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107)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107화
“우리는 그걸 검은 운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운석이 떨어진 곳 주위에 있던 정령들부터 빠르게 오염되기 시작했죠.”
에이나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오염된 정령들이 방금 봤던 그것들인가?”
“아니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검은 운석, 그러니까 근원 주변에 있던 정령들은 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요.”
“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레이먼이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내자 에이나가 비교적 차분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들은 이제 정령이 아닙니다, 아예 다른 존재가 되어 버렸어요.”
“다른 존재라……. 그런데 어떻게 너는 멀쩡할 수 있었던 거지?”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아직 오염의 영향을 받지 않은 정령들도 있습니다. 정신과 육신의 회복력이 높은 물의 정령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말이죠.”
에이나의 대답에 레이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의 정령이 회복력이 높다는 건 세계관 설정과 동일했다.
“정리하자면 오염이 시작된 건 ‘검은 구름’이 나타난 뒤였고,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된 건 ‘검은 운석’이 떨어지고 난 직후였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그럼 ‘검은 운석’을 처리하면 높은 확률로 정령계가 회복되겠군.”
레이먼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며 실비아와 시선을 교환했다. 그녀 또한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인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나. ‘검은 운석’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나?”
“검은 운석의 파괴를 생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그건 불가능합니다. 주위를 지키고 있는 오염체들이 너무 많아요.”
“그렇다고 해서 이 오염된 정령계를 가만히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흐름을 보아하니 본래의 차원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정령계가 원상태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귀환에 관련된 이야기를 과감하게 생략하면서 레이먼은 정령계를 위해 움직이는 인물이 되었다.
“은인이시여…….”
물의 고위 정령, 에이나는 감동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고귀한 존재를 대하듯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 인사는 나중에 받겠다, 에이나. 우선은 오염되지 않은 정령들을 모을 수 있겠나?”
레이먼의 물음에 단발의 고위 정령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는 물의 정령왕을 모시는 12정령회의 일원입니다. ‘검은 운석’의 영향을 받은 지역 내에서도 오염을 피한 물의 정령들이 적지 않습니다. 제가 소집을 선언한다면 분명 집결할 것입니다.”
과장이 아니었다. 12정령회는 각자가 모시는 정령왕의 이름을 빌릴 수 있었다. 즉, 에이나는 물의 정령왕의 이름을 빌려 정령 군세의 소집을 지시할 수 있는 위치였다.
물의 정령왕이 북쪽에서 ‘검은 운석’을 토벌하기 위해 군을 일으켰다가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물의 정령왕을 따르는 이들은 적지 않았고 오염된 지역 내에도 적지 않은 수가 있었다.
그들 모두 쫓기는 입장이었으니, 에이나가 깃발을 들어 올린다면 기쁜 마음으로 소집에 응할 것이다.
“최대한 많은 인원을 모으는 게 좋을 거다.”
레이먼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결코, 쉬운 전투가 될 것 같지는 않으니까.”
* * *
그날 밤, 에이나는 정령 군세를 소집하기 위해 떠났다. 계속해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실비아는 그녀에게 연락책으로 바람의 정령 몇 명을 붙여 두었다.
그리고 레이먼은 오염의 근원인 ‘검은 운석’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대략적인 위치는 에이나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고, 늘 그렇듯 실비아가 앞장서서 길 안내를 맡았다.
“이건 흑마법인가……?”
검은 운석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오염의 근원이 잠들어 있는 방향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더욱 확신에 가까워졌다.
이건 흑마법의 마나다.
‘이번에도 종말 협회가 관련된 건가?’
흑마법을 다루는 집단으로는 검은 마법 학회나 타락한 연구회도 있지만, 정령계를 오염시킨다는 이런 스케일 큰 죄악을 저지를 놈들은 종말 협회가 유일했다.
규모를 생각해 봐도, 검은 마법 학회는 한때 악명을 떨쳤으나 지금은 쇠약해졌고 타락한 연구회는 처음부터 약한 세력이었다.
정령계를 도모하기에는 둘 모두 턱없이 부족한 전력이었으니, 지금으로서는 그 규모를 명확히는 알 수 없지만 두 집단에 비해 강대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는 종말 협회가 용의 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다.
