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19)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19화
8장 검은 산맥(1)
크레이어 후작은 일부로 호위대를 늦게 내보냈다.
망나니라는 소문을 달고 다니는 황족이 국경에 온 것에 대한 불만에 눈이 멀어 감히 그를 시험하는 오만을 범한 것이다.
‘나를 시험하는 게 분명하구나.’
영주성 지근거리에 도착해서야 모습을 드러낸 호위대를 보며 문득 든 생각이었다.
호위대의 지휘관은 크레이어 후작이 내세운 화살받이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레이먼의 눈치를 살폈다.
빙의하기 전, 망나니였던 레이먼이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불같이 화를 냈을까? 어쩌면 시녀를 죽였을 때처럼 검을 뽑아 들었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상대방은 지방군 호위대의 지휘관이니 즉참은 무리겠지만, 그 시늉을 하면서 화가 났다고 적극적으로 어필했겠지.
‘하지만 이제는 다르지.’
망나니는 죽었다. 이제 없다.
“지휘관, 경은 황족을 앞에 두고서 말에서 내려 예의를 갖추지도 않는군. 이건 필리어스 제국 황가에 대한 도전인가? 아니면 나에 대한 모욕인가?”
절제된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추할 정도로 과하게 화를 내면서 날뛰지 않으면서 적절하게 황족의 권위를 내세웠다.
“5황자 전하의 앞에서 무례하도다! 지휘관은 어서 말에서 내려 황족에 대한 예를 보여라!”
황군 지휘관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여기까지 오면서 레이먼은 소문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국경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을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해 행군 속도를 올렸다. 스스로의 휴식을 줄였으며 마차를 버리고 말을 탔다.
“그대의 행동은 위대한 황제 폐하와 황실에 대한 도전이렸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하나의 검이 뽑혀 나왔다. 황실을 보호하는 황군의 지휘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었다.
“아, 아니……. 이것은…….”
망나니로 유명한 5황자보다 더욱 흥분해서 날뛰는 황군 지휘관의 모습에 호위대 지휘관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당황하는 호위대와 별개로 황군 지휘관의 반응은 당연했다.
이곳 국경 지대를 품은 변방과는 달리, 수도에서는 5황자의 무용담이 널리 알려져 있었으니까.
게다가 황군 지휘관은 레이먼과 여정을 함께하면서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 받은 상태.
‘사람 잘못 건드렸다. 이 녀석아.’
“어이가 없군. 내가 기억하던 북방은 이렇지 않았을 터인데…….”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며 게슈타인이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호위대의 군사들은 또렷하게 들었다.
“외팔?”
“당신은……!”
“게, 게슈타인 경?”
호위대의 기사 몇몇이 게슈타인의 얼굴을 알아봤다. 그는 수도보다 북쪽 국경지대에서 유명한 기사였다.
‘하긴, 왼팔을 잘리기 전까지 가장 소드마스터에 근접했던 고위 기사를 벌써 잊었을 리가 있나.’
레이먼은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일이 더 쉽게 풀릴 것 같다.
“겨, 경께서 어찌…….”
“어찌 아직 하마하지 않는가! 그대들은 진정 황실을 모욕하는 것인가!”
게슈타인을 보고 술렁이는 기사들을 향해 황군 지휘관이 다시 언성을 높였다.
그제야 호위대 지휘관과 기사들은 정신을 차리고서 말에서 내려 황족에 대한 예우를 갖췄다.
필리어스 제국에서 황족의 위엄은 중요했다.
레이먼은 단순 억지를 부린 게 아니라, 그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행동한 것이었고,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그걸 인지하고 있었다.
“예우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 지금도 국경에서 제국의 군세가 쓰러지고 있으니, 경들은 서둘러 나를 영주성으로 안내하라.”
호위대가 황족의 자존심을 시험하려고 했지만 레이먼은 그걸 빌미로 그들을 찍어 누르지 않았다. 대신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과한 기선 제압과 힘으로 찍어 누르는 방식은 오히려 반발을 산다는 걸 레이먼은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국경을 끼고 있는 변경의 영주들을 따르는 지방군의 황제와 황실에 대한 충성은 황군이나 중앙군과 달리 맹목적이지 않다.
황족이라는 이름을 믿고 그들에게 과한 행동을 한다면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컸다.
“예, 5황자 전하. 영주성으로 모시겠습니다!”
호위대 지휘관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하에게 신호를 보내서 영주성으로 전령을 보내게 했다.
