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15)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15화
6장 황실의 인정(2)
필리어스 제국의 황실이 공격당한 그날, 5황자가 내던진 백색의 창이 암황을 꿰뚫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에 모두가 경악했고,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입을 타고 소문을 빠르게 퍼져갔다.
적탑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3황자를 데리고 피신하는 동안 연회장에 남아 있던 적탑의 최상급 마법사가 이를 전해왔다.
“분명 희생의 창이었습니다.”
굳은 얼굴과 진중한 목소리는 틀림없이 진실을 고하는 것이리라.
“갑자기 희생의 창이 나타났다고?”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었지만 적탑주이자 화염 소나기의 주인, 베레누스 카일은 눈앞의 최상급 마법사가 이런 중대한 문제로 거짓말을 하지 않을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희생의 창’ 탐색에 나설 만큼 관련 지식이 깊은 인물이기도 했다.
“이건 예상 밖인데…….”
“저 또한 그렇습니다. 설마 망나니로 유명한 5황자가 희생의 창을 찾아낼 줄이야…….”
“말조심해라, 지금 황성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을 텐데?”
혼잣말에 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최상급 마법사를 보며 적탑주가 차가운 표정으로 지적했다.
“지금 황성에서 5황자 전하는 영웅이다. 황제 폐하께서도 이 점을 아주 잘 알고 계시지. 오래 살고 싶으면 말을 가려서 하는 게 좋을 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망나니에 불과했던 황자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변화가 시작되더니, 지금은 연회장에서 황제를 구해내면서 그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특히 황제에게 충성하는 이들의 호감을 얻었다.
명분을 잡은 황제는 과거와 다르게 공식적으로 5황자를 비호하기 시작했고, 이제 황성에서 그를 무시하는 언사로 부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더군다나, 일라이스. 5황자 전하께서 사용한 게 희생의 창이 맞다면 우리는 이천 년의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는 걸 너도 알고 있을 테지, 괜히 안 좋은 감정 쌓으면 너만 손해다.”
“도대체 그 이천 년의 약속이 무엇이기에 다들 이렇게 쩔쩔매는 것입니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그리고 반드시 지켜야 할 맹약이다.”
베레누스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으니, 최상급 마법사이자 적탑의 수석 탐사조를 이끄는 일라이스로서는 답답했다.
이걸 다른 곳에 물어볼 수도 없으니, 더 미칠 노릇이다.
“한 가지만 명심해라, 일라이스. 만약 5황자 전하께서 희생의 창을 소유하신 게 맞다면, 적탑은 그분의 뒤에 서야 한다.”
“예? 진심이십니까?”
일라이스는 깜짝 놀랐다. 그는 설마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이 이런 폭탄선언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진심이다.”
“저희가 지원을 철회한다면 3황자 전하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실 겁니다. 더군다나, 그분은 2황자 전하와도 가깝지 않습니까? 최악의 경우 살수들이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황탑과 적탑의 지원을 받는 3황자와 암살자들의 군주, 2황자가 가까운 사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적탑은 아직 충성 서약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지원’만 하고 있었을 뿐이지.”
“3황자 전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 겁니다. 청탑이 5황자 전하의 뒤에 서기로 했으니, 더더욱 조급함을 느끼실 겁니다. ‘도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천 년의 약속을 지키셔야겠습니까?”
최상급 마법사, 일라이스가 진지하게 물었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와 굳은 얼굴, 공기는 차갑다 못해 무거웠다.
“적탑이 멸망하는 날이 오더라도 우리는 이천 년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베레누스의 대답에 일라이스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확인을 해봐야겠어.”
“저, 적탑주님? 설마…….”
“그 설마다. 5황자 전하를 뵙고 직접 확인해야겠다.”
결심이 섰으니 행동은 빠를 수밖에. 그는 일라이스는 물론이고 수행원 1명 대동하지 않고서 5황자궁으로 향했다.
5황자궁은 황제가 보낸 황실 기사들과 암황을 꿰뚫은 백색 창의 주인을 만나러 온 귀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궁의 정문부터 쭉 늘어서 있는 귀족들의 행렬을 본 적탑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귀족들이 많아서야, 황실 기사나 시종을 통해 자신의 출현을 알리는 것도 힘들 것 같았다.
“내벽만 안 넘으면 되겠지.”
외벽을 넘으면 경쟁자들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 적탑주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외벽을 넘었다.
