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108)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108화
37장 하이 엘프의 탄생(1)
“제가 회복시켜드리겠습니다.”
에이나의 손길이 닿았다. 맑은 물의 기운을 머금은 마나가 닿자 상처가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출혈이 멎고 부상이 회복되면서 흐릿했던 시야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시, 실비아……!”
“그녀의 상태도 안정되었으니, 안심하시길.”
레이먼은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실비아를 찾았다. 에이나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바로 옆에 실비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다른 물의 정령의 품에 안겨 회복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에 안심하고 또다시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물기둥을 타고 나타난 정령들이 적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사방에서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는 오염된 정령들의 군세에 비해서는 적은 수였으나, 며칠 동안 외로운 싸움을 한 레이먼과 실비아에게는 그 무엇보다 든든한 응원군이었다.
“은인이시여,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에이나가 손을 내밀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작고 여린 손바닥 위에 작은 유리병 하나가 있었다.
“이게 뭔가?”
“정령왕의 샘물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저희보다는 은인께서 사용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에이나의 설명에 레이먼은 적지 않게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령왕의 샘물’은 정령들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보물 중 하나였으니까.
‘설마 여기서 유일급 엘릭서와 비슷한 효능을 가졌다는 정령왕의 샘물을 마시게 될 줄이야.’
물약의 효과가 크지 않은 이 세계관에서도 엘릭서는 그 이름에 걸맞은 강력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그런 대단한 물약과 비슷한 효능을 지닌 게 ‘정령왕의 샘물’이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레이먼은 에이나로부터 받아든 샘물을 망설임 없이 입안에 부었다. 푸른 마나를 머금은 액체가 입안에 닿기 무섭게 맑고 청량한 기운이 감도는가 싶더니, 바닥을 보였던 마나가 체력과 함께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절반 정도인가……?”
레이먼의 마나량은 절대 적지 않다. 그 깊은 창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단숨에 절반이 넘는 양을 채워 넣은 것만 봐도 ‘정령왕의 샘물’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절반이면 충분하다.”
싸늘한 시선이 오염된 정령들을 훑었다. 이윽고 그의 시선은 북쪽으로 향했다.
마나가 회복되면서 눈과 귀의 감각이 다시 돌아왔으니, 시선이 닿는 곳에서 멀지 않은 지점에 ‘검은 운석’이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흑마법의 증표인 검은 마나가 느껴졌으니까.
“에이나.”
“말씀하시지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검은 운석’이 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에이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길을 열겠다.”
“가능하겠습니까?”
우려 섞인 목소리.
“5분 전이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절반 이상의 마나가 회복되었으니.
“지금은 불가능한 게 아니다.”
마나의 한계를 폭발시켰다. 스스로의 마나를 폭주시키는 것으로 경지를 한 단계 올리는 양날의 검.
애초에 마법사들이 개발했지만, 본인들의 약한 육신으로 감당할 수 없었고 끝내는 그들보다 강인한 마나 로드를 가지고 있던 마검사들의 주력이 된 기술이다.
마나 폭주는 마검사에게도 마나 로드에 상당한 부담이 작용하기 때문에 장시간 유지는 힘들다.
“감히 나의 앞길을 막는 자, 누구인가?”
레이먼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하늘 높이 들어 올린 오른손에는 선명한 백색의 기운을 머금은 영혼검이 광휘를 흩뿌린다.
“그어어어!”
집결하는 거대한 기운에 오염된 정령들이 뒷걸음질 쳤다. 의식마저 오염되어 자아를 상실했으나, 그 본능은 멀쩡했으니 강렬한 기운에 압도되어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집결한 기세는 레이먼이 영혼검을 휘두른 순간 날카로운 예기를 머금은 채 흩어졌다. 오염된 정령 수십이 일순간에 도륙당했다.
아스라이 흩어지는 오염된 정령들을 향해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영혼검을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왼손으로 마법진을 완성하자 격렬한 얼음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청탑의 비전 마법이었다.
그 강렬한 위력 앞에, 최후까지 버티던 오염된 정령들이 힘없이 무너졌고 길이 열렸다.
“정령대! 앞으로!”
에이나가 마나의 힘을 빌려 목소리를 높였다. 푸른 물의 기운을 머금은 무기로 무장한 정령들이 전진했다.
