나를 제어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어린 아리엘은 위급한 상황에 닥치거나 무언가를 간절히 소망할 때 실수로 마나를 방출해버리곤 했다.
아홉 살이 되기까지 그녀의 몸에는 멍과 흉터가 사라질 날이 없었다.
아리엘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다.
후작가는 부유했으나 하나뿐인 후작 영애에게 돌아오는 것들은 형편없었다.
하녀들은 그녀를 돌보지 않았고, 아비와 오라비는 그녀에게 돈이 나가는 걸 매우 싫어했다.
낡은 옷과 형편없는 식사, 다락의 조그만 공간만이 그녀에게 허락되었다.
그렇게 맞고 학대당하다가 그 일이 있었다.
늘 그래왔듯, 그날도 그녀가 사는 다락방의 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다락 천장의 문으로 오라비 제롬이 사냥개를 들여보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컹, 컹컹!”
“크르르르……”
아홉 살 난 작은 소녀를 앞에 둔 사냥개는 드러낸 이 사이로 침을 뚝뚝 흘리며 그녀를 몰아붙였다.
“핏, 물어! 물어버리라니까!”
손바닥만한 다락 안.
도망갈 곳이 없어진 아리엘이 절박해지자 그녀의 마나는 주인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
“어머나!”
하필 이동한 곳이 후작의 손님인 모니카 공작 부부 앞이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공작 부인의 놀란 탄성 말미에, 후작의 거친 손길이 아리엘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이 아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군요, 으핫핫!”
아리엘을 잡아챈 후작은 바깥에서 견고하게 잠겨 있는 다락방 문을 보더니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어린 딸을 다시 방 안에 처박았다.
“나중에…… 보자.”
그리고 그 날 밤.
쾅. 다락의 나무문이 거센소리를 내며 열렸다.
다락방 안에 있던 조그마한 소녀, 아리엘은 바싹 얼어붙었다.
열린 다락문 앞에 사람의 모습을 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버지 루실리온 후작이었다.
그에게서 지독한 술 냄새가 진동했다.
아리엘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했다.
“네 방에 조용히 처박혀 있으라고 했지.”
그의 손이 다락방 밖 복도에 걸어놓은 화병을 집어 들었다.
그것을 본 아리엘이 숨을 할딱 들이쉬는 순간, 그녀의 머리 옆으로 화병이 날아들었다.
퍽. 쨍그랑!
후작이 던진 화병이 아리엘 옆의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아리엘은 눈을 감으며 몸을 바짝 움츠렸다.
그가 아리엘에게 한 발자국 다가오며 말했다.
“그런데, 기어이 기어 나와 돌아다니다가 모니카 공작 부부와 마주쳐?”
아리엘은 입을 달싹이며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변명해보았자 소용없을 것이다.
그녀가 나오고 싶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라비 제롬의 나쁜 장난질에 쫓겨 도망쳤던 것이라고.
하지만 후작은 아리엘이 변명을 하면 더욱 화를 낼 게 분명했다.
“게다가 또 괴상한 짓을 벌였더구나. 잠긴 문밖으로 나오다니. 그 악마 같은 짓거리가 내 눈에 보이지 않게 하라고 했지!”
아리엘은 발을 바르작거리며 몸을 물렸다.
다가오는 후작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떨어져 보려는 미약한 시도였다.
그녀의 맨발에 깨진 화병의 유리 조각이 박혀 피를 냈다.
“아.”
금세 붉은 피가 송골송골 맺혀 희고 조그만 발바닥 아래 고였다.
유리 조각의 가장자리를 타고 흐르는 선혈.
붉은 것을 본 루실리온 후작의 눈빛이 돌연 변했다.
방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잔악한 눈이었다.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아리엘은 어두운 벽을 더듬으며 다락방 구석으로 도망쳤다.
턱.
하지만 이내 후작의 손에 머리채가 잡혔다.
머리카락이 통째로 당겨지는 고통에 숨이 막혔다.
“끔찍한 색깔이군. 정말 끔찍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다시 내뱉은 후작이 아리엘의 붉은 머리카락을 세게 틀어쥐고 그녀를 다락방에서 질질 끌어냈다.
계단에 온몸이 부딪혀서 눈물이 나올 만큼 아팠지만, 아리엘은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울고 비명을 지르고, 애원할수록 더 많이 맞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서재까지 아리엘을 끌고 간 후작이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천천히 빼냈다.
루실리온 후작가의 문장이 그려진 인장 반지와 커다란 녹보석이 박힌 묵직한 금반지였다.
원래 한두 시간이면 끝나던 주먹질은 그날따라 길었고, 아리엘은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다가 새벽녘쯤 기절해서 방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리엘은 자신의 왼쪽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
아리엘의 한쪽 다리가 반 불구가 된 뒤, 후작은 망할 계집이 절름발이까지 되었다며 화를 냈다.
