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Surgeon RAW novel - Chapter (852)
3화. 쌓여야 경험이다 (1)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 날, 바로 당직이다.
“여보세요?”
(나종진입니다. 48세 남자 환자로, 3주 전 라파로로 담낭절제술을 받은 환자입니다. 수술 이후 발생한 지속적인 우상복부 동통으로 내원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동안 모든 환자를 수술 후에도 진료한 것은 아니었다. 집이 멀거나, 시간이 안 된다는 이유로 다른 병원에 추적 관찰을 의뢰한 경우가 제법 있었다.
그중 한 명에게 문제가 생긴 걸까?
일단 자리부터 정리해야 했다.
“경석이 형, 현수야, 환자 있어서 응급실 간다. 오늘 못다 한 말 내일 꼭 하자.”
“흥분하지 말고 환자 잘 봐.”
곰곰이 3주 전을 되짚으며 응급실로 내려갔다.
한두 건 수술한 것도 아니고, 수술 중 문제가 있었다면 모를까 기억날 리가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별생각이 다 들며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왜 이제 왔지? 어디에 문제가 생긴 거지?’
나종진과 오하석이 재빨리 달려왔다.
“복막염이 의심돼 지금 복부 CT 찍는 중입니다.”
“수술한 지 3주나 지났는데 복막염이라고?”
이제 와 수술 부위에 문제가 생겼을 리 없었다. 개복이었다면 모르지만 통상적인 담낭 절제술에서는 거즈 한 장 사용하지 않아 다른 원인도 있을 수 없었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어디가 터진 것 같아? 특별한 병력은 없어?”
“우상복부에서 압통과 전형적인 반사통이 관찰됩니다. 아무래도 담낭관이 새고 있다는 의심이 듭니다. 아! H 병원에서 수술했습니다.”
‘이 자식을 콱 그냥! 진즉 얘기하지.’
등짝을 적신 식은땀이 차갑게 식었다. 그만큼 두려운 일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김지훈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과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성급하게 예단했다. 하긴 혼자 북 치고 장구 친 사람 잘못이지, 후배 탓을 할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매우 드문 합병증이 발생했다는 말이었다. 무척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무엇보다 궁금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이젠 환자까지 H 병원과 관련됐다.
인연인지, 악연인지 모를 일이었다.
“H 병원? 복강경 센터까지 있는데 왜 우리 병원에 왔지? 수술한 의사하고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 누가 수술했대?”
설령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간다고 했어도 김지훈이 있는 병원을 권할 리가 없었다. 스카우트로 시작된 인연이 악연으로 변할 것 같은 상황인지라 더욱 의아한 일이었다.
“수술은 오창도 선생님이란 분이 하셨답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수술 후 통증이 지속돼서 몇 번 진료를 받았는데, 그럴 수 있다는 말만 들었답니다. 초음파 이외에는 특별히 검사를 권하지 않았고, 지금은 통증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해져서 우리 병원으로 왔다고 합니다.”
수술 환자는 웬만한 이유로 병원을 바꾸지 않는다. 특히 수술 직후 통증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더욱 그렇다. 결국 집도의가 신뢰를 잃었다는 말이었다.
수많은 수술을 시행하고, 어려운 질환을 다루는 병원일수록 환자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더구나 명예나 명성에도 큰 영향을 끼칠 일이었다.
최고의 써전을 꿈꾸는 진충기가 이를 간과할 리 없을 텐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오창도라는 의사의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환자가 아니더라도 발 벗고 나서야 마땅했다.
‘수술받은 환자가 임의로 병원을 바꾼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뭐지? 진충기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잠시 후, 복부 CT가 나왔다.
김지훈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어디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일까?
당연히 담낭은 보이지 않았다. 클립 몇 개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보였고, 수술 부위 주변의 유착이 함께 관찰됐다. 문제는 간 하부에 고인 액체 덩어리였다.
분명 담즙이었다.
결국 담낭관을 묶었던 클립이 떨어져 나갔거나, 총수담관에 손상을 주었다는 의미였다.
더구나 3주면 유착이 진행될 대로 진행된 시기다.
어떤 경우든 결코 쉬운 수술이 아니었다. 합병증이니만큼 더욱 자세하게 봐야 했다.
“종진아, 어떻게 보여?”
“담낭관을 잡은 클립이 헐거워진 게 아닐까요?”
