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26)
수잔은 내 다른 조건을 보지 않고 그냥 나를 좋아해주는 구나.
안온해. 따뜻해.
“잘자요, 아기 마님.”
달콤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을 느끼며 아리엘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침대에서 울지 않았는데도 다음날 아리엘의 눈은 퉁퉁 부어 왕눈이 개구리같이 되었다.
‘으으 창피해.’
부끄러워서 밖으로 놀러 나가지 않고 방에만 있었는데…….
벌컥.
점심 먹는 중에 마티어스가 방으로 들이닥쳤다.
마티어스 뒤에 집사 알렌이 서 있는 걸로 봐서 그에게 소식을 들은 것 같았다.
수잔이 바빠서 아리엘의 식사를 차리는 걸 알렌에게 맡기고 간 탓이다.
마티어스가 아리엘의 눈이 부은 걸 확인하더니 느리게 팔짱을 꼈다.
“왜 울었지.”
아리엘은 잘 떠지지 않는 눈만 꼼빡거렸다.
어제 일을 다 설명하기엔 지금 입 안에 칠면조 샌드위치가 가득 들어있어서 난감했다.
아리엘이 대답이 없자 마티어스가 방 안을 쭉 둘러보았다.
“장난감이 부족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역시나 샌드위치가 말을 막았다.
마티어스가 샌드위치로 볼록한 아리엘의 뺨을 보더니 중얼거렸다.
“역시 어린애에겐 장난감이 부족해.”
그 말만 남기고 마티어스는 다시 나가버렸다.
아리엘이 칠면조 샌드위치를 다 삼켰을 쯤에는 이미 복도에서도 사라지고 없었다.
오후쯤엔 아리엘이 울었다는 소식이 저택 전체에 다 퍼졌는지 사람들이 끊임없이 아리엘 방에 다녀갔다.
주방장 홀슨은 아리엘이 좋아하는 특제 자두 푸딩을 듬뿍해서 솥째로 올려보냈고, 하녀들은 예쁜 비단실 매듭을 가져와 아리엘의 창가에 줄줄이 걸어주었다.
심지어 웬만해선 1층을 떠나지 않는 정원사 우즈까지 찾아왔다.
과묵한 우즈는 아무 말 없이 아리엘의 방에 튼튼하고 예쁜 나무 그네를 설치해주고, 화병에 꽂힌 윈터베리를 한 번 본 뒤 자리를 떠났다.
아리엘은 새 나무 그네에 앉아서 발장구를 치다가 물었다.
“다들 왜 이러는 걸까요, 수잔?”
내가 한 번 운 게 무슨 대수라구요.
겨울 시즌에 네 번 있는 커튼 교체 때문에 오늘 하루종일 바빴던 수잔이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다들 아기 마님 걱정을 하는 거예요. 보통 아기 마님 또래는 부모님을 떠나서 한 달이나 다른 집에 있다보면 향수병에 걸리거든요.”
“하지만 난 아버지랑 오라버니 안 보고 싶은걸요.”
“다른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니까요. 그리고 안다고 해도, 어린 마님이 이 집에서 지내는 걸 힘들어할까봐 걱정할 수도 있고요.”
아리엘은 전혀 생각지 못한 수잔의 말에 놀랐다.
이렇게 따뜻하고, 배부르고, 좋은 사람들이 옆에 있는데 어떻게 라카트옐 저택을 싫어할 수 있을까?
아리엘은 그리워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향수병 자체를 겪지 못했다.
오히려 이곳에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가면 여기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았다.
“아기 마님이 이곳에 잘 적응하고 여기에서 행복하시길 바래서 모두들 저러는 거랍니다. 물론 대공님께서 저러시는 건 처음 보지만요.”
설명해준 수잔은 아리엘 방의 바깥쪽 커튼을 상아색으로 바꾸며 다정하게 말했다.
“그리고 아기 마님은 좀 더 어린애답게 구실 필요가 있어요. 누군가 좋은 걸 주면 왜 주지? 내가 받을 자격이 있나? 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 좋다. 하고만 여기시고요.”
아리엘이 벙쪄있자 수잔이 장난스레 웃었다.
“오늘같은 상황에 보통 아이였다면 더 어리광을 피울 거라고요. 이 기회에 원하던 걸 해달라고 조르겠지요.”
그렇지만 난 이미 필요한 게 다 있는걸요?
아리엘은 고개만 갸웃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 주변의 생각이 다르다는 건 오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집사 알렌은 루시안이 아기일 적에 울음을 달랬다던 거대한 독수리 박제를 꺼내 와서 아리엘이 가지고 놀도록 해주었다.
아리엘은 독수리를 보는 게 처음이라 신기해하며 윤기나는 깃털과 단단한 부리를 구경했다.
이걸 보고 울음을 터트리는 게 아니라 울음을 그쳤다는 아기 루시안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의 루시안을 떠올려 볼 수 있어서 무척이나 즐거웠다.
재무관 달튼은 아름다운 삽화가 그려진 새 양피지 그림책을 한 질 선물해 주었다.
아리엘은 신이 나서 텅텅 비어있는 책꽂이에 책들을 가지런히 꽂아놓았다.
그리고 마티어스는…….
마티어스가 자리를 떠난 지 몇 시간 만에 아리엘 방에는 커다란 장난감들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와아.”
과거 열일곱 살까지 살았기에 어린 아이용 장난감같은 것엔 그다지 관심이 없던 아리엘조차 놀랄만한 물건들이었다.
‘이건 장난감이라기보다는 예술작품인 것 같은데?’
