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305)
브루노어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다만, 제가 알기로 서부 유적 근방 마을에 비석의 내용과 비슷한 어린애들 동요가 있습니다.”
“무슨 동요?”
“-어둠의 눈물은 신의 모래시계-라는 가사를 가진 동요지요.”
“…….”
고민에 빠져있던 마티어스가 말했다.
“브루노어 자네가 그 비석과 동요가 있다는 마을 근방을 좀 더 알아봐 주게.”
“예.”
“그럴 것 없어.”
루시안이 차갑게 말을 잘랐다.
“드래곤의 눈물이 영생의 비밀이라면, 당장 시험해보면 되겠지. 아무나 붙잡아서 내 눈물을 뿌리고 죽여보면 될 일 아닌가?”
마티어스가 침묵 끝에 대꾸했다.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떤 생명체에게든 영생은 그리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아리엘은 마티어스의 말에 동의했다.
그녀와 아기를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시킬 순 없었다.
마티어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생각해봐라. 네 녀석이 아무 때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는지.”
그 말을 들은 루시안의 눈빛이 흔들렸다.
완전한 드래곤으로 각성한 뒤, 그가 눈물을 흘린 것은 단 두 번뿐이었다.
첫 번째는 아리엘이 죽음의 기로에 있을 때, 두 번째는 몇 달 만에 다시 만난 그녀가 눈앞에서 사라지려고 할 때.
모두 아리엘이 깊게 연관되었을 때 뿐이었다.
루시안은 두려움에 잠겨 이를 악물었다.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제길, 그럼 이제 어떻게…….”
“일단 아리엘이 건강해지는 게 먼저다. 아직 시간이 있어.”
이제 7개월째이니 아기가 나올 때까진 여유가 있었다.
마티어스가 루시안의 어깨를 두드렸다.
“넌 아리엘라 옆에 있어라. 나와 브루노어가 알아보도록 하지.”
마티어스는 수잔과 주방장 홀슨을 불러 아리엘의 먹을 것을 잘 챙기도록 명했다.
그간의 여정으로 지쳤던 아리엘은 침실에서 잠이 들었고, 루시안은 그 곁을 지키며 그녀의 부른 배를 바라보았다.
“…….”
그가 자기의 마나를 흘려 넣어준 뒤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자 아리엘이 수줍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아기가 아빠를 알아보나 봐요.’
그래. 알아봤겠지.
아직 각인도 받지 못한 그것을 힘으로 찍어누른 셈이니.
루시안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의 몸 안에 숨은 생명체를 향해 살기를 흘렸다.
그러자 배 안에서 부드럽게 이어지던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루시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괴물 새끼라 잘도 괴물을 알아보는군.
“네가 내 핏줄이라면 이것도 알아야지.”
그는 잠든 아리엘을 깨우지 않을 정도로만 낮게 경고했다.
“내 아내를 조금이라도 해친다면 내가 널 가만두지 않으리라는 걸.”
* * *
아리엘이 돌아온 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쌍둥이 사촌들과 방문한 태후는 말없이 아리엘의 손을 붙잡고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기만 했다.
철없는 일곱 살배기 쌍둥이는 아리엘 주변을 맴돌며 그녀의 관심을 끌려고 노력했다.
“누냐, 이거 봐. 아기가 나비 좋아해?”
“언니, 내가 잡은 사마귀가 더 커!”
쌍둥이의 호위를 맡은 세실도 아리엘을 만나 오랫동안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다.
직접 오지 못하는 카디나와 옆 나라 국왕, 베로니카는 편지를 보내왔다.
의외로 마지막에 찾아온 사람은 다이아나였다.
방 안으로 들어온 다이아나는 부쩍 마른 아리엘의 몸과 부른 배를 보고는 우는 것 같이 웃었다.
“애가 애를 가졌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리엘과 다이아나는 웃음을 터트렸고, 끝내는 같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 뒤로 다이아나는 아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기와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 어떤 것도 약속할 수 없는 아리엘을 배려한 듯했다.
대신 다이아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 들어 아버지가 결혼 이야기를 하셔.”
모니카 공작 영애인 다이아나가 적령기 넘도록 결혼하지 않았다는 건 사교계 단골 이야기 감이었다.
“나는 싫다고 했지만, 아버지도 이번만큼은 물러날 생각이 없으셔. 신분이 낮아도 좋으니 날 사랑해주는 좋은 남자를 데려오라고…….”
다이아나가 옅게 한숨을 쉬었다.
“마침 아버지께 지병이 있다는 게 밝혀져서 더 빨리 결혼시키고 싶으신가 봐.”
사실 공작씩이나 되는 가문에서 딸의 결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시켜주겠다는 건 엄청난 파격이었다.
그만큼 모니카 공작이 딸을 사랑한다는 증거였다.
