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200)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200화
68장 에필로그(2)
데시아와 리세필드, 그리고 베레누스.
필리어스 제국에서 가장 위대한 3명의 마법사는 고대 문헌이 가득한 황실 비고에 두 달 동안 틀어박혀서 무언가를 연구했다.
그들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연구를 계속했고 많은 이들이 걱정했다.
결국 62일째 되는 날, 게슈타인이 포타스 백작과 함께 황실 비고를 방문했다.
황실 비고의 안은 엉망이었다. 고대로부터 전해져 온 문서들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으며,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은 기절한 것처럼 쓰러져 있었고, 데시아와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만이 묵묵히 고대 문헌을 살피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을 진행하는 건지 물어도 됩니까?”
포타스 백작이 질문을 던졌으나 데시아는 대답이 없었다. 그를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다만, 눈앞에 있는 고대 문헌에 너무 집중하고 있는 것이었다.
“데시아 경? 대답해 주겠습니까?”
“황제 폐하를 다시 뵐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적탑주께서는 황제 폐하의 영혼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여 의식을 되찾는 게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포타스 백작의 시선이 베레누스에게 향했다. 설명을 요청하는 눈빛이었다.
데시아와 달리 베레누스는 읽고 있던 고대 문헌을 잠시 옆에 놓고서 포타스 백작과 게슈타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제국의 중앙정보국장으로서 저 또한 알아야겠습니다.”
“저희가 황제 폐하께서 계신 차원으로 건너가는 겁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불가능한 건 없다.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포타스 백작이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묵묵히 고대 문헌을 살피고 있던 데시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차원 관문에 대한 이론은 완성했어요. 연구는 거의 끝을 보이고 있으니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그녀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경애하는 황제를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 * *
김태혁은 판타지 소설 작가이면서 동시에 회사원이기도 했다.
그가 연재하는 소설의 성적이 생각보다 좋지 않아서 겸업을 하지 않으면 수도권에서 생활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잠깐만, 그런데 내가 이걸 완결까지 적어 놓지 않았는데…….”
정신없이 출근했다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김태혁은 원고를 점검하다가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그건 바로 《망자들의 제국》 원고가 완결까지 완성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초반부 내용도 달라져 있었다. 연재 중인 소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부분에서 김태혁은 주신격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읽어보니 재밌었다. 이대로 연재를 계속해도 될 것 같았고, 김태혁은 하루에 두 편씩 연참하면서 빠른 속도로 연재를 했다. 주인공은 이제 리처드가 아니라 레이먼이었다.
《망자들의 제국》은 큰 인기를 몰았고, 김태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오르지 못했던 월간 베스트 1위의 자리에 오르게 해주었다.
그는 퇴사하고 꿈에 그리던 전업 작가의 생활을 시작했다.
좁은 원룸을 벗어나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도 했다.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집에서 잠을 자며 좋은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지만, 마음 속 한구석에서는 공허함이 떠나질 않았다.
레이먼이었던 시절의 기억이 여전히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담당자인 이수진 팀장이 찾아왔다.
원래 담당자는 다른 사람이었지만 김태혁이 《망자들의 제국》으로 상승세를 달리기 시작하자 실력이 뛰어나고 플랫폼에 강한 영향력을 가진 이수진 팀장이 담당자가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출판사 근처의 소고기 식당에서 만났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오랜만에 뵙네요.”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이수진 팀장이 환하게 웃으며 김태혁을 반겼다. 영업용 미소가 분명했지만, 노골적으로 티가 나지는 않았다.
레이먼 시절, 갖은 목적을 가진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많은 경험을 쌓은 김태혁이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네, 반갑습니다.”
“그동안 별일 없으셨죠?”
아주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다 설명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김태혁은 그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차기작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자신 있으시죠?”
“글쎄요……. 지금 썼던 것처럼 잘 쓸 자신이 없네요.”
“그래도 작가님은 할 수 있을 거예요.”
어딘지 모르게 영혼 없음이 느껴지는 위로를 받았다. 미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외로웠다.
