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104)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104화
35장 정령왕의 기록(4)
크레이어 후작과의 마법 통신이 끝난 다음 날, 사냥단은 숙영지를 떠나 수도로 향했다.
수도로 가는 도중에 외무부 대신이 레이먼 황제의 이름으로 작성된 선전포고문을 삼국 동맹에 전달했다.
이미 필리어스 제국 전역의 귀족들이 군을 일으키고 있는 시점이었고, 삼국 동맹도 이들의 이런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
“필리어스 제국이 선전포고를 했다! 자유의 후예들이여! 검은 산맥에 집결하라!”
가장 먼저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군대가 검은 산맥으로 향했다.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국왕 셀리온은 멍청이가 아니었다.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 레이먼이 전쟁 준비를 해온 것처럼, 셀리온 또한 검은 산맥과 인접한 국경에 은밀히 군대를 집결시키고 있었다.
자유 이시리아 왕국이 자랑하는 왕실군이나 중장 돌격대는 포함되진 않았지만, 선발로 집결한 용병대의 수가 5천이 넘었고 인근에서 1만의 용병대가 추가로 모여들고 있었다.
에드리거 왕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사신들이 활동을 시작했고 귀족들은 사병을 일으켰으며, 그들이 자랑하는 주력 군대인 칠흑군이 소집되었다. 당장 나서지는 않았지만, 중앙에서는 왕립 철기사대와 검성, 리빙스만의 투입까지 고려되고 있었다.
“삼국 동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황제 폐하. 당장 군을 움직여야 합니다.”
벨피앙 황실 직할령을 안정시키고 귀환한 되니츠 백작이 차분한 목소리로 진언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삼국 동맹의 움직임에 대한 보고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레이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했지만, 곧바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실비아의 각성 때문이었다.
가장 최소한의 조건인 ‘정령왕의 기록’을 확보했지만, 남부 중앙 숲을 벗어나 환경이 변하면서 정령력에 사소한 변화가 생겼다. 각성을 위한 충분한 정령력이 확보되려면 며칠은 기다려야 했다.
“시간이 많이 없습니다. 검은 산맥에 군대를 보내야 합니다, 황제 폐하.”
되니츠 백작이 거듭 재촉했다. 산악 공작과의 내전에서 승리하고 기사 여단의 반대 세력을 숙청하면서 황권이 크게 강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전쟁에 나서는 귀족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중앙군은?”
“북부 중앙군 2개 군단과 국경군 1개 군단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총 3개 군단, 도합 1만 8천의 군세다. 절대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그들을 움직이게 되면 보급품이 문제였다.
당장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장기전으로 갈 경우 어떻게 될지 몰랐다. 안정적인 보급을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검은 산맥을 장악하고 대규모 금광 지역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황금이 확보되면 제국 내의 전쟁상인들이나 바다 건너 서부 제도의 국가들로부터 물자를 확충할 수 있다.
“북동부의 사병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절대 적지는 않지만, 삼국 동맹에서 집결한 군대 또한 2만이 넘는 숫자이며, 그 병사들의 숙련도 또한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되니츠 백작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검은 산맥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되니츠 백작은 레이먼이 진심으로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측근이었다. 검은 산맥에 대규모 금광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레이먼으로부터 직접 전달받아서 알고 있는 극소수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검은 산맥에서 삼국 동맹의 군대를 몰아낸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마물이 너무 많습니다.”
“그건 해결할 수 있다.”
“정말입니까?”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되니츠 백작이었다. 레이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검은 산맥의 마물들을 몰살하는 선택지는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나.”
애당초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레이먼이 말한 비밀스러운 방법은 종말 협회에 소속되어 있으며 마물을 지배하는 비전 마법사, 엘피스와 관련되어 있었다.
엘피스는 종말 협회와 더불어 레이먼이 잘 알지 못하는 미완성의 설정 중 하나였지만 그녀가 다루는 비전 마법은 세계관에 분명 존재하는 설정이었으니, 레이먼은 그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렇군요.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고 계신 듯하니, 더 캐묻지 않겠습니다.”
