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21)
혼란스러워하는 아리엘의 상황과 상관없이 알렌이 말을 이었다.
“청소뿐 아니라 저택 온도 조절도 그분이 하시지요.”
“온도 조절이요?”
“예. 이 넓은 저택 안이 한 군데도 빠짐없이 훈훈한 것도 다 마법 덕이랍니다.”
그러니까 이 저택은 마법의 힘으로 쾌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넓은 공간에 영향을 미치려면 마나가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알고 있는 아리엘은 대공가의 위세에 다시 감탄했다.
“나중에 마법사님도 만나게 되실 겁니다.”
“네에…….”
아리엘은 ‘내가 루시안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하찮은 마법사면 어쩌지’하는 걱정으로 가득 차서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아리엘은 오전 내내 알렌과 저택을 돌아봤지만, 저택이 너무 커서 극히 일부밖에 둘러보지 못했다. 10분의 1이라도 다 봤는지 의문이었다.
알렌이 조끼 주머니에 차고 있던 회중시계를 확인하고 말했다.
“마님 간식 드실 시간입니다. 이만 돌아가시지요.”
“아.”
아리엘은 속이 출출하던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간식 먹을 시간이어서 그런 거구나.
알렌은 직접 아리엘을 수잔에게 데려다주었다.
“내일은 미술품과 조각들이 있는 동관의 화랑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네! 알렌, 고마워요.”
아리엘이 밝게 인사하자 알렌이 정중하게 목례했다.
“아닙니다. 제 본분을 다했을 뿐입니다.”
“알렌 덕에 많이 알았어요.”
아리엘은 알렌의 주름진 손을 쥐고 뺨을 꼭 기대었다.
“내일 봐요, 알렌.”
아리엘이 수잔의 뒤를 졸졸 따라서 사라진 뒤, 노집사 알렌은 그 자리에 잠깐 멈춰 서 있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대공가 일을 하는 알렌으로서는 평소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멈춰있던 노집사 알렌은 물끄러미 자기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
어린 소녀의 보드라운 뺨에서 전해진 따뜻한 온기가 손에 남아있었다.
* * *
수잔은 간식으로 고소한 향기가 나는 노란 치즈 쿠키와 우유 한 컵을 차려주었다.
아리엘은 향긋한 치즈 쿠키의 맛을 음미하며 입가에 묻은 쿠키 부스러기를 핥았다.
수잔은 우유에 쿠키를 담가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쿠키를 우유에 흠뻑 적신 뒤에 먹으면 더 풍미가 잘 느껴진답니다.”
“……해볼래요.”
아리엘은 노란 쿠키를 우유에 담갔다가 한입 베어 물었다.
그냥 먹을 때는 바삭했는데 적셔서 먹으니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맛있어요!”
수잔이 키득키득 웃은 뒤에 말했다.
“주방장이 요즘 쿠키 굽는 데에 재미를 붙였거든요. 앞으로도 자주 올라올 거예요.”
이렇게 맛있는 쿠키를 자주 먹을 수 있다니.
주방장이 왜 갑자기 쿠키 굽는데 열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리엘은 그게 무척이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간식을 다 먹은 다음에 수잔이 아리엘에게 말했다.
“참, 대공님께서 오늘 아기 마님께 대공가 주치의를 보내라고 말씀하셨어요.”
“의사…… 말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본능적으로 의사가 무섭다고 느낀 아리엘이 얼른 말했다.
“난 아픈 데가 없는걸요.”
“아파서 부르는 게 아니라, 앞으로 얼마나 더 잘 자라실지 보려고 부르는 거예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수잔이 상냥하게 달랬다.
여전히 무서웠지만, 수잔 덕에 조금 안심한 아리엘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가의 주치의는 삼십 대쯤 된 여자였다.
대공가는 남자들을 위한 남성 의사와 여자들을 위한 여성 의사를 모두 데리고 있었다.
십몇 년간 여주인이라고는 코빼기도 볼 수 없었을 때조차 그 법칙을 고수했다.
그래서 불려온 여자 주치의는 환자가 없는 몇 년 동안 의학 연구에 힘을 써온 사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마님. 밀러라고 합니다.”
의사 밀러는 절도있게 인사를 건넸다.
다정한 수잔이나 정중한 알렌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무척 전문적이고 이지적인 느낌?
아리엘은 당당한 밀러에게 신뢰가 갔다.
게다가 왕진 가방을 든 밀러는 무척이나 멋져 보였다.
“아리엘이에요. 반가워요.”
“예. 그럼, 진찰을 청하겠습니다.”
밀러는 아리엘을 이 집 안주인이나 어린아이가 아니라 한 명의 환자로 보았다.
아리엘이 어리다고 해서 옆의 수잔에게 아리엘의 몸 상태에 대해 묻지 않았다. 모두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아침의 식욕은 어떠시지요? 소화는 어떠십니까?”
