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201)
“이익…… 이대로 끝낼 순 없어!”
하지만 그것은 다이아나의 호승심을 건드리는 결과를 낳았다.
다이아나는 말발로도, 두뇌로도 어디 가서 지는 성격이 아니었다.
사교계의 여왕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게다가 절친이라지만, 동갑에 성격이 정반대인 다이아나와 세실은 앙숙 같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좋아, 세실. 이번에야말로 널 무너뜨리고 말 거야.”
……?
아리엘이 고개를 갸웃하자마자 다이아나가 호기롭게 말했다.
“결투를 신청하겠어, 세실 하이츠 경!”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착용하고 온 비단 장갑을 세실에게 던졌다.
“받아들이지.”
세실이 여유롭게 승낙하자, 다이아나는 무언가를 테이블 위에 쿵 올려놓으며 선언했다.
“대결이야. 이번엔…… 이걸로!”
다이아나가 올려놓은 것은 아리엘이 주방에서 몰래 갖고 올라온 와인병이었다.
“주량 승부다, 세실.”
* * *
맹세코 아리엘이 꺼내온 건 와인 창고에 쌓여있던 아무 와인병이었다.
대공가엔 술을 즐기는 사람이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선물로 들어온 빈티지 와인들은 와인 창고에서 고요히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어떤 걸 가져가야 하지?’
아리엘은 살펴보다가 똑같은 병이 가장 많이 쌓여있는 것 중 하나를 살그머니 들고 올라온 참이었다.
그런데, 와인 오프너를 들고 씩씩거리며 와인병을 따려던 다이아나가 손을 우뚝 멈췄다.
“자, 잠깐만. 아리엘, 이거 뜯어도 되는 거야?”
“응? 수잔에게 살짝 물어봤는데 된다고 하던걸?”
다이아나가 입을 딱 벌렸다.
“말도 안 돼. 이, 이, 이거…… 263년 전에 단 열두 병만 생산해서 아직도 전설로 회자되는 와인인데?”
어어?
그럼 장식장에 얌전히 쌓여있었던 나머지 아홉 병은…….
다이아나가 자기 뺨을 움켜쥐고 소리쳤다.
“단 열두 병 만들어진걸, 두 병 빼고 다 모아놨단 말이야?”
라카트옐가 수집욕은 대대로 유명했다지만…… 도대체 대공가 콜렉션의 끝은 어디인가.
끝내 다이아나는 아리엘이 가져온 와인을 뜯지 못하고 포기했다.
“이런 전설을 뜯는 건 범죄야. 이거 말고 내가 선물로 가져온 거 마시자.”
세 친구는 다이아나가 가져온 고급 와인을 열고, 맛있는 디저트와 함께 먹기 시작했다.
베리가 듬뿍 올라간 진한 초콜릿 케이크와 떠먹는 산딸기 무스.
레몬즙, 생크림과 다진 과일을 넣은 크림치즈 디핑과 크래커.
각기 필링이 다른 트러플 초콜릿.
다이아나와 세실은 양심껏 아리엘에게는 술 대신 체리 주스를 밀어주었다.
“우리 애기는 이런 독한 술 먹는 거 아냐.”
아리엘은 아기 취급하는 친구들에게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야, 나도 먹을 수 있어!”
주먹을 꼭 쥔 아리엘의 모습에 세실과 다이아나는 완전히 녹아버렸다.
으으, 너무 귀여워!
아리엘의 흰 밀빵 같은 뺨에 둥그렇고 촉촉한 눈망울로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을뿐더러, 지나치게 귀엽기까지 했다.
그들은 흐물흐물 웃으며 아리엘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오구오구 그랬쪄요?”
“몇 살만 더 먹으면 뭐든 다 해주겠다, 아리엘.”
다이아나와 세실은 주량 대결을 하기 위해 규칙을 정했다.
“정확히 한 잔씩 먹다가 먼저 쓰러지는 사람이 지는 거야.”