5황자가 예상과는 달리 현명하다는 걸 영주, 크레이어 후작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전령이 먼저 출발했다. 그는 영주성을 향해 최대한 빨리 말을 달렸고 뒤이어 레이먼이 지방군의 호위를 받으며 영주성으로 향했다.
그들이 중심도시의 성문을 넘고 있을 때 전령은 이미 영주성에 도착하여 호위대 지휘관의 말을 전하는 중이었다.
“틀림없는 사실이렷다?”
“예! 영주님!”
“오호라.”
전령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크레이어 후작의 얼굴에는 계획이 어그러진 것에 대한 불만보다 호기심이 먼저 드러났다.
애초에 그는 5황자를 감히 시험해 보려는 마음은 있었지만 큰 적의는 없었다.
그가 소문 속의 망나니와 다르다면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 5황자 전하께서는?”
“중심도시의 성문을 막 넘으셨을 겁니다.”
“좋다, 내가 직접 나가겠다.”
응당 그래야 할 것을, 너무 늦게 결정하고 말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5황자에게 엿을 먹일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전 준비는 다 끝나 있는 상황이었다.
“의전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크레이어 후작은 제복 위에 망토를 걸치며 품고 있던 생각을 내뱉었다.
의전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5황자가 여전히 망나니였다면 상대가 황족이라도 차갑게 대할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을 품고 있는 것 자체가 불충이었지만, 그 정도로 크레이어 후작은 황제의 가슴을 아프게 한 5황자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그 정도로 막 나가는 생각을 하고 있던 크레이어 후작이 지금 의전 부대를 이끌고 나간다는 것은, 5황자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망나니가 변했다는 수도에서의 소문을 조금은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 * *
자유 이시리아 왕국과의 국경, 그리고 검은 산맥을 품은 북부의 영지. 예상했던 대로 성대한 환영 인사는 없었다.
황실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이 나와서 가벼운 존경을 표할 뿐, 수도에서처럼 거창한 반응은 없었다.
“도시가 활성화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둡네요.”
동그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데시아가 다가와 소곤거렸다.
게슈타인은 언제나처럼 과묵했고 적탑주와 청탑주는 지쳐 있어서 그녀의 말을 받아줄 상태가 아니었다.
오직 북부 출신인 알렉스만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볼을 긁적일 뿐이었다.
“데시아 경.”
“예, 5황자 전하.”
“마음 단단히 붙잡아두는 게 좋을 거야. 앞으로 있을 일과 비교하면 이런 불친절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레이먼의 말에 데시아는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겁을 준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어쩌겠는가? 이대로 조금 더 전진해서 국경 지대에 도착하면 지옥을 보게 될 텐데, 예방 접종은 해둬야 하지 않겠는가?
“게슈타인.”
“예, 말씀하시지요.”
“네 덕분에 일이 쉽게 풀릴 것 같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적막함을 풀려고 말을 걸었지만, 대화는 길지 않았다.
대화가 끊기고 10분 정도 더 말을 타고 이동한 끝에 영주성의 바로 앞에 도달했다.
“크레이어 후작인가…….”
성문 앞에 말을 탄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기수가 들고 있는 깃발은 분명 크레이어 후작의 것이었다.
레이먼은 차분하게 마음을 정돈하고서 말을 몰았다. 이윽고 깃발과의 거리가 3m 이내로 좁혀지자 크레이어 후작으로 보이는 이가 먼저 말에서 내렸다. 그러자 다른 기사들 또한 말에서 내렸다.
“5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저는 크레이어 후작령의 영주, 샌드 크레이어라고 합니다.”
“반갑네, 크레이어 후작.”
하대를 하긴 했지만, 호의적인 시선과 말에서 내려 인사를 받아주는 것으로 지나치게 오만하다는 인상을 피하고자 했다.
그게 통한 것일까? 크레이어 후작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두 사나이 사이에 오고 갔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셨더군요.”
“국경의 일이 시급하다고 들었다. 필리어스 제국의 황족으로서 한시라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서 황군 지휘관을 재촉했다네.”
“그렇습니까?”
크레이어 후작은 레이먼이 단순히 빈말을 내뱉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말만 내뱉고 실천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시기에 황군이 도착하는 건 불가능했다.
국경의 사정을 염려하는 5황자, 레이먼의 모습은 북부의 사람들에게 호감을 심어주기 충분했고 그건 크레이어 후작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변하셨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아니야…….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 문제다.
