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Duke’s Little Lady RAW novel - Chapter (72)
아리엘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늘 하루는 자고 갈 줄 알았는데.
그리고 마법 게이트를 여섯 개나 지나야 하는데 오늘 밤까진 무리잖아!
뭐라고 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가와서 아리엘은 입을 다물었다.
“대공자님. 처음 뵙겠습니다. 토레노 공작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공작이 고개를 조아렸다.
루시안은 아리엘의 어깨를 끌어당겨 품에 붙여놓은 채 눈짓만 까딱여 인사를 받았다.
그 뒤에도 높은 귀족들이 찾아와서 루시안에게 인사를 했다.
낮은 가문의 귀족들은 아예 다가오지도 못했다.
마티어스의 철벽에 가로막힌 귀족들은 어린 차기 대공에게라도 잘 보이고 싶어 했다.
아까 영애들 무리에 있던 실비아도 부친을 따라 인사하러 왔다.
실비아는 비얀 후작가의 영애였다.
실비아가 아까보다 훨씬 비굴한 태도로 머리를 숙였다.
“존안을 뵈어 영광입니다, 대공자님. 실비아 비얀입니다.”
후작가 또한 높은 위치임에도, 대공가의 권력 앞에서는 꼼짝하지 못하고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었다.
루시안은 시종일관 눈짓으로만 성의 없게 인사를 받고는 사람들을 물렸다.
라카트옐만이 가질 수 있는 오만함이 그에게서 넘쳐 흘렀다.
거의 무시당하는 거나 다름없는데도 귀족들은 계속 루시안 주위를 맴돌았다.
그의 그림자라도 구경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고위 귀족들이 인사를 하고 물러간 다음.
아리엘은 루시안의 옷깃을 살짝 당겼다.
“루시안. 인사받는 거 싫었어요?”
“왜.”
“그냥, 그런 것 같아 보여서요.”
“귀찮으니까.”
“그럼 마티어스님처럼 아예 접근을 못하도록 기세를 내보내면 됐을 텐데…….”
루시안이 벽에 비스듬히 기대며 서늘하게 눈을 빛냈다.
“난 네가 유리한 고지에서 싸우길 원하거든. 그러니 내가 널 싸고돈다는 걸 저것들에게 보여주는 거지. 일종의 위협으로서.”
어라…… 조금쯤은 날 위해서였던 걸까?
아리엘은 약간 헷갈려졌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봐서인지 루시안의 외모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아리엘은 우월한 미색이 돋보이는 그의 얼굴을 너무 빤히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몰래몰래 보던 그녀는 발견했다. 그가 넥타이를 매고 있지 않은 것을.
“루시안. 넥타이가 없네요.”
근데 왜 여태 아무도 몰랐던 거지?
얼굴만 보느라 몰랐나?
자세히 보니 넥타이가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예복 앞섶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꽂혀있었다.
“넥타이 매야죠.”
루시안이 귀찮다는 듯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딴 건 안 매도 상관없어. 내가 안 두르면 그게 관행이 될 거다.”
“하지만…… 난 그게 관행이 되는 건 싫은걸요.”
넥타이 한 남자가 더 멋있단 말이에요.
아리엘이 조그맣게 중얼거리자 루시안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워낙 비현실적인 외모라 찌푸리는 것조차 숨이 막히게 아름다웠다.
마침내 그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좋아.”
아리엘의 얼굴이 환해졌다.
루시안이 칼같이 조건을 덧붙였다.
“단, 네가 직접 매주면.”
사악해!
내가 넥타이 못 매는 거 다 알면서.
아리엘은 억울함에 조그만 양 주먹을 꾹 쥐었다.
루시안이 붉은 입술 끝을 올렸다.
“맬 줄 모르겠지. 당연히.”
“읏…… 매, 매주면 되잖아요.”
아리엘은 한껏 발돋움을 해 루시안의 앞섶 주머니에 처박힌 넥타이를 끄집어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란셀 후작 부인에게 물어봐 놓을걸.’
