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22)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22화
9장 잊혀진 기사들의 땅(1)
“적탑주, 이 사람아!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그런 망발을 고하는 것인가!”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이 언성을 높였다. 잊혀진 자들의 길이 어떤 장소인지 아는 레이먼은 리세필드의 예민한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곳은 한 번 들어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원령들의 영역이다.
검은 산맥에서는 소리 소문 없이 행방불명되는 이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마물들에게 잡아먹힌 것이지만 일부는 그런 흔적조차 찾지 못할 때도 있다.
이런 경우를 보고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과거 고대 시대의 종족 전쟁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자들의 길을 잃게 만들어 어딘가로 데려갔다고 말하고는 했다.
‘근데 그게 사실이라지.’
틀린 말이 아니다.
레이먼의 입 꼬리가 뒤틀렸다.
‘잊혀진 자들의 길’은 종족 전쟁에 참전하여 마물 토벌을 펼쳤으나 지금은 잊혀진 기사들의 원념이 서린 영토이자, 영혼검이 잠들어 있는 ‘잊혀진 무덤’으로 통하는 길이다.
원령들의 존재를 믿는 이들도 그들의 원한 섞인 영혼으로 담금질 한 무형의 검이 잠들어 있다는 건 믿지 않았다. 그래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들어 봐도 영혼검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지.’
설정집에서 봤다. 그리고 2권 초반부에서 후작이 된 크론을 만나 검은 산맥에서 ‘영혼검’을 획득하고 주인공이 마검사의 부활을 알리는 장면을 읽었으니까, 알고 있다.
영혼검을 얻게 된다면 ‘희생의 창’과 ‘데시아 헬리’까지 포함하여 주인공의 기연 3개를 빼앗게 되는 셈이지만, 죄책감은 없었다.
모든 조연과 단역들에게 잔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소설, 《망자들의 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단역인 5황자 레이먼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인공의 것들을 빼앗는 거다.’
이 결정에 후회는 없다.
“뭐가 그리 불안한가?”
레이먼이 위엄이 실려 있는 목소리로 말했으나 두 탑주의 얼굴에 깃들어 있는 두려움은 물러나지 않았다.
당당한 기색의 5황자를 보며 두 탑주는 차분히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아갈수록 안개가 짙어지고 어둠 또한 깊어졌다. 뒤로 물러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었으며 군사들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육체적인 피로와 함께 그들의 가슴 속에서도 불안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북쪽 국경의 군사 중에서 ‘잊혀진 자들의 길’에 대해 모르는 이는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또 모르는 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옆에서 돌아올 수 없는 전설에 대해 떠드는 병사들 때문에 불안한 마음은 빠르게 전파되었다.
“5황자 전하, 이대로 둬도 괜찮겠습니까? 군사들의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게슈타인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레이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군사들에게 향했다.
“필리어스 제국의 군사들이여.”
차분한 목소리로 시작을 알렸다. 시선을 내린 채 힘없이 걷고 있던 군사들이 일제히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짙은 안개 속에서 5황자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금색의 갑옷을 착용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었지만, 지친 병사들은 그 빛을 보고 5황자가 해답을 찾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망망대해에 빠져 일말의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표류자들 같은 모습에 5황자, 레이먼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필리어스 제국의 황족은 이런 곳에서 죽지 않는다.”
연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선언’이었다.
그는 말재주가 없었기 때문에 길게 말해봤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한 선택이었는데, 효과가 있었다.
필리어스 제국의 병사들이 5황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 초대 황제 폐하의 혈통이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으실 리가 없지.”
“우리라도 힘내세.”
“그래, 5황자 전하께 흉한 꼴을 보여드려서 되겠는가?”
황가의 후손을 신의 혈통이라고 부르며 숭배하는 필리어스 제국의 병사들이기에 가능한 반응이었다.
“정녕 그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청탑주, 리세필드가 가까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를 빠져나갈 방법? 당연히 알고 있다.
“노인장은 아까부터 내가 데시아와 뭔가를 찾고 있는 걸 보지 못했는가?”
레이먼의 말에 리세필드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5황자와 데시아가 유난히 주변을 살피던 게 떠올랐다.
단순히 불안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건만,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무엇을 찾고 계신 건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묘비.”
