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106)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106화
36장 오염된 정령계(2)
불 속성의 고위 정령은 레이먼에게 머리통이 쪼개져 소멸했다.
과일나무와 냇가를 지키고 있던 정령들을 모두 처리했다. 레이먼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영혼검을 집어넣었다.
“황제 폐하!”
안전이 확보되었다는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실비아가 먼저 달려와 레이먼의 몸을 살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시지요?”
“나는 괜찮다.”
걱정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에 레이먼은 희미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다행이다…….”
실비아는 안도했다. 레이먼이 정령들과 싸우고 있을 동안, 그녀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많은 무력감을 느꼈다. 이렇게 그를 걱정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걱정할 시간이 있으면 다른 정령들이 몰려오기 전에 식수와 식량을 챙겨 둬.”
고위 정령을 상대하느라 전투 중에 많은 양의 마나를 사용했다. 인근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탐색 능력을 지닌 정령들이라면 기척을 느끼고 모여들 가능성이 컸다. 그들이 오기 전에 식량과 식수를 챙기고 이탈해야 했다.
뒤늦게 바람의 정령들이 보내온 경고에, 실비아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가죽 수통에 물을 채우고 충분한 양의 과일을 땄다.
쉬지 않고 과일을 따던 실비아의 손이 멈췄다. 바람의 정령이 적대적인 존재들의 접근을 경고하고 있었다.
“황제 폐하, 이동해야 할 것 같아요.”
실비아의 말에 레이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그의 탐색 마법 범위에는 적대 정령들의 존재가 감지되지 않았지만, 실비아의 색적 능력이 자신보다 더욱 뛰어난 걸 알기 때문에 그녀의 판단에 따르기로 했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가자.”
“제가 안내할게요.”
실비아가 앞장섰다. 적대적인 정령들이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나중에는 레이먼이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정령 무리가 수십이었지만, 실비아는 그들을 피해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정령들은 마치 훈련받은 군대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고위 정령들이 서로 연락책을 확보한 상태로 정령들을 통솔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포위망을 계속해서 구축하려 노력했지만 실비아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그녀는 결국 저들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 레이먼을 안전한 곳까지 인도했다.
“여긴 안전해요.”
5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숲의 중앙이었다. 바람의 정령을 계속해서 운용한 탓인지 실비아는 이곳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지쳐 있었다.
목소리도 갈라지고 있는 게, 당장 휴식을 취하면서 뭔가를 섭취해야 할 것 같았다.
“일단 휴식.”
“예, 황제 폐하.”
실비아는 대답과 함께 넓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가죽 수통을 꺼내 입가로 가져갔다.
갈증이 심했던 것인지 그녀는 가죽 수통이 흘러내는 물줄기에서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햐아!”
“이제 좀 살 것 같더냐?”
“네……. 헤헤.”
마침내 가죽 수통을 입에서 떼고 아저씨처럼 탄성을 내뱉는 실비아를 보며 물었다. 그녀는 조금 전의 감탄사가 부끄러웠던 것인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뺨이 붉게 물들어 있는 모습이 생각보다 귀여웠다.
2황자에게 이용당하고, 일족의 마을이 공격당하는 불행한 삶을 살았던 그녀였다.
이런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레이먼은 조금이라도 더 담아두기 위해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제, 제 얼굴에 뭔가 묻었나요?”
예상대로 귀여운 반응에 레이먼은 씨익 웃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이것 좀 드실래요?”
담백한 반응에 실비아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과일 하나를 건넸다.
몇 시간 전에 전투를 치른 데다 그 뒤로도 쉬지 못하고 안전지대를 찾기 위해 계속 걸은 탓일까? 배가 조금 고팠다. 레이먼은 실비아로부터 받아든 과일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오늘 밤, 불침번은 내가 서겠다. 푹 쉬어.”
정령계에서 나갈 방법을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당장 해결할 수 없을 문제일 것 같았기 때문에, 당분간은 교대로 불침번을 서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황제 폐하…….”
“넌 지금 지쳐 있어. 불침번을 제대로 설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 않느냐.”
“예…….”
논리정연한 레이먼의 말에 실비아는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잠을 잘 수 있는 숙영지가 만들어졌다. 그래 봤자 작은 천막 하나가 전부였지만 실비아는 눕기 무섭게 잠에 빠져들었다.
레이먼은 바로 옆의 바위에 걸터앉아 야간의 경계를 시작했다.
