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70)
한 사람이 물꼬를 트자 다들 한 마디씩 보태었다.
“맞아요. 어떤 형식이든 파티이기만 하면 되니까요!”
“대공가 안주인 맞이에 초대받다니, 엄청난 영광이에요!”
급작스레 바뀌어버린 흐름에 실비아가 창백해졌다.
아리엘은 그녀를 보고 방긋 웃었다. 이런 뜻을 담아.
나를 열살 코흘리개로 봤겠지만, 사실은 잘못 본 거예요.
아리엘은 흥분해서 떠드는 영애들을 내버려 두고 걱정스러운 표정의 다이아나에게 살짝 윙크해주었다.
다이아나는 금방 걱정스러운 얼굴을 거두었다.
그때, 무도회 홀의 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와인을 들이켜던 황제가 기분 좋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왠지 다 알면서 묻는 것 같은 말투였다.
홀 안의 모든 눈동자들은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것에 시선을 집중했다.
수십 명의 시종들이 줄줄이 붉은색의 아름다운 튤립 화환을 안고 들어와 외쳤다.
“라카트옐 대공자님께서 아내분의 사교계 데뷔를 축하하며 보내신 꽃입니다!”
그 순간 안에 있는 모든 여자들은 ‘어머!’ 하며 양손으로 뺨을 감쌌다.
* * *
얼큰하게 취한 황제가 호탕하게 웃었다.
“먼 요하네스에서 여기까지 보냈다고?”
시종 중 하나가 정중하게 답했다.
“예. 게이트를 통해 보내신 후 수도에서 행렬을 하게 하셨습니다.”
“허어…….”
데뷔탕트에 참석하지 못한 친척이나 가족, 약혼자가 화환을 보내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보통은 꽃다발에서 작은 꽃바구니에 그치지만.
끝도 없이 들어오는 붉은 튤립의 향연에 황제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향기가 아주 좋군. 내가 알던 그냥 튤립 향이 아닌데?”
“향기 마법이 걸려있는 꽃입니다. 무도회의 흥을 더욱 돋게 해줄 것이라 하셨습니다.”
사교계가 크게 한 번 들썩였다.
황제도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향기 마법은 비싸다.
한 송이만 마법을 걸어도 비싼데, 저 어마어마한 양의 꽃에 전부 마법이 걸려 있다면?
이 한 번의 꽃 선물을 위해 엄청난 재물이 쓰였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무도회의 목적에도 어긋나지 않는 선물.
즐거운 연회가 되도록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향을 넣은 것까지 완벽했다.
꽃 선물이 올 거라는 언질만 받았던 황제는 턱수염을 쓸며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대공자가 그 정도로 신경을 썼단 말이지…….’
그는 조금 감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감탄한 건 황제뿐이 아니었다.
어린 소녀들은 모두 뺨을 붉히면서 아리엘을 부러워했다.
사교계에 처음 데뷔하는 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대공과 함께 입장해서 오프닝 댄스를 춘 것으로도 모자라…….
남편이 로맨틱한 꽃 선물까지 보내다니!
아리엘과 함께 있던 무리의 영애들도 동경하는 눈빛으로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들었어? 수도 행진을 하셨대.”
“어머나, 첫눈에 반해서 결혼하셨다더니 정말이었나 봐!”
다이아나와 란셀 후작 부인은 자기 일처럼 으쓱해졌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아리엘은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루시안이…… 내 편지를 읽었어.’
편지를 읽었을 뿐 아니라 기억하고 꽃도 보내주었다.
그것도 꽃다발 하나가 아닌, 엄청난 양을.
게다가 꽃은 꼭 그녀의 머리카락 색을 의식한 듯한 붉은 튤립이었다.
‘전혀 기대 안 했는데…….’
아리엘의 마음속이 간질간질해졌다.
엄청난 꽃의 양이나 비싼 향기 마법보다는 색깔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닿았다.
어느새 살그머니 옆으로 온 다이아나가 아리엘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다이아나는 누구보다도 연애담에 흥분한 모습이었다.
