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7)
아리엘은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떠올려냈다.
라카트옐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 루시안 데츠몬드 라카트옐.
‘내가 만나려던 사람이야!’
정확히는 결혼하려던 사람이다.
하지만 정작 상대는 아리엘을 불쾌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너 같은 어린애가, 심지어 마법사가 대공가 문 앞에서 뭘 하고 있었지?”
결혼을 해야 하는데 미운털만 박히다니 난감했다.
아리엘은 간신히 용기를 내 목소리를 쥐어짰다.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대공자가 재미있다는 목소리를 냈다.
“나를?”
아리엘은 침대에서 낑낑거리며 기어 내려와 카페트 위에 내려섰다.
한 발 한 발 창가의 인영 쪽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대공자님께 부탁드릴 것이 있어요.”
얼굴이 보이지 않는 대공자가 말해보라는 듯 삐딱하게 고갯짓을 했다.
크게 심호흡을 한 그녀는 대공자 쪽으로 둥근 눈을 치켜들었다.
“저와 결혼해주세요.”
* * *
“…….”
한참의 침묵 끝에 대공자가 창턱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날랜 맹수 같은 동작이었다.
뚜벅뚜벅 다가온 그가 아리엘의 얼굴에 손을 뻗어 조그만 턱을 붙잡아 올렸다.
상대가 소년이라지만 남자에게 턱을 붙잡혀 고개가 들려진 것이 처음이었다.
아리엘은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해버렸다.
“새끼 짐승과 결혼할 만큼 궁하진 않은데.”
새, 새끼 짐승이라니.
아리엘의 하얀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사람이에요. 새끼도 아니고요.”
“인간 여자는 열 살이 돼야 결혼을 할 수 있지. 루실리온 후작 영애.”
먼저 밝히지도 않았는데 그는 자신이 후작 영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미 그는 자신이 외부에 드러난 적 없는 후작가의 치부이자 비밀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요람에 매달려 있어야 할 어린 것이 웬 청혼이지?”
아리엘은 잡힌 얼굴을 빼고 싶었지만 대공자의 손힘을 이길 수 없었다.
그녀는 잡힌 턱 때문에 불분명한 발음으로 속삭였다.
“어제…… 열 살이 됐어요. 분명 생일이 지났으니까.”
대공자의 어조가 얼핏 사나워졌다.
“열 살이라고? 일곱 살 이상으론 봐 줄 수 없겠는데.”
당연히 어리다고 생각하고 나이까지는 신경 쓰지 않은 모양이다.
아리엘도 자신이 또래들보다 작고 성장이 느리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키는 겨우 일고여덟 살만 했고, 마르고 야윈 몸집 때문에 그 나이보다도 어려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녀는 분명 열 살이었다.
아리엘은 피하던 시선을 그에게로 치켜들었다.
“정말이에요. 아우렐력 801년생이고, 올해로 열 살이 돼요. 입증할 수도 있어요.”
“…….”
역광에 잠겨든 대공자의 얼굴에선 여전히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다.
이목구비도 보이지 않았지만, 아리엘은 어쩐지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 무섭게 느껴졌다.
차라리 달빛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 지금이 편안했다.
아리엘은 조그마한 혀로 입술을 축인 뒤 그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말해야 했다.
그녀의 인생을 바꿀 시작을.
“제가 열일곱 살 성인이 될 때까지만 당신의 아내로 살게 해주세요.”
그리고 그녀는 또박또박 덧붙였다.
“저는 보호가 필요해요. 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에요. 어린 시절에 한 결혼은 성인이 될 때 끝낼 수 있으니, 그때까지만 법적으로 저를 아버지에게서 보호해주세요.”
어린애치고 꽤 당돌한 말을 들은 대공자가 나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결혼이라는 건가.”
흐음, 낮게 신음한 그는 천천히 아리엘의 턱 밑을 쓸어 올렸다.
고양이를 어르는 듯한 동작이었다.
“그래, 내가 그렇게 하면. 넌 내게 뭘 줄 수 있지?”
물음 끝에 그가 아리엘에게로 바짝 얼굴을 당겨 다가왔다.
숨이 닿을 만큼 가까워진 거리에 아리엘은 움찔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대공자가 픽, 요염한 웃음을 흘렸다.
“난 딱히 원하는 것이 없는데.”
그렇게 말한 그가 무심히 아리엘의 턱을 놓아주었다.