고개를 끄덕인 세실이 규칙을 추가했다.
“좋아. 그리고 이기는 사람이 오늘 아리엘 옆에서 자는 권리를 얻는 거다.”
응? 아리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 왜 갑자기 그렇게 되는 건데?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다이아나는 이미 승부욕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절대 질 수 없어…….”
“나야말로 질 수 없다. 궁에 들어가기 전에 꼭 아리엘 옆에서 자야 하니까.”
모든 영애들이 선망하는 사교계의 여왕인 다이아나.
그리고 모든 영애들이 동경하는 최초의 여기사, 세실.
두 사람이 아리엘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격돌하고 있었다.
“한잔 더.”
“나도!”
어느새 맛난 디저트들은 아리엘 앞에만 쌓여있고, 둘은 대결에 몰두하는 중이었다.
아리엘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두 사람의 대결을 구경했다.
‘괜찮은 걸까, 세실, 다이아나…….’
저러다가 내일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
그녀는 친구들의 몸을 위해 열심히 산딸기 무스를 떠서 그들의 입에 넣어주었다.
“아유, 이쁜 것!”
꼬박꼬박 무스를 받아먹던 다이아나가 아리엘을 답싹 끌어안아 마구 뽀뽀를 퍼부었다.
“내 귀염둥이는 여기도! 이쁘고! 저기도! 이쁘고! 사랑해!”
“다, 다이아나? 갑자기 뽀뽀를?”
혹시 취했나?
아리엘의 얼굴 여기저기에 입술 연지 자국을 찍은 다이아나가 불길하게 웃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더니 세실에게 다가갔다.
“세실 너어,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지? 에잇, 이리 와!”
다이아나는 세실이 막을 틈도 없이 세실에게도 마구 뽀뽀를 했다.
“으윽, 다이아나. 저리 가라! 징그럽게.”
“징그럽다고 하면 더 할 건데? 오호홋!”
쪽쪽쪽!
‘……뽀뽀 귀신이다.’
아리엘은 취한 다이아나가 귀여워서 키득키득 웃어버렸다.
웃음소리가 들리자 다이아나가 다시 타깃을 바꾸었다.
“아리엘 너 다시 이리 와!”
“앗, 다이아나, 살려줘!”
다이아나의 뽀뽀 세례를 받으며, 아리엘은 세실을 힐끔거렸다.
그러고 보니 세실은 안 취했나?
“세실, 세실은 괜찮아?”
세실이 고개를 기웃했다.
“나? 난 안 취했다. 전혀 안 취했지. 원래 안 취하거든. 안 취했어.”
음…… 똑같은 말을 여러 번 하는 거 보니까 취한 거 같은데.
아리엘은 조심스레 다시 물어보았다.
“정말 괜찮은 거야?”
“응. 안 취했다. 전-혀 안 취했어. 안 취했고 말고. 이거 봐. 멀쩡하잖아.”
세실이 약간 나사 풀린 듯한 웃음을 짓더니 얼굴의 뽀뽀 자국을 문질러 닦았다.
‘세실, 완전히 헛손질인데…….’
설마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건가…….
‘뭐야, 엄청 취한 상태잖아!’
그렇게 주량 대결은 다이아나의 뽀뽀와 세실의 ‘안취했어’ 반복으로 막을 내렸다.
끝까지 버티다 거의 동시에 쓰러진 둘에게 아리엘은 조심조심 이불을 덮어 주었다.
“에휴.”
한숨을 폭 쉬고 잠든 친구들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아리엘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내 친구들 귀여워.’
주스만 마신 아리엘은 잠이 오지 않아서 가운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 좀 쐬고 들어가야지.’
아리엘은 남관 중앙 테라스에 가서 테라스 문을 젖혔다.
그리고…….
“어? 루시안?”
그녀는 테라스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은 남편과 마주했다.
* * *
아리엘은 깜짝 놀라서 펄쩍 뛰었다.