“대강 정략결혼으로 다른 가문에 팔아 치우려고 했더니. 쯧. 그것도 틀렸군!”
후작은 그녀를 제 딸로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이용하고는 싶어 했다.
다른 귀족 가문에 시집을 보내 조금이라도 이득을 취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후작가 체면에 불구가 된 딸을 시집보낼 수는 없었다.
망가진 다리 때문에 아리엘을 결혼시키려는 계획이 틀어지자 후작은 그녀를 착취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어린 데다 교육받지도 못한 그녀의 마법은 보잘것없었으나, 마법 재능이란 것이 워낙 귀해 제법 돈이 되었다.
아리엘은 마력을 가진 이들이 하는 일 중 가장 천한 일인 마정석 생산을 했다.
몸에 있는 마나를 뽑아 마정석을 만드는 일이었다.
후작은 그녀에게 그 이상의 일은 가져다주지 않았다.
더 돈이 될 일이 많은데도 그렇게 했던 건, 아리엘이 마법 능력을 제대로 갖추면 복수를 하거나, 제 손을 떠날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정작 그때의 아리엘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쓸모를 입증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얻고 싶은 어린아이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 아리엘이 열네 살이 되었을 때.
‘그’가 아리엘을 찾아왔다.
‘그’는 아리엘이 만든 마정석이 특별하고 마음에 든다면서 후작에게 그녀를 요구했다.
후작이 거절하자 ‘그’는 몸값으로 아주 비싼 값을 불렀다.
그렇게 그녀의 눈앞에서 한차례 승강이와 흥정이 끝난 뒤 아리엘은 ‘그’에게 팔려 그를 따라가게 되었다.
후작가에서는 아픈 딸을 요양 보낸다는 그럴듯한 구실을 대 아리엘을 집에서 치워버렸다.
후작가를 떠난 아리엘은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는 더한 지옥으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 * *
아리엘을 사 온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녀의 심장에 ‘운디르의 저주’라는 보석을 집어넣는 일이었다.
그 보석에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보석을 몸속에 지닌 자를 조종할 수 있게 하는.
어리고 힘없는 아리엘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당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저주의 보석을 심장에 넣은 채 살게 되었다.
‘그’는 아리엘에게 마법을 배우도록 명령했다.
‘그’의 수하에는 그녀를 가르칠만한 다른 마법사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에게 마법을 배우면서 아리엘은 비로소 자신의 마법 재능이 보잘것없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리엘의 안에 숨겨져 있던 마나의 분량은 거대했고, 그녀의 재능은 뛰어났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무리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가 되었다. 겨우 열네 살에.
그녀가 배운 마법은 주로 공격 마법과 저주 마법.
그렇게 아리엘은 하루하루 강해져 갔다.
하지만 점점 강해져 가는 그녀의 이면에는 그만큼 피폐해지고 약해져 가는 그녀가 있었다.
공격 마법은 그녀의 몸을 상하게 했다.
아리엘은 자주 피를 토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장과 피와 살이, 뼈가 망가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아리엘은 조종당하고 있었고, 오직 ‘그’가 시키는 대로만 자신의 마나를 사용해야 했다.
처음에는 마법 실력이 늘어나는 게 놀라웠지만, 곧 무분별하게 타인을 해치는 마법만을 연마하는 것이 고통스럽고 두려워졌다.
그 마법으로 자신의 몸까지 해치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리엘은 ‘그’의 아래에서 지독한 3년을 보냈다.
정신도, 육체도, 영혼도 엉망이 되어 너덜너덜해졌다.
그리고 열일곱 살의 성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녀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전에도 사소한 임무를 맡았었지만 이번엔 특별했다.
‘그’는 이번 임무를 잘 해낸다면 운디르의 저주를 심장에서 빼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계약 당사자가 죽을 때까지 영구적인 효력을 가지는 마법 계약서까지 건네며 그녀에게 확신을 주었다.
드디어 아리엘에게도 희망이 생긴 것이다.
엉망이 된 몸을 이끌고, 아리엘은 온 힘을 다해 그가 침입하라는 곳으로 침입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죄다 죽였다.
그곳이 라카트옐 대공가였다는 걸 알게 된 것은 흑발에 짙은 청색의 눈동자를 가진 젊은 사내를 만난 뒤였다.
“라카트옐의 사자들을 모두 죽이다니. 넌 뭐지?”
아리엘은 말을 잃었다.
제국 유일한 대공가인 라카트옐 대공가는 세 살 어린애도 알만큼 유명하면서 황제조차도 다 파악하지 못할 만큼 베일에 싸인 가문이었다.
아무리 아리엘이 후작가 다락에만 갇혀 살아 세상 물정 모른다 해도 라카트옐 대공가는 알았다.
그 가문의 위세 높은 권력과 부, 혈통을 타고 대물림되는 광기를 모르는 이는 제국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