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24)
어…… 아내니까 그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집에 있는 사람들 중에 대공자님께서 집에 계셨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사람은 알렌 영감님과 아기 마님뿐일 겁니다.”
어째서?
루시안은 혹시 집에서 박대 받고있는 걸까?
“대공자님은 저희에게 대공님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두려운 분입니다.”
“왜요?”
“알렌 영감님과 저택 증축된 곳은 다 보셨겠지요?”
“네, 봤어요.”
“그 증축을 하게 만든 분이 대공자님이세요. 저택을 자주 부수셔서 증, 개축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 분의 특기이자 취미가 파괴라서요.”
남편의 특기와 취미가 파괴…….
아리엘은 어쩐지 엄청난 사실을 들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라카트옐 가문 남자들은 특유의 위압감이 있어서 아랫사람들이 범접하기 힘들거든요.”
아. 그건 알아요.
아리엘은 과거에 만났던 흑발 청안의 사내에게서 느꼈던 위압감을 떠올렸다.
후작가에 아버지를 만나러 갔을 때의 루시안에게도 잠시 느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저희는 대공자님이 떠나시기 전에 아기 마님께 애정표현을 하실 때 다들 헛것을 본 줄 알았답니다.”
아리엘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때의 이마 키스가 떠올라서였다.
“순간 저희는 대공자님의 모습을 한 악마가 아닌가 생각했지요. 아니 아니, 둘은 같은 거니까 대공자님의 모습을 한 천사?”
어째서 달튼 머릿속의 루시안은 줄곧 악마인 거지요.
달튼이 조금 흥분하며 말을 이었다.
“아마 알렌 영감님도 그런 광경은 처음 보았을 겁니다. 그 루시안님이 결혼을 하신 걸로도 모자라 그 루시안님이 아기 마님께 입맞춤을 하시다니. 그 루시안님이요!”
그 루시안님이 세 번이나 들어갔어요, 달튼.
평소에 부르지 못하는 이름을 한풀이하듯 부르는 건가요?
아리엘은 대체 평소에 루시안이 어땠길래 사람들이 이런 반응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바탕 열변을 토해낸 달튼이 물었다.
“더 궁금한 건 없으신 가요?”
“아, 있어요!”
아리엘은 그녀에 대해 사교계가 시끄러운 것과 그림에 대해 물어 보았다.
“나에 대한 소문이 많이 돌고 있대요. 그게 뭔가요?”
달튼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대공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까?”
“네.”
아리엘이 대답하자 달튼은 조금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눈앞의 소녀는 분명 너무나 어리고 천진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주인인 대공 각하가 이 소녀에게 대외적인 것에 대해 말을 했다는 건…….
‘어린 마님을 믿으신다는 뜻이겠지.’
주인이 그렇게 판단했다면 달튼에게는 이견이 없었다.
그는 진지하게 아리엘을 마주보았다.
“아기 마님께선 그게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하신 거지요?”
“네. 나와 관련된 일이니까요.”
“말씀해드리겠습니다.”
* * *
달튼은 차근차근 루시안의 소문이 일으킨 파장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루시안이 소문을 퍼트리라고 했다는 부분은 깔끔하게 걸러냈다.
“처음엔 아기 마님의 옛 소문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정도였지요.”
“옛 소문이라면…….”
아리엘에게 병이 있거나 흉측한 외모 때문에 후작이 그녀를 내보이지 않는다는 소문일 것이다.
“그런데 후작저에서 아기 마님 몫의 물건이 나오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사실은 아기 마님이 후작님께 무척이나 사랑받는 딸이었다고 퍼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전해갔다.
아리엘이 사실은 누구나 한 번 보면 반해버릴 만큼 아름다운 아이라서 후작이 숨겨 길렀다는 것부터, 대공이 어릴 적부터 며느리감으로 점찍어 놓아서 외부에 노출이 되지 않았다는 것까지.
게다가 라카트옐 대공가의 재무관인 달튼이 은근슬쩍 공작하기까지 했으니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제국의 엄청난 부와 권력이 대공가에 몰려있는 만큼 대공가 후계자인 루시안의 혼사를 둘러싼 관심은 엄청났다.
그중에서도 얼굴조차 알려지지 않은 아리엘은 소문의 온상지였다.
“루실리온 후작께서 아기 마님에 대해 계속 함구하고 계신 것도 소문이 부풀어지는 데에 한몫했지요.”
사실 후작은 루시안의 협박 때문에 조용히 있는 것이지만.
“그러던 와중에 결혼 예물이 힐튼의 사파이어 광산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더욱 사교계가 불타올랐습니다.”
달튼이 한 박자 쉬고 이어 말했다.
“대공가에서 그만큼 귀하게 여길만한 아기 마님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고요.”
아리엘은 조금 생각에 잠겨있다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그린 그림이 그렇게 비싸지는 건가요? 사람들의 호기심 때문에?”
달튼이 고개를 저었다.
“현시점에서 그것도 하나의 요인이 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대공가에서 물건의 가격을 올리는 일은 식은 죽 먹기거든요.”
“어떻게요?”