넥타이 매는 법을 배워놓지 않은 스스로에 대한 후회가 들었다.
아리엘은 루시안에게 요청했다.
“고개 좀 숙여주세요.”
“왜. 손이 안 닿나?”
말투는 비뚜름한데 순순히 고개를 숙여준다.
아리엘은 넥타이를 그의 목에 두른 다음 끙끙대며 매듭을 짓기 시작했다.
그래. 타이도 그냥 매듭이잖아. 하다보면 쉽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보는 거랑 직접 매는 건 난이도가 천지차이였다.
아무리 열심히 매듭을 지어보아도 봤던 모양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리엘이 완성한 넥타이는 나비매듭의 변종 같은 끔찍한 모양새였다.
그 꼴을 보고 있던 루시안이 쿡쿡거렸다.
“다 됐어?”
“……네.”
아리엘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이거야 원. 오늘 데뷔한 내 아내가 넥타이때문에 망신을 당할 판이군.”
루시안이 목에 걸린 이상한 매듭을 스르르 풀어냈다.
“다시 해 봐. 도와줄 테니까.”
“하지만…….”
그가 은근슬쩍 협박했다.
“명령이야.”
아리엘은 루시안의 말대로 다시 넥타이를 잡았다.
“엇갈리게 놓고…… 그래. 뒤로 돌려 감아. 위로 빼낸 다음, 고리 사이로 넣고. 매듭부를 가리게 다시 한번.”
여전히 버벅거렸지만 차근차근 루시안 말대로 따라하자 넥타이 비슷한 모양으로 매였다.
“어, 됐나? 된 거예요, 루시안?”
루시안이 입술을 비틀며 요염하게 웃었다.
“그래.”
아리엘은 조금 떨어져서 그를 살펴보았다.
넥타이를 매든 안 매든 예쁜 얼굴이었지만, 웃고 있으니 더 그림 같았다.
“잘 어울려요.”
그가 유혹적으로 속눈썹을 움직이며 나직하게 말했다.
“다음엔 안 도와줄 텐데.”
아리엘은 새빨개지며 대꾸했다.
“무슨…… 나, 나도 루시안 도움 안 받을 거예요.”
이때, 아리엘은 모르고 있었다.
넥타이를 매주며 속닥거리는 어린 부부의 모습을 사교계의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사교계에는 난폭하고 잔인한 대공자를 길들인 대공자비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 *
봄 황궁 무도회는 성황리에 끝났다.
아리엘 또한 무사히 데뷔탕트를 마쳤다.
“남편은 최연소 소드마스터고, 아내는 최연소 데뷔탕트 레이디네요!”
“그러게요. 이렇게 멋진 데뷔탕트는 처음 봐요.”
황후는 특별히 아리엘을 불러서 귀한 향료병을 축하 선물로 내렸다.
아리엘은 ‘이것도 제국에 두 개밖에 없는 건 아니겠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다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황후 마마.”
집으로 돌아가기 전.
이번에는 황제가 라카트옐 남자들을 불러 세웠다.
황제의 앞에 선 마티어스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마치 작작 질척대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하…… 요하네스 소식이 궁금하니, 대공자만 잠시 남아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할까.”
황제가 꼬리를 내려 마티어스 대신 루시안을 붙잡았다.
‘폐하, 그거 잘못된 선택이에요.’
아리엘은 황제에게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었지만, 차갑고 불길한 미소를 머금은 루시안이 먼저 승낙해버렸다.
“가 있어.”
“……네.”
아리엘은 뒤를 돌아 루시안을 몇 번 바라보다가, 마티어스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마차에 올랐다.
동그란 유리창 안으로 달빛이 흘러들어오는 마차 안은 고요했다.
대공가 소유의 마차라서 내부가 무척 호화로웠다.
반원 모양의 붉은 소파 좌석이 마련되어 있어 아리엘과 마티어스는 조금 떨어진 채 나란히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