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12)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12화
5장 죽음이 손짓하는 연회(2)
맑은 미소와 함께 청탑주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하는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여, 연회장이 공격당한다는 말입니까?”
청탑주, 리세필드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목소리, 조금 더 낮춰.”
“죄송합니다.”
나름 작은 목소리로 말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조금 컸다. 레이먼이 가볍게 주의를 주자 리세필드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로열가드에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황족이라고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 망나니였다. 로열가드나 황실 친위대가 내 말을 믿을 것 같나?”
날카로운 질문에 청탑주는 입을 다물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지금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한때 망나니라 불렸던 5황자의 말을 쉽게 믿어줄 리가 없었다.
이번 연회는 황궁 습격이 있었지만, 제국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연회다.
망나니였던 5황자의 말만 믿고 갑자기 취소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노인장 같아도 못 믿을 것 같지?”
청탑주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호칭도 변했다.
“예, 솔직히 그럴 것 같습니다.”
리세필드의 거짓 없는 말에 레이먼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 3시간 정도 남았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정도 남았겠지? 자세한 시간은 몰라.”
솔직하게 말했다.
[자정을 넘긴 시간, 살기를 품은 검은 그림자들이 연회장을 향해 몸을 던졌다.]소설 속에 묘사된 내용 중 일부였다. 습격이 행해지는 정확한 시간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자정 이후에 일이 터진다는 건 알 수 있다.
“왜 미리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미리 말해도 안 믿었을 거잖아.”
“지금도 믿기 힘들긴 합니다.”
리세필드의 말에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수하들만큼은 최소한의 대비를 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말을 마치고서 게슈타인을 호출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게슈타인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곧 연회장이 공격받을지도 모른다.”
“대비하겠습니다.”
충직한 기사 캐릭터인 게슈타인은 리세필드와는 달리 군말 없이 지시에 따랐다.
그에게 있어서 5황자, 레이먼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잃어버린 검술을 되찾게 해준 구세주였다.
맹신의 단계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5황자를 보는 게슈타인의 시선에서 깊은 신뢰가 묻어 나왔다.
“이제 2시간 정도 남았나……?”
연회는 지루했다.
주위로 다가온 귀족들은 많았지만 모두 서로의 눈치만 볼 뿐,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이는 없었다.
사실 그런 어중이떠중이들은 상관없었지만, 고위 귀족들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건 조금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아, 말을 걸어온 이가 단 한 명도 없는 건 아니었다.
“레이먼. 결국, 5년 만에 연회에 참석했구나.”
3황자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을 걸어온 것이다.
반가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주변의 시선이 있었기 때문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형님 오셨습니까?”
“그래, 잘 지냈느냐?”
주위 시선을 의식한 듯 3황자는 밝게 웃으며 격려하듯 레이먼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뺨에 닿는 시선은 살기가 묻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차가웠다.
“예, 형님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지요.”
미소와 함께 대답하며 눈동자를 주변을 훑었다.
3황자의 수하들이 다가와 자리를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귀족들의 시야를 가렸다. 3황자를 닮아서 수하들의 행동거지도 음험했다.
어찌 보면 암살자들의 왕이라고 불리는 2황자보다 3황자가 더 행동력 있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황자 전하……!”
“그만.”
황급히 개입하려는 청탑주와 게슈타인을 막으며 3황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여기서 소란을 피워봤자 3황자가 뜻하는 대로 움직이는 게 된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레이먼, 내 사랑스러운 동생아.”
3황자가 가증스러운 미소를 입에 담은 채 속삭였다.
“예, 말씀하시지요. 알로켄 형님.”
“내가 지금까지 했던 충고들을 모두 잊은 게냐?”
‘협박이 아니라 충고였나? 재밌네.’
“깊이 새겨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회에 참석한 것이냐?”
무미건조한 목소리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묻어났다.
3황자, 알로켄의 시선이 뺨에 닿는 게 느껴졌지만 입을 닫고 침묵을 지켰다. 굳이 대답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한 5분 정도 침묵을 지키니 답답했던 것인지, 알로켄이 말을 이어가기 위해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레이먼, 내가 예전에 이야기한 것 같지만, 한 번만 더 말해주마.”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분위기를 잡으실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뿐이야.”
고개를 들어 3황자, 알로켄을 응시했다. 그는 이쪽을 보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너는 지금 너무 많이 변했구나.”
그 말을 남기고 3황자는 자신의 수하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 음험한 3황자가 협박을 여기서 그만둔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계를 확인했다.
‘자정이다.’
때가 되었다.