갑자기 묘비를 찾는다는 5황자의 섬뜩한 대답에 리세필드는 기겁했다.
“묘, 묘비요?”
“굳이 비석이 아니라도 좋다, 묘지나 무덤, 혹은 그것과 비슷하게 생긴 걸 찾아. 그게 우리가 이 ‘원령들의 영토’를 벗어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사들과 병사들에게도 일러두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리세필드의 말에 레이먼은 어이를 상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노인장, 지금 이 상황에서 무덤을 찾으라고 지시를 내리면 내가 미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짧은 설명이었지만 리세필드를 납득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늙은 청탑주는 대답 대신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거들겠습니다.”
“저도 찾아보겠습니다.”
곁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게슈타인과 베레누스도 협력을 약속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짧은 연설이 일으킨 희망의 빛도 희미하게 죽어가고 있을 때였다.
지친 병사들 사이를 거닐고 있던 게슈타인은 낡은 검이 꽂혀 있는 작은 언덕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시선을 훑자 흙에 파묻힌 비석도 눈에 들어왔다.
“친위대장님?”
갑작스러운 게슈타인의 변화에 그의 부하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게슈타인은 비석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차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5황자 전하를 모셔오게.”
“예, 알겠습니다.”
이윽고 5황자, 레이먼이 탑주들과 친위대와 함께 등장했다. 게슈타인은 자신의 주군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여기 비석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옆으로 비켜났다.
레이먼은 천천히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땅에 꽂혀 있는 낡은 검의 바로 옆에 파묻히다시피 한 비석이 보였다.
“혹시 몰라서 손대지 않았습니다.”
“잘했다, 만약 손댔다면 하루는 정신을 잃었을 거다.”
설정대로 강력한 마법 결계가 작동하고 있었다.
중급 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레이먼의 눈에는 보였다. 하지만 그가 직접 파괴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눈에 보일 뿐이었다.
‘저걸 파괴하려면 적어도 상급 이상의 마법사가 필요하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 옆에 탑주만 2명이 있는데, 굳이 아낄 필요가 있을까?
수하들이란 군주가 사용하라고 있는 존재들이다.
“데시아 헬리.”
“예, 5황자 전하.”
레이먼의 부름에 데시아가 얇고 아름다운 목소리을 흘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녀도 상급 마법사다. 결계의 수준을 알고 있었고 본인이 무얼 해야 할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결계를 파괴할게요.”
데시아는 똑똑하고 이해가 빨랐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그녀가 마정석이 박힌 스태프를 비석에 겨누자 희미한 마나가 흘러나와 춤을 췄다. 그리고 침식이 시작되었다.
비석에서 어떤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한 건 그게 순수한 마나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불길한 기운은 대체 뭐란 말인가!”
푸른빛이 아닌 불투명한 회색의 기운을 본 청탑주가 호들갑을 떨었다.
적탑주도 호기심에 시선을 떼지 못했고 데시아도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오직 5황자, 레이먼만이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5황자 전하, 저게 대체 뭘까요?”
아직 마나와 의문의 기운이 충돌하기 전이다. 데시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5황자라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말해준 신비로운 지식들, 그리고 이 원령들의 영토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그 모습에서 데시아는 확신했다.
5황자는 알고 있다.
시선의 끝에 담겨 있는 신뢰를 레이먼은 외면하지 않았다.
“영혼, 더 정확히 말하면 원령이다.”
간단한 설명에 두 탑주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 원령의 기운에 꽂혔다.
마법과 마나에 대해서는 전문가겠지만 원령과 영혼 같은 분야에 대해서는 신비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령이라……. 흥미롭네요.”
데시아도 흥미로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마나를 움직여 결계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원령들이 저항했지만, 상급 마법사의 압도적인 마나 앞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
파직! 하고 스파크가 튀었다. 산 자를 향한 강렬한 원념은 마나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푸른빛이 불투명한 회색의 기운을 무너뜨렸다.
“결계를 파괴했습니다.”
데시아가 말했다. 레이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흙더미를 치우자 비석에 각인된 비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혹곡이 없으면 망각은 계속될 것이니, 끝내는 우리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비석은 낡았지만 각인된 비문을 읽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참으로 원념이 가득한 비문이로군요.”