“오늘 보고는 끝인가?”
“예, 황제 폐하. 변동 사항이 있으면 곧바로 보고하겠습니다.”
되니츠 백작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천막을 떠났다. 레이먼은 푹신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데시아가 서 있었다.
“드디어 내일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말을 걸고 있는 것이었다. 말없이 시립해 있던 데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 황제 폐하. 황군 지휘관 카시야스 경이 내일이면 수도에 도착한다고 했어요.”
남부 중앙 숲에서부터 시작된 여정은 이제 끝을 보이고 있었다. 육안으로 수도의 성곽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접근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군사들의 피로도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은 이곳 평원에서 숙영 중이었다.
“그래, 얼마 남지 않았어.”
실비아가 각성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그날 밤은 야간에 되니츠 백작과 포타스 백작이 찾아와 삼국 동맹의 군사 행동을 추가로 보고한 걸 제외하면 특별한 일은 없었고, 다음 날 예정대로 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도에 도착해 황성 집무실에 발을 들인 순간 외무부와 사군부, 그리고 궁내부와 재무부에서 보낸 온갖 보고서가 책상 위에 쌓여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레이먼은 실비아를 철저하게 실비아를 우선순위로 두었다.
“알렉스. 보고서는 나중에 볼 테니, 잘 분류해 둬.”
“예, 황제 폐하.”
레이먼은 알렉스에게 지시를 내린 뒤, 집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황성 내에서 적탑주와 청탑주가 관리하는 공방으로 향했다.
“황제 폐하.”
공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적탑주와 청탑주, 그리고 실비아였다. 레이먼은 늘 동행하는 데시아, 그리고 게슈타인과 함께 공방으로 들어섰다.
“실비아 경을 각성으로 이끌 모든 준비가 끝나 있습니다.”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이 보고했다.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 또한 평소의 그와는 다른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위 마법사 중에서도 하나의 탑을 이끌 정도로 경지가 높은 두 명이 손상된 ‘정령왕의 기록’를 고치기 위해 직접 나섰다. 이보다 더 든든할 수 있겠는가?
레이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건 ‘정령왕의 일기’도 복구가 끝났다는 거겠지?”
“온전한 상태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각성 과정에서 발생할 위험은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요컨대 완벽하지는 않다는 소리다.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지만, 레이먼은 내색하지 않았다. 손상을 입은 유일 마도구를 완전하게 복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비아.”
“예, 황제 폐하.”
레이먼은 나지막하게 실비아를 불렀다. 검은 옷을 입은 백금발의 하이 엘프 혈통이 조심스럽게 한 걸음 다가오며 고개를 숙였다.
“정령왕의 기록이 완전치 않다는 건 설명으로 들었겠지?”
“예, 적탑주님이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이대로 각성을 진행할 경우에 위험이 동반될 수도 있다.”
“각오는 하고 있어요.”
레이먼의 말에 실비아는 굳은 각오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백금초 일족의 마을을 공격한 2황자의 배후에는 종말 협회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레이먼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 지금 이 순간까지 복수를 위해 칼을 갈아 왔다.
“각성할 수 있다면 위험을 감수할 거에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결의가 느껴졌다. 레이먼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리세필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늙은 청탑주가 마법진 가득한 탁자 위에 놓인 ‘정령왕의 기록’을 집어 들고서 레이먼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레이먼은 그것을 다시 실비아에게 내밀었다.
“이제 이것은 네 것이다, 실비아. 일족의 복수를 위해 사용해라.”
“황제 폐하…….”
실비아의 맑은 눈동자에 이슬이 맺혔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 차례, 다짐이 끝났다. 이제 결행만 남았으니, 그녀는 마나를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정령왕의 기록’을 펼쳤다.
“마나의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순조롭습니다.”
베레누스가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작가의 설정대로라면 ‘정령왕의 기록’에 각인된 마법진이 작동하면서 정령계와 연결된 차원 관문이 열릴 것이다. 이 차원 관문을 안전하게 건너기 위해서는 일정량 이상의 정령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기에, 이곳에 모인 다른 이들은 실비아와 함께하고 싶어도 동행할 수 없다.