오염된 정령들이 방진을 갖추려 했지만, 그들은 레이먼의 공격으로 인해 흩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수도 많이 줄었기 때문에, 발맞춰 진군하는 물의 정령들의 군세에 대항하지 못했다.
에이나가 지휘하는 물의 정령대의 지원으로 ‘검은 운석’을 지키는 오염된 정령들의 최종 방어선을 돌파했다.
“저게 ‘검은 운석’인가……?”
지면에 박혀 있는 거대한 운석이 보였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타락을 머금은 듯 쉼 없이 사악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공기가 탁하다. 가까이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몸 안의 마나가 썩어버리는 느낌이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에이나와 물의 정령들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속하게 저걸 파괴해야겠지만…….”
검은 운석 수호를 위해 무기를 뽑아 든 오염된 정령들의 숫자가 절대 적지 않았다. 4대 정령왕은 오염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휘하에 있는 고위 정령 중 많은 수가 오염을 피하지 못한 모양이다.
눈앞에 보이는 오염된 정령 중 드높은 경지에 이른 이들이 적지 않았다.
“후우!”
심호흡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두 손으로 영혼검을 들고서 앞으로 한 걸음. 망설임은 없었다.
정령계의 문제를 해결하면 정령왕들이 그냥 보내주지는 않겠지. 압도적인 보상과 함께 현계로 돌아갈 일을 생각하며 레이먼은 힘차게 나섰다.
그가 영혼검을 휘두를 때마다 오염된 정령들이 하나둘씩 쓰러졌고, 물의 정령대의 지원까지 더해져 검은 운석의 코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이 거대한 재앙을 어떻게 파괴하느냐, 그것이다.
“방법이 있나?”
“방법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레이먼이 물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검은 운석을 파괴할 수단이 없다면 곤란하겠지만, 다행히 에이나는 긍정의 대답과 함께 품속에서 날카로운 얼음과도 같은 형상을 한 작은 크리스탈을 꺼냈다.
“그건……?”
“정령왕의 격노를 담은 크리스탈입니다. 이거라면 ‘검은 운석’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에이나의 말에 레이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왕의 격노라면 ‘대마법’의 수준에 있는 기술이다.
저 작은 크리스탈에 거대한 격노가 담겨 있다는 게 놀라웠지만 이에 대한 의문은 품지 않기로 했다.
“에이나. 시간이 별로 없다.”
존재에 위협을 느낀 검은 운석이 오염된 정령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물의 정령대가 방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장시간 버티는 건 무리다.
“실행하겠습니다.”
레이먼 또한 영혼검을 들고서 적들과 맞섰다. 실비아도 힘겹게 활의 시위를 당겼고, 에이나는 굳은 얼굴로 ‘정령왕의 격노’를 담은 크리스탈을 검은 운석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거대한 격노가 휘몰아쳤다.
‘정령왕의 격노’가 담긴 크리스탈이라고 하였다. 별다른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물의 정령왕만 손을 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불과 대지, 그리고 바람의 정령왕의 격노 또한 담겨 있는 모양이었다.
땅이 갈라지고 용암이 솟구쳤으며 칼날을 머금은 바람이 모여들고 하늘에서 얼음 창이 비처럼 쏟아졌다.
4대 정령왕이 고향을 더럽힌 존재에 대한 격노를 고스란히 쏟아냈으니, 검은 운석은 단 1초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 * *
검은 운석이 파괴되었고 정령계는 빛을 되찾았다. 대부분의 정령이 오염에서 해방되었지만, 검은 운석의 주위에 있었던 탓에 오염의 농도가 진했던 이들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소멸했다.
정령들의 피해는 적지 않았지만, 레이먼과 실비아의 활약 덕분에 다시 평화를 되찾았으니, 두 사람에게 보답하기 위해 4대 정령왕이 한자리에 모였다.
레이먼은 비록 인간이었지만 그에게 큰 도움을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4대 정령왕들은 그 어떤 반대도 없이 어떤 결론을 내렸다.
다음 날 두 사람을 호출했다.
“화, 황제 폐하……. 괜찮을까요?”
에이나의 뒤를 따라 정령왕의 숲으로 들어섰다. 하이 엘프 혈통이라 자연과 정령들의 기운에 유난히 예민한 실비아는 사방에 충족한 따스한 기운에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말이더냐?”
