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47)
싸늘한 살기가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내 아내지.”
마티어스가 무심한 시선으로 루시안을 마주 보았다.
와, 무서워.
아마 저 기세에 압도당하지 않는 건 서로뿐일 거야.
“누가 네게 뭐라고 했나? 내게 딸 같다는 것이지.”
여유롭게 대응한 마티어스는 아리엘에게 부드러운 시선을 보냈다.
아리엘은 저도 모르게 그에게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마티어스가 딸처럼 여기고 있다는 말이 가슴 안쪽을 간질간질하게 했다.
둘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본 루시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속에서 독점욕이 확 치밀어 올랐다.
그는 맞은편에 앉은 아리엘을 불렀다.
“너. 이리 와.”
아리엘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왜요?”
“내 아내니까 내 옆에 앉아.”
아, 그런 건가요?
아리엘은 쉽게 수긍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마티어스가 그녀를 막아 세웠다.
“아니다. 아리엘. 내 옆에 그대로 앉아있거라.”
어라?
“하지만, 마티어스님…….”
마티어스가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여긴 대공저니까 대공의 말을 들어야지. 안 그런가, 대공자?”
“…….”
루시안이 새파란 한기를 내비치며 마티어스를 노려보았다.
두 사람이 노골적으로 대치하자 아리엘은 그들에게서 풍기는 느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항상 둘에게서 미묘하게 느껴지던 그 느낌.
지금 마티어스와 루시안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로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영역 동물의 수컷 개체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마치 우두머리 사자와 젊은 사자 간의 대치 같았다.
‘그래도…… 둘은 아버지와 아들이잖아.’
아리엘은 대공자비로서 두 남자가 싸우는 걸 가만히 두고 보거나, 싸움을 부추길 수 없었다.
그녀는 의자를 뒤로 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만 노려보고 있던 마티어스와 루시안의 시선이 아리엘에게로 향했다.
아리엘은 자신이 생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원래 앉아있던 마티어스 대각선 옆자리도, 루시안의 옆자리도 아니었다.
그녀는 마티어스와 루시안의 정확한 중간 자리쯤에 앉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두 남자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란셀 후작 부인 말로는 집 안에서는 안주인 말이 곧 법이래요. 제가 안주인이니까 이 집 안에서는 제 말이 법인 거 맞죠?”
“…….”
“…….”
마티어스와 루시안이 동시에 침묵했다.
그녀는 생글 웃었다.
“제 법은 이거예요. 두 분이 뭐라고 하셔도 전 여기에 앉을 거예요.”
말을 마친 아리엘은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어떡해. 내가 너무 주제넘었나? 둘 다 화를 내면 어떡하지?
“하하하!”
그때 마티어스가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다는 듯 소리 내어 웃은 그가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아리엘. 대공가 일은 다 네 말이 법이지. 우리에 관한 일이라도 말이다.”
겨울같이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분위기가 스르르 풀렸다.
루시안은 여전히 무서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아리엘은 그가 살기를 거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인의 웃음을 보고 새파랗게 질려있는 집사에게 마티어스가 명령했다.
“알렌. 아리엘의 식기를 새로 가지고 와라.”
아리엘은 알렌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알렌. 식사는 다 마쳤으니까 디저트 식기만 새로 갖다 줄래요?”
“예, 예, 마님.”
당황한 얼굴을 갈무리한 알렌이 노련하게 디저트 스푼과 포크를 아리엘의 새 자리에 세팅해주었다.
‘이럴 수가. 대공님과 대공자님 사이를 중재해내시다니.’
아리엘을 보는 알렌의 눈빛은 이제 거의 신을 우러러보는 것처럼 바뀌어 있었다.
* * *
“안녕히 주무세요, 마티어스님.”
“그래.”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아리엘은 옷자락을 들어 올리며 마티어스에게 밤 인사를 건넸다.
다이닝 홀을 나서자 루시안이 성큼성큼 따라 나오며 물었다.
“벌써 자러 간다고?”
아리엘은 한 걸음으로 그녀의 두세 걸음 이상을 잡아먹는 루시안의 긴 다리를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일찍 자야 키가 많이 큰다고 했어요.”
“누가 그래?”
아리엘은 확신 가득한 얼굴로 삐약삐약 대답했다.
“수잔이요.”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하는 듯한 아리엘의 당당한 얼굴에 루시안은 픽 웃음을 흘렸다.
“안 자도 커.”
“정말요?”
아리엘의 눈이 동그래졌다.