청탑주, 리세필드의 말에 레이먼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이들은 모두의 기대를 받았으나, 지금은 그 존재마저 잊혀진 자들이다. 원한의 깊이가 있다면 지옥까지 내려가지 않겠는가?”
“5황자 전하께서는 대체 이런 건 어디서 들은 것이옵니까? 마탑의 고서에서도 찾기 힘든 지식들인데…….”
“내가 노인장과 처음 만난 곳이 어딘지 잊었는가?”
황실 7번 비고. 오래되고 희귀한 역사서가 보관되어 있으니, 그곳이라면 이들에 대한 기록을 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리세필드는 레이먼의 대답에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5황자 전하께서는 이 지옥을 탈출할 방법을 알고 계신 듯하군요.”
적탑주, 베레누스의 물음에 피식, 웃으며 레이먼은 비석에 손을 대고 마나를 주입했다. 이 원령들의 영토에서 탈출할 방법?
물론 알고 있다. 그것뿐이랴?
“그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비석이 공명했다.
이제 여기서 더 필요한 건 황족의 피, 그리고 맹세다. 소설 속 주인공은 힘들게 황족의 피를 구했지만, 레이먼은 스스로가 황족이기에 그 험난한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
“황가의 혈통을 걸고 그대들에게 맹세한다.”
단검을 뽑아 팔을 그었다. 황족의 붉은 피가 비석에 튀었다. 5황자의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주위의 모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겁했다.
“5황자 전하!”
“가, 갑자기 무슨…….”
호들갑은 필요 없다. 레이먼은 왼손을 들어 올려 그들을 진정시키며 맹세를 이어가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더 이상 잊혀진 무명의 기사들이 아니니, 자랑스러운 제국의 기사들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땅이 전율했다.
“무, 무슨 일이냐!”
“이건 대체!”
원령들이 울부짖는다.
당황한 병사들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기사들마저 두려움에 질린 상황에서도 레이먼은 여전히 여유롭다. 이건 적의 섞인 울부짖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다.
이건 ‘이름’을 되찾았다는 기쁨의 외침이다.
-고대의 맹세를 기억하는 고귀한 혈통이여.
-모두가 망각할 때, 그대는 홀로 이름 없는 기사들을 기억하고 있구나.
서러운 목소리. 원령들의 아우성. 레이먼과 그의 수하들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말 많은 청탑주도 얌전히 침묵을 지켰다.
-두 개의 황가, 그리고 다섯 왕가 중 오직 필리어스의 혈통만이 자격을 증명했으니, 다시 땅이 전율하며 무덤이 열렸다.
-그대에게 잊혀진 일천의 기사들이 원념으로 담금질한 검을 하사하노라.
영혼검으로 향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주군!”
“5황자 전하!”
게슈타인과 데시아의 외침이었다.
하지만 바로 뒤에서 외쳤다고 하기에는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너무나 작았다.
레이먼은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불투명한 무언가가 수하들의 앞을 막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데시아는 총명함을 잃고 당황했으며 두 탑주도 어쩔 줄 몰라 했다.
“주군! 제가 구해드리겠습니다!”
게슈타인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고위 기사의 마나 소드조차 원령들이 몸을 던져 만든 결계를 베지 못했다.
“아이고! 5황자 전하!”
“침착하게! 청탑주! 그리고 5황자 전하! 뒤로 물러나십시오! 이따위 망령들의 원념 따위, 제가 박살 내겠나이다!”
호들갑을 떠는 청탑주를 대신하여 적탑주가 화염 소나기를 휘둘렀다. 불꽃이 작렬했지만, 원한의 벽은 흔들림이 없다.
아무래도 이 결계가 적대적인 것이라고 오해를 한 모양이다. 그들의 반응에서 순수한 충성심을 엿볼 수 있었다.
입가에 선명한 미소가 번졌다.
“아이고! 5황자 전하! 이런 상황에서 웃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청탑주가 다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는 동안 데시아와 적탑주는 결계를 분석했고, 게슈타인인 한계까지 기운을 끌어모아 만든 마나 소드를 쉬지 않고 휘두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을 거니까, 너무 걱정들 하지 말라!”