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282)
그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명백히 푸른 사자 기사단이었다.
술이 담긴 오크통을 산처럼 쌓아놓은 그들은 황실 기사단과 대치 중이었다.
“우리가 모시는 레이디의 명예를 걸고 이기겠다!”
“무슨 소리! 아리엘라 공주님의 명예를 걸고 우리가 이기겠다!”
황실 기사단과 푸른 사자 기사단은 마주 앉아 술잔을 콸콸 채웠다.
“이기는 쪽이 아리엘라님의 명예를 드높이는 거다. 건배!”
“건배! 건배!”
아리엘은 떠들썩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포스스 웃었다.
다들 못 말려.
그때 아리엘 곁에 온 루시안이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추며 유혹하듯 말했다.
“너한테서 딸기 냄새가 나는데. 먹고 싶게.”
아리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무, 무슨 말이에요. 루시안은 딸기도 별로 안 좋아하면서…….
그녀의 반응을 본 그가 픽 웃은 뒤 아리엘의 허리를 감싸 홀 가운데로 이끌었다.
“춤 추자.”
신랑과 신부가 춤을 추기 시작하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루시안의 팔에 안겨 춤 동작을 이어가면서 아리엘은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대리석을 깎은 듯한 얼굴선에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짙은 푸른색 눈동자. 관능적인 상상을 부추기는 붉은 입술이 눈앞에 있었다.
다른 사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솟은 키와 늘씬하면서도 남성적인 선까지 어우러진 그는 지독하게 아름다웠다.
몸에 자연스레 배어있는 오만함과 지배자의 기세 또한 루시안을 더욱 매혹적이게 만들었다.
“긴장 풀어. 아리엘라.”
그가 재미있다는 듯 아리엘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리엘은 참았던 숨을 내쉬며 어지러움을 느꼈다.
세상에. 내가 얼마나 숨을 못 쉬고 있었던 거야?
루시안이 아리엘의 몸을 지탱해주며 나른하게 말했다.
“이제 결혼도 한 사이잖아.”
“……불공평해요.”
아리엘은 조그맣게 투덜거렸다.
난 맨날 루시안한테 정신이 팔리는데 루시안은 저런 소리를 할 여유도 있고.
“불공평하지. 그리고 난 불공평한 게 마음에 들거든.”
“…….”
아리엘은 골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야, 루시안은 완전 이기적이야. 혼자만 다 가지고.
루시안이 뇌쇄적이게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비록 내 쪽이 형편없게 불리하더라도 말이야.”
응? 루시안이 더 유리하다는 이야기 아니었어요?
아리엘이 눈으로만 묻자 루시안이 신음하듯 웃었다.
“네가 어떻든 내가 그 이상으로 네게 빠져있단 것만 알면 돼. 아리엘라.”
그렇게 말하는 루시안이 행복해 보였기에 아리엘은 배시시 웃으며 그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춤은 루시안이 리드하는대로 따라가면 돼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진짜 좀 억울하긴 한데.
아직도 이렇게 막 가슴이 보글보글한 거…….
그들의 춤이 끝나자 사방에서 휘파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리엘과 루시안이 제자리로 돌아가려던 차, 갑자기 덩치 큰 헥터와 날렵한 랄프가 나타났다.
“아기 마님, 신랑 좀 빌려가겠습니다.”
“누구한테 뭘 빌려?”
루시안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서늘하게 되물었지만 기사들은 이미 단단히 결심하고 온 듯했다.
“되죠, 아기 마님? 원래 피로연 첫날은 다 이런겁니다요!”
헥터의 눈빛에 장난기가 마구 흘러넘쳤다.
아리엘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신랑도 회포를 풀어야지.
루시안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아리엘의 허락이 떨어지자 두 기사가 루시안의 팔을 붙잡았다.
“좋아요, 좋아! 신랑의 자격을 증명하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푸른 사자 기사단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루시안을 끌고 갔다.
아까 술통을 쌓아두고 마시던 테이블 쪽이었다.
경쟁하듯 술잔을 들이키고 있던 다른 기사들이 루시안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어, 신랑이다!”
“신랑님이다!”
그 순간, 서로를 이기겠다고 기를 쓰던 푸른 사자 기사단과 황실 기사단은 한마음 한뜻으로 타겟을 바꾸었다.
‘타도 신랑!’
‘우리 귀한 레이디(공주님)을 데려가는 도둑놈!’
그들의 공공의 적은 순식간에 루시안이 되었다.
이미 거나하게 술이 오른 기사들은 겁을 상실하고 루시안의 앞에 술잔을 놓았다.
“여기 있는 사람 다 이겨야 신방으로 보내드립니다!”
“신랑은 신부를 지킬 수 있는지 증명하라, 증명하라!”
아리엘은 눈만 깜박이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아니, 서로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회포를 풀려는 게 아니었어?
