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Surgeon RAW novel - Chapter (1200)
6화
구성원 문제였다.
경기복 과장이 티가 날 정도로 각을 세웠다.
“내과, 방사선과도 모자라 간호과에 지원 부서까지 정회원 자격을 주자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같은 의사라 해도 말이 나올 판인데 이게 말이 됩니까? 전례가 없는 일이고, 학술적인 면은 물론 행정적으로도 큰 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눈매가 다소 날카로울 뿐 체격이나 얼굴 모두 평범한 경기복 과장이 손사래를 치며 난색을 표했다. 말마따나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들어가야 했다.
“누구나 우려를 제기할 방안이긴 하지만, 간 이식의 특성상 회원 범위를 폭넓게 잡아야 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지 않습니까?”
“다른 학회도 관련 분야가 많지만 가장 밀접한 관계를 지닌 내과와도 같은 학회를 구성하지 않는데, 간 이식 학회만 특별하게 생각할 이유가 있습니까?”
“스스로 찾아온 환자들을 치료하는 부분과 간 이식은 성격이 상당히 다른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첫 단계인 장기 기증 확인과 승인부터 의사들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들을 배제한다면 현 상태에서 정체될 것이 분명합니다. 발전을 도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기복 과장이 고개를 저었다.
“행정 문제는 행정에 맡겨야죠. 솔직히 간호과도 그래요. 명색이 학술 단체인데 무얼 배우겠다는 겁니까? 우리가 지시한 바를 잘 따르고, 이행하면 되는 겁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시죠. 우리가 세부 분야로 나누어지는 것처럼 간 이식에 특화된 전문 간호사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느끼는 문제점을 함께 파악하고, 개선해 나가야 수술 성공률도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그 부분은 각자 내부에서 진행하면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나설 이유가 없어요. 무엇보다 학회장부터 임원까지 직접 선출해야 하는데 누가 학회장으로 적합한지 간호사나 행정 직원이 알 수 있겠습니까?”
예상했던 문제였다.
김지훈이 가볍게 응수했다.
“저도 학회 성격상 학회장은 일반외과 의사 중에서 선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우려하시는지 잘 알지만 각 병원에서 후보를 추대할 테니 문제도 없을 테고요. 다만 분과를 만들어 해당 분야 모두 임원 한 명씩은 선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원이면 투표권을 줘야 하지 않습니까?”
“당연한 일 아닌가요? 각 병원 대표자가 한 표씩 갖고, 다른 분야는 임원들에게만 주어진다면 의사 입장에서도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겁니다. 사실 학회 규모가 커졌을 때 누리는 장점도 많지 않겠습니까?”
김지훈은 완강했다.
대표자 선정과는 분명하게 다른 태도를 보였다.
절충점이 없는 제안인 탓에 합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경기복 과장이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장점? 단점이 더 많겠지. 의사들에게 지지를 요청하는 것도 힘든데 다른 분야에 로비까지 해야 한다면 내가 불리해. 게다가 이런 제안을 한 이상 이미 접촉하고 있다는 말이잖아? 전문 병원도 초대 학회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 이거군.’
누가 후보로 나올까?
김지훈이 부원장인 이상 가능성이 가장 높았지만 진충기 교수도 배제할 수 없었다. 전문 병원으로 이직한 이후 간 이식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이상 무리한 추측이 아니었다.
‘진충기는 절대 안 돼. 만에 하나 쫓아낸 사람이 학회장이 되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어? 김지훈도 마찬가지야. 나보다 훨씬 젊은 의사에게 밀렸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부원장 자리는 아예 쳐다보지도 못한다.’
출세의 발판인 학회장이 되기 위해서 가장 유리한 방법은 현 입장을 고수하는 길뿐이었다. 이런 때를 대비해 그동안 친분을 쌓아 온 의사들 이외에 어떤 사람도 허용할 수 없었다.
대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불리했다.
딱 잘라 말하는 것만이 답이었다.
“반대합니다. 기존 학회와 동일한 방식으로 구성하고 운영해야 신설 학회가 잘 굴러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죠. 부산 병원도 우리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뭐겠습니까? 더구나 의사만 중심이 되는 시대도 아닙니다.”
경기복 과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부산 병원과 힘을 합쳤다? 노골적으로 학회장 자리를 갖겠다는 소리군. 학회가 내 손에 있어도 인정받기 힘들 수 있는데 그렇게는 안 돼.’
“아닌 건 아닙니다. 다른 병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사람들까지 이미 접촉한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합니다.”
“곤란하다니요?”