왠지 발끈한 아리엘은 조그만 주먹을 말아쥐었다.
“이, 일단 제대로 아내 노릇을 하겠어요. 그리고…….”
그녀는 말을 멈추고 입술 아래를 꾹 깨물었다.
치켜뜬 아리엘의 눈동자가 반짝, 예기를 띠었다.
“당신의 마법사가 될게요.”
이것이었다.
수중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아리엘이 계약 결혼의 조건으로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돈도, 권력도, 하다못해 아름다움도 없지만, 단 하나, 마법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것으로 상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법은 돈이 되기도 하고, 권력이 되기도 하니까.
대공자가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뒤로 기울였다.
“내 마법사라.”
단 하나뿐인 자신의 패를 내민 아리엘은 온 힘을 다해 삐약거렸다.
“전 이상하게 생긴데다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요. 하지만 마법만큼은, 그것만은 강해요. 예전에도…… 아니. 공격 마법은 잘 할 수 있어요.”
그녀는 과거 자신이 라카트옐 가 사람들을 모두 죽였던 걸 떠올렸다.
그중에 대공자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 자신이 적이 아니라 아군이 된다는 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을 지켜드리겠어요.”
대공자가 묘하게 탁한 어조로 물었다.
“나와 거래를 하자는 건가?”
그의 질문은 꼭 지하 세계에서 튀어나온 악마와의 계약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아리엘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하신다면 이 자리에서 마법을 보여드릴게요.”
“……쓸데없이.”
대공자의 손이 다가와 아리엘의 말랑한 뺨을 아프게 잡았다.
“아야.”
뺨을 잡힌 아리엘은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올려보았다.
대공자가 나른한 어조로 말했다.
“그 조그마한 몸에서 더 피를 보고 싶진 않군.”
뺨을 놓고 성큼성큼 창가로 간 그는 유리컵 안에 가둬놓은 나비를 풀어주었다.
아리엘은 방을 가로질러 그녀에게 날아오는 나비 모양의 마나를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조그만 손을 내밀자 나비가 그녀의 손에 내려앉아서 조금 간질였다.
마치 나 저놈 때문에 고생했어, 하고 투정을 부리는 듯했다.
아리엘은 저도 모르게 작게 웃어버렸다.
벽에 비스듬히 기대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대공자가 말했다.
“좋아. 네 제안을 승낙하지.”
아리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받아들여 주시는 건가요?”
“그래. 그 대신 나한테도 조건이 있다.”
“무슨 조건…….”
그가 까칠하게 말을 잘랐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우우. 정말이지 제멋대로인 사람이네.
아리엘은 어둠 속에서 몰래 볼을 부풀렸다.
이제 열네 살 된 소년이 맞긴 한 걸까?
그래도 나름 과거 열일곱 살까지 살았던 그녀인데도 그가 자신보다 어리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리엘은 그가 제시하는 조건이 너무 불가능한 것이 아니길 빌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이제 루실리온 후작의 동의를 얻어야겠지.”
아버지 얘기에 불안해진 아리엘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는 분명 반대할 거예요. 그리고, 대공님께서도…….”
“그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넌 그냥 내 옆에 제대로 붙어 있기만 해.”
한 점 의심도 없이 오만하게 말한 대공자가 울 것 같은 표정의 아리엘을 보고 픽 웃었다.
“내가 하기로 결정한 건 무조건 돼. 그것에 대해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네.”
“자세한 건 내일 얘기하지. 아리엘라.”
불시에 이름을 들은 그녀는 얼결에 뺨을 붉혔다.
저렇게 불린 것이 얼마 만이었더라?
대공자가 아까 자신이 들어왔던 창문을 열었다.
들어올 때처럼 나갈 때도 창문으로 나가려는 것 같았다.
아리엘은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의식의 흐름대로 불쑥 질문을 던져 버렸다.
“그런데 여긴 몇 층이에요?”
창틀에 손을 짚고 몸을 반쯤 빼내던 대공자가 삐딱하게 고개를 꺾고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얼핏, 달빛에 그의 얼굴이 비쳐 보인 것도 같았다.
얼굴에 막 관심이 가려는 찰나 그의 대답이 아리엘의 정신을 빼앗아갔다.
대공자는 무심하게 말하고 창밖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4층.”
순간 아리엘은 비명을 질러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