어두운 골목을 걷고 있을 때였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고 김태혁은 황급히 몸을 돌렸다.
마나는 없었지만, 기척을 읽는 감각은 여전하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낯설지 않았다.
“노인장……?”
청색의 로브 대신 정장을 갖춰 입고 있었지만 틀림없는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이었다.
“제가 제일 먼저 찾았군요. 이걸로 내기는 제가 이겼습니다. 데시아 양이 슬퍼하겠군요.”
“자네는 여기에 있으면 안 될 텐데…….”
“그건 황제 폐하 또한 마찬가지 아닙니까?”
리세필드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목소리까지 들으니까 확실해졌다. 틀림없는 리세필드였다.
두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차원을 관통하는 마법은 대마법사라고 해도 쉬운 게 아니다.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데시아가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경지 높은 마법이었으니, 김태혁은 지금 눈앞에 있는 리세필드의 존재를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거참, 황제 폐하를 찾기 위해 이렇게 먼 곳까지 왔는데……. 따뜻한 차 한 잔 없습니까?”
“일단 내 집으로 가지.”
리세필드의 가벼운 심술에 김태혁은 피식 웃으며 그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황제 폐하. 이런 곳에서……. 크흑…….”
집 안의 상태를 본 리세필드가 눈물을 훔쳤다.
성공한 작가가 되면서 좁은 원룸을 벗어나 넓은 집으로 이사를 왔다고는 하지만, 리세필드의 눈에 보기에는 황제가 머물기에 너무나 누추했다.
“적당히 하게, 노인장.”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내가 의식을 잃고 있었던 일들을 말해줄 수 있겠나?”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김태혁은 레이먼의 몸으로 리처드를 죽이고 의식을 잃었기 때문에 종말 협회의 최후를 보지 못했고 하이펠 제국과의 분쟁이 어찌 해결되었는지도 몰랐다.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간단하게 부탁한다.”
“가, 간단하게 말씀이시지요? 알겠습니다.”
김태혁은 ‘간단하게’라는 부분을 강조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리세필드의 설명으로만 하룻밤이 지나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부탁한다는 말 덕분인지 리세필드는 1시간 만에 상황 설명을 끝냈다.
구스타프 주교와 황제교의 활약으로 종말 협회는 몰살당했으며 하이펠 제국은 나이트엘 황태자의 죽음으로 심각한 내전에 휩쓸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왔으니, 따뜻한 차나 한잔 마시고 가게.”
“저를 내치실 생각이십니까?”
“여기서의 내 삶도 있으니까. 설마 내 집에 눌러살 생각은 아니겠지?”
반가웠다. 정말 반가웠지만, 마음에도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황제 폐하. 죄송하지만 저 혼자 왔다고 생각하지 마시옵소서.”
“설마…….”
리세필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원 쪽에서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손님이 왔나 봅니다.”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은 나이에 맞지 않은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에 김태혁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정원과 연결된 문을 활짝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 달려와 김태혁을 덮쳤다.
“황제 폐하!”
청아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데시아였다.
김태혁은 레이먼 시절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눈앞의 낯선 외모의 남자가 황제라는 걸 강하게 확신했다.
그녀를 시작으로 정원의 어둠 속에서 게슈타인, 실비아, 되니츠 백작, 크레이어 후작, 포타스 백작 등의 레이먼 시절의 최측근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왜 이렇게 많이들 왔어!”
그 수가 10명을 넘겼다. 김태혁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것도 선별한 인원입니다.”
지구에서도 여전히 황금 가면을 쓰고 있는 블리자드 후작이 말했다.
선별한 인원이 10명을 넘는다니, 레이먼 시절에 인생을 헛살지 않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코끝이 찡했다.
“이렇게 찾아올 줄이야…….”
주신격이 말한 ‘재회’가 이런 방법으로,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데시아……. 이제 좀 놓아줄래?”
실비아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정확히 그녀의 시선은 데시아에게 향하고 있었지만, 그걸 지켜보는 김태혁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싫어요! 이제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딱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데시아는 대마법사다. 그리고 김태혁은 레이먼의 몸이 아니기에 마나를 간신히 감지하는 약하고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호신술까지 익힌 데시아의 완력을 이겨낼 수 없었다.