* * *
다음 날, 레이먼은 식량과 식수 확보에 집중했다. 이곳에 얼마간 체류하게 될지 모르니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주변 탐색을 시작했다. 정보를 모아야 돌아갈 방법을 알 수 있으니까.
오후까지 탐색은 계속되었지만 이렇다 할 수확을 얻지는 못했다. 다만, 단조롭던 흐름에 변화가 생긴 것은 저녁때 즈음이었다.
탐색을 끝내고 과일을 하나 집어 먹고 있을 때였다. 바람의 정령을 부리고 있던 실비아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고위 정령 하나가 다른 정령들을 피해 이곳으로 오고 있어요.”
“다른 정령들을 피하고 있다고?”
“예, 황제 폐하.”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다. 지금까지 만난 정령들은 모두 레이먼과 실비아에게만 적대적이었을 뿐, 서로를 향해 적의를 보내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어떻게 할까요?”
실비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런 질문을 했다는 건, 그녀 또한 추격당하고 있는 고위 정령이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위치를 말해줘, 실비아. 구원한다.”
“예, 황제 폐하.”
실비아가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었고, 레이먼은 곧바로 영혼검을 손에 든 채 달리기 시작했다.
실비아가 뒤에 남았지만 그녀는 걱정되지 않았다. 바람의 정령으로 적들의 위치를 미리 알 수 있으니까, 잠시 혼자 놔두는 건 괜찮을 터.
최대한 빨리 적대적인 정령들을 정리하고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가 실비아를 찾지 못하더라도 그녀가 먼저 레이먼을 찾을 것이다.
“찾았다.”
쫓기고 있는 고위 정령은 물 속성이었고, 매섭게 추격하고 있는 이들은 바람 속성의 정령들이었다. 물의 고위 정령은 부상을 입은 것인지 몸체를 구성하고 있는 마나가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별로 없다고 판단한 레이먼은 즉시 정령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인간’을 향해 바람의 정령들은 노골적인 적의를 보였지만 물의 고위 정령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과 안도가 섞인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고, 그 모습에서 레이먼은 눈앞의 고위 정령이 다른 정령들과는 다르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거기, 물의 정령. 내 말 들리나?”
차가운 물음에 물의 고위 정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먼은 왼손으로 마법진을 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게 많다. 질문에 대답할 자신이 있으면 내 뒤로 와라. 살려주마.”
“감사합니다…….”
그녀는 거절하지 않고 레이먼의 뒤에 몸을 숨겼다. 괴이한 울음소리를 흘리던 다른 정령들과 달리 분명한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그녀의 모습은, 지금까지 봐왔던 어딘가에 오염된 이들과는 다르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어어어!”
레이먼이 물의 고위 정령과 합류하는 모습을 보이자 추격해오던 바람의 정령들이 분노 가득한 울음소리를 터트리며 무기를 겨눴다. 바람 속성의 마나로 연성한 날카로운 검과 창이었다.
“아이스 스피어.”
“그어어어!”
완성된 마법이 허공을 꿰뚫었다. 얼음의 창에 관통된 바람의 정령들의 몸체가 힘없이 흩어졌다.
순식간에 다섯의 정령이 소멸했고, 남은 15개체와 고위 정령 하나가 레이먼을 향해 매섭게 돌진해 왔다.
“내 뒤에 있거라.”
무심한 듯 내뱉고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날카로운 참격의 세례가 눈앞을 가득 채웠다. 레이먼은 영혼검을 휘두르는 대신 왼손을 뻗어 마법진을 그렸다.
“실드.”
강력한 마나를 바탕으로 한 마법의 방패가 바람의 칼날을 막아냈다. 레이먼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마나로 엮어낸 얼음의 기운을 흩뿌리며 정령들의 진형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영혼검을 휘두르며 얼음의 기운을 흩뿌리자 15개체의 정령들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소멸했다.
“그어어어!”
“하나 남았나?”
고위 정령 홀로 잔혹한 냉기의 폭풍에서 살아남았다. 레이먼은 그를 향해 영혼검을 휘둘렀다. 바람의 고위 정령 또한 두 개의 검을 휘둘렀다. 현란하게 휘둘러지는 쌍검이 영혼검을 방어하는 것과 동시에 레이먼의 급소를 노렸다.
“서포터!”
