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126)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126화
42장 전격전(3)
중간 지휘관들과 하급 귀족들이 대거 암살당하면서, 제3원수 디레프 후작이 이끄는 자유 이시리아 왕국군의 사기는 바닥을 치게 되었다.
하급 지휘관들을 진급시키고 주군을 잃은 군대 일부를 용병으로 재고용했다고는 하지만, 사기를 회복하고 혼란을 수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디레프 후작은 재정비를 위해 필리어스 제국군 별동대를 향한 공격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제3원수 디레프 후작이 이끄는 병력이 레이먼의 군대를 앞두고 재정비를 하는 동안, 되니츠 백작은 필리어스 제국의 주력군을 이끌고 이레이서 후작령의 중심도시를 매섭게 공격했다.
그 결과 제5원수 라닌스 후작은 목숨을 잃었고, 그가 이끌었던 군대도 와해되었다.
“곧 지원군이 올 것이다! 조금만 더 버텨라!”
포위된 중심도시의 성벽에서 이레이서 후작은 직접 발로 뛰며 군사들을 독려했으나, 끝내 지원군은 오지 않았다.
이윽고 청탑주와 적탑주에 의해 성문이 파괴되면서 필리어스 제국군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레이서 영지군은 전방과 후방의 적을 상대하느라 지쳐 있었다. 그에 비해 되니츠 백작의 군대는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았고 보급 상태도 좋았다.
이레이서 영지군은 공성전이 시작되고 하루를 버티지 못했다.
약 26시간 만에 이레이서 중심도시가 필리어스 제국군의 손에 넘어갔다.
같은 시각.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밤바람을 쐬며 산책을 하고 있던 레이먼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던 지배력이 갑자기 회복되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무언가 변화가 있는 것인가?’
간접적인 개입으로도 지배력이 회복된다고 가정하면, 아마도 이레이서 후작령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그의 명령을 받은 되니츠 백작이 이레이서 후작령을 공략 중이었으니까, 그 결과가 좋다면 지배력이 회복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전령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 이레이서 후작령과 관련된 되니츠 백작의 소식을 가지고 오는 것이리라.
“황제 폐하!”
한달음에 달려온 전령이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활기가 넘치는 전령의 행동은 승전보를 가져왔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대원수 각하의 군대가 이레이서 중심도시를 점령했습니다!”
전령의 보고에 레이먼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주위에 보는 눈이 많지 않았다면 환호를 내질렀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재 대원수 각하께서는 중심도시와 후작령의 잔당 소탕에 병력을 동원하고 계십니다. 또한 별동대와 교대하기 위한 1만 5천의 병력이 현재 이 위치로 이동 중에 있습니다.”
별동대는 아직 제3원수 디레프 후작의 군대와 제대로 된 교전을 치르지 않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레이서 영지군과 신나게 전투를 벌여 오고 있었다.
당장 별동대에 속한 군사 중에 지치지 않은 이들은 없었으니, 이들과 교대할 병력을 보낸 되니츠 백작의 판단은 지극히 옳은 결정이었다.
“그들은 언제 쯤 도착하는가?”
“늦어도 5일 안에는 이곳, 방어 진지에 당도하여 교대 절차를 밟을 수 있을 예정입니다.”
“그래, 수고했다.”
레이먼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령을 돌려보냈다.
이제 5일 남았다. 5일만 지나면 당분간은 이곳과는 안녕이다. 그는 밤하늘을 슬쩍 바라본 후, 막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전령이 예상한 5일의 시간은 금방 흘러갔고, 약속대로 1만 5천의 병력이 별동대가 지키는 이레이서 후작령의 경계에 도착했다. 1만 5천 군부대의 지휘관은 단치히 백작이었다.
“황제 폐하. 목숨을 바쳐 방어선을 지키겠습니다.”
굳은 얼굴로 결의를 다지는 단치히 백작과 1만 5천의 병력을 뒤로한 채, 레이먼은 약 2만의 별동대를 이끌고 이레이서 중심도시로 향했다.
약 일주일에 가까운 짧은 여정 끝에 도착한 이레이서 중심도시는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시체가 남아 있지는 않았지만, 성벽은 크고 작은 손상을 입은 곳이 많았고 도시 곳곳에서 붉은 핏자국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황제 폐하. 이레이서 중심도시 방문을 환영합니다.”