[마법등이 꺼졌다. 마법사가 손짓하자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 연회장을 침식했다. 검은 그림자들이 기회를 엿보았다.]“뭐, 뭐냐! 앞이 하나도 안 보여!”
“마법사들은 무얼 하는 게냐! 당장 조명 마법을 써라!”
귀족들이 난리를 쳤다. 마법사들이 마법의 빛을 불러 모았지만, 어둠을 물러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건 단순히 마법등이 꺼진 게 아니라 최소 최상급 이상의 마법사가 펼친 암흑 결계였으니까.
“빛이여!”
3황자의 곁에 있던 황탑주가 스태프를 휘두르자 어둠이 물러갔다.
“로열가드는 황제 폐하를 보호하라!”
“황가의 방패는 뚫리지 않는다!”
로열가드가 움직였다. 최우선 보호 대상은 당연히 황제였다.
“황실 친위대! 황족들을 보호하라! 황실 기사단은 연회장 밖으로! 누구의 소행인지 당장 밝힐지어다!”
황제가 목소리를 높였다. 늙고 병들었지만, 아직 그는 위엄을 잃지 않았고 황권은 무너지지 않았다.
황명이 선포되고 황실 친위대와 기사단이 움직였다. 레이먼이 있는 곳으로도 황실 기사 여럿이 달라붙었다.
그 혼란 속에서 레이먼은 똑똑히 보았다.
혼란을 틈타, 주변의 눈을 피해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2황자의 모습을. 그리고 사라진 2황자를 대신하여 황자의 복장을 입고 모습을 드러낸 누군가의 모습을.
보았다.
[연회장 천장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들은 모두 에드리거 왕국이 자랑하는 가장 뛰어난 암살자, 하사신들이었다. 그 수가 일백이 넘었다.]“맙소사! 정말 터질 줄이야!”
머리를 부여잡고 ‘바다 심장’을 꺼내는 리세필드와 마법을 준비하는 상급 마법사, 데시아. 그리고 친위대를 소집하여 방진을 구축하는 게슈타인.
그 중앙에서 5황자가 입을 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1권에서 가장 많은 등장인물이 죽는 ‘피의 장례식’으로 가기 위한 전개가 펼쳐졌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여기서 황제는 큰 부상을 입는다. 그리고 1권 마지막에 목숨을 잃으면서 ‘피의 장례식’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황제는 오늘 무사할 것이다.
“내가 막을 거니까.”
* * *
어둠은 물러갔지만, 아직 그림자들이 남아 있다. 그들의 품속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사단, 앞으로!”
황실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암살자들을 향해 내달렸다. 하지만 암살자들이 더 빨랐다.
그들은 가까운 곳에 있는 귀족이나 하인 등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꺄아아아악!”
“크아아아악!”
붉은 피가 솟구쳤다.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귀족들은 동행한 소수의 호위와 함께 연회장을 탈출하려고 시도했으나 모든 출입구와 창문, 테라스 쪽에는 암살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황궁 습격의 경험이 있으니, 예비 병력이 언제 도착할지 알고 있겠지.’
그전에 일을 치르려고 할 것이다. 이 지독한 혼란 속에서도 상황을 읽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동자를 굴린 결과,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암살자들은 두 부류로 나눠서 행동하고 있다.’
예전이라면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희미하지만 그들의 집단행동이 어느 정도 눈에 보였다.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주위는 친위대가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집중해서 살필 수 있었다.
‘1개 조는 출입구를 봉쇄하고 귀족들을 죽이면서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그리고 남은 1개 조는 하사신들인가?’
중급 마법사 경지에 오른 상태로 시력을 강화까지 했지만 하사신들의 움직임은 잔상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와 황족을 노린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도대체 피의 장례식은 얼마나…….’
문득 무서워졌다. 1권 마지막에 필리어스 제국의 모든 황족이 전멸하는 사건, ‘피의 장례식’과 비교하면 이번 연회장 습격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서술을 설정 속에서 본 것 같았다.
“새 발의 피라고 하기에는 너무 요란한데…….”
솟구치는 피 분수와 쓰러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나마 호위가 붙어 있는 귀족들은 사정이 나았지만, 하인들은 맥없이 목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암살자들은 혼란을 가중하기 위해 눈앞에 보이는 모든 이에게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연회장 습격’만 해도 이 정도의 피가 흐르는데, ‘피의 장례식’에서는 대체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른다는 말인가!
“5황자 전하!”
게슈타인이 비어 있는 왼팔 소맷자락을 휘날리며 달려와 검을 뽑아 들었다.
고위 기사의 증표인 마나 소드가 그의 검에 선명하게 피어올랐다.
암살자들이 주위를 포위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생각에 심취해 있었던 모양이다.
“2명이 하사신입니다.”