당황하는 아리엘에게 다이아나가 귀띔을 해주었다.
“원래 피로연 첫날엔 신랑에게 술을 무척 많이 먹이는 게 관례야. 일종의 시험이지.”
아리엘은 놀라서 되물었다.
“시험?”
“그래. 보통은 신부 아버지와 형제들이 주도한단다. 신랑에게 먹이는…… 약간의 골탕이랄까?”
라카트옐 대공자에게 골탕을 먹일 수 있는 기회는 이번뿐이라고 생각했는지 기사들은 의욕이 넘쳐 보였다.
“더 부어!”
“혀가 마비될 정도로…….”
그들은 흥분한 채 루시안을 시험할 독주를 제조하고 있었다.
“좋아. 내 손주 사위의 술 실력을 한번 보세.”
어어?
할마마마까지 참전하시는 거야?
태후가 참가하자 분위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쯤 되자 아리엘은 슬그머니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라카트옐이라 해도, 저렇게 독한 걸 많이 마시면 쓰러질 텐데…….’
지금 루시안이 이겨야 하는 기사들은 60명이 넘었고, 태후는 루시안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감시하고 있었다.
아리엘은 말려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곧 그녀 곁에도 친구들이 몰려들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리엘, 새신부들이 꼭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대. 가보자.”
“그래. 귀부인들이 속성 강의를 해주신다나?”
떠나면서 뒤돌아본 루시안의 모습은 독한 술을 물이라도 되는 듯이 수려하게 들이키는 모습이었다.
* * *
피로연이 끝난 뒤 아리엘은 녹초가 된 채 방으로 올라갔다.
기다리고 있던 시녀들이 반색하며 그녀를 맞았다.
“이제 오셨네요!”
시녀들은 아리엘을 우유로 채운 욕조에 담갔다가 꽃 오일을 푼 욕조에 담갔다가 하며 분주하게 목욕시켰다.
끝나고 정신을 차려보자 그녀는 얇은 잠옷 재질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말리는 중이었다.
“신랑분은 방금 신방에 들어가셨어요.”
루시안이?
그 말을 듣자 아리엘은 잠이 확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시녀가 후후 웃으며 아리엘의 머리에 자잘한 장신구를 달아주었다.
“지금 연회장에 쓰러진 사람들 치운다고 난리래요. 대공자님을 술로 이겨보겠다고 한 남자들이 죄다 쓰러졌다죠?”
“그 와중에 대공자님은 걸음 하나 안 흐트러지고 나오셨대요.”
“그런 외모를 가진 분이 심지어 술도 세신가봐요.”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리엘은 라카트옐 남자들이 성년을 지나기 전엔 술에 몹시 취약하지만, 성년을 지난 후엔 술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리엘에겐 그 생각이 전혀 나질 않았다.
곧 루시안이 있는 신방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떨려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손이 막 바들거려서 아리엘은 제 손을 꼭 붙잡았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주워 들은 게 많아서 이런지도 몰랐다.
‘게다가 아까 연회 때…….’
귀부인들이 첫날밤 속성 강의라고 주워섬긴 말들은 아리엘을 겁먹게 하기에 충분했다.
대부분은 경험 없는 그녀를 놀리려고 한 말이었지만 아리엘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잔뜩 긴장하고 말았다.
시녀들의 치장이 끝나자 아리엘은 혼자 신방으로 올라갔다.
무거운 이중 문을 열자 은밀한 내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리엘은 들어가기 전 심호흡을 했다.
“후…….”
그때 불쑥 키 큰 그림자가 그녀에게 드리웠다.
“설마 망설이고 있는 거야?”
“꺅!”
잔뜩 얼어있던 아리엘은 놀란 나머지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문간에 나타난 루시안이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이건 뭐…… 괴물의 성에 바쳐진 제물이 따로 없군.”
그가 몸을 굽혀 아리엘을 달랑 안아 들었다.
아리엘은 루시안을 보고 놀란 게 민망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루시안이 비딱하게 웃고는 아리엘을 안은 채 성큼 신방의 문턱을 넘었다.
아리엘은 숨죽인 채 그의 목에 매달려 눈만 도르륵 굴렸다.
루시안은 그녀를 데리고 창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신방 안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보고 싶진 않고?”
그제야 아리엘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방의 전경을 살펴보았다.
신부와 신랑을 위한 방은 흰색과 금색이 어우러져 화려했고, 짙은 향기를 내는 과일들만 골라 담은 장식 바구니가 여기저기에 걸려있었다.
완전히 익은 과일에게서 흘러나오는 달큰한 향기가 묘하게 긴장을 고조시켰다.
아리엘이 구경하는 사이 침대 쪽으로 걸어온 루시안이 그녀를 침대 위에 사뿐히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