“부모님 방식의 사랑도 너무나 감사해. 하지만 내겐 역시 결혼보다는 꿈이 중요한걸.”
다이아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이야기를 이었다.
“모니카 공작가는 공신 가문이고, 대대로 황실의 조언자, 책사 일을 해왔어. 나도 그 뜻을 이어 공작위를 받고 그 일을 하고 싶어. 그러니,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이 가문을 떠날 수 없어.”
잠자코 이야기를 들은 아리엘은 다이아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보여드려, 다이아나.”
“뭘?”
“세실이 모두 앞에서 실력을 뽐냈던 것처럼. 아버지에게 네가 공작위를 맡기에 충분하다는 걸 보여드려.”
“…….”
숨을 죽이고 침묵하던 다이아나의 눈에 반짝 이채가 서렸다.
“네 말을 듣고 나니 알겠어.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슬픈 표정을 지워낸 다이아나는 아리엘의 뺨에 입을 맞추고, 아리엘에게 간절한 부탁의 말을 남긴 뒤 돌아갔다.
“꼭 살아야 해. 알겠지? 절대로 포기하면 안 돼. 네가 없이는 안 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
아리엘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남들이 반대하는 꿈을 지키는 것도, 목숨과 바꿔야 할지도 모르는 아기를 지키는 것도.
다이아나가 돌아간 뒤 아리엘도 결심했다.
“아가야. 끝까지 놓지 않을게. 너도, 나도.”
그러기 위해선 드래곤의 눈물에 대해 알아내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럴 시간은 남아있지 않았다.
* * *
아리엘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잘 먹기 시작하자 아기는 깜짝 놀랄 속도로 자라났다.
그전에는 아리엘의 작은 몸집에 비해 부른 배가 커 보이는 정도였다면, 이젠 정말로 만삭같이 보였다.
아기의 움직임도 활발해져서 보글거리던 태동이 아니라 밖에서도 태동을 느낄 정도였다.
‘브루노어, 빨리 돌아와 줘요.’
그녀가 세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떠난 브루노어가 어서 돌아와 주기를, 아리엘은 매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한편 루시안은 아리엘이 잠들었을 때 잠시 나갔다 오는 걸 제외하곤 늘 그녀 곁에 머물렀다.
‘행복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오롯이 루시안을 차지하고 있는 시간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가 시시때때로 아기를 없애자고 빌긴 하지만…….
아리엘은 또다시 그녀를 설득하려고 하는 루시안의 입을 입맞춤으로 봉해버리고, 화제를 바꾸었다.
“우리, 아기 이름이나 생각해봐요. 예쁜 이름이 생각 안 난단 말이에요.”
“네가 무사하지 않으면 그것한테 이름은 없어.”
루시안이 서늘하게 한 말에 아리엘은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역시 루시안은 이름 같은 거에 관심없나 봐.
‘그럼 미리 내가 지어놔야지.’
뭐가 좋을까?
아기 이름을 짓는 수많은 부모들 중 그래도 그녀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남자애 이름만 생각하면 되잖아.’
어차피 라카트옐가에서는 사내아이만 태어나니까.
그건 오로지 아버지 쪽 유전만을 따르기 때문이었다.
이 아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종족도, 성별도 아빠인 루시안을 따를 테고, 외모도 루시안만 쏙 빼닮았겠지.
아리엘은 자신의 곁에 있는 루시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금 부럽네.’
루시안만 닮을 거란 걸 이미 알고 있는데도 아기가 자신을 조금도 닮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약간 슬펐다.
‘날 조금이라도 닮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 혹시, 그녀가 죽더라도 마티어스와 루시안이 아기를 버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아기를 무사히 낳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간 죽게 되니까.’
그때 그녀와 닮은 아이를 두고 간다면 마티어스와 루시안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아기도 엄마를 떠올릴 수 있을 거고…….
상념에 젖어있던 아리엘은 고개를 붕붕 저은 뒤 아기 이름 생각으로 돌아왔다.
‘라카트옐의 후손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이름을 짓고 싶어.’
라카트옐, 드래곤, 암흑, 사자…….
‘사자……!’
라카트옐 가문의 문장은 푸른 화염 갈기를 가진 사자 문양이었다.
아리엘의 입 밖으로 한마디가 새어나왔다.
“라이오넬.”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는데 여념이 없던 루시안이 눈썹을 삐딱하게 치켜올렸다.
“그건 또 어떤 새끼 이름이야?”
당신 아들 이름이거든요, 루시안.
아리엘은 빙긋 웃고 그에게 말했다.
“아기 이름으로 어때요? 라이오넬 라카트옐. 미들 네임은 루시안이 지어줘요.”
“싫어.”
“애칭으로는 라이라고 부를 거예요.”
이거면 완벽해. 아기 라카트옐 이름으로.
아리엘은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아기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