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251)
이 위기를 넘기지 못하면 과거와 똑같이 허망하게 죽고 말 것이다.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했었잖아.’
자신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걸 모두 했다.
이번만큼은 절대로, 타락의 뜻대로 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아리엘은 땅을 짚은 손으로 세게 흙을 움켰다.
시간은 이제 그녀의 죽음이 예정된 곳에 거의 다다라 있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타락?’
라카트옐의 승리도 머지않았다는 거야.
아리엘은 눈을 감고 온몸의 마나를 끌어모았다.
난 끝까지 라카트옐을 위해 버텨낼 거야.
그 순간 아리엘의 몸에서 선명한 붉은색의 빛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붉은빛이 비침과 동시에 엄청난 힘이 주위로 퍼져나갔다.
콰콰콰쾅!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터지고 갈라지며 바람의 폭풍을 만들었다.
뻗어 나간 그 힘이 용 마수들에게 닿자, 마수들의 몸이 불에 닿은 종이처럼 타버리기 시작했다.
키에에엑! 끼아아아악!
태워지는 마수들의 섬찟한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도 잠시, 이내 마수들은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모두 잿덩이로 사라져버렸다.
“…….”
마수들의 시체만 남아있는 대지에 선 마티어스와 세 소드마스터, 그리고 세실은 동작을 멈춘 채 말을 잃었다.
마티어스조차 처음 보는 거대한 힘이 아리엘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이, 이럴 수가!”
용 마수를 모두 잃은 타락의 진영은 이미 패색이 짙었다.
타락의 수하 마법사들이 모두 사색이 되어 폐허가 된 전장을 바라보다가 뒤로 물러났다.
승기가 완전히 라카트옐 쪽으로 기울자, 남은 마수들과 타락의 마법사들은 도망가는 것을 선택했다.
전장터는 순식간에 텅 비어버렸다.
하지만 그 전장터 한복판에는, 가냘픈 붉은 머리의 소녀가 시체처럼 쓰러져 있었다.
“아리엘!”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루시안이 달려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리엘, 안 돼!”
루시안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아리엘의 얼굴과 목 뒤를 받쳤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숨은 너무나 미약했다. 마치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그는 아리엘을 끌어안고 오열하듯 말을 토해냈다.
“아니야. 아직……! 아직 시간이 남았잖아. 아리엘, 아리엘…… 눈 떠.”
이대로라면 아리엘이 성년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목숨을 잃게 될 것이었다.
형편없이 갈라진 루시안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아리엘의 귓전에 속삭였다.
“내가 왔어. 응? 눈 좀 떠봐. 제발…….”
누구도 움직이지 못하고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모두 아리엘의 호흡에 촉각을 세울 뿐.
적막한 폐허에 타락이 등장한 것은 그 순간이었다.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간사한 뱀의 혀를 움직였다.
“내가 그 애를 되살려줄까?”
그렇게 말하는 타락의 손에는 ‘운디르의 저주’가 들려있었다.
* * *
정신을 잃은 아리엘은 자신의 의식이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몸이 무겁고 나른했다.
이대로 끝도 없이 가라앉아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한참 가라앉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점점 다가왔다.
[드디어 만났구나.]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아리엘은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 것만 같았다.
그녀의 일부가 그가 누구인지 선명히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라키엘…… 님?”
푸르스름한 빛이 가까이 다가와 아리엘을 감쌌다.
목소리가 딱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지쳤겠지. 아이야, 조금 쉬는 게 어떠냐.]아리엘은 감기는 눈을 깜박이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저는 죽은 건가요?”
[글쎄.]“루시안은 무사한가요?”
[잘 모르겠구나.]그 대답에 아리엘은 서러워졌다.
죽어서까지도 루시안이 안전한지 확인할 수 없다니. 라키엘님 나빠.
그녀는 울컥 치미는 감정을 느끼며 말했다.
“왜 그러셨어요?”
[무엇을.]“왜…… 라카트옐이 오랫동안 그런 형벌을 짊어지게 만드셨어요. 그들은 잘못한 게 없었는데.”
목이 메어서 목소리가 떨렸다.
잠시 침묵하던 라키엘이 웅웅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내게 꼭 너 같은 소녀가 있었거든.]
그 말과 함께 아리엘의 눈앞에는 반짝이는 금발에 잎사귀처럼 연한 녹색의 눈을 가진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아리엘은 그 소녀가 왠지 디트리히와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든, 내 후손이든…….]잠시 말이 없던 라키엘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간이었고, 결국 죽게 되었지.]이제 아리엘의 눈앞에는 백발의 노인 여자가 관 속에 누워있는 장면이 펼쳐졌다.
그 옆에는 기묘할 정도로 아름다운 생명체가 엎드려 슬퍼하고 있었다.
아리엘의 심장이 찌르르 울었다.
라키엘이 금발 녹안의 여자를 지독히 사랑했던 감정이 쏟아져 들어왔다.
[죽기 전에 그녀는 내게 약속해달라고 했어. 타락으로부터 자신의 사람들을 지켜달라고. 나는 그러겠다고 맹세했다.]“그래서…… 라카트옐의 모습을 취한 거군요.”
[그래. 나는 본디 어둠의 신.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몸이라 돌아와야 했으니까.대신 나는 내가 입고 있었던 드래곤의 육체를 인간으로 변모시켜 세상에 남겨두었다.]
라키엘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내 두 눈을 뽑고, 그녀를 사랑했던 심장마저 뽑아냈지.그 후에는 너무나 쉬웠다. 감정은 사라지고 남은 맹세만 이행하면 되었으니까.]
라키엘이 아리엘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눈과 심장을 제거한 존재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그날 라키엘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지.그렇게 그녀에 대한 기억을 가진 나라는 존재는 신계로 돌아왔고, 내가 남긴 라카트옐의 육체는 피가 이끄는 대로 마수와 타락을 쫓게 된 것이다.]
내막을 모두 알게 되었음에도 조금도 후련하지 않았다.
아리엘은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저는 라키엘님이 미워요. 루시안과 마티어스님을 아프게 한 당신이…… 정말 미워.”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워서 숨이 찼다.
하지만 아리엘은 힘주어 한 마디 한 마디 뱉어냈다.
“그것만은 꼭 말하고 싶었어요. 라카트옐에게도…… 그들을 사랑해서 대신 울어주고, 당신을 미워해 줄 사람이 있다는 거.”
[…….]가책을 느끼는 듯 침묵을 지키던 라키엘이 한참 만에 물었다.
[……내가 네게 뭘 해주길 바라느냐.]아리엘은 깊이 눈을 감았다.
죽음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있는 지금, 그녀가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마지막에…… 루시안 얼굴을 보지 못했어요. 루시안의 지금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것뿐이에요.”
라키엘이 나지막이 웃음 섞인 한숨을 쉬었다.
[그래. 넌 정말로…… 크림슨 하트로구나.]어쩐지 몇 번이나 들어보았던 말인 것 같았다.
[좋다. 네가 원하는 사람의 지금 모습을 보여주마. 어쩌면 네게는 낯선 모습일지도 모르겠구나.]다음 순간 가라앉던 아리엘은 몸이 확 부유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와 조우했다.
* * *
“내가 그 애를 되살려줄까?”
루시안은 눈을 들어 검은 망토를 쓴 형상을 바라보았다.
그림자나 안개의 형상이 아닌 타락의 본체였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의 살의가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