“기본적으로 순수 학술 단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말입니다. 일반외과 의사의 역량을 키우는 최우선 사업으로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지훈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포기할 때가 아니었다.
행여 있을지 모를 오해를 풀기 위해 전문 병원이 내세운 원칙과 기본을 자세히 설명했지만 경기복 과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진충기 교수는 말이 없었다.
손일석 역시 눈가를 좁힌 채 듣기만 했다.
결국 가장 기본적인 사항조차 합의하지 못했다. 만날 때마다 평행선을 달릴 수 없는 노릇이었고,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았다.
김지훈이 결국 강수를 두었다.
“저나 과장님이나 서로의 의견을 굽힐 상황이 아니군요. 날짜를 잡아 병원 대표들만이라도 모여 과장님 안과 우리 병원 제안을 두고 투표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경기복 과장이 눈매를 좁혔다.
‘투표로 결정하자? 어차피 김지훈과 끝까지 대립하며 시간을 끌어 봐야 죽도 밥도 안 된다. 내게 가장 유리한 방식일까? 지역은 참가하기 힘들 테니 서울 지역 대표 네 명만 뜻을 모아도 가능하다.’
“꼭 그래야 하는 일인지 의문스럽지만 원한다면 투표로 결정하죠. 단, 시간이 촉박하니까 일주일 후에 진행합시다. 위임장으로 대신하는 것은 안 됩니다. 직접 참석할 열의조차 없다면 참석한 사람들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학회 설립이 급하기는 하지만 먼저 지역 대표를 선출해야 하고, 양 병원의 의견도 충분히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표 모두 모여야 여덟 명에 불과하고, 거점 병원이 있는데 누가 해야 할지 빤한 거 아닙니까? 얼굴을 봐야 상의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니고요. 다들 바쁜데 오히려 전화나 메일이 유용할 겁니다.”
김지훈이 망설였다.
아무리 편리한 방법이라도 직접 얼굴 보며 설명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낼 수는 없었다. 더욱이 투표권을 가진 병원 절반이 서울에 있어 H 병원이 가장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손일석과 진충기 교수의 의견을 물어야 했다.
‘어떻게 할까요?’
부원장과 과장이 상의하는 자리인 탓인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생각이 다를 리 없었다. 그런데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하라는 말이네. 후우! H 병원 이상으로 발품을 팔자는 말이겠지.’
“좋습니다. 일주일 후에 뵙겠습니다.”
“김지훈 선생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의사에겐 의사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자존감이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먼저 지키지 않으면 존중해 줄 사람도 없어요. 사람 많아야 분란만 초래할 테고요. 중간에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연락해도 좋습니다.”
자리가 끝났다.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우리 제안이 무리일까요?”
“학회장을 노리는 것이 분명한 경기복 과장에게 불리한 제안일 뿐입니다. 솔직히 주요 병원 중 간 이식 수술 성과가 가장 처지는 병원에서 무리한 욕심을 부리는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진충기 교수가 단언했다.
손일석이 이죽거렸다.
“일주일 후에 보자고? 에이! 적당히 사람 만나는 일 즐기려고 했는데 날 너무 자극하네. 노골적으로 나온다 이거지? 김 부원장, 간만에 발바닥에 땀 좀 내 보자.”
힘이 되는 말이었다.
김지훈도 가슴을 폈다.
“그래. 진상건을 내쫓은 우리가 이 정도 어려움에 무릎을 꿇을 사람들이 아니잖아. 가 보자. 우리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의욕이 솟네.”
경기복 과장이 오히려 전의를 자극했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이미 서울 지역 대표로 내정된 의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고 있었다. 목적이 무엇이든 학회를 제대로 만들어 확실하게 이끌어 간다는 확신을 준다면 환영할 일이기도 했다.
금요일 저녁.
별다른 소득도 없이 일거리만 잔뜩 안은 채 귀갓길에 올랐다. 무겁고 답답한 분위기일 줄 알았건만 도리어 활기가 돌았다.
“선생님, 일전에 전화드렸던 손일석입니다. 이번 주까지 각 지역 대표 한 분을 선출해 학회 설립 방향을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바쁘시더라도 호남 지역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메일로 보내도 되겠습니까?”
“김지훈입니다. H 병원 경기복 과장님과 상의한 결과 알려 드리려고 또 전화했습니다.”
연락해야 할 병원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지방은 병원 간 거리가 먼 상황에서 대표를 선출해야 하기에 늦은 시간을 무릅쓰고 전화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꽤 시간이 걸렸다.
“일석아, 서울 지역은 언제 다 연락하지?”