“황제 폐하. 저희의 접근을 눈치챈 것 같아요. 조금 전부터 포위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실비아가 말했다. 그녀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오염된 정령 무리와의 조우를 7번이나 피했으나, 이질적인 마나가 오염 지역에 들어선 걸 놈들의 지휘관들이 눈치챈 모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오염된 정령들이 조직적으로 포위를 시작했으니까.
“어느 정도야?”
“이미 퇴로는 막혔어요. 아주 먼 곳에서부터 빈틈없이 형성한 포위망을 조금씩 좁혀오고 있어요.”
“천라지망인가…….”
레이먼은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에 놈들의 진형 배치를 그려 봐라.”
“잠시만요.”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펼치고 실비아에게 깃펜을 건네며 조금 더 정확한 설명을 부탁했다.
그녀는 바람의 정령들로부터 정보를 더 수집해서 종이에 오염된 정령들의 포위망을 간략하게나마 그려 보았다.
실비아가 그린 진형 배치를 본 레이먼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황제 폐하……?”
불안한 눈빛을 보내는 실비아를 보며 레이먼이 감정의 동요를 감춘 채 입을 열었다.
“이건 벗어날 수 없다. 완벽한 포위망이야.”
레이먼은 되니츠 백작에게서 전략과 전술에 대해 짧게나마 배웠기 때문에 포위섬멸진을 읽는 눈이 있었다.
초심자 수준에 불과한 그가 보기에도 답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포위망이었다.
실비아의 도움으로 여러 번의 교전 위기를 피하는 동안 오염된 정령 무리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두 사람이 안심하는 동안 그들의 포위망은 서서히 좁혀오고 있었으니,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었다.
“어떻게 하죠?”
실비아가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포위망의 시작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다는 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으나, 레이먼은 그녀를 탓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가 그린 적들의 진형 배치를 보면 포위망의 시작은 아주 은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실비아의 전술적인 지식은 깊지 않으니, 사전에 감지하지 못할 수밖에.
“자책하지 마라, 실비아. 아직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포위망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는 건가요?”
“벗어나는 건 무리지만 돌파하는 건 가능하다.”
실비아의 물음에 레이먼은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답했다.
“포위망이 완성되어서 다수의 군세가 우리를 치기 전에 ‘검은 운석’을 파괴하면 된다. 어때, 쉽지?”
“가, 가능할까요?”
“내가 함께할 거니까, 안심해라.”
본래는 에이나가 소집한 물의 정령들과 합류하여 ‘검은 운석’을 칠 생각이었지만, 포위망에 걸려 버리는 바람에 조금 꼬여 버렸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광범위한 포위망이 형성되고 있다. 적지 않은 수의 병력이 동원되었을 테고, 자연히 검은 운석을 지키는 이들의 숫자 또한 어느 정도 줄었을 것이다.
“황제 폐하…….”
“검은 운석의 위치는 특정했나?”
“예, 조금 전에 포위망을 확인하면서 정확한 위치를 알아냈어요.”
실비아의 대답에 레이먼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해라.”
“예, 황제 폐하.”
앞서 걷는 자, 실비아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 * *
“아이고! 황제 폐하!”
“차원 관문이 닫혔다고?”
차원 관문이 사라졌다. 정령계의 풍경을 품고 있던 갈라진 차원이 완전히 닫힌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았으나, 적탑주는 달랐다. 그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차원 관문을 다시 열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청탑주! 곡소리만 하지 말고 차원 관문의 잔존한 마나라도 모으게!”
“이, 이런……. 내가 추한 꼴을 보였군. 지금 바로 시작하겠네.”
리세필드 또한 어리석은 이는 아니었다. 제국의 마도학을 지탱하는 마탑 연합을 이끄는 탑주 중 한 명이었으며, 고위 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뛰어난 마법사이기도 했다.
그는 베레누스의 날카로운 지적에 정신을 차리고서 마나를 일으켰다.
두 탑주의 소란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던 데시아를 향해 게슈타인이 말없이 다가갔다.
“데시아 경, 황제 폐하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알려줘야 할 것이네.”
게슈타인의 압박에 데시아는 레이먼과 나눴던 대화를 모두 고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를 찾기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두 탑주님들과 합류하게, 데시아 경.”
“고마워요.”