“대공가가 가진 힘으로 자원을 독점해서 가격을 올릴 수도 있고, 대공가가 직접 투자를 해서 그 대상의 몸값을 올리기도 하지요.”
힘과 권력이 있는 자가 투자를 하는 것에 사람들은 개미처럼 몰리는 법이다.
아리엘은 여전히 어떤 과정으로 그녀의 그림이 오천만 데날이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원리만큼은 이해했다.
“이제 알겠어요. 고마워요, 달튼.”
아리엘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달튼의 방을 나섰다.
돌아가는 길에 과자를 하나씩 집어 먹으면서 복도를 가로질렀다.
지나던 길에 하녀 샐리와 안나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기 마님. 어머. 리본이 달랑거리시는데요.”
“아이. 귀여우셔라.”
얼마 전 정식으로 소개를 받은 이후로 저택의 사용인들은 아리엘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주었다.
그전에는 알렌과 돌아다니면 머리를 숙여 인사만 하는 정도였는데.
아리엘은 누군가의 관심을 얻는다는 것이 수줍으면서도 기뻐서 그들이 말을 걸면 살짝 웃어주곤 했다.
그때 정원에서 관상수를 다듬고 있던 과묵한 정원사 우즈가 창문을 통해 아리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앙증맞은 새빨간 열매가 맺힌 나뭇가지였다.
동그랗고 작은 붉은 것이 조록조록 달렸고, 나무의 가시 같은 것이 없게 잘 손질된 모양이었다.
“우즈?”
가지를 받아든 아리엘이 어리둥절하게 부르자, 그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황급히 창에서 멀어졌다.
아리엘은 나뭇가지를 구경하며 즐겁게 방으로 돌아왔다.
나뭇가지를 수잔에게 보여주자 수잔이 빙그레 웃었다.
“우즈가 드리던가요?”
“네. 근데 이게 뭔지는 안 알려줬어요.”
수잔이 거의 풀어져서 달랑거리는 아리엘의 머리 리본을 다시 매어주며 말했다.
“이건 윈터 베리 나뭇가지예요.”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아니요, 관상용이랍니다. 무척 예쁘지요?”
“네.”
수잔이 아리엘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주었다.
“2월의 첫 윈터 베리 나뭇가지를 받은 아가씨에게는 행운이 있다는 말이 있지요.”
와아…….
아리엘은 예쁜 빨간 열매가 맺힌 가지를 들여다보았다.
“그럼 우즈는 나한테 좋은 일이 생기라고 이걸 준 거네요!”
“그렇지 않을까요?”
아리엘은 나뭇가지를 조심스레 화병에 꽂아놓고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우즈에게 가서 고맙다고 말하고 올게요!”
뽀르르 달려나가는 아리엘 뒤에서 수잔이 외쳤다.
“뛰지 말고 가세요! 넘어져요!”
아리엘은 아까의 창문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나무에 가위질을 하고있는 우즈를 보았다.
낑낑대며 창문을 연 그녀는 우즈에게 손을 흔들었다.
느릿느릿 움직이던 우즈가 모자의 챙을 뒤로 당겨 그녀를 바라보았다.
“행운 고마워요, 우즈!”
아리엘은 삐약삐약 외쳤다.
목소리가 닿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우즈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받아주었다.
아리엘은 함박 웃음을 머금었다.
벌써 행운을 받은 것처럼 텅 비었던 마음이 차곡차곡 차올라가고 있었다.
* * *
그날 밤, 아리엘은 목욕을 하고 나와서 수잔이 건네는 슈가파우더를 뿌린 따끈한 우유를 마셨다.
“달아요. 맛있어요.”
“후후. 아기 마님 또래 때는 단 것이 가장 맛있는 법이지요.”
사실은 열일곱 살까지 살았었는데…….
어린아이의 몸에 있다보니 아이의 입맛이 익숙해졌다.
지난 삶에서 거의 맛있는 것을 접하지 못한 것도 아리엘이 달콤한 맛을 좋아하는데 한몫을 했다.
후작가에서 탄 귀리죽같은 것으로만 겨우 연명하던 그녀는 마법사 무리에 들어간 뒤에 몸이 망가져서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건 멀건 스프뿐이었었다.
그러니 지금 먹는 것들이 아리엘에겐 처음 접하는 맛있는 음식들인 셈이었다.
그녀는 혀를 데지 않기 위해 호호 불어가며 달콤한 우유를 홀짝거렸다.
수잔은 아리엘의 체온이 식지 않도록 두꺼운 타올로 젖은 머리를 부드럽게 비벼 말려주었다.
노래를 부르는 듯한 수잔의 목소리가 다정하게 귓가를 간지럽혔다.
“아기 마님의 머리색은 참 예뻐요. 얼굴도 하나하나 안 예쁜 데가 없으시고요.”
호록거리며 우유를 들이키던 아리엘은 그 말을 듣고 자그만 손으로 컵을 꽉 쥐었다.
요즘 집안 사람들에게 매일같이 듣는 칭찬이고, 들을 때마다 마음이 간질거리지만……
이번만큼은 기쁘지가 않았다.
“저, 수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