“정령계와 연결된 차원 관문이 열렸습니다.”
눈앞의 공간이 갈라지면서 신비로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사람 한 명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틈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배경을 머금고 있었다.
불과 바람, 그리고 대지와 물이 어울려 공존하는 특이한 곳이었다.
“맙소사, 이렇게라도 정령계를 직접 보는 건 처음입니다.”
리세필드가 약한 호들갑을 떨었다. 정령사조차 정령과 계약을 맺을 때 현계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정령계의 모습을 알고 있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 폐하…….”
“조심히 다녀오너라.”
레이먼은 무심한 듯 내뱉었지만, 실비아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그 진심이 전해진 것일까? 차원 관문을 향해 나아가던 실비아가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레이먼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강해져서 돌아올게요.”
그 말을 끝으로 실비아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망설임 없이 차원 관문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그게 끝이었다.
다음 날까지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레이먼 또한 근심 깊은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사군부와 외무부의 보고 또한 마법 공방에서 전령을 통해 받았다.
“일이 꼬였나?”
불안한 마음에 속에 품고 있던 혼잣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원래 《망자들의 제국》 소설 속에서 실비아는 3시간 만에 돌아왔지만,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정령왕의 기록’이 손상되었다가 완전히 복원되지 않았으니, 변수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차원 관문이 유지 중인 걸 보면 적어도 ‘정령왕의 기록’에 마나를 공급하는 실비아 경이 무사하다는 걸 의미합니다.”
베레누스가 긍정적인 말을 꺼냈지만,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자꾸만 입술을 씹다 보니 붉은 피가 턱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데시아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손수건으로 입술을 닦아 주었다.
“황제 폐하.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알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데시아와 함께한 지도 꽤 되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 진심으로 레이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레이먼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나를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겠군.”
“물론이죠. 대신 저도 따라갈 거예요.”
데시아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그토록 꿈꾸었던 대마법사의 경지로 향하는 길을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마나 폭주에서도 구해주었다.
그를 위해 평생 충성을 다할 것을 몇 번이나 다짐했으니, 위험을 감수하는 것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바로 간다.”
“게슈타인 경은요?”
조심스럽게 게슈타인을 향해 시선을 보내며 묻는 데시아. 하지만 레이먼은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게슈타인은 고지식한 사내다. 평소에도 특별한 경우나 지엄한 황명이 없다면 끝까지 황제의 곁을 지키는 남자다. 그러니 함께 정령계로 넘어가자는 말을 들으면 결사반대하고 나설 것이다.
정령계에 대한 정보를 듣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게슈타인도 베레누스로부터 정령력이 없는 이가 정령계로 넘어가면 어떤 변수가 작용할지 모른다는 말을 들은 뒤였으니, 필사적으로 앞을 막을 터.
“우리끼리 가는 수밖에 없다.”
“저는 황제 폐하의 뜻에 따를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바로 간다.”
레이먼은 자연스레 차원 관문의 옆에 자리 잡았다. 모두 심각한 분위기였고 그 누구도 레이먼의 속내를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데시아가 레이먼의 곁에 바짝 다가가려는 순간, 게슈타인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말았다.
“황제 폐하! 아니 되옵니다!”
과묵한 친위대장이 목소리를 높이며 땅을 박찼다. 하지만 앞을 막아서기에는 레이먼이 차원 관문에 너무 가까웠다.
더군다나 고위 마검사의 경지에 이른 몸이었으니, 일순간에 차원 관문 너머로 몸을 던지는 걸 저지하지 못했다.
“아, 안 돼……!”
“황제 폐하를 뒤따르라!”
데시아가 비명을 내지르고 게슈타인이 황급히 차원 관문으로 몸을 던졌으나, 그의 몸은 마법 공방의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정령력이 없는 레이먼을 집어삼킨 정령계가 거부 반응을 일으키면서 차원 관문을 강제로 폐쇄한 것이었다.
“아이고! 황제 폐하!”
고요한 침묵 속에서 리세필드의 곡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36장 오염된 정령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