그의 예상대로 정문의 문턱을 넘은 귀족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소수의, 그것도 작위가 높아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대영주급 되는 이들은 모두 1황자나 2황자의 뒤에 섰기 때문에 여기 모인 이들은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이 보기에도 영양가 없는 이들이었다.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 경.”
날카로우면서도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돌린 베레누스의 앞에 가벼운 무장을 갖춘 기사가 서 있었다.
‘내 기척을 읽었다고?’
뒤를 밟힌 건 덤이다. 적탑주는 자신이 기척을 탐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며 눈앞의 기사를 살폈다.
다른 기사들과 다를 바 없는 외모에 중년 기사였지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왼팔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다는 것.
‘연회장에서 봤던 5황자의 친위대장인가?’
아니나 다를까 그의 가슴에는 황족의 친위대장을 상징하는 흉장이 달려 있다.
‘외팔이라고는 하지만 고위 기사를 친위대장으로 부릴 줄이야, 5황자가 이빨을 숨기고 있었구나.’
적탑주는 마른침을 삼켰다. 눈앞의 고위 기사는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 들 것 같은 매서운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이 정도일 줄이야…….’
고위 기사가 흔한 존재는 아니었지만 몇 번 본 적이 있다.
다른 이들에 비해 눈앞에 있는 5황자 친위대장의 기세는 더욱 날카롭고 차가웠다.
“따라오시지요.”
“내가 여기 온다는 걸 알고 계셨나?”
대답은 없었다. 5황자 친위대장, 게슈타인은 말없이 몸을 휙 돌리더니 궁의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재미없는 친구구만…….”
베레누스는 혼잣말과 함께 짧은 한숨을 내뱉고는 앞서가는 게슈타인을 뒤따라 걷기 시작했다.
대화는 없었다. 적탑주가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지만 게슈타인은 기계처럼 분주히 걸을 뿐이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무장한 친위대원 2명이 지키고 있는 내벽의 옆문에 도달했다.
게슈타인의 얼굴을 확인한 친위대원이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을 열었다.
“5황자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게슈타인은 베레누스를 궁 안의 응접실로 안내했다. 그는 문 앞에서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안에 5황자, 레이먼 필리어스가 있다는 말인가?’
베레누스는 그렇게 받아들였고 망설임 없이 응접실 문을 열어젖혔다.
예상했던 대로 레이먼이 있었다.
오른손에 술잔을 든 채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 레이먼의 뒤로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이 보였다.
“생각보다 늦었군.”
레이먼의 입에서 나온 짧은 말에 베레누스는 긴장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망나니였던 이 젊은 황자는 흐름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허세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내벽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위대장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서운 분이셨군.’
베레누스는 5황자에 대한 평가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문을 닫고 황족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
여전히 망나니였다면 간단하게 했을 테지만, 5황자는 지금 황제를 구한 영웅이었다.
적탑주, 베레누스는 최대한 정중하게 예의를 갖췄다.
예우는커녕 찾아오는 귀족조차 없었던 과거에 비하면 눈물이 나올 정도의 발전이었다.
레이먼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적탑주는 고개를 들라.”
부드럽지만 적당히 힘이 실려 있는 목소리였다.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은 천천히 고개를 들면서도 다시 놀랐다.
5년 전의 5황자는 유약했으며, 3황비가 병으로 떠난 뒤로는 망나니가 되었다.
베레누스는 예전 망나니 시절의 레이먼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소문이 절대 과장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5황자는 그때 봤던 모습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살은 빠져 홀쭉해졌고 몸에서는 은은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과거의 난잡했던 분위기도 지금은 정돈되어 있었다.
‘너무 많이 변하셨어.’
오늘만 해도 몇 번을 놀랐는지 모르겠다.
‘발톱을 숨기고 계셨던 건가?’
하지만 추측일 뿐, 진실은 그가 알 길이 없다.
“이천 년의 약속을 이행하러 온 것인가?”
“그것까지 알고 계셨습니까? 5황자 전하…….”
놀란 듯한 말투와 달리 이번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을 곁에 두고 있으니, 이천 년의 약속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들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정말 희생의 창을 소유하신 거라면 자격은 충분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천 년의 약속에 대해 함부로 발설한 청탑주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희생의 창이 진짜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적탑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려는 순간, 레이먼이 먼저 선수를 쳤다.
“희생의 창을 확인하고 싶은 거지?”
변한 건 외형과 무력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베레누스는 속으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5황자가 소파에서 일어났고 리세필드가 뒤로 물러났다.