되니츠 백작이 수행원들과 함께 마중 나왔다. 레이먼은 그들과 합류하여 영주성 안으로 들어갔다.
영주의 자리에 레이먼이 앉자 되니츠 백작을 포함한 지휘관들과 귀족들이 자연스럽게 좌우에 줄지어 시립했다.
“이레이서 후작은 어찌 되었는가?”
그의 행방에 대해서는 보고 받지 못했다. 중간에 전령이나 마법 통신을 맡은 최상급 마법사의 실수로 보고 내용이 누락되는 일은 가끔 있기 때문에 레이먼은 인내심을 가지고 물었다. 책임을 묻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이레이서 후작은 공성전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시신도 찾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장례를 치렀습니다.”
되니츠 백작의 보고에 레이먼은 만족스러운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국이라고는 해도 귀족이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예를 갖춰서 장례를 치르는 게 관례였다. 그걸 생각하면 깔끔한 일 처리였다.
“완전 점령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나?”
검은 산맥에 필리어스 제국의 깃발을 꽂기는 했지만, 이번 전쟁에서 타국의 영토를 제대로 점령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니 여러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고, 저항 세력의 존재도 고려해야 했다.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주둔 중인 병력이 최전방으로 북진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되니츠 백작.”
“말 그대로입니다. 현재 점령지의 치안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 그 병력이 북진할 경우 점령지의 치안이 악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되니츠 백작의 말에 레이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수백 년 동안 필리어스 제국군은 영토를 확장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점령지를 장악할 만한 전략이 많이 유실되었다.
그나마 정보기관의 힘을 빌리면 저항 세력 토벌에 도움이 될 테지만, 현재 중앙정보국은 제3원수 디레프 후작의 군대를 견제하느라 여유 인력이 없었다.
복잡한 생각을 하니까 두통이 찾아왔다. 레이먼은 머리가 질끈 아파오는 것을 느끼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옆의 탁자 위에 올려둔 머그컵을 입가로 가져갔다. 냉수를 털어 넣자 혼란스러웠던 정신이 조금은 맑아졌다.
“남은 건 내일 이야기하도록 하지.”
벌써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레이먼은 그동안 전선에서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생활했기 때문에 지쳐 있었다.
레이먼의 말에 다른 지휘관들과 귀족들도 동의했고, 모두 영주의 홀을 떠났다.
레이먼 또한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는 이레이서 후작이 쓰던 곳이었으나, 당분간은 레이먼이 사용하게 되었다.
침실을 사용하기 전, 데시아와 실비아가 한 번 더 안전을 확인했다. 방 안을 살피는 동안 어딘지 모르게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던 데시아가 별안간 용기를 내서는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 어깨가 많이 뭉치신 것 같아요. 제가 안마를 해드려도 될까요?”
“나쁘지 않은 제안이군.”
거절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레이먼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데시아의 표정은 밝아졌다.
“실비아 경. 우리는 잠시 복도의 안전을 확인하고 오지.”
“네, 그렇게 해요.”
게슈타인은 괜스레 실비아에게 복도의 안전 재확인을 위한 동행을 요청했다.
사실 복도는 로열 가드에게 맡겨도 될 문제인데 말이다. 실비아는 데시아를 향하고 있던 묘한 시선을 거두고는 게슈타인과 함께 복도로 나갔다. 이제 이 침실 안에는 데시아와 레이먼만 남았다.
“여기 앉으세요, 황제 폐하.”
데시아가 푹신해 보이는 의자를 가져왔다. 레이먼은 거절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안마를 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은 제복 외투를 벗자 데시아의 부드러운 손길이 닿는 게 느껴졌다.
“어깨가 많이 뭉치셨네요.”
데시아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쟁이 시작되고 긴장을 놓은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제가 풀어드릴게요.”
단단하게 뭉친 근육이 데시아의 손길에 천천히 풀리기 시작했다.
레이먼은 편안한 얼굴로 그녀에게 몸을 맡겼다. 잊고 있던 피로가 몰려오면서 나른해졌다.
“안마를 잘 하는구나.”
“자주 연습을 했지요.”
레이먼의 물음에 데시아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누구를 위해서 연습했는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속내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론 레이먼은 관심 없는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으음.”
피로가 조금씩 풀리면서 두 눈이 감겨 온다.
억지로 졸음을 참고 있었는데, 뒤에서 데시아가 그 변화를 알아채고서 희미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주무세요. 제가 마법으로 침대에 옮겨드릴게요.”