마티어스가 선물한 장난감은 커다란 인형의 집과 방주 모양 장난감이었다.
방주 모양 장난감은 정말 대단했다.
부드럽게 사포질한 붉은 나뭇결에 하나하나 정성스레 옻칠을 해서 만든 나무 장난감이었는데, 배 안의 방끼리 맞추어서 조립을 할 수 있었다.
놀라운 건 방끼리 어떻게 조합해도 마지막 모양은 배 모양이 된다는 것이었다. 커다란 함선, 이층짜리 탑선, 안락한 방주…….
심지어 송진을 발라 마감해 실제로 물에 띄울 수도 있었다.
인형의 집은 더욱 감탄을 자아냈다.
인형의 집은 라카트옐 저택을 그대로 축소해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무척이나 화려하고 정교했다.
가구나 집 안의 구조도 거의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대공저 지붕에 얹힌 푸른벽돌이 인형의 집에서는 사파이어고, 얼음별 탑 꼭대기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다는 점 정도?
저택을 반으로 쪼개서 열자, 안에서 사람 모양 목각인형들이 앉아있거나 서 있거나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리엘은 그 중에서 가장 조그만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인형을 보고 활짝 웃었다.
‘이거 나네!’
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 인형을 보고는 살짝 뺨을 붉혔다.
“루시안…….”
두 인형을 얌전히 붙여놓은 아리엘은 기분이 좋아졌다.
예쁜 인형의 집은 들여다보고만 있어도 백 개의 이야기를 지어내며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이건 라카트옐 저택이니까.
아리엘은 자기 키의 3분의 2쯤이나 되는 커다란 인형의 집을 꼬옥 껴안았다.
이게 있다면 이혼해서 이 저택을 떠나더라도 계속 기억할 수 있겠지.
아리엘은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선물을 구경했다.
어른들이 가져도 손색이 없을 만큼 대단한 것들이었다.
두 장난감 모두 제작한 장인의 이름자가 필기체로 새겨져 있었다.
“마음에 드나?”
아리엘이 장난감을 구경하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마티어스가 물었다.
아리엘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마티어스에게로 뽀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마티어스의 다리를 한아름 껴안았다.
“네.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마티어스님.”
아리엘의 키는 너무 작고 마티어스는 너무 커서 아리엘은 겨우 그의 반토막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허리를 껴안을 수조차 없었다.
마티어스가 그녀의 머리를 매우 쓰다듬고 싶다는 얼굴로 끙 소리를 냈다.
“이게 끝이 아닌데.”
“네에?!”
아리엘이 놀라자 마티어스가 미간을 좁히며 서늘하게 웃었다.
“창밖을 봐라.”
아리엘은 도도도 달려가 창문을 열어젖혔다.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원에는, 어린 여자아이가 탈만한 화사한 나들이 마차와 하얀 조랑말들이 서 있었다.
“마티어스님! 저게…….”
“네 거다. 봄이 되면 놀이 마차로 써.”
“…….”
아리엘은 어쩔 줄 몰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좋은데 무서웠다. 이런 선물들이 그녀에게 주어진다는 것이.
마티어스가 차분하고 서늘하게 아리엘을 내려다보았다.
“너한테 과분한 건 하나도 없다. 아리엘라.”
그리고 그는 아직도 많이 남은 놀이 공간을 바라보았다.
“참, 알렌 말로는 독수리 박제를 가지고 놀았다면서. 박제도 몇 개 해줄까?”
아리엘은 펄쩍 뛰었다.
박제는 신기하긴 했지만 좀 무섭기도 했다.
“아뇨, 그건…… 진짜 동물로 만드는 건 아직…….”
“그럼 실제 크기 인형으로 해주지.”
그렇게 커다란 사슴모양 인형과 재규어 모양 인형. 토끼와 양 모양 인형이 방 한편에 세워졌다.
진짜 동물과 똑같이 생긴데다 똑같은 털 감촉을 가진 사치스러운 인형들이었다.
‘너무 많은데…….’
아리엘의 머릿속은 오늘 하루종일 받은 선물 때문에 헤롱헤롱해졌다.
그래도 다들 그녀를 신경써준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간질간질했다.
이따가 저녁 시간에 보자며 방을 나서던 마티어스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에게서 은근한 미련이 느껴졌다.
“유리 온실도 몇 개 해줄까?”
아니. 정말로 이젠 괜찮은 것 같아요, 대공님.
* * *
스스로의 외모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한 아리엘은 부지런히 저택을 돌아다니며 저택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무거운 금 태엽이 움직이는 소리는 듣기 좋구나.’
중앙 홀에 있는 커다란 괘종시계 앞에 앉아 초침이 지나는 소리를 하염없이 들으며 기억해두기도 하고,
‘아, 사자 석상의 눈에 박힌 보석이 달라.’
층마다 있는 석조 분수끼리 다른 모양을 찾아내 보기도 했다.
하루는 사슴모양 인형을 복도에서 가지고 놀다가 사슴 등에 탄 채 깜빡 잠이 들었는데,
“으음……?”
깨어 보니 그녀 주변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숨을 죽이며 구경을 하고 있어서 어리둥절했던 일도 있었다.
저택을 알아가고 내 집으로 삼는 것은 아리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예전의 아리엘은 한 번도 집이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태어나고 자란 루실리온 후작가는 악몽 같은 곳이었고, 팔려가서 머물게 된 마법사 무리의 거처는 매일 피를 토했던 곳으로만 기억에 남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대공가 저택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