적들의 기세를 살핀 게슈타인이 보고했다.
고작 망나니 5황자에 불과한 나를 죽이기 위해 하사신을 2명이나 보냈다고? 이쪽의 격이 생각보다 많이 상승한 모양이다.
‘희생의 창을 쓸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걸 쓰면 뻗어버릴 게 뻔한데, 고작 하사신 따위한테 쓰는 건 과했다.
“한 명은 제가 맡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하나는 내가 맡지.”
청탑주의 상징, ‘바다 심장’을 들고서 리세필드가 게슈타인의 옆에 섰다. 꼬장꼬장한 노인장이 오늘따라 든든하게 느껴졌다.
“마나 소드? 설마 망나니 5황자한테 고위 기사가 붙어 있을 줄은 몰랐어.”
“크큭, 고위 기사면 뭘 어쩌겠는가, 팔이 하나밖에 없는데 칼이나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까?”
“그러게 말이야, 하하하!”
하사신 둘은 대놓고 게슈타인을 얕보았다.
그런 그들을 게슈타인은 차분한 눈으로 응시했고 레이먼은 가볍게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게슈타인, 자네가 검술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걸 저들에게 보여주게나.”
“기꺼이 그리 하겠나이다, 5황자 전하.”
게슈타인의 눈동자에서 결의가 느껴졌다. 실전 특유의 날선 감각에 그는 정돈된 호흡을 내쉬며 기세를 정비했다.
검술을 되찾고 난 이후, 첫 실전이다.
배신당하고 산악 공작에 의해 왼팔이 잘렸을 때만 해도 다시는 실전에 나서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오늘 실전에 나섰고, 새롭게 충성을 맹세한 주군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들었다.
기사로서 살아 숨 쉬는 듯한 이 기쁜 마음을 어찌 숨길 수 있으랴.
강한 적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는 걸 어찌 막을 수 없다.
“와라, 외팔이. 특별히 선공을 양보해 주마.”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이는 하사신을 보며 레이먼은 소리 없이 웃었다. 후회하게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게슈타인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서걱.
“끄, 끄아아아악!”
섬광이 번쩍였다. 정신을 차렸을 땐 왼팔을 잃은 하사신이 붉은 피를 흩뿌리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의 옆에 있던 하사신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암살자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오직 5황자와 친위대원들만 이렇게 될 걸 예상했다는 표정이었다.
외팔검 게슈타인.
원래 소설 속에선 2권에서 주인공을 만나 외팔검을 전수받고 소드마스터가 되는 천재 검사.
그 시기가 조금 더 앞당겨졌을지라도 재능은 퇴색되지 않았다.
“제, 제기랄!”
“이 노인네는 보이지도 않는 건가?”
다른 하사신이 게슈타인을 향해 접근하려는 순간, 이번에는 청탑주, 리세필드가 나섰다.
그가 바다 심장을 휘두르자 하늘에서 날카로운 얼음 송곳 수십 개가 하사신을 향해 쏟아졌다.
“커, 커헉!”
얼음 송곳 세례에 고슴도치가 되었다.
에드리거 왕국의 최정예 암살자 집단, 하사신의 일원이라고는 해도 상대는 고위 마법사 중에서도 마법에 조예가 깊은 청탑주다.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모두 죽여라!”
차분하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로 외치자 친위대가 소수 인원만 남겨둔 채 앞으로 나섰다.
데시아의 얼음 마법이 먼저 암살자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일격에 절반이 죽었고 남은 이들도 친위대가 전멸시켰다.
“주변을 정리하였습니다.”
게슈타인도 자신이 맡았던 하사신을 처리한 모양이다.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5황자 전하.”
“아니, 우리는 황제 폐하를 지원하러 간다.”
“황제 폐하께는 황가의 방패가 있지 않습니까?”
게슈타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황가의 방패가 있으니, 굳이 도우러 갈 필요가 있을까요?’라는 뒷말을 이어 붙이려다가 삼킨 게 눈에 훤히 보였다.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기보다는 5황자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기에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레이먼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봐라, 게슈타인. 형님들의 모습이 보이느냐?”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 어딘가로 도망갔다. 그중에서 제일 먼저 모습을 감춘 이는 2황자였다.
3황자가 그 뒤를 이었고, 1황자가 그나마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으나 부상을 입고 친위대에 의해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황제만은 달랐다. 아들놈들이 모두 도망치고 있을 때, 황가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연회장을 지키며 황실 기사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지금 가면 점수를 딸 수 있다.’
모든 황자가 도망친 순간, 외롭게 남은 황제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망나니, 5황자.
‘이 정도면 멋진 그림이 나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