“일단 다들 들어와. 따뜻한 차라도 마셔.”
김태혁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모두를 집 안으로 초대했다.
다행히 지금 그가 사는 곳은 황궁에 비하면 보잘것없을 정도로 초라했지만, 수도권에서는 꽤 괜찮고 넓은 단독 주택이었기 때문에 거실에 모두를 수용하는 게 가능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이어졌다.
김태혁이 먼저 말문을 열었고 수다스러운 리세필드가 계속 질문을 던졌으며, 데시아는 미소 짓고 있었고 실비아는 눈물을 흘릴 기세였다.
게슈타인은 말없이 그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돌아오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필리어스 제국은 아직 황제 폐하가 필요합니다.”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레이먼의 육신과 달리 김태혁은 마나를 다룰 수 없는 몸이었다.
검술이야 기억하고 있지만 필리어스 제국의 서대륙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김태혁은 이곳 지구에도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
고민은 계속되었지만,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 다들 돌아가. 근처에 잘 곳은 있지?”
“숙소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게슈타인이 대표로 대답했다. 김태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늦은 밤의 방문객들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떠났다.
데시아가 끝까지 남으려 했지만, 김태혁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녀 또한 다른 이들과 함께 보냈다.
그리고 김태혁은 밤새 고민했다. 마침 다음 날이 주말이었기 때문에 고민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될 때까지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약속한 시각이 되었고 레이먼 시절의 최측근들이 다시 찾아왔다.
“미안.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것 같아. 내가 돌아갈 의향이 있어도 이 육체로는 차원 도약을 견딜 수 없을 거야.”
김태혁은 솔직하게 말했다. 차원 도약은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일반인이 견딜 수 있는 레벨의 역경이 아니다.
그의 말에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이 어딘지 모르게 음흉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돌아올 의향은 있으시다는 것이지요?”
“그래! 완전 없는 건 아니야. 그런데 방법이 있나?”
김태혁의 대답에 데시아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그가 거절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길 때만 해도 죽을상이었는데, 지금은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황제 폐하. 굳이 그 몸으로 차원 도약을 견딜 필요는 없어요.”
“차원 도약이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나? 나는 없는 거로 아는데…….”
데시아의 말에 김태혁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물었다. 그가 알기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저희는 종말 협회를 몰살하면서 많은 자료를 손에 넣었어요. 그리고 그중에는 다른 차원으로 영혼만 보내는 방법도 있답니다.”
“하지만 그러면…….”
김태혁의 육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에게는 남겨질 가족들이 있다.
그것은 최후의 망설임이 되어 레이먼으로 귀환하려는 김태혁의 발목을 붙잡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귀환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금세 마음이 변했다.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하루였다.
“황제 폐하의 걱정은 제가 알고 있답니다.”
데시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서의 삶도 보장된다면 돌아올 의사가 있는지 그것만 말씀해주세요.”
“그게 가능하다면, 당연히 황제의 직무를 수행할 거야.”
“좋아요.”
데시아가 손짓하자 포타스 백작과 블리자드 후작이 난데없이 달려와 김태혁을 붙잡았다. 그리고 데시아가 마나를 일으켰다.
“이, 이게 무슨…….”
“황제 폐하께서 잠에 빠져들고 꿈을 꾸면 서대륙에서 눈을 뜨게 될 거에요.”
들은 적 없는 마법이다. 아무래도 종말 협회를 몰살하고 전리품으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마법 같았다.
“이, 이거 부작용은 없는 거지?”
“저 믿으시죠?”
“믿기는 하지만…….”
“그럼 믿으세요!”
데시아가 마법을 완성했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 걸 보니 부작용은 없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섬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는 황제의 침실에 있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김태혁의 존재도 느껴졌다.
데시아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황제의 몸이 잠자리에 들자 다시 김태혁이 되어 깨어났다.
그렇게 김태혁과 레이먼, 작가와 황제라는 낮과 밤의 기묘한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