“그렇지? 3주나 버텼으니까 총수담관 손상은 아닐 거야.”
“오하석, 너는?”
묵묵부답이다.
아무리 뛰어나도 1년 차라는 사실 어디 가지 않는다. 그래도 매서운 눈길 한번 줘야 정신 바짝 차릴 것이다.
스윽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담낭이 제거된 부위 옆으로 구불구불 검고 굵은 선이 보였다. 공기가 아닌 이상 액체라는 의미였다.
문제는 이런 양상을 보일 구조물이 없는 부위라는 점이었다. 달리 말하면 아무것도 없어야 할 자리에 무언가 있다는 의미였다.
“담낭을 절제한 자린데 도대체 이게 뭐야? 조직이 겹치면 이렇게 보일 수 있나? 수술 후 유착이 이렇게 보이는 건가?”
나종진과 오하석도 눈을 부릅뜨며 검은 선의 의미를 찾으려 애썼지만 통상적으로 볼 수 있는 소견이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던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이건……. 설마 이게?”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뇌리를 스쳤다.
Folded Gallbladder(굴곡 담낭)!
담낭이 심하게 꺾인 형태로 매우 드문 경우다. 담즙이 담긴 몸통과 담낭관이 연결되는 꼬리 부분이 심한 경우 90도로 꺾여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꼬리 부분의 굵기다.
통상 보는 담낭과 비슷하다면 바로 인지하고 대처하지만 상당히 가는 경우가 있다. 최악의 경우 담낭관으로 오인하고 담낭 중간을 묶는 수가 있다.
결국 돌이 있거나 염증이 생겨 증상을 유발한 부분이 남게 된다. 클립이 제대로 물리지 못해 담즙이 새는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선생님, 이게 뭡니까?”
“굴곡 담낭 같다. 거의 확실해.”
답은 항상 교과서에 있다.
나종진이 굴곡 담낭에 대해 빨리 찾아보라는 눈짓을 했다. 오하석이 상황을 살피고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다시 한 번 꼼꼼히 확인했다.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지만 가장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다른 장기 손상도 배제할 수 없지만 반드시 유념해야 할 상황이었다.
‘희한한 경우에 걸렸네. 이걸 어쩐다?’
김지훈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곧바로 수술해야 할 상황이었다.
다른 병원에서 수술받았고, 합병증까지 발생했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에게 반드시 연락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일단 환자부터 만났다. 나종진의 말처럼 부분적인 복막염 증세를 보였다.
진찰하는 동안 환자가 유심히 가운에 적힌 이름에 시선을 주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를 나직한 한숨을 터트렸다.
“선생님, 왜 이렇게 아픈 겁니까?”
의료 과실에 가까운 사안이라고 의사를 두둔할 문제가 아니었다. 동료 의식에 거짓말을 하거나 둘러대면 상황만 꼬일 뿐이었다.
보이는 대로,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
“담즙이 배 속으로 새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증상이 유발됐고, 원인은 담낭 일부분이 남아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매우 특이한 담낭 형태에서 비롯된 일로 짐작되지만, 수술해 봐야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얼굴이 일그러진 환자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쓸개가 남아 있다고요?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죠?”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담낭이 남아 있는 것도 모자라 3주 동안 이유도 모르고 고통에 시달렸다. 환자 입장에서는 불같이 화를 내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십분 이해하고도 남았다.
“지금은 다행히 수술 부위 주변에만 담즙이 고여 있지만, 배 속 전체로 퍼지게 되면 다른 문제까지 유발될 수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남은 담낭과 담즙을 제거해야 합니다.”
한동안 입도 열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의사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말도 못할 것이다.
김지훈으로서도 보통 곤란한 일이 아니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수술받은 병원에서 재수술을 받는 것뿐이었다. 신뢰 유무를 떠나 환자 배 속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H 병원으로 가시기를 권합니다.”
“H 병원으로 가라고요? 배가 아파 죽겠다는 사람한테 2주 전에 달랑 초음파 한 번 하고, 별문제 없다는 소리만 한 병원입니다. 그 병원은 쳐다보기도 싫습니다.”
“수술한 의사가 배 속 상태를 가장 잘 알 수밖에 없습니다. 복강경 센터까지 운영하는 병원이니까, 수술받으시면 순조롭게 회복되실 겁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황스러운 반응이었다.