하지만 레이먼 또한 방어의 수단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마검사, 왼손에는 또 하나의 무기가 쥐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소환된 오색찬란한 마법구들이 바람의 고위 정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결국 정령은 공격을 위한 동작을 취소하고 방어에 전념했지만, 레이먼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쉬지 않고 영창할 수 있는 중급에서 상급까지의 마법이 폭풍처럼 쏟아졌고, 오른손에 들고 있는 영혼검 또한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법뿐만 아니라 그의 검술 경지가 드높았으니, 고위 정령은 반격을 취할 여유조차 없었다.
‘이전에 상대했던 놈보다 약하다.’
레이먼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눈앞의 고위 정령은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이고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상대했던 불의 고위 정령보다 약하다는 걸 확신했다.
“그어어어!”
현란하게 휘둘러진 영혼검이 연이어 고위 정령의 몸체를 베었다. 검격에 한 번 당할 때마다 바람의 마나로 이루어진 몸체가 격동하며 피 대신 선명한 빛깔의 마나를 토해냈다.
“그어어어…….”
네 번째 검격이 오른쪽 옆구리를 깊게 베었다. 고위 정령이 크게 비틀거렸다. 고통에 찬 신음조차 기운을 잃었다.
“끝이다.”
놈은 전의를 상실했다. 레이먼은 그에게 끝을 선고하는 것과 동시에 깊숙이 파고들면서 영혼검을 내찔렀다.
백색의 마나 소드가 바람의 마나로 엮인 갑주를 뚫고 정령의 핵을 관통했다. 핵이 파괴되자 바람의 고위 정령은 더 이상 본체를 유지하지 못했다. 마나가 흩어지면서 정령의 육신이 힘없이 무너졌다.
그가 완전히 소멸한 것을 확인했지만 레이먼은 영혼검의 기운을 거두지 않았다.
아직 정령이 하나 더 남아 있었으니, 그녀는 분명 지금까지 만난 정령들과는 달랐다.
그렇지만 적의가 없는지 재차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레이먼은 말없이 물의 고위 정령을 향해 몸을 돌렸다. 오른손에는 여전히 영혼검을 들고 있었고 왼손은 당장이라도 마법진을 그릴 준비가 끝났으니, 임전의 태세를 갖췄다.
“아직 저를 경계하시는군요.”
“당연한 거 아닌가?”
“저는 오염된 정령들과는 다릅니다. 믿어 주세요.”
“오염된 정령? 너는 뭔가 알고 있구나.”
레이먼이 두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물의 정령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에이나……. 당신의 궁금증을 해결해드릴 수 있을 겁니다.”
맑은 눈동자에 거짓은 없었다.
“지금 정령계의 상태에 대해 알고 있나?”
“대강의 상황은 파악했습니다.”
“설명해.”
단호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에이나가 설명을 시작하려는 순간, 전투가 끝난 걸 알아챈 실비아가 합류했다.
그녀는 다른 정령들과 달리 비교적 멀쩡한 에이나의 모습을 보고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몇 달 전, 정령계에 거대한 검은 구름이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
에이나가 말문을 열었고 레이먼과 실비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가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실비아가 이변을 눈치챘다.
“다른 정령들이 오고 있어요. 우선 자리를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찰 보낸 바람의 정령들이 물어온 정보였다. 레이먼은 색적과 탐색에 대해서는 실비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말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동을 제안했다.
에이나는 부상이 심해서 이동하기 곤란한 상태였지만, 실비아가 그녀에게 정령력의 마나를 건네주는 것으로 응급처치를 했다.
“이제 움직일 수 있겠죠?”
“네, 감사합니다. 하이 엘프의 혈통이여.”
그들은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를 빠르게 벗어났다. 한동안 말없이 걷기만 했다. 안전지대에 도착한 뒤에서야 실비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제 안전해요.”
“그럼 다시 이야기를 들어볼까?”
레이먼의 말에 에이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갑자기 정령계에 나타난 검은 구름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정령계의 모든 정령이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가장 다혈질적이며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불의 정령들이 가장 먼저 이상해졌고, 바람의 정령들과 대지의 정령들이 그 뒤를 따랐지요. 그나마 회복력이 빠른 저희 물의 정령들은 제정신을 유지했지만…….”
감정의 격류를 참지 못한 것일까? 에이나의 어깨가 들썩였다.
“어느 날 검은 구름에서 뭔가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어요.”
검은 구름이 토해내듯 뱉어낸 하나의 거대한 운석이 정령계의 지면에 충돌한 순간 타락한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고, 그날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36장 오염된 정령계(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