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4)
잘 먹지 못한 그녀의 다리는 갓 태어난 새끼 사슴의 다리처럼 가냘프고 말랐지만, 아직까지 불구는 아니었다.
‘이제 앞으로 일주일.’
그 날까지 일주일 남았다.
엿새가 지나면 지금 아홉 살인 아리엘은 생일을 맞아 열 살이 된다.
그리고 생일 바로 다음 날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단지 후작의 손님들 앞에서 그에게 창피를 주었기 때문에 맞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은, 그녀의 존재 자체 때문에 맞은 것이다.
그러니 그 순간을 어떻게 모면한다 해도 어차피 곧 그녀는 맞아 죽거나 불구가 될 것이었다.
‘그 모든 걸 반복하고 싶지는 않아.’
아리엘은 얼어서 곱은 손을 꾹 쥐었다.
과거에는 아버지와 오라비의 애정과 관심을 갈구했었다.
진심으로 그들 사이에 가족으로 섞이고 싶었다.
하잘것없는 마법으로 머리카락 색을 바꿔보려고 하다가 실패해서 더 조롱거리가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오라비는 끝끝내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시 그렇게 학대당하고 이용만 당하다가 팔리고, 버려지지는 않을 거야.’
아리엘은 조그마한 손으로 주먹을 꼭 쥐었다.
그녀는 더 이상 가족들의 애정을 바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부터 시작이었다.
앞으로 그녀의 삶에 일어날 수많은 일들은 그녀가 이제부터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바뀔 수도, 바뀌지 않을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은 불확실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도 있었다.
‘내가 일주일 후에 아버지에게 맞아서 불구가 된다는 것이지.’
일단 그것부터 막아야 했다.
그리고 아리엘이 아는 한, 미성년의 어린 영애가 아버지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결혼.’
그래서 열 살의 아리엘라 루실리온은 결혼을 결심했다.
* * *
“결혼…….”
아리엘은 조용히 그 단어를 입에 담아보았다.
결혼이라고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연을 맺는 진짜 결혼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아리엘에게는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 후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남편이 필요했다.
그 대가로 그녀 또한 남편에게 필요한 것을 줄 생각이었다.
‘계약 결혼인 거야.’
아리엘은 성에가 끼어 창백한 겨울의 창가로 다가갔다.
창에 자그마한 어린 소녀의 모습이 비쳤다.
아리엘은 비치는 제 모습에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대었다.
스칼렛 레드의 맑고 선명한 붉은색 머리카락이 허리께까지 자라 흘러내려 있었다.
아무도 잘라주거나 다듬어주지 않아서 계속 기르기만 한 머리카락이었다.
돌봄을 받지 못해 마르고 야윈 얼굴도 비쳤다.
하지만 새벽의 창백한 빛도 아리엘의 갓 내린 첫눈 같은 하얗고 투명한 피부를 감추지는 못했다.
동그란 눈망울 안에는 달콤한 스트로베리 레드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자리 잡았다.
추위에 트고 갈라졌음에도 입술은 앙증맞게 연한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아직 아기 티를 벗지 못한 이목구비 또한 무척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추하다고만 알고있는 아리엘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을 거슬러왔는데도 이상하게 생긴 것은 똑같구나.’
계약이긴 하지만 결혼을 해야 하는데 끔찍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과거 그녀는 열일곱 평생 남에게 얼굴을 보인 적이 거의 없었다.
후작가에서 살 때는 다락방에만 갇혀있었으니 일 년 중 사람 앞에 나서는 게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고, ‘그’에게 팔려 마법사들 무리에서 지낼 때에도 아리엘은 자기 얼굴을 철저하게 숨겨야 했다.
그녀가 루실리온 후작 영애라는 것을 감춰야 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의 지시였지만 아리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안 그래도 아이에, 여자에, 절름발이인데 흉측하게 생긴 것까지 약점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결혼할 남편 앞에서까지 얼굴을 숨길 수는 없겠지…….’
아리엘은 어느새 김으로 뿌예진 창문에 자그만 손을 문질러 비친 자신의 모습을 지워냈다.
남편이 되어줄 사람이 부디 계약 결혼의 조건에 외모를 두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 * *
제국의 결혼법은 이랬다.
여자아이는 열 살, 남자아이는 열두 살부터 결혼을 할 수 있다.
다만 미성년의 결혼에는 부모의 동의가 필요했다.
아리엘은 지금 아홉 살이었고, 결혼을 하려면 열 살 생일이 지나야만 가능했다.
그렇다면 탈출도 생일 이후여야만 한다.
‘언제가 가장 좋을까?’
누구도 다락방에 갇힌 그녀를 신경 쓰지 못할 만큼 후작가가 분주하고,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서 누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때.
그때 맞춰 탈출을 시도해야 했다.
곰곰이 생각에 빠져있던 아리엘의 머릿속에 문득 깨달음이 지나갔다.
‘아!’
후작가에 손님이 오는 날이면 되겠구나.
