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220)
외부인이 쏟아져 들어와 매우 혼잡한 날이기도 했다.
밤의 축제를 앞둔 일행은 식사 자리에서 여태까지 조사했던 성과를 나누었다.
“여태까지 정보 조작으로 반응이 온 것은 학생들 쪽이야.”
디트리히의 말에 루시안이 성의없게 하고 있던 나이프질을 관두고 비딱하게 턱을 괴었다.
“그중에 첩자로 위장한 놈이 있는 거로군.”
다이아나의 계책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디트리히가 흘린 정보가 다름 아닌,
‘요하네스를 지키는 마법진을 교란하는 방법’ 이었으니까.
당연히 실제로 가능하진 않았지만, 적을 속여 솔깃하게 만들기엔 충분한 내용이었다.
이쪽에서 일부러 흘린 정보로 의심받을 걱정도 없었다.
“금욕적이어야 하는 아카데미에선 몰래 금지된 물품을 구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으니, 이런 종류의 소문이 크게 이상한 건 아니지.”
하지만 실제로 마법의 힘을 가진 자-학생일 리 없는-가 시도를 한다면, 덜미를 잡을 수 있을 것이었다.
디트리히는 다이아나가 제안한 대로, ‘마법진 교란이 가능한 장소’에 대한 정보를 그룹마다 다르게 뿌렸다.
정치학과 학생들 그룹에는 아카데미 동문 벽.
검술학과 학생들 그룹에는 서문 담장.
교수 그룹에는 북동쪽 성루…… 등등의 식이었다.
각 집단 사이에는 신분 차가 있어서 서로 교류가 없다는 허점을 노린 시도였다.
“그리고 아카데미 동문 벽에서 마법진을 교란하려는 시도가 있었어. 감시망을 피해 가서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지만.”
‘동문 벽’이라는 정보를 들은 학생들은 모두 정치학과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의 인원은 결코 적지 않았지만, 달그림자를 모두 풀면 한명씩 감시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제 잡는 것만 남았군.”
흥분한 어조로 말한 디트리히가 다이아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공녀 덕분입니다. 훌륭한 계책이었어요.”
아리엘에게 건네줄 빵에 버터를 듬뿍 바르던 다이아나가 도도하게 대꾸했다.
“고마우시다면, 저희 아버지가 물러나신 뒤에 제게 전하의 오른팔 자리를 주시는 것도 생각해보세요.”
제국의 황태자에게도 자존심 높은 모습이던 다이아나는 자신이 준, 베리 콩포트와 버터가 듬뿍 발린 빵을 아리엘이 먹기 시작하자 금세 표정이 흐물흐물해졌다.
‘아아, 내 귀염둥이는 어쩜 먹는 것도 이렇게 예쁠까?’
공녀의 새침했던 표정이 스프처럼 녹진녹진하게 바뀌는 것을 실시간으로 본 디트리히는 놀란 표정을 관리하기 위해 잠시 소처럼 샐러드만 묵묵히 씹어야 했다.
상황 파악이 모두 끝나자, 디트리히는 아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아보이는 루시안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조용히 달 그림자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그가 조심스레 말했다.
“대공자는 전야제에서 인파에 섞여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다이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대공자님이 다른데 한눈을 팔고 있는 척을 해야 첩자가 안심하고 수상한 짓을 할 수 있겠죠.”
디트리히가 루시안에게 말했다.
“수호목 근처에 함정 마법진을 설치해뒀어. 학생들 감시도 할 거고. 그러니 대공자는-”
루시안이 서늘하게 디트리히의 말을 자르며 대답했다.
“나와 아리엘은 전야제에 참석하지.”
놀란 아리엘은 말없이 음식에만 두고 있던 시선을 들었다.
아리엘의 안전에 대해 걱정이 되는 듯 몇 마디 잔소리를 늘어놓은 디트리히도 결국 루시안과 그녀가 함께 가는 것에 동의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이아나가 뭔가를 발견한 듯 외쳤다.
“어머, 아리엘. 입술이 왜 그러니?”
다이아나는 이걸 방금 발견한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내 귀염둥이 입술이……”
아리엘은 뭔가 묻었나 싶어 얼른 입가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다이아나가 부드럽게 손을 막고 아리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속상해라. 여기가 터졌잖아. 게다가 부었고.”
‘…….’
그 말에 어제 일을 떠올려버린 아리엘이 하얀 뺨을 붉혔다.
다행히 다이아나는 아리엘에게 상처가 났다는 사실에 분개한 나머지 아리엘의 반응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어쩌다 이랬어, 응?”
“그냥…….”
아리엘은 얼버무리며 속삭였다.
“꿈을 꿨나봐. 아침에 깨보니까 이렇게…….”
“어휴, 무슨 사나운 꿈을 꿨길래.”
새빨개진 아리엘은 우물쭈물했고 다이아나는 가져온 립크림을 아리엘에게 세심하게 발라주며 마음 아파했다.
그 사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루시안의 귀 끝만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 * *
해가 지자 아카데미 내부는 불빛과 음악, 사람들로 가득해졌다.
상품을 걸고 벌이는 결투장 옆에는 벌써 흥분한 학생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넓은 광장은 각종 경기와 연극 등으로 가득 차 시끌벅적했다.
