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6)
아리엘은 고개를 푹 숙이고, 숫기 없는 하녀처럼 문지기에게 심부름을 간다고 웅얼거렸다.
오늘따라 오가는 하녀들이 많았는지 문지기는 귀찮은 기색으로 작은 쪽문을 열어주었다.
문지기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에 안도하며 아리엘이 문을 빠져나가는 그때였다.
“이봐, 제프, 휴. 조금 있다가 건포도 두 포대가 들어올 거야. 제대로 확인하고 들여보내라고.”
뚱뚱한 집사가 문지기에게 다가와 말했다.
“알겠습니다, 집사님.”
“어, 근데 저 하녀는 뭐야? 이렇게 바쁜 시간에 자리를 비우다니?”
“주방에서 오늘만 고용한 하녀 아이인 것 같은데요. 심부름 간다기에 내보냈습니다.”
심드렁한 문지기의 대답을 듣고도 집사는 소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녀치곤 너무 작은데? 기껏해야 일곱 살 정도의 키잖아. 아무리 일손이 모자라도 저렇게 작은 애를 고용하진 않아. 제일 어린 하녀가 열세 살이라고.”
“엥? 그럼 저 애가 외부인이라도 된단 말씀이십니까?”
문지기 중 하나인 제프의 물음에 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오늘 들어간 사람은 모두 확인했는걸. 저런 애는 없었다구. 분명 저택 안에서 지내던 아이일……”
“……!”
그 순간 뚱뚱한 집사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드디어 저 비루먹은 소녀의 정체를 짐작해낸 것이다.
경악에 숨이 막힌 그는 컥컥거리다가 소리쳤다.
“이 댁 아가씨다. 잡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문지기 둘이 집사를 따라 소녀를 뒤쫓기 시작했다.
아리엘도 바로 뛰기 시작했지만 성인 남자 세 명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했다.
몇 걸음 도망가지도 못하고 잡혀버릴 위기였다.
‘안 돼……!’
지척까지 따라온 집사의 손이 그녀를 쥘 뻔하다가 아슬아슬하게 두건만 낚아채 갔다.
‘앗!’
두건 속에서 선명한 스칼렛 레드의 적발이 흘러내려 드러났다.
“아가씨, 이러다가 후작님 눈에 띄면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뒤에서 뚱뚱한 집사가 헉헉거리며 협박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 집에 계속 남아있으면 자신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이미 알고 있는 아리엘은 필사적이었다.
‘제발…… 제발 이번 한 번만……!’
절박해지자 본능적으로 그녀의 입술이 한 단어를 뱉었다.
“디르쉴리!”
예전의 그녀가 가장 자주 썼던 공격 마법의 일종이었다.
아리엘은 눈을 질끈 감았다.
빛이 번쩍 지나가며 뒤의 집사와 두 명의 문지기가 나가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구동되지 않았어.’
과거의 아리엘이 썼다면 세 명의 남자쯤은 산산조각으로 찢어버렸을 마법이었다.
하지만 마나를 담은 그릇이 어리고 연약해서인지, 그녀가 얼결에 뱉어버린 공격 마법은 추격자들을 튕겨내는 데에 그쳐 버렸다.
더 따라오지 않는 걸 보니 기절한 것 같았다.
아리엘은 자신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에 왠지 모르게 안도하며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순간 다리가 푹 꺾이며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흐윽.”
바닥에 푹 쓰러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이 붉게 물들며 속에서 피가 울컥 올라왔다.
속이 뒤집어질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아파. 아파. 너무 아파.
아무래도 공격 마법을 사용한 후유증인 듯했다.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낀 아리엘은 마지막 남은 힘을 그러모아 라카트옐 대공가의 좌표를 떠올렸다.
“리플라…….”
얄궂게도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과거 그녀가 라카트옐 가로 들어가 그 안의 기사들을 모두 죽였던 날, 그녀를 이동시켜 주었던 마법사가 했던 말.
‘지금 가는 곳은 결계 때문에 이동 마법으로 못 들어간다. 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서 결계를 잠시 찢을 테니, 몸이 작은 너만 비집고 들어가라.’
그 당시 그들은 아리엘에게 가는 곳이 라카트옐인 것도 알려주지 않았었다.
아, 그곳에는 결계가 있는데…….
“……즈마.”
아리엘의 입술이 주문을 마저 외자, 주인의 절박함에 응답한 몸속 마나가 그녀를 어딘가로 이동시켰다.
아리엘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눈앞에 보이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아파서 얼굴이 눈물범벅이라 건물의 형상이 어른거렸다.
엄마, 엄마, 나 너무 아파요.
고통에 몸을 웅크린 그녀의 손끝에서 조그마한 나비 모양의 마나가 날아올랐다.