데시아가 평범한 여성이 아니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레이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더 이상 잠의 기운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완전히 잠에 빠져들었다.
데시아 또한 안마를 멈추고 간단한 마법을 사용하여 레이먼을 침대로 옮긴 뒤, 이불을 덮어 주었다.
“편히 주무세요, 황제 폐하.”
달콤한 목소리와 싱그러운 미소를 남긴 채, 데시아는 침실을 떠났다.
* * *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가 짙은 어둠이 내린 숲길을 걷고 있다. 차가운 바람에 검은 로브 자락이 펄럭였다.
10분쯤 걸었을까? 남자는 밤하늘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깊게 눌러썼던 후드가 벗겨지면서 그의 가면이 훤히 보였다.
종언의 전도사, 리처드 팔라어의 가면이었다. 그는 한참이나 어두운 밤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시선을 떨구며 입을 열었다.
“저 검은 밤하늘이 마치 서대륙의 미래와도 같다고 생각하지 않나?”
“시딩턴 남작 같은 말을 하는군, 종언의 전도사.”
어둠 속에서 검은 로브를 입은 또 다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후드를 벗자 금발 엘프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추방당한 엘프이자 밤의 집행관이라는 이명을 가진 로딘이었다.
“나도 시딩턴 남작처럼 죽을 거라는 암시인가?”
리처드가 날카로운 기세를 일으켰다. 위협이 아니라 단순한 경고의 목적이었다.
서서히 주위의 마나를 좀먹는 그 진득하면서도 예기를 띈 기세에 로딘은 숨이 턱 막혀 오는 것을 느꼈다.
로딘은 함께 기세를 일으키는 대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는 지금 당장 리처드와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종언의 전도사는 종말 협회 안에서도 가장 강력한 무위를 자랑하는 주요 고위 간부 중 한 명이었으니, 그를 상대하려면 모든 언데드 군단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워우, 진정해. 나는 당신과 싸울 생각이 조금도 없어.”
“그렇다면 다행이군.”
로딘이 두 손을 들어 올려 보인 후에서야 리처드 또한 기세를 거뒀다. 그제야 로딘은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리처드의 앞으로 다가갔다.
“협회에서 특별히 지령은 없었나?”
리처드가 물었다. 고위 간부인 지배의 엘피스와 정령대행자 오드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협회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리처드가 지금까지 봐온 협회는 이런 차분한 성격을 가진 집단이 아니었으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당분간 개인의 안전에 주의하라는 내용을 제외하면 특별한 지령은 없었다.”
“나와 마찬가지군.”
“하지만 그대도 잘 알지 않은가? 협회는 조용한가 싶다가도 어느샌가 우리가 깜짝 놀랄 만한 지령을 던져주고는 하지.”
어린 악동처럼 씨익 웃어 보이는 로딘. 그를 보며 리처드 또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가볍게 동조했다.
그의 말대로 종말 협회는 결코 얌전한 집단이 아니었다. 아직 지령이 하달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최고 회의에서 어떤 내용이 의논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종언의 전도사, 리처드 팔라어. 재밌는 계획이라도 있는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리처드의 말에 로딘이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종언을 선고하는 전도사, 리처드가 생각해 낸 계획이라면 필시 수천에서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일 테지.
하지만 그것조차 로딘에게는 ‘재밌는’ 계획에 불과했다.
종말 협회에 소속된 이들 중 정상인은 없다고 하지만, 그들 중에서도 고위 간부층은 유난히 심했다.
“현재 종말의 선고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필리어스 제국이다. 동의하나?”
사실 개인적인 악연이 있어서 필리어스 제국을 가장 먼저 위협적인 적으로 주장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로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본론부터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현재 우리 협회가 가장 크게 오염시킨 세력은 삼국 동맹이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겠군.”
“그러니까, 본론!”
“삼국 동맹의 피해가 누적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지 않겠나? 그래서 필리어스 제국군의 진군을 저지할 생각이라네.”
리처드의 말에 로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살을 찌푸렸다. 의도는 좋았지만, 그 계획을 실현할 군사력이 없었다.
“설마 내 언데드 군단을 동원할 생각은 아니겠지? 따로 쓸 일이 있어서 말이야.”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무슨 말이지?”
“이레이서 후작령의 저항 세력. 그들에게 무기를 공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가면 아래의 얼굴은 분명 음흉한 웃음을 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