“루시안은 그랬어요?”
보통 열네 살짜리들 보다 훨씬 큰 그가 그랬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루시안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거만하게 아리엘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하지만 넌 꼬맹이니까 빨리 자러 가. 명령이야.”
“……네.”
아리엘은 대답만 하고 루시안의 뒤를 졸졸 쫓았다.
중앙 계단까지 이르자 루시안이 휙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왜 따라와?”
서늘하게 묻는 그에게 조금 움츠러든 아리엘이 우물쭈물 말했다.
“그게…… 자러 가기 전에 드릴 게 있어서요.”
루시안이 삐뚜름하게 턱을 뒤로 젖혔다.
“뭔데?”
아리엘은 다이아나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다이아나는 아내가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알려주며, 이게 가장 기본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아리엘은 막상 루시안의 얼굴을 마주하자 어려운 기분만 들었다.
자라면서 정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본 적 없는 그녀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잔뜩 난감해진 아리엘의 얼굴을 본 루시안은 흥미가 당기는 것을 느꼈다.
그는 던지듯 말했다.
“줘 봐.”
아리엘이 불에 덴 것처럼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네?”
루시안은 살짝 미간을 좁히며 협박했다.
“준비해 왔잖아. 줘 보라고.”
갈팡질팡하던 아리엘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도망치면 루시안에게 잡혀서 달랑 들어 올려지겠지?
한참동안 망설이던 아리엘은 이윽고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리엘은 종종걸음을 쳐 루시안이 짚고 선 계단 난간으로 다가갔다.
루시안은 그의 아내가 주려는 게 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계단을 두 칸, 아니 세 칸쯤 올라 루시안과 눈높이를 맞춘 아리엘이 난간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몸을 기울였다.
중심을 잃지 않도록 난간을 꼭 짚고, 한껏 발돋움을 한 뒤…….
쪽.
아리엘은 소리나게 루시안의 뺨에 굿나잇 키스를 남겼다.
“잘자요, 루시안.”
소년의 대리석같이 흰 얼굴에 조그만 분홍색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남편에게 굿나잇 키스를 한 꼬마 아내는 얼른 남편의 눈치를 살폈다.
루시안은 굳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마 내가 실수한 건가?
루시안의 붉은 입술이 달싹이다가 열렸다.
“하. 이게 진짜 사람을 들었다 놨다…….”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친 그가 예고없이 아리엘을 확 안아 올려 어깨에 메었다.
“꺅! 루시안!”
놀란 아리엘은 주먹으로 그의 등을 콩콩 두드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루시안은 아리엘은 맨 채 알렌을 불러 말했다.
“하녀장한테 오늘 꼬맹이는 내 방에서 재운다고 해.”
“예에?”
웬만해선 정중한 알렌이 놀라서 되물었다.
“대공자님 방에서 말씀이십니까?”
루시안이 한 쪽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위험한 미소를 지었다.
흰 피부에 까만 머리카락, 붉은 입술의 대비가 강한 그가 웃자 악마적 매혹이 느껴졌다.
“설마 내가 이런 어린애한테 발정할까 봐 걱정하는 건 아니겠지.”
그가 대답도 필요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뭐. 부부 합방이라고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든가.”
와, 루시안 진짜 제멋대로야.
어깨에 둘러메어진 아리엘은 속으로만 말했다.
입을 딱 벌린 알렌을 뒤에 남겨두고 루시안은 제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기 방 침대에 아리엘을 던져둔 그가 팔짱을 끼고 을렀다.
“빨리 자. 일찍 자야 한다며.”
어이가 없었다.
지금 잠이 올 상황인가요?
뒤늦게 소식을 듣고 온 수잔이 루시안 방에 파티션을 쳐놓고 아리엘을 잠옷 차림으로 갈아입혀 주었다.
수잔은 아리엘이 늘 베고 자는 말랑하고 높지 않은 베개도 가져다준 뒤 돌아갔다.
잘 준비를 마친 아리엘은 넓은 루시안 침대 위에 조그맣게 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불을 양손으로 꼭 쥐고 갓 씻고 나온 루시안을 구경하는 것뿐이었다.
늘씬하게 뻗은 소년의 몸이 물기에 젖어 새로 갈아입은 상의에 달라붙었다.
언제봐도 참 예쁜 얼굴과 몸이었다.
루시안은 대강 젖은 머리를 턴 뒤, 벽난로 앞의 긴 의자에 앉았다.
“아직 안 자?”
그가 아리엘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