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121)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121화
41장 유령걸음(1)
대륙의 어둠을 지배한다는 암황들 중 한 명이자 ‘유령걸음’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디에고. 그는 수백 명의 암살자와 함께 이레시어 후작령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보름달 꽃 길드의 암살자들이었고 에드리거 왕국의 하사신들과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유령 부대의 조력이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작전이 시작되면 실질적으로 움직일 암살자들은 1천을 우습게 넘길 것이다.
“필리어스 제국군의 동태는?”
이레이서 후작령의 변방. 중심도시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국경과는 가장 가까운 마을의 폐허에, 암황 디에고와 ‘보름달 꽃’의 길드원들이 모여 있었다.
디에고는 반쯤 무너진 성벽에 앉아 밤하늘을 보고 있다가 익숙한 인기척을 느끼고 허공에 질문을 던졌다. 시선은 여전히 위를 향하고 있었지만, 기척의 주인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건 암황인 그에게는 매우 쉬운 일이었다.
“저희가 움직일 거란 정보를 일부러 흘렸지만, 예상대로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는 뒤로 물러나지 않고 경계 태세만 강화했습니다.”
고운 미성의 주인은 디에고의 보좌관이자 어두운 귀족회의 자작 출신의 암살자, 안나였다.
“좋아, 계획대로다.”
“저희는 언제 움직입니까? 마스터.”
“놈들이 지쳐 쓰러지면 움직인다.”
디에고가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고, ‘보름달 꽃’ 길드는 필리어스 제국의 중앙정보국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정보를 흘린 건 필리어스 제국군이 경계 태세를 강화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과연……. 마스터의 계획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안나가 작은 음성으로 감탄하면 고개를 끄덕였다. 디에고는 여전히 밤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상태로 피식 웃었다.
“황제가 관련된 일이다. 필리어스 제국에서는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테지. 경계도는 당분간 과도하게 강화될 것이고, 군의 피로는 자연히 누적될 것이야. 우리는 그들이 지쳐 쓰러질 때를 노리면 되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디에고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 * *
일주일이 지났다. 필리어스 제국군은 긴장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보름달 꽃’의 움직임이 보고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경계를 강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상 황제에 대한 암살을 예고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필리어스 제국군의 긴장도는 최대였고, 그 보이지 않는 대치가 지속되는 동안 군사들의 피로는 심각한 수준으로 누적되고 있었다.
이 사태를 보고 받은 젊은 황제, 레이먼은 일주일째 되는 날의 늦은 밤에 되니츠 백작을 호출했다.
“황제 폐하! 되니츠 백작이옵니다!”
바깥에서 템페스트 후작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레이먼은 탁자 위에 술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들라 하라.”
“실례하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되니츠 백작이 고개 숙여 인사를 올린 뒤,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앉지.”
“예, 황제 폐하.”
우측에 되니츠 백작이 앉자 레이먼은 그의 앞에 빈 술잔을 내려놓고 술을 채워 주었다.
“최근, 군사들의 피로가 많이 누적되었다고 들었다.”
“적들과의 대치 상황이 길게 이어져서 그렇습니다. 당장 자유 이시리아 왕국군이 아군을 공격할 생각이 없고 방어 태세의 강도를 높이고 있으니, 당분간은 현 상황이 유지될 것 같습니다.”
되니츠 백작의 보고에서는 황제를 지키기 위해 경계를 강화한 것으로 인한 군사들의 피로 누적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 있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이 문제에 대해 레이먼이 책임이나 부담을 느낄까 싶은 마음에 생략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 되니츠 백작의 배려가 고맙기도 했지만, 너무 과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되니츠 백작 또한 필리어스 제국과 황제에 충성하는 ‘광신’의 기미가 조금 보였으니까.
황제의 심리를 심하게 어지럽힐 만한 내용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지배자의 기운 때문인가…….’
레이먼은 쓰게 웃었다. 《망자들의 제국》 세계관에는 필리어스 황실의 혈통들이 계승 받는 특별한 능력에 대한 설정이 있다.