“자주 꺼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확실하게 봐 둬라.”
손을 뻗으며 생명력을 운용하자 희뿌연 백색의 기운이 흘러나와 창의 모습을 갖췄다.
창의 외형만 유지할 정도로 적은 생명력을 소모했음에도 불구하고 짙게 흘러나오는 고대 유물 특유의 장엄한 기운에, 베레누스는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틀림없는 ‘희생의 창’이군요.”
적탑주, 베레누스가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대대로 전해져 온 지켜야 할 약속. 베레누스 역시 리세필드와 마찬가지로 선대 탑주들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아, 어떻게 할 테냐? 적탑주.’
3황자와 이천 년의 약속을 두고 고뇌하는 베레누스를 보는 레이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이천 년의 약속을 따르기로 결심했다고는 하지만, 그 결정을 확정 짓는 것은 베레누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탑주는 표정을 숨기려 애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얼굴에 속내가 조금씩 드러났다.
“베레누스 카일 경.”
차분한 목소리의 주인은 리세필드였다. 그는 굳은 얼굴로 베레누스를 응시했다.
“우리는 전율의 창기사를 기억해야 하네. 그분의 시신 앞에서 초대 탑주님들께서 약속하지 않았는가?”
리세필드의 말에 베레누스가 피가 새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레이먼의 입가에는 더욱 선명한 미소가 번졌다.
노인장이 생각보다 잘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베레누스의 갈등은 끝이 보였고 이제 쐐기를 박아 넣을 타이밍이다.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 경.”
“예, 5황자 전하. 이 늙은이, 듣고 있습니다.”
“적탑과 청탑이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게 누구 덕분인지 벌써 잊은 건가?”
아니, 잊었을 리가 없지. 너는 그냥 외면하고 있는 거다.
“큭…….”
베레누스는 고개를 숙였다.
최상급 마법사, 일라이스에게 당당하게 이천 년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불과 1시간도 안 된 일이다. 그런데 지금 비겁자의 길로 들어서려 하는가!
그는 스스로 채찍질했다.
“5황자 전하!”
결심이 선 듯 고개를 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비겁자가 아닙니다.”
그는 결정했다. 이제 각오를 보여줄 차례다. 그는 3황자가 하사한 흉장을 로브에서 거칠게 떼어냈다.
듣던 대로 성격이 화끈했다.
“이게 제 각오입니다.”
“거참, 베레누스 경. 그럴 필요까지는…….”
“리세필드 경. 이미 내가 이곳에 왔다는 정보는 3황자 전하께 전해졌을 것이네.”
“그건 그렇겠지. 2황자 전하의 어둠이 3황자 전하를 돕고 있으니까.”
리세필드와 짧은 대화를 끝낸 베레누스의 시선이 다시 5황자, 레이먼에게 향했다.
“적탑은 이천 년의 약속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부터 이행할 것을 이 자리에서 엄숙히 선언합니다!”
오늘, 레이먼은 고위 마법사 베레누스와 적탑을 얻었다.
* * *
“적탑주가 5황자궁으로 가는 걸 미행을 맡은 암살자들이 확인했습니다.”
3황자, 알로켄 필리어스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보고했다.
그는 2황자의 명령을 받고 알로켄을 돕기 위해 온 숙련된 암살자였다.
“이거……. 감시를 붙여두지 않았으면 뒤통수 제대로 맞을 뻔했네?”
알로켄이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의심이 많은 그에게 2황자가 암살자들을 보내주었으니, 제 수하들을 감시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제 수하들에 대한 감시내용이 2황자에게도 보고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3황자, 알로켄은 젊은 나이에 상급 마법사의 경지에 오를 정도로 머리가 좋고 마나에 대한 친화력이 뛰어났지만 아쉽게도 그는 이상할 정도로 자신의 형님, 2황자 데네브 필리어스를 맹신했다.
그리고 그 맹신의 보답은 끝없는 감시였다.
“최근 며칠 동안 궁정 회의에서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자네는 알고 있는가?”
“저는 들은 바 없습니다.”
알로켄의 질문에 검은 옷의 암살자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궁정 회의 쪽은 그가 담당하고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레이먼을 황태자로 책봉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그럴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가득 채워져 있던 술잔이 비워졌다. 독한 술을 단숨에 들이켰음에도 불구하고 심기가 불편한 것인지 그의 입꼬리가 뒤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