드높은 경지에 오른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데시아는 고위 마법사였다. 묻고 싶은 게 더 있었지만 그녀를 붙잡아 두는 것보다는 리세필드와 베레누스를 돕게 하는 게 충성을 맹세한 주군을 되찾는 방법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거 조금 곤란하군.”
“무슨 일입니까?”
차원 관문이 남긴 마나를 분석하던 청탑주가 흘린 혼잣말에 게슈타인이 반응했다.
“아무래도 정령계에 변고가 있는 모양이네.”
“그게 무슨……?”
“사악한 흑마법의 기운이 차원 관문을 여는 것을 막고 있네.”
* * *
“에이나는?”
“아직 연락이 없어요.”
“오늘은 여기서 잠시 쉬자.”
계속 물어봤자 실비아만 재촉하는 기분을 받을 뿐 변하는 건 없으니, 레이먼은 이동을 중단하고 마나를 회복하기 위한 휴식을 취했다.
“황제 폐하. 약 2시간 후에 오염된 정령 무리가 이곳에 도착할 것 같아요.”
휴식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고 회복한 마나도 소량이었지만 다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바람의 정령을 계속해서 운용한 탓에 실비아의 마나와 정신력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 관념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그녀의 정신을 묶어두고 있었다.
“계속 움직인다.”
에이나와 정령 군대가 먼저 도착하기를 바랐지만 기대는 빗나가고 포위망은 더욱 좁혀져 왔다.
“여기까지인가……?”
절망이 고개를 들었다. 계속된 전투로 마나는 바닥을 보였고 체력도 한계였다.
오염된 정령들은 동서남북, 4방향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완전히 끝장을 낼 생각인지 저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고 숫자도 많았다.
오염된 정령들이 다가왔다. 레이먼은 쉬지 않고 영혼검을 휘두르고 텅 빈 마나통을 쥐어짜 내 마법을 쏟아냈지만 적들은 여전히 절반을 넘는 숫자가 건재했다.
결국, 날카롭던 레이먼의 기세가 무너졌다.
“황제 폐하…….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저희 일족을 구해주신 은혜, 죽어서도 잊지 않을 거예요.”
흐릿해지는 시야로 실비아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마지막 순간을 두고 레이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쁜 것인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가 소환한 바람의 정령이 레이먼을 품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시, 실비아 플라티에!”
그 목소리가 닿기도 전에 실비아는 희생의 다짐을 굳게 새기며 단검을 뽑아 들고 마나를 일으켰다.
강제 각성.
하이 엘프나 그 피를 이어받은 혈통만 다룰 수 있는 기술로 짧은 순간 압도적인 전투력을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의 생명력을 소모하는 양날의 검이다.
폭주하듯 마나를 쏟아내는 그녀의 주위로 바람의 정령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녀의 검술은 마치 아름다운 춤사위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의 생명력을 깎아내는 잔혹한 노래였으니, 레이먼은 안타까운 마음에 손을 뻗었으나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시, 실비아…….”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황제 폐하!”
폭풍이 오염된 정령들을 꿰뚫었다. 길이 열렸고 레이먼을 품고 있는 바람의 정령이 움직였지만 둘의 앞을 막아서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어어.”
바로 오염된 고위 정령들이었다. 그 수가 다섯이었다.
“아아…….”
실비아가 생명력을 깎아 일으킨 폭풍조차도 오염된 고위 정령들을 꺾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더 많은 생명력을 제물로 바쳐서 더 많은 폭풍을 일으켰다.
결국, 오염된 고위 정령 둘이 쓰러졌다.
하지만 여전히 셋이 방패를 든 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 안 돼…….”
강제 각성도 무한하지 않다. 생명력으로 태워낸 폭풍의 불꽃이 사라지고 있었다.
“황제 폐하……. 죄송해요…….”
네 탓이 아니다, 실비아.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으나 입 밖으로 쏟아질 기세로 차오르는 핏물 때문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실비아는 최후의 순간까지 레이먼을 지키기 위해 고위 정령들의 앞을 막아섰으니, 레이먼 또한 마지막 마나를 끌어내려는 순간, 검게 물든 지면을 뚫고 맑은 물기둥이 솟구쳤다.
“물의 12정령회가 은인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