손님 대접을 해야 하니 저택이 엄청나게 분주할 거고, 식재료나 일손들이 많이 드나들 테니 어린 소녀 하나쯤은 몰래 빠져나가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로서 후작가에 손님이 올 예정은 그 날 뿐이었다.
‘모니카 공작 부부가 방문하는 날.’
과거 아리엘이 왼쪽 다리를 잃었던 날이다.
그 일의 원흉인 오라비 제롬의 나쁜 장난질은 저녁 무렵이니 그 전에 빠져나가면 된다.
운이 좋게도 모니카 공작 부부가 방문하는 날은 그녀의 열 살 생일 바로 다음날이라 결혼이 가능했다.
아리엘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 날을 탈출일로 정했다.
하지만 탈출 외에도 중대한 문제가 남아있었다.
‘부모의 동의.’
아버지인 루실리온 후작은 아리엘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게다가 마법 능력을 가진 그녀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당연히 결혼에 순순히 동의해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결혼하는 상대가 아버지보다 권력이 강하고 힘센 가문이어야 해.’
아리엘을 후작의 손에서 빼내 주려면 공작가 이상의 가문이어야만 한다.
그중에서 계약 결혼을 할 상대를 정해야 했다.
아리엘은 다락 구석에 먼지를 가득 뒤집어쓰고 쌓여있는 귀족 계보도 책에 손을 뻗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초 한 대는 넣어주지 않으면서도, 계보도는 다락방 가득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 덕에 계보도를 구할 수 있는 건 행운이었다.
책을 펼치자 어두운 방 안에 먼지가 뽀얗게 피어올랐다.
“콜록, 콜록.”
아리엘은 기침을 하며 계보도를 보기 시작했다.
제국에는 하나의 대공가와 세 공작가가 있었다.
아리엘은 그 네 가문의 계보도를 조그마한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훑었다.
‘미혼의 남자, 미혼의 남자…….’
입속으로 종알거리며 계보도를 읽어 내려가던 아리엘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세 공작가의 방계까지 합치면 꽤 많은 자손이 있는데도 그 중 아리엘과 결혼할 수 있는 나이대의 남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이 많은 공작의 아들들은 모두 결혼했거나 외국에 나가 있었고, 손자들은 너무 어려서 결혼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대로 후작의 손에 계속 붙잡혀 있어야 하는 걸까?
맞아서 불구가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아니면 이 후작가를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약한 몸으로 공격 마법을 써야 하는 걸까.
지금의 아리엘이라면 마법으로 후작과 이 집 사람들 모두를 제압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몸으로는 몇 초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게 뻔하지만.
만약 그렇게 그녀가 탈출도 하지 못하고 마법 실력을 들키게 되면 후작은 아리엘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공격 마법이 들어간다면…….
‘모두 내 손에 죽을 거야.’
아리엘이 익힌 공격 마법에 적당함이란 없었다.
쓰면 죽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되면 남는 것은 아홉 살에 살인자가 된 소녀 하나뿐.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과거와는 달리 아리엘은 더 이상 아버지와 오라비의 애정을 바라지 않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이 잔인하고 무서운 학대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마법을 쓰다 몸이 버티지 못해 자신이 죽을 확률도 있었다.
그녀는 또다시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런 아리엘의 무릎에서 두꺼운 책 하나가 흘러내렸다.
아리엘은 무심결에 책을 집어 올려서 제목을 읽었다.
[라카트옐 가(家)].“라카트옐.”
조그맣게 중얼거리자 과거의 그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라카트옐 대공가인 줄 모르고 한 짓이었지만 아리엘은 그곳의 기사들을 모두 죽였었다.
그리고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남자…….
아리엘은 마음에 무거운 돌덩이를 얹은 기분으로 계보도를 읽어 내려갔다.
많은 가지를 친 다른 가문의 계보도와 달리 대공가의 계보도는 거의 일직선에 가까웠다. 그 맨 아래로 따라가자…….
아.
“……있다.”
대공가의 자손에 미혼의 남자가 있었다.
현 대공 마티어스 엘윈 라카트옐의 아들.
[루시안 데츠몬드 라카트옐].계보도의 연도를 보니 그녀보다 네 살이 많았다.
‘남자는 열두 살부터 결혼할 수 있으니까 가능해.’
그렇다면 해가 바뀌고 아리엘만 열 살이 되면, 둘 다 확실히 결혼할 수 있는 나이가 된다.
그리고 아직 두 사람은 미성년이니까 성인이 될 때 이혼도 가능했다.
제국에서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허용하는 대신 성인이 될 때 한 번 더 결혼을 결정할 기회를 주었다.
계속 결혼을 이어가고 싶다면 다시 결혼 서약을 하고, 헤어지고 싶다면 별다른 절차없이 이혼을 시켜준다.
귀족계에는 가문 간의 이익 관계를 위해 아이일 때 서류상으로만 결혼했다가, 성인이 되어 이혼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찾았어.’
아리엘의 가슴이 희망으로 두방망이질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