5황자에 대한 후작의 호감이 조금이나마 올라가면서 그의 계획이 수정되었다.
감히 레이먼을 시험하기 위해 다소 무례하게 행동할 예정이었지만, 판단을 유보하되 무례를 범하지는 않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바람이 찹니다. 어서 영주성으로 들어가시지요.”
“후작의 호의를 받아들이겠네.”
크레이어 후작은 레이먼과 그 일행들을 영주성으로 안내했다.
친위대와 간부들을 제외한 황군의 병사들은 중심도시 내부의 임시 병영으로 안내되었다.
영주성 안으로 들어서자 준비된 의전 부대가 레이먼을 예우했다. 그들의 의전을 받은 뒤, 레이먼은 크레이어 후작과 함께 만찬장으로 향했다.
북부의 강대한 가문답게 식탁 위에는 척박한 북부와는 어울리지 않는 호화로운 요리가 가득 올라왔다.
“맛있군.”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요리를 맛본 레이먼이 짧은 감상을 내뱉자 크레이어 후작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찬이 진행될수록 레이먼의 앞에는 빈 접시가 쌓였다.
“많이 시장하셨나 봅니다.”
“5황자 전하께서는 행군 속도를 올리기 위해 시녀나 요리사 같은 불필요한 수행원들을 모두 두고 왔다네, 후작.”
식사에 열중하고 있는 레이먼 대신 크레이어 후작의 질문에 대답한 이는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이었다.
“아……. 정말입니까?”
크레이어 후작의 시선이 뺨에 닿는 게 느껴졌다.
레이먼은 잠시 식사를 중단하고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수행원들을 최소한으로…….”
후작은 홀린 사람처럼 힘없이 중얼거렸다. 망나니라면 절대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황족이 아니라 귀족들조차 전쟁터에 시녀와 요리사와 같은 편의를 위한 수행원들을 동행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망나니 황족이라면 결코 그들보다 덜할 리가 없다. 크레이어 후작은 5황자에 대한 평가를 조금 더 수정했다.
“맛있게 잘 먹었네.”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만찬이 끝나고 레이먼은 크레이어 후작과 함께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동행한 이들은 소수였다. 크레이어 후작 측에서는 늙은 기사 1명과 마법사 1명이 붙었고 레이먼의 곁에는 친위대장 게슈타인과 청탑주만이 함께했다.
그리고 티타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건 탐색전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럼, 후작…….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보실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자 크레이어 후작이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레이먼은 차갑게 내뱉는다.
“날 시험한 이유가 뭔가?”
무거운 공기가 어깨를 짓누른다. 밝았던 방 안의 분위기는 차갑게 물들었다.
말없이 크레이어 후작을 응시하는 레이먼의 시선에서는 섬뜩하게 녹아든 칼날이 뚝뚝 떨어지는 듯하다.
크레이어 후작은 차갑게 식은 분노의 바람을 맞이한 뒤에야, 자신이 황족을 상대로 얼마나 대담한 행동을 벌였는지 깨달았다.
‘내가 경솔했다.’
필리어스 제국에서 감히 귀족이 황족을 시험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5황자, 레이먼이 진정 망나니였다면 괜찮았겠지만, 그가 현명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모든 게 어그러졌다.
동행한 황군이 그의 편을 들고 있었고 적탑주와 청탑주가 뒤를 지키고 있었다.
‘설마 적탑과 청탑이 뒤에 섰다는 소문이 사실일 줄이야…….’
망나니가 변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 그는 변방의 영주였으니 수도 사정에 어두웠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만큼 신중하게 행동해야만 했다.
“5황자 전하…….”
“뭐, 굳이 지금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겠지.”
레이먼은 피식 웃으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북부의 후작을 과하게 압박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처음부터 대답을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
굳이 이야기를 꺼낸 건 지금부터라도 경솔한 행동은 자제하라는 의미의 경고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둘이서 이야기하지.”
수하들 앞에서 모욕을 줄 필요는 없다. 크레이어 후작은 레이먼의 배려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 사정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황자 전하.”
이런 인물들은 힘으로 압박한다고 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오히려 부러지는 쪽에 가깝다.
레이먼은 그와 대적할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를 잃고 싶지 않았다.
크레이어 후작가는 고대 시대 이후, 쭉 검은 산맥과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위협으로부터 필리어스 제국을 지켜온 북부의 방패였다.
‘그리고 샌드 크레이어 후작은 곧 죽을 사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