물론 소설 속에서 크게 다뤄지지는 않지만, 이 능력은 군림하여 아랫사람들을 부리기 위한 최적의 능력이었다.
일정한 충성도를 넘어선 이들을 ‘광신’의 단계로 이끄는 게 바로 ‘지배자의 기운’이었다.
그리고 필리어스 제국의 직계를 제외하고는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 지배자의 기운, 지배력이 극에 이르렀을 때 거신병을 움직일 수 있다.
‘타국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이지.’
사실 지금까지 거신병을 운용할 수 없는 지경이었으나, 삼국 동맹과 하이펠 제국은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필리어스 제국은 안전할 수 있었다.
“되니츠 백작.”
“예, 황제 폐하. 경청하고 있습니다.”
레이먼은 잡념을 접어두고 되니츠 백작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길게 말하지 않겠다. 필리어스 제국군의 경계 태세를 낮춰.”
술잔을 입가로 가져가던 되니츠 백작의 움직임이 멈췄다. 레이먼은 시선을 거두고 술잔을 채웠다. 이윽고 젊은 대원수의 시선이 뺨에 닿는 게 느껴졌다.
“황제 폐하. 아니 됩니다.”
되니츠 백작이 진중한 목소리로 반대했다.
“왜 아니 된다는 건가? 아군의 병력은 지금 많이 지쳐 있다네.”
“황제 폐하를 지키기 위한 일입니다.”
“전술적으로 볼 때 가치 있는 일인가?”
“솔직히 말씀드려서, 전술적으로 본다면 경계 태세를 낮추는 게 옳습니다.”
되니츠 백작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을 보면 아직 ‘광신’의 단계로 완전히 넘어간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오나, 황제 폐하. 이건 황권의 위신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레이먼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두 눈을 감았다.
“백작, 자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겠네. 하지만 이 이상 군의 피로를 누적하는 건 곧 이어질 전투에서 아군이 불리한 위치에 서게 만드는 것이라네.”
“하오나, 황제 폐하. 군의 경계도를 낮추면 암살자들이 움직일 겁니다. 적들이 일부러 흘린 정보가 분명하지만, 중앙정보국의 보고에 의하면 ‘암황’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이건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암황의 이름은 무겁다.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는 은둔 칼날이 필리어스 제국 황궁의 경계를 뚫고 전대 황제의 목숨을 위협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로열 가드가 강화되고 황실의 그림자인 쉐이드라는 존재들도 깨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황’이라는 이름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암황이라……. 유령걸음이나 그림자 죽음, 둘 중 한 명이 움직였겠군.”
은둔 칼날의 죽음으로 인해 에드리거 왕국이 움직일 수 있는 암황은 이제 두 명밖에 없다.
“유령걸음 쪽일 겁니다. 국왕 직속의 암황, 그림자 죽음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곁에 둘 겁니다.”
되니츠 백작이 말했다.
“유령걸음이라…….”
“혹여, 함정을 팔 생각이라면 그만두시는 게 좋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도 유령걸음의 능력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에게 포위는 무의미합니다.”
유령걸음, 디에고의 능력을 레이먼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유령걸음은 엄밀히 말하면 마법사에 가까운 암살자다. 그는 차원을 굴절시키고 그곳에 몸을 숨길 수 있는 비전의 사용자였다.
그 어떤 장애물을 설치하더라도 그의 앞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지금 이렇게 강력한 경계를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유령걸음이 마음만 먹으면 단신으로는 레이먼의 코앞까지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유의미한 함정을 팔 수 있다면 협조하겠는가?”
레이먼의 눈동자가 다시 되니츠 백작에게 향했다. 그 의미심장한 시선을 받은 젊은 전술 백작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황제 폐하. 역시 알고 계셨군요.”
“황실 7번 비고에 읽었지. 비전, 미궁 진법을 수호하는 가문에 대해서 말이지.”
“미궁 진법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검과 마법의 조화를 깨우친 마검사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마검사라면 지금 백작의 눈앞에 있지 않은가?”
“제가 선뜻 말을 먼저 꺼내지 못한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고대 이후로 유실된 내용이 너무 많아서, 제가 알고 있는 것들만으로 미궁 진법을 전개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큽니다.”