김지훈이 얼굴을 붉히며 한마디 하려는 나종진을 슬며시 막았다. 여기서 화를 낸다면 일개 병원에 대한 불신이 전 병원과 의사에게로 퍼질 것이다.
냉정하게 대처해야 했다.
애꿎은 사람에게 분풀이하는 꼴이었지만, 같은 의사라는 사실 때문인지 한숨만 나왔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똑같은 놈들로 보일 수 있었다.
“어떤 기분일지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흥분보다 어떻게 하는 것이 환자분에게 가장 유리한지부터 생각하셔야 합니다.”
조용한 말투에 다소 진정된 모양이었다.
“수술하신 분도 아닌데 목소리를 높여 죄송합니다. 그 병원은 도저히 못 가겠습니다. 수술 잘하는 병원이라고 들었습니다. 여기서 수술해 주십시오.”
재수술, 특히 합병증이 발생한 경우는 결코 쉽지 않다. 유착이 심한 데다 간에 인접한 부위기에 또 다른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수술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환자는 완강하게 수술받기를 원했다.
“그것도 제 운이라면 운이겠죠. 각오하고 받겠습니다.”
졸지에 다른 병원, 그것도 복강경 수술로 유명한 H 병원에서 수술받은 환자를 수술하게 됐다.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더 이상 설득할 명분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환자가 물었다.
“혹시 복강경으로 가능합니까?”
“복강경으로요?”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재수술은 개복을 해도 여러 문제에 직면한다. 더구나 터지기 직전의 담낭 농증 이상으로 어려운 수술이었다. 복강경으로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예상되는 큰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었다.
“남은 담낭이 간과 유착된 것으로 보입니다. 염증 때문에 다른 장기와도 들러붙었을 겁니다. 복강경으로 시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상당히 위험하고요.”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통증이 한 번 오기 시작하면 너무 아파서 수술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병원으로 왔습니다. 복강경 수술을 가장 잘하신다는 말도 들었고요. 애초에 선생님께 수술받았어야 했는데 후회가 막급합니다.”
상당히 부담스러운 말이었다.
사실 남은 담낭이 간과 심하게 붙어 있지만 않다면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환자의 회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었다.
CT 소견을 되새기며 신중하게 고민했다.
‘기존 수술 부위가 담낭 주변에 국한돼 있으니까 남은 담낭의 박리만 된다면 가능하겠어. 시도조차 못할 이유가 없지. 후우! 그래도 재수술을 라파로로 해 달라니 갑갑하네.’
“일단 시도는 해 보지만, 복강경으로 재수술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함도 때론 병이다. 경험이 없다는 말에 환자의 표정이 변했다. 스트레스를 받아 통증이 심해졌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배를 문질렀다.
그러나 남은 선택은 S 병원과 H 병원뿐이었다.
‘그 병원에 가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지.’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각오하고 수술받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확고해 보였다.
김지훈에 대한 신뢰일 수도 있고, H 병원에 대한 불신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간에 부담스럽긴 해도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물이라도 드신 마지막 시간이 언제입니까?”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
“그럼 동의하시는 대로 바로 수술하겠습니다. 보호자분은 어디 계신가요?”
‘입장 묘하게 됐네.’
보호자를 찾는 동안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H 병원과 연락을 시도했다. 진충기와는 통화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최소 오창도라는 의사에게 알려야 훗날 원만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리저리 연락한 끝에야 통화가 됐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여보세요?)
“죄송하지만 오창도 선생님이십니까? S 병원 김지훈입니다. 박병두 환자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기억하시죠?”
오창도가 깜짝 놀라며 목소리를 죽였다.
(김지훈 선생님이십니까? 박병두 환자는 왜?)
현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답답한 신음 소리만 들렸다.
(수술이 끝난 후에 찝찝했었는데 굴곡 담낭이었군요. 이유가 뭐가 됐든 전적으로 제 불찰입니다.)
순순히 자신의 과실을 인정했다.
그 때문인지 같은 의사로서 갑갑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수술 직후부터 뭔가 불안했는데, 왜 철저하게 검사를 하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초음파만 한 번 했다는데, 검사는 왜 안 하셨습니까?”
(후우! 말씀드리기 어려운 상황과 맞물려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기에, 특히 써전은 수술을 하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환자에 대한 주의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
환자는 물론 자신에게도 치명적인 일이 발생할 수 있는데, 오창도는 왜 그 점을 간과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