한 명의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기분이라 아리엘은 성실하게 대답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내내 차분하기만 하던 밀러의 얼굴이 굳어진 것은 아리엘의 몸을 보았을 때였다.
“이건…….”
밀러는 아리엘의 온몸에 나 있는 흉터들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수잔이 보기에도 무척 심해 보였던 그 상처 자국들은 의사인 밀러의 눈에 예사로운 상처들로 보이지 않았다.
밀러는 수첩에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상습적인 폭행의 흔적. 성인 남자가 가해한 것으로 추정.온몸에 멍과 상처가 있음.
머리카락 안쪽 두피에도 딱지가 져 있는 것으로 보아 머리카락을 잡고 세게 끌었던 것 같음.]
밀러는 아리엘에게 팔과 다리, 어깨를 천천히 움직여보도록 했다.
“……다행히 뼈나 관절이 상한 곳은 없군요.”
어렸을 때 관절이 상하면 키가 크지 않는다.
밀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리엘은 자신이 만약 이곳으로 와서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벌어졌을 일에 대해 떠올렸다.
아마 자신은 왼쪽 다리를 영영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과거와 똑같이.
아리엘의 흉터를 모두 만져본 밀러가 결론을 지었다.
“아직 나이가 어리시기 때문에 잘 드시고 잘 쉬신다면 대부분의 자국은 점점 옅어져 사라질 것 같지만…… 몇 군데는 심하네요. 커도 흉터가 남겠어요.”
밀러의 말에 수잔의 얼굴이 굳어졌다.
의사는 식단이나 운동에 대한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말해주고, 몸을 튼튼하게 하는 약을 처방해준 다음 돌아갔다.
의사가 돌아간 뒤에 아리엘은 수잔의 눈치를 살폈다.
수잔은 아까부터 왜인지 기분이 저조해 보였다.
상냥하게 웃어주지도 않았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지도 않았다.
아리엘은 걱정이 되어서 수잔에게 다가갔다.
“수잔, 왜 그래요? 혹시 내가 뭔가…… 잘못했어요?”
치울 것도 없는데 바쁘게 청소하는 시늉을 하던 수잔이 한숨을 내쉬고 아리엘에게 돌아섰다.
그리고 작은 소녀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수잔은 아리엘이 가엾었다.
조금만 분위기가 안 좋아도 바로 어른의 기분을 살피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정에 굶주려서 약간만 예뻐해 주어도 마음을 오롯이 줘 버리는 어린 동물 같았다.
“아기 마님께서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제가 마음이 아파서 그런 거예요.”
“나 때문에요?”
“…….”
수잔은 의사가 한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커서도 흉터가 남을 거라는 말.
아리엘이 열심히 짹짹거렸다.
“나는 괜찮아요. 이젠, 아버…… 지랑 마주칠 일도 없고. 다친 데도 거의 안 아프고 괜찮아요.”
수잔은 아리엘의 등을 잠잠히 쓸어주었다.
“그런 게 아니에요, 아기 마님.”
아리엘을 떼어낸 수잔이 소녀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몸에 난 상처는 때로 여기에도 흉터를 남긴답니다. 그리고 이 안에 난 흉터가 훨씬, 훨씬 지우기 힘들지요.”
“수잔…….”
“그러니까 아기 마님. 괜찮다는 말은 세상에서 제일 아껴야 되는 말인 거예요. 아셨지요?”
아리엘은 괜찮다는 말을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아직 다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수잔이 그녀를 무척이나 위해주고 있다는 것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수잔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을 덜어주고 싶었다.
“응, 그럴게요.”
수잔이 아리엘의 양 뺨에 키스를 쪽쪽 퍼부어 주었다.
“그래도 이렇게 예쁘게 자라주셔서 기특하셔요.”
그리고 수잔은 아리엘의 손을 붙잡았다.
“자아, 그럼 의사 말대로 살이 포동포동 찌는 맛있는 음식들을 드시러 가 볼까요? 저녁 식사는 대공님과 함께하실 텐데, 열량이 높은 것들로 차리게 하지요.”
“나 때문에 그렇게 해도 돼요?”
“그럼요. 원래 저택의 음식은 여주인의 입맛과 취향을 따라가는 거랍니다.”
“아…….”
수잔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니 얼른 훌륭한 안주인이 되시려면 맛있는 걸 많이 먹어보시고 경험해보셔야 해요.”
정말 그런가?
아리엘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쩐지 결론이 ‘좋은 여주인이 되려면 맛있는 걸 많이 먹어야 한다’로 난 것 같은데.
하지만 그녀는 이내 수잔의 따뜻한 손을 마주 잡았다.
여기서라면 어떤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런 식의 일상들이 하루 이틀 이어졌다.
아침이면 수잔이 뺨에 키스해주고, 낮에는 집사 알렌과 저택 곳곳을 돌아다니며 안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