하잘것없는 마법이었다.
제발 도와주세요.
가냘프게 속삭인 아리엘은 곧 의식을 잃어버렸다.
소녀가 정신을 잃은 뒤, 나비는 팔랑팔랑 날아서 건물의 어느 창틀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한겨울인데도 활짝 열려있던 창 안에서 누군가의 손이 나와 자비 없이 콱 나비를 움켜쥐었다.
여리디여린 어린 나비는 소리도 없이 손에 삼켜져 버렸다.
* * *
아리엘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어린 소녀는 소스라치며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지?’
잠에서 깨어난 곳이 낯설었다.
그녀는 매일 잠드는 딱딱한 바닥이 아니라 푹신푹신한 침대 위에서 두툼하고 보드라운 이불을 덮고 있었다.
허술한 담요뙈기만 덮던 그녀에게는 침대도 이불도 낯설기만 했다.
한겨울인데도 방 안의 공기가 훈훈하고 따뜻한 것이 아리엘이 살던 춥고 초라한 다락방과는 전혀 달랐다.
‘어, 이제 아프지 않네……?’
아리엘은 정신을 잃기 전까지 느꼈던 무시무시한 고통을 떠올렸다.
한숨 자고 일어난다고 해서 쉽게 사라질 상처가 아니었는데.
아리엘은 조그마한 머리통을 갸웃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어둠에 싸인 방 안을 둘러보았다.
아리엘이 지내던 다락방에 비해서 엄청나게 큰 방이었다.
후작가의 제일 좋은 손님방보다도 더 넓고 화려했다.
침대도 어찌나 큰지 아리엘 같은 조그마한 소녀라면 열두 명도 더 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리엘은 짧은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켠 뒤 무릎걸음으로 뽈뽈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침대 아래에는 그녀의 발에 꼭 맞춘 것 같은 자그마한 슬리퍼가 놓여 있었다.
아리엘이 털이 복슬복슬한 그 슬리퍼에 감탄하며 막 발을 뻗는 순간,
쾅.
꽤나 난폭하게 창문이 열리더니 창문으로 누군가가 훌쩍 뛰어 들어왔다.
아리엘은 화들짝 놀라며 다시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창문으로 침입한 사람이 반쯤 창턱에 걸터앉은 채 말했다.
“깼군.”
아리엘은 간신히 딸꾹질을 삼켰다.
그런데…… 여기가 1층이었나?
보름달이 가득히 차오른 밤.
밝은 달빛의 후광 때문에 창을 등진 채 창턱에 앉은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음에도 그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했다.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짧은 전율과 함께 소름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창으로 불어 들어오는 겨울의 칼바람처럼 위험하고 아름다운 기세가 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실루엣은 얼핏 남자의 것이었다.
짧은 머리카락과 늘씬한 몸. 방만한 자세까지.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에 하얀 커튼이 나부꼈다.
휘날리는 커튼 사이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네 건가?”
침입자의 손안에서 무언가가 애처로이 파닥거렸다.
아리엘은 그의 손아귀에 갇힌 나비 모양의 마나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건 다락방에 갇혀 살면서 그녀가 외로울 적마다 불러내었던 것이었으니까.
아리엘의 눈빛을 읽은 그가 입을 열었다.
“맞군.”
대답 따윈 필요 없다는 듯 제멋대로 판단 내린 남자는 아리엘 쪽으로 턱을 비스듬히 내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린 마법사 따위가 이곳엔 어쩐 일로.”
아리엘은 마법사라는 말에 움찔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싸늘하니 무서웠다.
과거, 마법은 그녀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아버지와 오라비에게 버림받고, 악마 같은 자의 손에 이용당하게 만들었다.
아리엘은 겁먹은 어조로 물었다.
“……여기는 어디죠?”
“네가 어디로 찾아온 건지도 몰랐다는 건가.”
어딘지 차갑게 말한 남자가 딱 손가락을 튕겨 창문을 닫았다.
창문이 닫히자 방 안은 조용해지고 춤추던 커튼도 얌전해졌다.
아리엘은 창문이 어떻게 닫히는지 보지 못해 눈을 도르르 굴렸다.
남자가 말했다.
“여긴 라카트옐 대공저다.”
라카트옐!
아리엘은 눈을 크게 떴다.
스트로베리 레드의 둥근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진 채 깜박였다.
아파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맞게 찾아온 모양이었다.
곧 정신을 차린 아리엘은 서둘러 대답했다.
“그럼 제대로 찾아왔어요.”
남자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너를 모르는데.”
그러는 당신은 누구신데요, 하는 물음이 아리엘의 목 끝까지 차올랐다.
남자가 싸늘하고도 오만한 어조로 말했다.
“대공자인 내가 모르는 손님도, 감히 존재하던가?”
대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