초대받아 온 근처 지방의 젊은 귀족 남녀들도 아카데미 안을 활보하며 사교를 즐겼다.
물건과 음식을 팔러 들어온 상인들의 수레와 천막이 아카데미의 길을 빼곡히 수놓으며 늘어져 있었다.
마법으로 모양을 조절하는 분수대 옆에는 폭죽 준비가 한창이었다.
요하네스 아카데미에서 1년 중 유일하게 허락되는 자유의 날이다.
어느새 아리엘과 루시안이 인파 속에 섞여야 할 시간도 다가왔다.
다이아나는 자신이 축제에 가는 것보다 더 신이 나서는 아리엘에게 드레스를 몇 벌이나 갈아입히며 즐거워했다.
“아리엘. 딱 한 벌만 더 입어보자, 응? 절대 내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고…….”
디트리히는 나갈 준비를 하는 루시안에게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아리엘라와 갈 거라면 기세는 거두고 다녀 줘.”
그가 걱정스레 아리엘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혹시나 지난번처럼 그 애를 노리는 자들의 눈에 띌 지도 모르니.”
루시안은 미려한 얼굴을 찌푸리며 디트리히를 노려봤지만, 그도 축제 한 복판에서 기세를 두르고 다닐 생각은 없었다.
벌레 떼처럼 많은 인간들 사이에 파묻힐 생각에 불쾌해도, 아리엘을 타락의 눈에 띄게 할 수는 없으니까.
“연락할 일이 있다면 달그림자를 보내라.”
그 말만 남기고 루시안은 아리엘을 데리러 갔다.
다이아나의 손길을 받은 아리엘은 연한 분홍색의 나들이 드레스 차림이었다.
귀족들의 무도회에 갈 때처럼 화려한 드레스가 아니라, 축제를 돌아다니기 좋은 가벼운 차림새.
그리고 스칼렛 레드의 붉은 머리카락은 일부만 땋아 여름꽃 두세 종류로 장식했다.
청초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루시안은 잠시 아찔한 혼미함을 느끼며 멈춰 섰다.
“…….”
신은 왜 하필 저 소녀에게 크림슨 하트를 내린 걸까.
라카트옐을 유혹해서 완전히 파멸시키려고?
그런 의도라면 아주 효과적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아리엘이 무엇을 요구해도 다 들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세상 모든 금은보화를 가져와 그녀 앞에 쌓아놓으라고 해도,
제국을 멸망시키고 황제의 자리를 그녀에게 바치라고 해도,
하다못해 여기에 있는 인간들의 목숨을 죄다 끊어놓으라 명령해도 그는 복종할 것이다.
그를 떠나겠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가지.”
루시안은 쓰린 감정을 느끼며 아리엘을 데리고 나섰다.
* * *
시끄러운 축제로 들어간 뒤에도 둘 사이의 기류는 묘하기만 했다.
아리엘은 어제의 일을 머릿속에서 떨쳐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언제 타락이 공격해올지 모르는데…….’
이렇게 달콤한 생각만 곱씹고 있다가는 루시안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네가 여기에 왜 있는지를 떠올려, 아리엘.’
타락으로부터 루시안을 지키고, 드래곤의 눈을 되찾아주고, 크림슨 하트를 뺏기지 않기 위해 남아있는 거잖아.
그녀는 몇 번이나 표정을 가다듬고 마음을 단단히 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어제의 첫 키스의 기억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한편, 루시안에겐 축제의 불빛이며 떠들썩한 소리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어제 일을 떠올리며 희망에 잠기는 것과, 얼핏 차분한 아리엘의 얼굴에 절망하는 것을 반복했다.
광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서 혼잡해졌다.
루시안은 아름다운 얼굴을 찌푸렸다.
인간들 따위에게 밀리지 않는 몸을 가진 그와는 달리 조그맣고 약한 아리엘은 사람들에게 부딪히거나 휩쓸리기 쉬웠다.
아니나 다를까 아리엘은 그의 옆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였다.
루시안은 제 몸으로 그녀의 옆을 막아서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위험하니까 잘 붙어있어.”
귓가에 대고 말하자, 아리엘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그 뒤에도 아리엘은 좀처럼 그에게 가까이 붙지 않았다.
……어제 일을 의식해서겠지.
루시안은 쓰디쓴 기분으로 손을 뻗었다.
‘앗.’
아리엘은 제 손을 움켜쥐는 루시안의 손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소, 손을…….’
안 그래도 그가 사람들을 막아준 것 때문에 평정심을 잃었는데, 손까지 잡히니 심장 소리가 마구 높아졌다.
심지어 루시안은 그냥 손을 잡은 게 아니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얽어 끼우며 빠짐없이 잡은 모양새였다.
이렇게 잡히니 루시안의 아름다운 손 모양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의 길게 뻗은 손가락과 그 손의 유려한 마디, 겹쳐진 손목에 도드라진 힘줄까지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왔다.
‘심장 소리가 밖으로 들리면 어떡하지.’
아리엘은 너무 떨려서 손에 힘을 주지 못했다.
그러자 루시안이 깍지를 낀 손에 힘을 주며 단단히 잡았다.
그가 자조적으로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상관없지. 내가 널 잡으면 되니.”
루시안과 손을 잡자 사람들 틈을 걷는게 훨씬 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