“일단 전 병원에 다 연락을 해야겠지만 서울 지역 대표가 나올 병원은 빤하잖아. 그쪽을 집중 공략하자고. 진충기 선생님도 따로 연락하기로 했으니까 우리 제안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거야.”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김지훈도 편안한 표정으로 웃었다.
일 좋아하는 사람 없다. 하지만 금경태부터 진상건까지 의사가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이 정도 어려움은 웃으며 헤쳐 나갈 공력이 쌓이지 않았으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만약 경기복 과장님이 학회장이 된다면 잘할 수 있을까? 부원장 이상이 목적이라면 학회장 자리만 꿰차고 뒷짐 지는 일은 없겠지?”
“학회가 유명무실하면 도리어 욕먹을 텐데 당연히 그렇겠지. 하지만 사적인 이해관계가 걸렸을 때 어느 쪽으로 튈지 누가 알겠어? 직접 만나 보니까 생각이 달라진 거야?”
“사람 판단 함부로 하면 안 되잖아. 솔직히 학회장 혼자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끌어갈 수도 없을 테고, 견제 장치를 만들면 방지할 수도 있고 말이야.”
손일석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약한 소리 하지 마. 우린 종합 병원 건립과 단단한 학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해. 사심이라면 사심이지만, 난 살고 넌 죽어가 아니라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는 일인데, 그 정도 욕심 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이대로 쭉 밀고 나가야겠지?”
“당연하지. 가만히 앉아서 끌려 다니는 건 우리 체질이 아니야. 환자든 병원 일이든 주도적으로 나가야 후회할 일도 없는 법이다.”
맞는 말이었다.
경기복 과장의 개인적 시각을 떠나 이미 경쟁에 뛰어들었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원칙을 갖고 있는 이상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이었다.
김지훈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단 한 번도 감투에 욕심을 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최소한 전문 병원에서 학회장을 배출했으면 하는 바람이 무척 컸다.
‘은근히 욕심나네. 내가 변하는 걸까? 세상이 변하는 걸까? 아니면 학회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일까?’
“김 부원장님, 잡생각 하지 말고 운전 똑바로 하세요. 다음은 어디에 전화를 해야 하나~ 시간이 늦었는데 내일 해야 되나~ 안면몰수하고 오늘 해야 하나~ 고민이네요.”
노인네들 목욕탕에서 흥얼거리듯 손일석이 리듬을 타며 전화번호를 뒤적였다. 여유로운 모습에 덩달아 마음이 편해졌다.
‘일석이도 훌륭한 후보가 맞네. 덜렁거리는 것처럼 보여도 누구보다 잘하겠지?’
지금쯤 전화기를 들고 열변을 토하고 있을 진충기 교수까지 정말 든든했다. 어쩌면 이런 동료들과 함께하기 위해 진상건과 싸웠는지도 몰랐다.
띠리리리!
‘이 시간에 누구지?’
“어! 현수야, 이사장 일 보느라 바쁠 텐데 웬일이야? 윤서연 선생에게 대충 말을 듣고 있지만 연락하고 싶은 거 꾹 참고 있다.”
(말은 고맙다. 학회 설립 작업 시작했다며?)
“종합 병원 건립에도 바짝 신경 쓸 테니까 걱정 마. 설마 그 일 때문에 전화한 거야?”
(나도 간 이식 수술 팀이야. 개인적으로 우리 김 부원장이 학회장까지 하면 좋겠다.)
“민 부원장이구나?”
(사정 얘기하면서 설득해 달라고 부탁을 받긴 했는데 내 생각도 다르지 않아. 너 정도 경력이면 학회장 자격이 넘치고도 남아. 겸사겸사 인사도 할 겸, 꼭 연락해야 하는 분들 번호 문자로 보내 줘.)
고마웠다.
한편으로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잘나 성공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친구와 선후배의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이 없었다면 결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신 이사장님! 손일석입니다. 지금 바로 문자 보내니 확인하세요. 딸랑딸랑!”
김지훈이 크게 웃고 말았다.
이런 날 정말 즐거워할 수 있다니 변한 것만은 틀림없었다. 하긴 세월과 경험이 주는 힘이 얼마인데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끙끙 앓는다면 바보가 따로 없을 것이다.
운전대 단단히 잡고 액셀 밟았다.
밤공기를 시원하게 갈랐다.
“야야! 속도 넘어간다. 과속이야.”
“카메라 없다. 120 정도는 밟고 가자.”
“과태료 날아오면 네가 내. 월급 많이 받는 놈 대신 벌금 낼 내가 아니다.”
“하하하!”
저는 더 밟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