전술 백작, 에르빈 되니츠의 가문은 고대부터 필리어스 제국에 충성을 바쳐온 충신의 집안일뿐만 아니라, 한 번 들어오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 진법이라는 기묘한 비전의 수호자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러 복합적인 사정 때문에 비전의 수호에 전념하지 못했고, 다른 대부분의 수호자 가문들처럼 비전의 일부를 유실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패전하는 것보단 위험을 감수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황제 폐하. 제가 말하는 위험 부담은 미궁 진법을 유지하는, 그러니까…… 마검사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일 겁니다.”
“상관없다.”
거듭 설득을 시도했지만, 레이먼은 단호했고 결국 되니츠 백작은 백기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그렇다면 저희 되니츠 가문이 자랑하는 비전, 미궁 진법을 준비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확실한 대답을 듣고 나서야 레이먼의 입가에 선명한 미소가 번졌다.
* * *
“필리어스 제국군의 경계가 약화된 지 약 3일이 지났습니다.”
‘보름달 꽃’의 길드원이 다가와 보고했다. 보름달 아래에서 어둠을 향해 산책하고 있던 유령걸음 디에고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슬슬 때가 되었는가?”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짙은 그림자 속에서 안나가 걸어 나왔다. 그녀의 등장에 보고를 위해 찾아온 길드원은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는 어둠 속으로 물러났다.
수하 길드원이 사라진 곳을 응시하던 디에고는 그 시선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함정이면 어떠한가, 기껏해야 로열 가드나 깊은 어둠 속에서 황실을 지켜온 그림자들의 매복이겠지. 그 정도라면 우리가 무력으로 쓸어버릴 수 있다.”
디에고의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에드리거 왕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단일 대상 암살로는 전례 없을 정도의 하사신이 준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삼국 동맹의 영토 내에서는 암살로 가장 이름 높은 ‘보름달 꽃’ 길드의 암살자들 전원이 움직이고 있으니, 절대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안나는 조금 더 신중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디에고는 남의 조언을 새겨듣는 상관이 아니었다.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다행히 디에고는 보름달에 취해 그녀의 작은 이변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안나.”
“예, 마스터. 하명하시지요.”
“지금 우리 측 전력의 상황은?”
“만전의 준비를 한 채 대기 중입니다. 마스터께서 명하신다면 바로 전 병력의 작전 수행이 가능합니다.”
안나의 대답에 디에고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를 오래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긴장 속에서 대치 상황이 계속 유지되었다면 그의 생명선을 조금 정도는 연장해 줄 의향이 있었으나, 필리어스 제국군은 경계 태세를 낮췄고 이는 곧 디에고를 재촉하는 꼴이 되었다.
“그래? 준비가 다 되었다는 말이지…….”
디에고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숲의 그림자 아래에서 검은 옷을 입은 암살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름달 꽃’ 길드에서도 간부직을 맡고 있는 이들이었다.
“‘보름달 꽃’에서 마스터의 명을 기다립니다!”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 입을 모아 한목소리로 외쳤다. ‘보름달 꽃’은 서대륙의 암살 길드 중에서도 계약금이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일단 계약이 성사되고 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조건 암살에 성공해 왔다.
그래서 그들은 이번에도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사기가 드높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길드원에게 전하라! 오늘 우리가 암행에 나섰으니!”
어느새 디에고의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단검이 들려 있었다.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는! 내일 아침 해를 보지 못할 것이다!”
“와아아!”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디에고는 흡족한 듯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안나에게 향했다.
“에드리거 왕국에서 보낸 하사신들에게도 전해라. 우리가 선봉에 설 테니, 알아서 뒤따라오라고 말이다.”
“예, 마스터.”
이걸 그대로 하사신들에게 전달할 수는 없다. 안나는 적당히 표현을 순화하기로 다짐하고서 짧은 대답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암황, 유령걸음이 이끄는 ‘보름달 꽃’ 길드와 에드리거 왕국의 하사신, 그리고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유령 부대가 합동하여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그들이 보기에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는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가 알았을까?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가 파놓은 함정은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깊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