“루시안. 뭐하는 거예요, 위험하게.”
그녀는 한달음에 달려가 루시안을 테라스 난간 안쪽으로 낑낑 당겼다.
아리엘이 놀라서 허둥대자 루시안에게서 나른한 웃음 소리가 픽 새어 나왔다.
“떨어져도 안 죽는다니까.”
“그래도…….”
그래도 무서운데.
장난이라도 싫고, 농담이라도 싫어.
루시안이 다치거나 죽는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단 말이에요.
속으로만 말하며 그녀는 루시안의 팔을 더욱 꼭 잡았다.
“…….”
루시안은 불안한 듯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아리엘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넌 정말, 나를.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이 괴물을.
인간으로 여겨주는구나.
그런 것을 받는 느낌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아리엘을 빤히 보던 그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루시안은 표정을 굳힌 채 아리엘의 턱을 들어 올렸다.
“너. 이 입술 자국 뭐야?”
입술 자국?
아리엘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제 뺨을 만졌다.
그러다 금방 자국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 다이아나가 뽀뽀한 자국.’
다이아나는 아직 화장을 한 상태였기에 아리엘의 얼굴에는 연지 자국이 많이 생겨 버렸다.
물론 세실 얼굴에도 한 가득이었다.
아리엘은 눈을 깜박이다가 떠밀리듯 대답했다.
“어, 그게, 그러니까…… 친구들하고 놀다가요.”
루시안이 차가운 눈빛으로 살벌하게 중얼거렸다.
“그것들은 살고 싶지 않은 건가?”
아리엘은 화들짝 놀랐다.
앗, 다이아나가 위험해!
그녀는 얼른 루시안 팔을 껴안고 속사포로 말했다.
“뽀, 뽀뽀쯤이야 친구 사이니까 괜찮잖아요.”
루시안이 눈썹을 느리게 치켜올리며 살기를 띠었다.
“아니. 괜찮지 않은데.”
“당장 지울게요!”
아리엘은 서둘러 클렌징 마법을 발동해 얼굴의 연지 자국을 지웠다.
얼굴이 깨끗해지자 루시안의 표정이 미세하게 누그러졌다.
아리엘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휴 내쉬었다.
‘하마터면 다이아나가 죽을 뻔했어…….’
그때, 루시안의 손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
다이아나의 연지 자국이 있던 자리에 그가 집착하듯 엄지를 눌러 쓸었다.
뚫어져라 보는 시선과 진득한 손길에 아리엘은 새빨갛게 얼굴을 붉혔다.
“뭐, 뭐예요……?”
루시안이 낮게 혀를 차며 대답했다.
“남편으로서의 권리 행사.”
그리고 그가 뇌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자국도 남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곤란하군.”
아리엘은 얼굴이 빨개진 채 속삭였다.
“루시안이 입술 연지를 바를 순 없잖아요. 바를 필요가 없이 색깔도 예, 예쁘고…….”
그가 새는 듯한 웃음을 흘리며 제 붉은 입술 한쪽을 깨물었다.
“자국 내는 방법이 그것만 있는 건 아니지.”
‘……?’
무슨 소리지? 뭔가 위험하게 들리는데.
하지만 루시안은 딱히 다른 낌새 없이 그녀의 얼굴을 만지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와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있자니 아리엘의 심장이 콩닥거렸다.
그녀는 조용히 속눈썹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루시안을 좋아한다는 걸 루시안이 알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까?’
크림슨 하트에게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는 하지만,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잖아.
나를…… 여자라고 생각하긴 하는 걸까……?
다이아나나 세실은 루시안이 드래곤의 소유욕을 부리는 걸 애정이라고 착각해서 설레했지만, 아리엘은 조심스럽기만 했다.
‘욕심을 냈다가, 지금의 행복마저 깨지면 어떡해.’
마음을 깨달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은 짝사랑만으로 괜찮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여태까지는 이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는데…….’
루시안이 자신을 좋아할 가능성이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