“정령왕을 직접 뵙는 건 처음이라서요.”
세간에는 정령왕에 대한 와전된 소문이 많이 돌고 있다. 하이 엘프라고 해도 정령왕을 영접할 기회가 흔한 것은 아니었으니, 아직 각성을 끝내지 못한 실비아는 그들과 연결점이 없을 수밖에.
“별일 없을 것이다. 나를 생각해서라도 긴장하지 말거라.”
“예……. 황제 폐하…….”
실비아가 희미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고 에이나가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준비가 끝났다.”
레이먼이 말했다. 에이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나무와 줄기가 옆으로 일제히 갈라져 길을 열었다.
향긋한 풀 내음이 안내하는 길의 끝에는 4명의 정령왕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대가 레이먼인가?”
차가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람의 정령왕이었다. 은발의 잘생긴 미남이었고 백색의 제복에 회색의 철제 흉갑을 입고 있었다.
레이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대지의 정령왕이 입을 열었다.
“이거, 필리어스 제국에는 큰 빚을 졌군.”
그는 갈색의 풍성한 수염을 가진 드워프의 모습이었다. 정령왕들 또한 현계에 대한 상식은 가지고 있었기에 레이먼이 필리어스 제국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필리어스 제국이 아니라, 레이먼 필리어스라는 개인한테 빚을 진 것이다. 이건 분명하게 해야 해.”
타오를 듯한 적발에 붉은 로브를 입은 그는 불의 정령왕이었다.
“그게 중요한가요? 중요한 건 레이먼은 저희의 은인이라는 거예요.”
푸른빛이 감도는 장발의 여인, 그녀는 물의 정령왕이었다.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불의 정령왕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하게, 은인이여.”
대지의 정령왕이 말했다. 레이먼은 앞으로 한 걸음, 그들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내 뒤에 있는 여인은 하이 엘프 혈통이다.”
“그런 것 같군.”
“각성 절차를 무시하고 그녀에게 축복을 내리는 거라면 보답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하이 엘프로 각성은 위험도 따를 뿐만 아니라, 정령왕의 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레이먼은 그 과정의 완전 생략을 요구한 것이었다.
“허가한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 반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바람의 정령왕을 시작으로 모두가 찬성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곤란하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감사 인사를 전하고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려는 찰나, 불의 정령왕이 붉은 로브 자락을 펄럭이며 앞으로 나섰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레이먼은 살짝 당황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라네.”
대지의 정령왕도 말했고 물과 바람 역시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곤란하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레이먼은 질문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침묵을 지켰다.
“너무 굳어 있지 마세요, 은인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드릴 사례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불의 정령왕께서는 감정 표현에 미숙하답니다.”
물의 정령왕이 입가에 맑은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불의 정령왕은 레이먼의 시선을 회피했다.
“그렇다면 선물로 뭐가 좋다고 생각하는가?”
“그거 어떤가?”
“오호라, 그게 좋겠군.”
대지의 정령왕은 바람의 제안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팔을 휘저었다. 4대 정령왕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고 마침내 5분 만에 불의 정령왕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정령왕의 이름으로 약속한다. 불의 군세는 그대를 적대하지 않을 것이며, 그대가 원한다면 나의 사도들이 곁에 설 것이다.”
불의 정령왕이 물러나고 대지의 정령왕이 앞으로 나섰다.
“정령왕의 이름으로 약속한다. 가장 깊은 지하에서도 그대는 방황하지 않고 찬란하게 빛나리라. 또한 그대가 원한다면 대지의 일족이 그대의 뒤에 설 것이다.”
“정령왕의 이름으로 약속한다. 바람의 칼날은 그대를 베지 못할 것이며, 또한 그대가 원한다면 나의 기사단이 함께 참전할 것이다.”
“정령왕의 이름으로 약속해요. 당신은 물에서 죽지 않을 것이며, 또한 원한다면 12정령회가 당신의 뒤에 설 것을 엄숙히 맹세해요.”
연이은 축복에 레이먼은 정신이 없었다. 그 어지러운 생각을 알아챈 것일까? 바람의 정령왕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짧게 설명하자면 이제 정령사는 그대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며, 지하에서 길을 잃지 않고, 익사하지 않는다는 말이야.”
이건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선물이었다. 레이먼은 입가에 미소가 번지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