아리엘은 수줍음을 애써 감추며 속삭였다.
“그런 거 아니야.”
루시안이 이렇게 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라거나, 대공가 위신을 위해서라거나…….
‘그래도 기쁘다.’
그녀만을 위한 꽃은 아리엘을 미소짓게 했다.
황제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래. 대공자가 아주 로맨티스트로군. 새신랑이 된지 얼마 안 되었으니 오죽할까!”
“어린 대공자비가 벌써부터 행복하겠어요.”
황후도 한마디 거들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무도회가 더욱 아름다워졌구먼. 이 영광은 대공자 내외에게 돌리도록 할까?”
그가 잔을 들어올렸다.
“아름다운 봄의 신부를 위해 건배.”
모두가 황제를 따라 잔을 들어올렸다.
“건배!”
아리엘은 그녀를 위한 건배에 당황했지만 티를 내지 않고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황제가 와인 잔을 다시 채우며 박수를 쳤다.
“자, 그럼 여흥을 마저 즐기세.”
수십 명의 시종이 가지고 들어온 붉은 튤립의 행렬이 끝나가고, 오케스트라가 다시 음악 연주를 시작하려는 찰나였다.
“잠깐.”
서늘하고 첨예한 느낌의 목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졌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만.”
행렬의 마지막.
흐드러진 붉은 튤립보다 천만 배는 아름다운 것이 등장했다.
“……!”
아리엘은 조그만 분홍빛 입술을 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들어온 사람은 이 시각 요하네스 아카데미에 있어야 할 아리엘의 남편.
루시안 데츠몬드 라카트옐이었다.
* * *
“헉……!”
대공자 루시안의 등장에 사람들은 모두 숨 막히는 소리를 내며 놀랐다.
겨우 아홉 살에 최연소 소드마스터가 된 루시안은 현존하는 마스터들 중 가장 강하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말하자면 제국의 유명인사인 것.
게다가 그가 부친 마티어스와는 달리 매우 잔인하고 호전적인 성격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었다.
아카데미에 가면서 그가 보여준 행보는 정확히 소문과 일치했다.
루시안은 그야말로 라카트옐의 표본 같은 이미지였다.
피와 광기, 파괴와 응징을 사랑하는 바로 그 ‘라카트옐’ 말이다.
하지만, 이 순간 사람들을 가장 놀라게 한 건 다른 것이었다.
다름 아닌, 그의 외모.
라카트옐 남자들의 빼어난 외양은 건국 기록에도 나와있을 만큼 유명했다.
기록에 의하면 라카트옐의 피를 이은 남자는 누구나 수려하고 준수한 외모를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루시안의 얼굴은 그들이 이전에 알던 모든 것을 잊을 만큼 놀라웠다.
깊은 칠흑의 어둠 같은 흑발.
대리석같은 흰 피부.
소년임에도 무거운 위압감을 내뿜는 짙은 푸른색 눈동자.
지상에 외유하러 내려온 천사같이 아름답고 압도적인 모습이었다.
서늘하게 뻗은 콧날과 오만한 붉은 입술까지 더해지자, 묘하게 관능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사람들은 잠시 그가 악마나 천사, 신 중의 하나일 거라고 생각하며 넋을 잃었다.
무도회 홀은 작은 숨소리마저도 크게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
갑작스러운 루시안의 등장에 황제마저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것까지는 언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루시안이 뚜벅뚜벅 걸어서 황제 앞에 섰다.
“본의 아니게 난입이 되어버렸는데.”
그가 오만한 태도로 까딱 고개를 숙였다.
“아내가 데뷔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멀리서부터 달려왔으니 양해를.”
존댓말일 텐데 어쩐지 반말처럼 들리는 건 착각이겠지?
아리엘의 심장이 콩닥거렸다.
그는 경어를 하대처럼 들리게 하는 재능이 있는 게 분명했다.
겨우 제정신을 차린 황제가 다급히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